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검 61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61화
061. 역사
“아끼던 검이었는데 아깝게 됐군.”
레버르트 남작은 아예 산산조각 나 검자루만 남게 된 검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그런 말을 하면 화낼 걸세. 그나저나 예전과 딱히 다르지 않은 일검처럼 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가?”
“며칠 사이 작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걸 깨달음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애매합니다만.”
“하하. 노력하고 있던 건 나뿐이 아니라는 건가? 그래도 이번 기술은 내심 꽤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항복일세. 이게 재능이라는 건가?”
“그럴 리가요.”
“마음에도 없는 말은……. 자네는 실로 무서운 사람일세. 나이가 열아홉이랬나? 나는 여지껏 그 나이대에 그만한 실력을 지닌 이를 본 적이 없단 말일세. 후우…….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네와 나의 격차는 벌어만 지겠지.”
“…….”
허탈한 속내가 고스란히 보이는 어조에 안톤은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대련에서 안톤에게 패배해도 항상 웃던 레버르트 남작이었기에, 그저 그가 소탈한 성격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무인이.
그것도 검에 미쳐 열정을 불사르는 검사가, 자신의 검이 꺾인 것에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다.
그저 울분을 양분 삼아 부단히 노력했던 거다.
“후! 못난 모습을 보였군그래. 아무튼 징징거리는 건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 그나저나 내 기술은 어땠나?”
레버르트 남작은 금방 감정을 추슬렀다.
정말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같았다.
안톤도 그 장단에 맞춰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솔직히 말해 주어야 하나?’
그런 속마음이 들리기라도 했는지, 레버르트 남작이 첨언했다.
“주저 말고 느낀 그대로를 말해 주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스쳐 지나가듯 들어 주십시오.”
“그러도록 하지.”
“일단은…… 세 가지의 검리가 합쳐졌으나, 제대로 융합되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완전함이 더욱더 검의 위력을 높이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완전히 기운들을 조율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안정한 기운을 제어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톤의 감상에 레버르트 남작은 턱을 짚고 고민에 잠겼다.
“그런가? 난 그쪽으론 생각도 못 하고, 조화시키는 쪽으로만 열을 쏟았는데, 한 번 자네 말대로도 연구를 해 봐야겠군.”
“남작님이라면 금방 성과를 내실 겁니다.”
“아부는…….”
칭찬이 겸연쩍었는지, 레버르트 남작이 슬쩍 시선을 돌린다.
그러다 막 뇌리에 스친 생각이 있었는지 다시 안톤을 쳐다봤다.
“아! 그나저나 아직 이 기술엔 이름이 없는데. 혹시 자네가 이름을 지어 보지 않겠나?”
안톤은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다.
우선 그런 쪽으로는 영 재능이 없다는 걸 스스로가 잘 알았고, 게다가 자신의 기술이라면 모를까. 남의 것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허나 레버르트 남작의 기대 어린 눈초리를 마냥 무시하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안톤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삼일검. 삼일검은 어떻습니까?”
아주 단순무식한 형태의 이름이 아닐 수 없다만, 이게 안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레버르트 남작은 그 이름이 제법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괜찮군. 아무래도 나보다는 작명 실력이 훨씬 좋은 듯해.”
“하하……. 다행이군요.”
“그럼 나는 이만 가 봐야겠군. 자네가 해 준 조언대로 연구해 보고 싶어 좀이 쑤셔서 말이야. 자네는 언제쯤 떠날 생각인가?”
“이미 마음을 정한 이상, 최대한 빨리 떠나려 합니다.”
“그래, 모름지기 사내란 그런 맛이 있어야지. 그럼 그 전에 한 번 더 보는 걸로 하고, 왕자님께는 내가 잘 말해 두겠네.”
이제 정말로, 이곳을 떠날 때였다.
* * *
사실 그동안 핫산이 무상으로 안톤을 부려 먹은 것은 아니었다.
별 의미는 없지만 봉급이라며 매달 10골드씩은 꼭 그에게 챙겨 주었었다. 그리고 안톤은 굳이 그것을 사양하진 않았다.
그에게 그 정도의 금액은 크지도 않은 금액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모였는데?’
그리고 그 봉급들을 1년을 넘게 꼬박꼬박 모은 결과, 지금 상당히 큰 금액이 되었다.
‘다행이군. 여비는 부족하지 않겠어.’
안톤은 감상 어린 눈으로 풀어진 전낭 속 금화들을 보았다.
‘내가 직접 번 돈.’
전생과 현생을 합쳐 처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벌어들인 수익이었다.
그 말은 즉, 자신이 원하는 대로 써도 상관없는 돈이라는 뜻.
그래서일까? 안톤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전생에서 코르보 백작가의 소영주는 안톤에게 좋은 잠자리, 식사를 보장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봉급을 챙겨 줬던 건 아니었으니.
안톤은 회귀한 이후 검투사 양성소에서 처음 했었던 다짐을 떠올렸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그저 물 흘러가듯 살아 보는 것이 그의 첫 목표였다.
‘조르디가의 일만 다 끝나면…… 그땐 즐기면서 살자.’
초심을 다잡은 안톤은 마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실 떠날 채비를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또 뭐가 남았지?’
여분의 옷가지도 챙겼고, 무구 점검도 끝났다.
음식은 마을에 들를 때마다 사서 먹으면 되기에 따로 챙기진 않았다.
정 급하면 숲 속에서 사냥을 해도 되고 말이다.
‘이건 돌려줘야 하려나?’
안톤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모습을 감추는 데 쓰라고 핫산이 주었던 아티팩트였다.
소모성 아티팩트로 세 번의 실행 가능한 마력이 남았다고 했는데, 처음 1왕자와 대면할 때 한 번 사용한 이후 쓸 일이 없었기에 아직 두 번 더 마법을 쓸 수 있었다.
‘이따가 만나서 물어봐야겠군. 아, 근데 그건 어떡하지?’
안톤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떠나가기 전에 꼭 한 가지 부탁을 하라고 명령하다시피 말한 핫산이 떠오른 것이다.
‘부탁이라…….’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고 느끼던 찰나.
뇌리 속에 스치듯 지나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내년이 대가뭄의 시기군.’
제국력 415년.
대륙 전토를 휩쓴 전례 없는 대가뭄에 천만 명이 넘는 아사자를 발생시킨 희망 없던 시기.
훗날 역사가들이 그 연도를 재앙의 신 베놀라의 해라고 이름 붙일 정도로 끔찍했던 시기가 1년 뒤면 다시 찾아온다.
안톤은 당시 코르보 백작 부인에게 팔려 가 그 힘든 시기에서 한 발 비껴갈 수 있었기에, 직접적으로 그 시기의 여파를 느끼진 못했었다.
코르보 백작가가 속한 그레일시아는 가뭄의 여파에서 비껴간 유일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 대가뭄이 얼마만큼 참혹했고, 어떠한 결과를 불러왔는지 정도는 안다.
악은 악을 낳는다던가?
재앙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왔다.
대가뭄의 잔해를 털어 내기도 전에 제국에선 전국적으로 역병이 창궐한 것이다.
처음 보는 형태의 역병은 많은 생명들을 앗아 갔으나, 안타깝게도 재앙은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재였다.
귀족층들의 이기적인 대응에 분노한 민중으로부터 반란군이 결성된 것이다.
황실 측에서는 군대를 동원해 반란을 종결시켰으나, 그 과정에서 큰 타격을 입은 제국은 그 이름마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거대한 혼란의 시작이었다.
더 이상 제국의 영주들은 황제에게 충성하지 않았다.
제국이 정해 둔 세금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영지민들에게 부과하면서도, 이를 황실에 납부하지 않았다.
그 결과 물가가 날뛰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제국의 치안은 최악에 이르렀다.
치솟는 물가를 감당 못 하고 파산한 서민들이 생존을 위해 검을 빼 들고 산으로, 들판으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롯 대륙만의 문제로 치부할 순 없었다.
대륙의 중심이 되었던 제국이 힘을 잃자, 국제 정세도 요동칠 수밖에 없었으니까.
주변 어느 국가도 이제 황제를 두렵게 여기지 않았고, 눈치 볼 것 없이 행보를 펼쳐갔다.
오랜 시간 명성을 떨치던 제국이란 이름이 실추될 만큼의 위기.
새롭게 즉위한 황제는 어떻게든 이러한 위기들을 극복하기 위해 무모한 짓을 벌였다.
‘아인종 탄압정책.’
잃어버린 제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 이 모든 재앙들이 아인종들로 인한 것이라며 애꿎은 곳에 비난의 화살을 돌린 것이다.
전쟁은 돈이 된다고.
황제는 영주들을 이렇게 설득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직설적인 설득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언제나 제국은 전쟁에서 승자의 입장이었기에, 애초에 그런 인식들이 그들의 머리에 새겨져 있던 것이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 있던 제국의 힘을 한 군데 집결하는 데 성공한 황제는 군대를 진격한다.
첫 진격지는 록티아와 그레일시아 남부 지역이었다.
아인종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지역이었고, 제국이 힘을 잃자 제일 먼저 반기를 들었던 국가였다.
‘이게 재앙의 시작이었지.’
그 역사들을 겪은 후 이렇게 과거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들이 훗날 대전쟁이라는 역대급 재앙의 시발점이었다.
안톤은 이 사건을 어떻게 이용하면 자신에게 득이 될지 생각해 보았다.
그런 재앙들을 미리 나서서 막아 내겠다는 영웅적인 의지는 그에게 없었다.
제국이 망하든, 대전쟁이 다시금 벌어져 수천만의 목숨들이 덧없이 피와 함께 흩뿌려지든, 그와는 상관이 없었다.
누군가는 그런 안톤을 이기적인 소인배라 비난할지도 몰랐다.
허나 안톤은 전생에 노예였다.
자유를 빼앗기고 유일하게 검을 휘두르는 것만을 즐겁다 여기며 목적 없이 살아가는 노예 말이다.
‘난 영웅이 아니야.’
안톤은 언제나 그 사실을 명심하고자 했고, 잘 지켜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이 일은 언젠가 그에게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이었다.
‘그래.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힘을 키워 놓는 게 옳아.’
잔잔하던 호수에 돌이 하나 던져졌고, 그 돌이 자신이라면 적절한 비유일까.
이미 미래는 수차례 바뀌었다.
조르디가의 가주가 죽고, 핫산이 해린의 국왕이 되었다.
대상인 카린 세이건 레이왈츠가 재기할 시기가 훨씬 앞당겨졌고, 역사서에 한 획을 그을 용의 현자가 죽었다.
이제 앞으로 역사는 변한다.
‘나는 나를 위해서 살겠다.’
어째선지 안톤은 이제 떠나고 없는 펠샤인이 문득 떠올랐다.
* * *
왕궁을 떠나기 전, 안톤은 핫산을 찾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들을 얘기하며 고별의 말들을 나눴다.
그 말들이 대충 끝나 갈 때쯤.
안톤도 슬슬 용건을 입 밖으로 꺼냈다.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누군가의 부탁이라는 것은, 설핏 불쾌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일이다. 허나 핫산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있었다.
그에게는 이번 일이 마음의 짐을 덜어 낼 기회로만 여겨진 것이다.
“뭔가? 어서 말만 하게나!”
“그게…….”
안톤이 조심스레 말하자, 핫산은 무슨 어려운 일일까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돈 좀 빌려주십시오.”
“돈? 정말로 그게 단가? 얼마가 필요한가? 참고로 갚을 필요는 없네.”
핫산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되묻는다.
무력이라면 모를까.
돈이라면 핫산에게는 무엇보다 자신 있는 것이었다.
무역을 주된 업으로 살아가는 해린의 경제력은 어느 대륙의 열강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규모였으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안톤은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앞으로 요구할 금액은 그로서도 굉장한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아뇨. 그냥 받기는 너무 큰 돈이라…… 3년 내에 반드시 갚겠습니다.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말입니다.”
“음……. 그래야 자네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리하게나. 그래서 얼마가 필요한가?”
“1만…….”
“1만 골드? 겨우 그것 때문에 그렇게 말하길 주저한 겐가? 자네도 참 순진한 면이 있군그래. 자네가 해 준 일을 생각하면 그의 10배, 아니 100배라도 아깝지 않을 걸세!”
100배라도 아깝지 않다니!
아무래도 뭔가 단단히 착각한 듯 보였으나, 그 말 덕분에 안톤은 한결 편하게 나머지 말을 이어 갔다.
“리듐. 1만 리듐이면 될 것 같습니다.”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것도 잠시.
핫산은 그대로 숨 멎은 사람처럼 굳는다.
“……?”
리듐.
강철보다도 단단하고, 마법 전도율이 높아서 아티팩트 제작에 주로 사용되는 금속.
게다가 그런 실용성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광채와 희소가치까지 더해져 외형적인 가치도 금보다 높았다.
그런 리듐을 주화로 처음 만들어 사용한 것은 제국이었다.
워낙 거부들이 많다 보니, 금화로는 단위가 성에 차지 않던 것이다.
시장에 따라 약간의 변동 사항이 있긴 하지만, 금과 리듐의 환전 비율은 대략 70 대 1 정도로 고정되어 있다.
한 마디로 안톤은 지금 70만 골드를 요구한 셈.
“대체 그 큰돈을 어디다 쓰려고…….”
내내 호기롭던 핫산의 얼굴에 난색이 어린다.
물론 핫산은 충분히 그 정도의 자금을 융통할 능력이 된다.
허나 그것은 왕궁의 예산으로 생각했을 때의 이야기이지, 이렇게 사비처럼 쓰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었다.
일국의 왕인 핫산으로서도 꽤나 무리를 해야 하는 것.
“부담되시면 못 들은 걸로 하셔도 됩니다.”
“말해 줄 수 없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면 핫산의 반응은 불 보듯 빤했다.
틀림없이 헛된 곳에 돈을 쏟아붓는다고 뜯어 잡고 말릴 것이다.
물론 계속 억지를 부리면 돈을 내주기야 할 테지만, 하다못해 왜 그런 걸 하려는지 근거라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안톤은 그 근거를 핫산에게 제시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선 과거로 돌아온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놔야 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말해 준다고 하면 내 얘기를 과연 믿으려고 할까?’
그런 의문도 의문이었으나, 설령 그런다 쳐도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는 것이 안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냥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3년 안에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래,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말이지?”
“그렇습니다. 게다가 1만 골드의 100배도 아니고, 겨우 70배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왕자님, 아니 국왕 전하께는 그다지 아까운 일도 아닐 겁니다.”
자승자박이라고.
아까 기고만장해서 내뱉은 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잠시 현기증이 났는지, 핫산이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자네는 검사보다는 상인이 더 적성에 맞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안톤은 어서 고개를 끄덕이라는 의미를 잔뜩 담아 그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을 받다 못해 질린 듯 고개를 도리질 친 핫산이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후! 알겠네! 어떠한 것도 더 묻지 않고 돈을 내주겠네! 대신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시일이 좀 걸릴 걸세. 그건 괜찮겠지?”
“괜찮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바로 출발해 보겠습니다.”
“아니, 지금 가겠다는 건가? 돈은 어쩌려고?”
“그 돈은 금화건 리듐이건 카린에게 전해 주십시오. 지금 바로 그녀를 찾아갈 생각이니까요.”
“그녀와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군? 정말로 장사라도 할 생각인가?”
이미 돈을 내주겠다고 허락이 나온 상태이니 이 정도는 말해 줘도 될 것이다.
안톤은 슬그머니 웃음기를 머금으며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장사라기보다는, 투자지요.”
이왕 변하기 시작한 역사.
한 번제대로 바꿔 볼 생각이었다.
물론 최대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