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검 66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66화
066. 달성
지형적인 이점은 안톤에게 유리했다.
비록 도주로가 막힌 절벽 끄트머리였으나, 길목이 좁아 상대측에선 다수의 이점을 살리기 어려운 것이다.
기껏해야 사람 서넛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이랄까.
그리고 그조차도 일자로 서서 지나갈 때의 이야기였고, 전투를 하고자 한다면 둘 이상은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로 좁았다.
상대측 또한 그렇게 판단하였는지, 한 명씩 그를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쉬잉!
한 번 검광이 흩뿌려질 때마다 한 명의 주검이 생긴다.
처음에는 그들 또한 아랑곳 않고 연신 공세를 이어 갔다. 허나 안톤이 아홉 명의 적을 순차적으로 베어 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먼저 다가오길 망설였다.
그들로서도 느낀 것이다.
혼자 저곳으로 가면 개죽음을 당할 뿐이란 걸.
“오지 않을 셈인가?”
수동적인 적들의 모습에 안톤이 세 발자국을 앞으로 나갔다.
겨우 세 걸음이었지만, 지면은 아까보다 훨씬 넓어졌다.
이 정도 공간이면, 둘이서 합격술을 펼칠 수도 있기 충분한 면적이었다.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은 적들이 안톤을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허나 여전히 안톤의 검은 한 번씩만 휘둘러졌다.
굳이 두 번을 연이어 휘두를 필요가 없었다.
단숨에 횡렬로 그어지는 그의 검은 사람이 하나건 둘이건 간에, 모든 걸 베고 지나가버렸으니까.
“괴, 괴물이다!”
누가 누굴 보고 괴물이라고 하는 것일까.
우습다는 생각을 하며 안톤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뻗을 때마다 땅은 넓어진다.
한 번에 싸울 수 있는 인원 역시 그만큼 늘어나게 됐지만, 그들은 그가 다가온 만큼 뒤로 물러났다.
“버텨라! 지원군이 오고 있다.”
이제 상황이 뒤바뀌었다.
안톤이 막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수비를 하는 것이다.
휘잉!
한 점의 자비도 묻어나지 않는 검이 연신 휘둘러진다.
안톤이 한 번 검격을 내뿜을 땐, 적어도 둘 이상의 적이 죽었다.
그렇게 무참히 적들을 도륙하던 때였다.
희망 섞인 외침이 밤공기를 타고 메아리쳤다.
“그분께서 오셨다!”
그분이라니.
과연 누구를 칭하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기 무섭게, 저 멀리서 은색의 무언가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 형체는 점점 크기를 키워 나가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콰아아앙!
“큿!”
처음으로 안톤이 입 밖으로 음성을 내뱉었다.
다행히도 미리 발견하였기에 별 피해는 없었다.
다만.
‘내가 밀려났다고?’
공격을 막기 위해 반사적으로 치켜든 검은 부러지지 않았지만, 그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안톤은 맨손으로 자신의 검날을 쥐고 있는 은발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어머, 일개 대대가 박살 나고 있다기에 와 봤는데 이런 꼬맹이일 줄이야.”
역시나 그때 그 괴물이었다.
‘이렇게 일찍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검을 빠르게 휘둘러 검신을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친 안톤이 빠르게 뒤편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은발의 여인을 경계하며,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직 온-누르가 말한 안의 경지엔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년 동안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다.
오늘 밤만 해도 화경급의 무인을 수도 없이 베지 않았던가.
비록 온전한 깨달음으로 그 경지에 오른 무인은 아니었지만,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셋 이상은 어려웠을 것이었다.
안톤은 검병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할 수밖에 없어.’
자신 혼자라면 후일을 기약하며 미련 없이 도주했을 수도 있다.
허나, 지금 자신은 혼자가 아니지 않은가.
“조심하렴, 꼬마야. 그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는단다.”
‘온다!’
안톤은 하체에 체중을 실었다.
뒤에는 린디아스가 있고, 그 뒤는 아래가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다.
‘더 이상 밀려나선 안 돼.’
쾅!
사람의 손과 검이 부딪쳐 나왔다곤 상상도 못 할 만큼 커다란 굉음이었다.
안톤이 밟고 있던 땅이 움푹 파이며 족적이 깊게 남겨진다.
충분히 대비하고 막아 냈다고 했는데, 다시 밀려나고 말았다.
‘스승님은 이런 괴물과 싸웠던 건가.’
적에게 감탄하는 것도 잠시.
안톤은 새롭게 나타난 걱정거리를 마주해야 했다.
‘이대로 있다간 땅이 먼저 무너져 버리겠군.’
그런 근심 속에서도 안톤은 여인을 향해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는 여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안톤을 샅샅이 살펴보던 그녀는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로 물어 왔다.
“아무리 봐도 인간인 건 분명한데,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니?”
“그야 버틸 만하니까 버티는 것 아니겠소.”
“호호. 하여간 인간들은 하나같이 지 주제를 모른다니까?”
“지 주제도 모르고 인간 흉내를 내는 괴물보단 낫지 않겠소. 아, 팔죽지는 괜찮소? 그때 보니 많이 아파 보이던데.”
그런 이죽거림에도 화가 나기보다 의문이 먼저 피어난다.
문맥으로 보아 예전에 온-누르와 일전을 벌였을 때의 일을 말하는 듯한데, 어째서 그 일을 저 녀석이 알고 있는 것일까.
“……너는 누구지?”
질문을 내뱉는 동시에 여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단서가 있었다.
‘잠깐, 온-누르의 제자 놈이 북부인이랬지?’
그녀는 예전에 지나치듯 보았던 그의 인상착의를 떠올렸다.
별 관심이 없던 부분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차근차근 생각해 보니 기억이 난다.
붉은 머리에 회색 눈.
이마저도 얼마 전에 가르톤의 소식을 들으며 따로 언질받은 것이 아니었으면 전혀 생각나지 않았을 거다.
“아! 이제 보니 그 도망갔다던 제자 놈이구나? 해린에서 잘 지낸다고 들었는데, 계속 거기 있지 여긴 왜 돌아온 것이냐?”
이번엔 안톤이 흠칫했다.
철가면이란 별명을 얻으면서까지 모습을 감추고 지냈는데, 그들은 이미 자신이 뭘 하고 지내는지까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왜 아무런 제지도 없었지?’
자신은 핫산을 국왕으로 세우며 그들의 계획을 방해하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왜 그냥 내버려 뒀는지 궁금한 눈치구나? 음, 어떡할까……. 알려 줄까, 말까?”
“궁금하지 않소.”
“아니, 말해 줘야겠어. 이유는 간단해. 너한테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 처음부터 너는 암검을 잡기 위한 제물이었을 뿐이야.”
“…….”
“아무튼, 암검 그자가 꽁꽁 숨어서 짜증이 나던 참이었는데, 일단은 너로 만족해야겠다.”
“피차일반이오. 나도 빈손으로 스승님을 뵈러 가기 민망했는데, 당신의 목 정도면 어떻게 면이 설 것 같소.”
한 마디의 말도 지지 않는 안톤을 보며, 여인이 입술을 질겅 씹었다.
“오늘, 인생에 다시없을 교훈을 내려 주마.”
“잔말 말고 덤비기나 하시오. 나야말로 빌어먹을 몸뚱이만 믿고 나대는 당신에게 교훈을 줘야겠소.”
말은 자신만만하게 하였으나, 안톤은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상태였다.
언제 달려들지 모르니, 감각을 최대한 깨워 놔야 했다.
‘정신만 차리면 가능해.’
여인의 신체 능력은 안톤이 보아 온 그 어떤 이보다도 뛰어나다.
아마 무기를 쓰지 않고 맨손으로 다니는 것도 그런 이유일 터.
‘저런 몸뚱이가 있으면 검이야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그게 여인의 약점이라고 안톤은 생각했다.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만, 과거 온-누르와의 일전에서도 여인은 뛰어난 신체 능력을 기반으로 한 단조로운 공격만 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선보인다.
하지만.
결코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와라!’
빠득.
안톤의 도발에 완전히 넘어간 여인이 완벽한 직선을 그리며 달려온다.
‘막고 친다.’
안톤은 여인을 상대하기 위한 전략을 상기했다.
전략이랄 것도 없이 내용은 단순했으나, 그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었다.
차착!
휘둘러진 검이 그녀의 손톱을 가로막았다.
힘만으로 막아 낸 것이 아니었다.
강이 아닌 유.
안톤은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충격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일시적이지만 여인은 몸의 균형을 잃었다.
안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여인의 오른쪽 쇄골 위로 거침없이 검을 내리찍었다.
깡!
‘이게 무슨…….’
마치 피부가 강철로 이루어진 것 같지 않은가.
허나 경악할 시간은 안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신체의 균형을 되찾은 여인이 다시금 손을 뻗어 온 것이다.
아직 검을 회수하기 전이었기에 검으로 막거나 흘려보낼 순 없었다.
안톤은 급히 몸을 비틀었다.
매섭게 세워진 여인의 손이 안톤의 목을 스치고 지나간다.
‘상관없다. 강철, 아니 그보다 단단한 것이라 하여도 베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으니까.’
안톤은 몸의 비틀림을 오히려 이용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회전력에 더해진 검이 무서운 기세로 날아든다.
가중검.
검이 여인의 몸에 닿는 순간.
안톤은 한계치까지 검의 중량을 늘렸다.
콰아앙!
무언가 폭발한 듯한 소음과 함께, 여인의 몸이 저 멀리까지 날아가 나무에 틀어박힌다.
처음으로 성공한 일격이라 할 수 있으나, 안톤의 안색은 밝지 못했다.
‘역시 이번에도 베진 못했군.’
저렇게 몸뚱이째로 튕겨져 나갔다는 것은, 베지 못했다는 말과 동일했으니까.
예상대로 여인은 별 타격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예 베지 못한 건 아닌가.’
안톤의 예리한 눈이 여인의 몸을 살폈다.
검이 맞닿은 지점에는 옷뿐만 아니라, 찢겨진 살갗으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겨우 저 정도 상처라니, 진짜 엄청난 신체 능력이군.’
심지어 그 자그마한 부상마저 금방 치유하고 멀쩡한 몸으로 달려들 것이다.
안톤은 검을 치켜들고 그 공격을 대비했다.
그런데.
그 예상이 빗나갔다.
여인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상처를 쳐다보며 멈춰 서 있었다.
“왜…… 왜, 재생이 안 되는 거야. 너어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거야 직접 알아보시지?”
말은 그렇게 하였으나, 사실 그 이유는 안톤도 알지 못했다.
다만 여인이 착각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에 여유롭게 행동한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됐군.’
승산이 훨씬 올라갔다는 생각을 하던 때.
여인의 분위기가 전과는 천차만별로 변했다.
“……죽여 버리겠어.”
방금까지는 그저 재밌는 장난감을 갖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면, 지금은 그냥 한 마리의 짐승이랄까.
“그게 너희들의 본성인가?”
“닥쳐라!”
안톤은 순간 여인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착각이 들었다.
눈에 정신력을 쏟아부어 안력을 높였음에도 겨우 그 잔영만이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
하지만 안톤은 여인의 공격들을 모두 완벽하게 막아 냈다.
제대로 보이지 않더라도, 경험과 감각을 이용하면 어떻게든 전투를 치러 나갈 수 있을 만큼 여인의 전투 방식이 직선적이었던 것이다.
찰나의 간극 동안, 수십 번의 수 교환이 이루어진다.
여인의 공격은 대개 찌르기였다.
그냥 손으로 송곳처럼 쑤시는 식의 공격.
원래라면 이렇게 단순한 일격에 당하는 일은 없었을 터이나, 안톤의 몸에 상처가 하나 둘 늘어 갔다.
검보다 간격이 훨씬 짧은 초접근전이었고, 그 속도마저 너무 빨라 부상이 불가피했다.
안톤은 집요하게 처음 냈던 상처를 노렸다.
쾅! 쾅!
나무에 도끼질을 하듯 그저 계속 같은 곳을 베어 냈다.
그러자 조금씩, 조금씩.
검이 더욱 깊게 박힌다.
“끄아아아!”
그럴 때마다 여인은 점점 난폭하게 변하며, 한결 공격로를 읽는 게 수월해졌다.
그렇게 전투를 잘 풀어 가고 있던 때.
“읏!”
안톤은 허벅지에 깊은 자상을 입고 말았다.
‘젠장, 갑작스레 공격로를 바꿀 줄이야. 흥분한 척한 건 연기였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난데없이 날아든 변칙적인 공격이었다.
허나 암만 생각해도 연기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학습한 건가? 아무튼 이제 쉽지 않겠군.’
힘줄을 건드렸는지,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정비를 할 새도 없이 여인의 손이 날아든다.
‘피할 수 있나?’
반사적으로 머리가 내린 대답은 아니다, 였다.
‘그럼 막는 것은?’
이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팔 하나는 가져가 주마!”
안톤은 복부에 공격을 허용하면서 일격을 내리쳤다.
서걱.
“끼에아아아!”
한 명은 배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렸고, 다른 한 명은 팔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다.
어째선지 꽤나 익숙한 장면이란 생각에 실소가 나온다.
“크큭. 그럼 계속 해 보자고.”
온-누르와의 일전.
다만 그때와 다르게 여인은 팔을 재생할 수 없다.
이젠 서로 모든 걸 걸고 벌이는 난장판이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이런 식의 개싸움은 이쪽이 더 경험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안톤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싸움에선 모든 걸 내던진 쪽이 대개 이기기 마련이란 걸.
이것은 덜 가진 놈이 이기는 싸움이다.
“나머지 팔을 베려면 얼마나 걸릴까?”
온몸이 피투성이로 물든 상태에서도 안톤은 전의를 불태웠다.
“미친 새끼!”
여인은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단 말인가.
저건 마치 지옥에서 온 악귀 같지 않은가.
“한 번 계속 해 보자고.”
그런 안톤과 달리 여인은 싸울 의지가 깎여 있었다.
원래 그녀는 전투 시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던지며 상대에게 그만큼의 피해를 입히는 것이 그녀의 전투 방식이다.
허나 그것은 어떤 상처를 입어도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안톤의 검은 어떤가.
평소였으면 금방 재생되었을 자상들에서 계속해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지 않은가.
심지어 이미 팔 하나가 베어진 데다, 나중에라도 치료가 가능할지 아닐지조차 불투명했다.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여인에겐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순 없다.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앞에 있는 린디아스 공녀를 데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공녀만 납치해 데려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저 앞을 뚫으려면 더 큰 부상을 감수해야만 할 터.
“이걸 또 쓰게 될 줄 몰랐는데, 그게 너 같은 애송이한테 쓸 줄이야.”
뒤로 몇 보 물러난 여인이 가슴 상단 안 주머니에서 단약 하나를 꺼내 입에 삼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부글부글.
여인의 피부에 기포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근육이 붉으락푸르락 요동치며 팽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팽창한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랐다.
그것은 변신이었다.
어느샌가 푸르스름하게 물든 팔에서 털이 자라난다. 안 그래도 뾰족하던 손톱은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두껍고, 날카롭게 변한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여인의 팔은 엄청나게 거대해졌다.
근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뿌리째 뽑아낸 듯한 크기.
‘저건 짐승이군, 그냥.’
안톤도 이 기괴한 모습에 잠시 얼이 나갔다.
살기란 결국 기공의 한 일종이다.
허나 여인이 내뿜는 불길한 기운은 그 궤를 달리했다.
이것은 맹수들이 원초적으로 뿜어내는 진짜 살기였다.
쿵!
여인의 팔이 세차게 휘둘러진다.
안톤을 향해서가 아니라, 주변을 지키고 있던 흑의 사내들을 향해서.
그 한 번의 공격에 스물 넘게 남아 있던 적들 중 반 이상이 궤멸했다.
‘저걸 내가 막을 수 있을까…….’
다행히 여인은 큰 힘을 얻은 대가로 이성을 잃은 듯 보였으나, 주변의 것들이 모조리 파괴되면 이제 자신이 다음 타깃이 될 것이다.
안톤은 등을 돌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린디아스에게 다가갔다.
“공녀, 혹시 낙법은 잘하오?”
“예전에 기본은 배웠지만, 갑자기 그걸 왜…….”
“저걸 봤으면 알겠지만, 아무래도 도망가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아무튼 잘한다니 다행이오.”
“잘한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안톤은 린디아스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자세를 취했는데, 마치 무언가 멀리 던지려는 사람의 자세 같았다.
“다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죽는 것보단 나을 거요.”
“자, 자, 잠깐만요! 당신은 어쩌고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군. 일단 시간이 없소.”
안톤은 전력을 다해 린디아스를 절벽 너머에 있는 봉우리를 향해 던졌다.
“아, 아아! 끄, 끄아아앗!”
쿵!
귀를 기울이니 무사히 착지하는 소리와, 그 과정에서 새어 나온 신음이 들린다.
안톤은 그녀에 대한 걱정을 접었다.
이제 자신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