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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54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0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54화

054. 인연

 

 

세 척의 상선이 기세 좋게 수평선을 향해 달린다.

 

가장 선두에 선 선박엔 카린이 직접 만든 깃발이 달려 있었다.

 

안톤은 감상 어린 눈으로 그들의 출항을 바라보았다.

 

길다면 길게 느껴졌던 카린과의 동거가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

 

함께 그 풍경을 지켜보던 핫산이 입을 열었다.

 

“이제 뒷일은 그녀에게 맡기고 이만 돌아가세.”

 

-예.

 

안톤도 그를 따라 등을 돌렸다.

 

무사히 배를 떠나보냈으니,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때였다.

 

 

* * *

 

카린이 출항하고 나서 일주일 뒤.

 

핫산은 안톤이 부탁한 대로, 펠샤인의 스승과 만남을 주선하는 데 성공했다.

 

“펠이 자네를 데리러 오기로 했네. 그럼 잘 다녀오게.”

 

문 앞에서 배웅 인사를 던지는 핫산에게 안톤은 되물었다.

 

“같이 가진 않을 생각입니까?”

 

“그 노파라는 사람이 어떤 자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썩 내키지가 않는군. 그리고 그 노파에 대한 소문이 걸려서 말이네.”

 

“소문이라니, 전엔 그런 얘기는 없지 않았습니까?”

 

“자네가 노파에 대해 물어본 후, 나도 내 나름대로 그녀에 대해 알아봤네. 그런데 나만 모르는 이상한 소문이 있더군?”

 

“그래서, 무슨 소문이기에 이렇게 뜸을 들입니까? 빨리 본론만 말하시지요.”

 

“자네……. 말하는 투가 점점 편해지는군?”

 

안톤은 핫산을 째려봤다.

 

“큼큼. 아주 좋은 현상이네. 그리고 나는 자네를 내 친우라 여기고 있으니 말을 편하게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네. 우린 나이도 같지 않은가? 아, 이제 말해 줄 테니 그만 노려보게나. 소문이란 즉, 그 노파는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거였네. 사실 소문이라기보단, 아는 사람만 아는 괴담에 더 가깝네.”

 

인간의 기억을 건드리는 마법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고차원적인 마법으로, 그 분야에 평생을 매진한 대가 중에서도 특출 난 재능을 지닌 자만이 가능할 정도로 난이도가 어렵다.

 

안톤은 핫산의 얘기를 듣자마자 떠오르는 인물이 딱 하나 있었다.

 

볼-메이른의 용의 현자.

 

대전쟁 당시 문득 나타나 역사서에 거대한 획을 긋고 사라진 그 거인이 말이다.

 

“그래서 그 얘기가 신빙성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나도 그게 궁금해서 실제로 노파를 모시던 하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네. 근데 그들 모두 하나같이 그저 평범한 노인이었다고 말할 뿐이지 않은가? 게다가 자세히 들어 보면 인상착의에 대한 내용도 다 조금씩 달랐네.”

 

인상착의가 다르다라.

 

역시 그 노파를 용의 현자에 버금가는 대마도사라 여기는 것보다는, 그저 변신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라 생각하는 것이 보다 가능성 있는 일이겠다 싶었다.

 

물론 변신 마법 또한 굉장히 수준 높은 마법이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그럼 직접 동생분에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펠은 내게 스승에 대한 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서…….”

 

그에게 보란 듯, 안톤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핫산은 펠샤인에게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때가 많았다.

 

아마 그것은 암만 서로의 목적이 같다고 한들, 그 목적을 위해 펠샤인에게 황제와의 혼인이란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는 죄책감의 발로일 것이다.

 

“뭐, 물론 노파가 별다른 특징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네. 하지만 명색이 마법사인데 다들 그런 평범한 반응들인 것이 나는 영 껄끄러워서…….”

 

“그런데 저는 보내는 겁니까? 만약 제가 왕자님에 대한 기억을 홀라당 까먹으면 어쩔 생각입니까?”

 

“자네는 내가 말려도 기어코 갈 생각 아닌가? 나는 그런 무의미한 짓에 기력을 낭비할 생각이 없네. 아, 펠이 온 모양이군. 부디 무사히 잘 다녀오게나.”

 

안톤은 핫산에게 등을 떠밀리다시피 방을 나서야 했다.

 

 

* * *

 

“오랜만이네요?”

 

만나자마자, 펠샤인은 화사한 미소와 함께 인사말을 건넸다.

 

허나 안톤의 대답이 냉큼 돌아오지 않자, 펠샤인의 고운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이젠 그냥 무시하는 거예요?”

 

-아, 생각할 게 있어서 말이오. 미안하오.

 

“아아, 떠나간 그분을 그리워하셨구나?”

 

여기서 펠샤인이 말하는 그분이란 카린을 말함이었다.

 

예전에 안톤과 카린이 궁전을 찾을 일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자리에 있던 펠샤인과 카린이 안면을 트게 된 적이 있었다.

 

호위 명목으로 붙어 있다는 걸 자꾸만 동거라며 꼬치꼬치 캐묻는 탓에 참 난감했던 기억이 있었다.

 

-지금 다시 말하겠는데, 나와 그녀는 그런 사이가 아니오.

 

“그런데 다정한 말도 들려주고, 얼굴도 보여 주고 그러나요? 봐요. 나한테는 지금도 이렇게 따박따박 그 전음인가 뭔가 하는 걸로 대화를 하잖아요.”

 

-그걸 누구한테 들었소?

 

뱉고서도 참 부질없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 줄 사람이 핫산 말고 누가 있겠는가?

 

어차피 핫산 또한 펠샤인이 뒷조사를 통해 정체를 알게 됐다는 걸 안톤에게 들은 터라 더 이상 그 사안을 감출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쓸데없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무엇이란 말인가.

 

-단지 그대의 스승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소. 아무튼 말을 무시한 건 미안하오.

 

“사과는 입으로 직접 해야 의미가 있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나요, 페르트?”

 

펠샤인이 자신의 호위 기사인 무표정한 붉은 눈의 남자에게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공주님.”

 

어떠냐는 듯 기세등등하게 올려 보는 펠샤인을 보며 안톤은 골머리가 아파 왔다.

 

핫산의 옆에선 조곤조곤 착한 여동생을 연기하는 그녀가, 왜 자신의 앞에만 서면 이렇게 새침하게 구는 것인지.

 

“그래서, 제 스승님에 대해서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요?”

 

-어차피 만나면 확인이 될 테니 됐습니다. 다만, 공주님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죠?”

 

-왕자님을 돕는 건 정말로 동생의 복수 때문입니까?

 

“오라버니가 알베르트에 대한 얘기까지 해 줬나 보네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공주님이 그럴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군요.

 

“재미난 말씀을 하시네요. 그럼 안톤 경에겐 제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데요?”

 

-그건…….

 

말문이 막힌 안톤을 향해 펠샤인은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를 만난 이래 처음 보는 염세적인 미소였다.

 

“당신은 나를 몰라요. 아무것도.”

 

-……그렇기에 묻는 겁니다. 원치 않는 혼인을 감당할 만큼, 그렇게 큰 복수심입니까?

 

“그렇게 세상 다 아는 척 굴더니, 진짜 그 나이가 맞긴 한가 봐요. 이렇게 어린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그깟 결혼이 뭐라고. 하여간 남자들이란 어찌 이리 다 똑같은 건지 모르겠다니까요?”

 

비록 눈물은 없지만, 그보다 더 울분이 전해지는 고요한 눈동자.

 

문득 펠샤인과 시선을 마주친 안톤은 그대로 몸이 얼어 버리고 말았다.

 

아차 싶었다.

 

그동안 자신은 그녀에 대해서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곡해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안톤은 즉시 그간 그녀에게 지니고 있던 선입견과, 감정이 죽은 것 같다고 말했던 핫산의 말 따위 모두 잊어버렸다.

 

그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깊숙한 곳에서 활화산처럼 용솟음치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용암처럼 잔잔히 속에서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결코 감정이 없는, 그래서 속이 텅텅 빈 인형이 아니었다.

 

그저 속이 얽힐 대로 얽혀 망가진 인간이었다.

 

“다 도착했네요. 어서 들어가요. 스승님이 기다려요.”

 

뒤를 돌아보는 펠샤인은 여느 때처럼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노파가 기거하는 방은 내심 상상하던 것과는 현저히 달랐다.

 

결코 음습하지도, 퀴퀴하지도 않았다.

 

햇살을 고스란히 내려 받는 방은 눈이 부시도록 환했고, 꽃과 식물들로 인해 그윽한 향기가 가득했다.

 

“끌끌. 네가 그 말 많던 그 녀석이구나. 근데 그 눈……. 혹시 일족의 사람이더냐?”

 

안톤은 이미 철투구를 뒤집어 쓴 상태였지만, 노파는 무슨 수를 쓴 건진 몰라도 그 안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약간의 껄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안톤은 궁금한 점을 되물었다.

 

“일족?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쪽 사람이 아니라면 됐다. 그나저나 눈동자의 색이 굉장히 특이해서 말이다.”

 

“그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만.”

 

무슨 연유로 이런 말을 던졌는지는 모르지만, 노파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눈치였다.

 

“그래, 나를 그렇게 보고 싶다고 했다던데? 무슨 연유인지 한 번 들어나 보자.”

 

그렇게 말하며 방석에 몸을 앉히는 노파는 몇몇 단어들로 유추해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일단 생각보다 젊었다.

 

물론 노파라는 단어에 비해 젊다는 것이지, 아예 어리다는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는 대략 50대 정도일까.

 

푸근한 세월의 잔주름과 처진 눈꼬리. 그것과 더불어 느릿느릿한 행동은, 전체적으로 종합하여 그녀에게서 온화한 첫인상을 받게 해 주었다.

 

안톤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전음으로 대화를 할까 싶었지만, 어차피 노파의 제자인 펠샤인에게 위장하고 있는 것을 들킨 터라,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한 번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터놓고 말해서 이유는 정말로 이것 하나였다.

 

펠샤인을 겪으며 생겨난 의혹들을 노파를 만남으로 해소할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만남이 되어 버렸다.

 

정말 펠샤인이 핫산을 도울 것인지.

 

안톤이 갖고 있던 불안 중 가장 컸던 부분이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대부분 종결되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정말 복수를 위해서라면 자신 따위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듯했어.’

 

안톤은 아직도 그녀가 보였던 눈빛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 그럼 이제 만났으니 용건은 끝난 게냐?”

 

이왕 내친걸음, 그냥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생각할수록 수상한 이 노파에 대해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고 돌아갈 셈이었다.

 

펠샤인의 생각과 스승인 노파의 생각이 같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그건 아닙니다. 무례를 거듭하고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글쎄? 일단 들어 보고 결정하마.”

 

안톤은 정면으로 노파를 응시했다.

 

질문 이후 나올 노파의 반응을 보다 빨리 잡아내기 위해서였다.

 

“공주님의 스승 되시는 분께선…… 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름이야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을. 쯧. 편한 대로 부르거라. 그냥 남들처럼 노파라고 불러도 좋다.”

 

“알겠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노파께선 1왕자의 일을 돕고 계십니까?”

 

노파를 뚫어지게 쳐다본 안톤이었으나, 기대하던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잠시 생각하다 문득 유쾌한 웃음소리를 냈을 뿐이다.

 

“갑자기 웃어서 미안하다, 아이야. 그저 내 앞에서 이렇게 당돌한 말을 내뱉던 어느 녀석이 떠올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자면…… 그렇다.”

 

“……?”

 

“그게 정말인가요, 스승님?”

 

보아하니 펠샤인조차 그런 일들을 모르고 있던 기색이었다.

 

“네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미리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다만, 내가 계속 궁전에 남아 너를 가르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안톤은 펠샤인의 새끼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있음을 포착했다.

 

이건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로 믿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입술만 짧게 깨물 뿐 가만히 있는 펠샤인을 보니, 그녀가 평소 얼마만큼 마음을 잘 가다듬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럽게도 보였으나, 안톤은 그에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 라는 대답이 나온 이상, 더 중요한 질문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1왕자에게 반감을 지닌 귀족들 몇몇을 대신 설득해 주었지. 아, 설득이라기보다는 마법이라 해야겠구나.”

 

“마법? 그럼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입니까?”

 

“소문? 무슨 소문 말이냐?”

 

안톤은 핫산에게 들었던 괴담처럼 전해지는 소문을 노파에게 말해 주었다.

 

“과연, 그런 소문이 있었구나. 나는 전혀 몰랐다. 그들에게 특별히 마법을 쓴 건 아니었지만, 내게 그런 능력은 있으니 그래도 그들의 말이 썩 틀리지는 않았구나.”

 

“정말로 사람의 기억을 멋대로 다룰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질문을 내뱉기가 무섭게, 안톤은 짙은 이질감을 느꼈다.

 

만약 그녀가 1왕자의 편이라면, 그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에게 어째서 이렇게 순순히 대답을 해 주는 것일까?

 

그것도 친분이라고는 전무하며, 만나자마자 무례한 질문들을 내뱉는 자에게 말이다.

 

“아니, 그보다 어째서 제 질문들에 솔직히 대답해 주시는 겁니까?”

 

안톤은 순간 노파의 눈이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오늘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안톤의 등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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