내가 믿는 것은 검 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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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72화
072. 수전
그리고 그 시각 전장의 한 구석.
“검성께서 신호를 보내셨소. 그럼 준비는 다 되었소?”
주위에서 호위 역할을 맡아 줬던 검사의 말에 안톤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말은 이분께 해야 할 듯하군. 공녀, 준비는 되었소?”
얼굴을 바라보며 묻자, 린디아스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안톤은 그녀가 업히기 쉽도록 상체를 낮췄다. 린디아스가 등에 업히자 옆에 있던 예의 검사는 준비해 둔 천으로 안톤의 몸과 떨어지지 않게 묶었다.
이후 땅에 떨어져 있던 안톤의 대검까지 주워 준 검사의 눈엔 염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괜찮겠소? 필요하다면 내 검을 빌려 드리리다.”
일반 성인 남성이라면 양손을 써도 드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할 심상찮은 무게의 대검이다. 과연 이런 걸 정말 실전에서 휘두르는 게 가능할까?
그런 검사의 걱정이 무색하게 안톤은 한 손으로 대검을 건네받았다.
“괜찮소.”
마치 가벼운 나뭇가지라도 쥔 듯 편안한 모습에 검사가 감탄사를 내뱉는다.
“대단한 힘이구려. 그나마 마음이 놓이오. 그럼 잘 부탁하리다.”
“그럼 가 보겠소.”
계속 적에게서 모습을 숨기고 있던 안톤이, 전장에 합류했다.
* * *
계획은 간단하다.
가우스트 조르디가 전장 한 복판에서 적의 시선을 끌고 있을 때, 린디아스를 데리고 제단까지 단숨에 돌파한다.
뭐, 검령을 흡수하고 나오는 시간을 본대가 버텨 주고, 또 함께 퇴각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결국 계획의 핵심은 이거였다.
“와아아아아!”
전장의 흐름은 아직까진 엇비슷했다.
굳이 우열을 가릴 것 없는 전력 속에서 팽팽한 기세 싸움을 이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온기가 채 남아 있는 시체들이 도처에 즐비했으나, 그들은 결코 겁먹으며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나지 마라!”
무인들 또한 운이 좋지 못하다면 죽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 정도의 각오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전장에 서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운이 좋은 쪽이 자신이길 바랄 뿐.
그렇기에.
안톤이 전장에 난입했을 때, 그들은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검귀……. 검귀다!”
운이 좋건 나쁘건, 또 그게 둘이 됐건 셋이 됐건 간에, 무심하게 휘둘러지는 저 일검 앞에선 모든 게 무의미했으니까.
저 간격 안에 들어가는 순간, 그냥 개죽음일 뿐인 거다.
“막아야 해!”
어느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으나, 아쉽게도 먼저 용기 있게 나서는 자는 없었다. 먼저 말을 꺼낸 이조차 뒷걸음질을 치기 바빴다.
딱히 말해 주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었다.
저 붉은 머리의 검귀를 막아야 한다는 걸.
하지만.
‘저걸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이곳은 전장의 외곽 부분이다. 따라서 실력이 없고 충성심이 낮은 이들이 주로 배치되었다. 이곳에 있는 상당수가 실력이 별로이거나, 혹은 시류에 맞춰서 헤스갈 측에 붙은 잡졸들뿐이었다.
검을 몇 번 휘두르기도 전에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은 자신들과 격이 다르다는 걸.
“지원! 지원을 불러야 해!”
적어도 화경 이상의 무인은 되어야 저 검귀를 막을 수 있으리라.
허나 수준 있는 무인들은 웬만하면 전장의 한복판에 배치됐다. 그렇기에 이곳까지 지원이 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다들 앞에 나서기조차 꺼려하는 이 와중에, 과연 그때까지 버틸 수나 있을까 싶은 게 그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버텨라!”
그래도 그때는 적어도 희망은 있었다.
버티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허나 그 부질없는 희망은 막상 화경의 무인이 당도하자마자 시들었다.
검기를 흩뿌리며 달려들었음에도, 자신들보다 특별할 것 없이 일격에 참살된 것이다.
‘쉽군.’
안톤은 자신이 다가갈 때마다 간격 밖으로 벗어나는 적들을 바라보며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가우스트가 했던 말대로, 후방에 배치된 무인들은 수준이 낮았다.
간간이 오러를 뿌려 대는 수준의 자들도 있기는 했다. 허나 그런 자들은 수가 몇 안 되었고, 혼자 덤벼 봤자 안톤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적어도 백무대주, 혹은 그에 준하는 무인이 오기 전까진, 그 누구도 안톤을 막지 못하리라.
‘그 전에 최대한 빠르게 뚫는다.’
안톤은 수많은 전장을 겪었다.
그렇기에 기세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바야흐로 지금은 적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야 할 순간이었다.
“흐아아아!”
안톤의 입에서 기괴한 함성이 튀어나온다.
마치 들판에 풀려난 짐승의 포효 같다. 이것은 적들에게 한 줄기 남은 마지막 대항 의지마저 꺾어 놓았다.
‘과연 이런 기분이었나.’
흔히들 전쟁을 혼자서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허나 가끔, 일신의 무력이 일개 군대를 능가하는 경우가 분명히 존재한다.
안톤은 그런 최강자들을 몇몇 직접 눈으로 담기도 했었다.
물론 자신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는 비교 불가의 강자였으나, 그것은 병사들 기준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전장에서 안톤은 병사들이 아닌 기사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안톤보다 강했다.
물론 강하다고 전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자신도 그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던 것일 테지.
아무튼 그럴 때마다 안톤은 항상 자신은 작은 부품일 뿐이라고 새삼 느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도, 도망가!”
홍해처럼 군대를 가르고 있지 않은가.
굳이 검을 휘두르지 않아도, 걸음만 내디디면 알아서 길이 열렸다.
안톤은 애써 감정이 고양되지 않게 억눌렀다.
그리고 세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됐다.’
어느덧 안톤의 시야에 목적지인 연못이 보인다.
검의 제단은 그 연못 안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안톤은 그대로 연못에 뛰어들기 전 린디아스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숨 크게 들이쉬시오.”
린디아스가 안톤의 말대로 심호흡을 크게 삼키기 무섭게.
풍덩.
비록 한겨울은 아니나, 아직 날이 풀리지는 않은 시기.
표면에 살얼음이 피어난 연못의 차가운 냉기가 피부로 와 닿는다.
물론 안톤은 추위나 호흡에 관련된 문제는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허나 린디아스는 그와는 다르다.
‘서둘러야겠군.’
물론 그녀 또한 기공을 익혔기에, 일반인보다는 잘 버텨 낼 것이지만……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없을 터다.
안톤은 연못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해 열심히 헤엄치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슈우우욱.
한 번 물장구를 칠 때마다, 몸이 쑥쑥 앞으로 나간다.
‘생각보다 깊군.’
그저 작은 연못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막상 들어와서 보니 깊이가 상당하다.
게다가 밑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폭도 점점 넓어진다.
이쯤 되면 연못이 아니라 호수라는 이름을 사용해도 될 정도.
그렇게 거침없이 물 아래로 잠수하고 있던 때였다.
콰아아앙!
수중 속에서도 들릴 정도의 큰 굉음과 함께, 충격으로 인하여 물의 흐름이 격변한다.
‘이게 무슨……!’
거칠게 요동치는 수중 속에서 균형을 잡은 안톤은 황급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맹렬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은발의 여인이 있었다.
‘백무대주!’
카트락시아.
그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원래 가우스트가 붙잡고 있기로 했던 것이 계획이었는데, 조금 일이 틀어진 모양이다.
안톤은 망설임 없이 린디아스를 붙잡고 있던 천을 거칠게 찢어 버렸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문이 있을 것이오. 혼자 가시오.
안톤의 전음은 간단명료했다.
린디아스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이렇게 물속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건 안톤뿐이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린디아스가 그의 말을 따랐다.
헤엄쳐 아래로 내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것도 잠시.
안톤은 어느덧 지척까지 접근한 카트락시아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또 보는군.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카트락시아에게도 딱히 물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단이 있는 건 아닌 듯했다.
사실 대화는 필요 없었다.
분노로 휩싸인 그녀의 눈이, 말보다 진하게 감정을 전해 주고 있었으니까.
안톤의 예상대로 카트락시아는 가속도를 이용해 그대로 옆을 지나치려 했다.
현재 그녀에게 가장 다급한 일은, 안톤을 향한 응징이 아니라 린디아스를 잡는 일이었을 테니까.
-어딜 가시려고?
물론 안톤이 이를 두고만 볼 리 만무하다.
빠르게 쏘아지듯 떨어지는 카트락시아의 발목을 잡은 안톤은, 그대로 위로 집어 던졌다.
“으어억.”
무언가 악이라도 지르고 있는 것일까.
위쪽으로 솟구치는 그녀의 입가에서 물거품이 피어난다.
어느새 중심을 되찾은 카트락시아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안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내 중대한 결정을 내린 듯, 재빠르게 무언가를 입에 집어넣었다.
회색의 단약이었다.
‘그때 그거군.’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에 대해선, 빌어먹게도 짚이는 것이 있었다.
당시 카트락시아는 그것을 삼키고 괴물로 변했고 무지막지한 힘을 선보였었다.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리라.
‘시간을 주면 안 돼.’
안톤은 잽싸게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변화의 속도가 예전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빨랐다. 형체 또한 지난번과는 매우 다른 생김새였고 말이다.
그녀의 피부에는 그때의 검은색 털 대신, 녹색 빛의 비늘이 돋아났고 두 다리는 제각기 한 쌍의 지느러미로 바뀌었다.
심지어 저번처럼 신체의 일부분만이 변한 것도 아니었다.
얼굴까지 포함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이 짐승처럼 변했다.
아니, 저걸 감히 짐승이라 표현할 수나 있을까.
좁았던 입구와는 다르게 연못 내부는 꽤나 넓었다. 그런데 그 폭이 모두 채워질 만큼의 압도적인 크기다.
이제는 짐승인가보다는 생명체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먼저 가져 봐야 할 정도.
더 이상 그녀라고 지칭할 수도 없는 괴물이 우악스럽게 입을 벌린다. 거대한 바위라도 한입에 삼킬 크기의 입속엔 날카로운 송곳니가 듬성듬성 보였다.
‘마치 뱀이라도 보는 것 같군.’
마침내 감겨 있던 괴물의 눈이 떠졌다.
그리고.
‘온다!’
괴물은 입을 최대로 벌린 후, 모든 걸 삼켜 버릴 기세로 수직으로 하강했다.
어딘가 몸을 피할 마땅한 곳은 없었다.
아니, 피할 수 있다고 해도 그래선 안 됐다. 저 아래에서는 린디아스가 물길을 헤치고 있었으니까.
결국 저 괴물의 돌진을 막아야 한다는 소리다.
안톤은 대검을 들어 올린 후,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검면을 받쳤다.
이윽고 괴물의 이빨과 안톤의 검이 맞닿는다.
무심코 검을 놓쳐 버릴 만큼 커다란 충격.
허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안톤의 검도 괴물의 이빨도 무사했다.
발 디딤대가 없는 수중 속이기에 안톤은 충돌에 의하여 속절없이 떠밀리기 시작했다.
안톤이 물장구를 치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속도로, 수면 깊숙한 곳으로 추락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안톤은 등으로 둔탁한 감촉을 전해 받았다.
벌써 밑바닥에 충돌한 것은 아니었다.
안톤은 무심코 등을 돌려 그 정체를 확인했다.
‘린디아스 공녀?’
빠른 속도로 떨어지다 보니, 아래 있던 린디아스를 따라잡고 부딪친 것이었다.
길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어느새 바닥 지척까지 근접한 상황이었고, 이대로 가다간 등 뒤에 있는 린디아스의 몸이 짓눌려 뭉개질 판이었다.
안톤은 다급히 린디아스의 몸을 끌어당겨 자신의 앞으로 가게 한 다음, 꽉 끌어안았다.
쿠웅!
뼈가 쑤실 정도의 묵직함이 후면으로 전해져 온다.
다행히도 미리 대비는 하였기에 심각한 부상으로는 치닫지 않았다. 안톤은 린디아스를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괜찮소?
린디아스에게 전음을 보내자, 이내 정신을 차린 그녀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안톤은 그녀가 보다 쉽게 헤엄칠 수 있도록 옆으로 밀어 주었다.
-어서, 제단의 문을 여시오. 여긴 내가 상대하고 있을 테니.
린디아스가 벗어나자 안톤은 괴물의 안면부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깡!
-진짜 어처구니없는 괴물인 건 여전하군그래.
검을 내리친 지점에 작은 흠조차 생기지 않았음을 확인한 안톤은, 서슴없이 괴물의 입안으로 몸을 내던졌다.
“키야아아아앗!”
흥분한 괴물은 더욱 거칠게 몸을 꼬면서 안톤을 떨어트리기 위해 쉴 새 없이 주둥이를 움직였다.
-과연 속살은 얼마나 단단할지 한 번 확인해 보자고.
푹.
바깥쪽과는 다르게, 안톤의 대검이 괴물의 입천장을 파고든다.
아쉽게도 도중에 뼈에 걸렸는지, 그리 깊게 박히지는 않았다.
다만 고통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쿠웨에에에에!”
듣는 것만으로도 쭉 소름이 끼쳐 오는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안톤은 주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어 갔다.
박혀 있던 검을 뽑고, 다시 찌른다.
푹.
“크와아아아아!”
몇 번이나 그것을 반복한 이후일까.
괴물의 목구멍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활화산처럼 솟구쳤다.
‘저건 위험하겠군.’
전투에 관련된 본능이 그렇게 외친다.
아니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누구라 한들 저걸 보면 피할 생각부터 하리라.
안톤은 재빠르게 괴물의 입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러기가 무섭게.
샤아아아아.
괴물의 입 구멍을 통해 뿜어져 나온 액체가 벽을 뒤덮는다.
안톤은 그 광경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측면의 벽이 그대로 녹아내리고 있었고, 액체가 뿜어져 나온 경로에는 물들이 수중에서 증발한 것인지 하얀 거품처럼 궤적이 남아 사방으로 퍼트려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음에도, 벌써 그 잔여물에 맞닿은 피부가 따끔하다.
안톤은 깔끔하게 인정했다.
지상이라면 또 모를까, 행동에 제약이 많은 물속에서는 승산이 희박하다고.
일단 안톤은 주변을 둘러보며 린디아스를 찾았다.
이제 너무 깊게 들어와 빛마저 희미했지만, 그녀를 찾는 것은 쉬웠다. 어둑한 이곳에서 유일하게 광채를 자아내는 석문 앞에 그녀가 있었다.
석문은 사르르 움직이며 닫히는 중이었다. 안톤은 서둘러 그곳을 향해 헤엄쳤다. 무언가를 잔뜩 토해 낸 후 잠시 주춤해 있던 괴물도 뒤늦게 안톤을 쫓기 시작했다.
물장구를 치는 안톤과는 그 속도부터가 달랐고,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러던 때.
문득 안톤의 눈에 이질적인 것들이 나타났다.
‘뭐지?’
그냥 평범한 물속에서, 무언가 보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것은 마치 길처럼 곡선으로 석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안톤은 무의식중에 그 경로를 따라 헤엄쳤다. 그러자 놀라온 일이 벌어졌다. 빠른 속도로 좁혀지던 괴물과의 거리가 이내 유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안톤은 인지하고 있지 못했으나, 그는 평소보다 수십 배 빠른 속도로 헤엄치고 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석문 너머로 들어선 이후였다.
“크와아아아!”
두꺼운 석문 건너편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괴물의 포효를 들으며, 안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크게 놀랐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석문이 한 번 열렸다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안에는 물이 차 있지 않았다.
물이라곤 한바탕 젖은 몸에서 뚝뚝 떨어져 나온 것이 전부다.
공기도 가득해 숨을 쉬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또 눅눅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온도조차 딱 적당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쾌적한 온도.
천장에 박힌 보석들은 제각기 빛을 내며 장내를 비춰 줬기에, 그리 어둡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천장의 빛은 통로를 따라 저 앞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그럼 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