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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90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90화

090. 모순

 

 

“막막하군.”

 

장엄한 산맥을 앞에 두고, 안톤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산 몇백 개는 이어 붙인 듯한 타를 산맥은 넓고 광활했다. 평소 잘 써먹었던 청각 확장으론 수색에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이번엔 어떻게든 몸으로 직접 구르는 수밖엔 없나?’

 

안톤은 타를 산맥을 대강 탐색하는 데에만 한 달은 족히 걸릴 거라고 판단했다. 물론 밤낮 가릴 것 없이 돌아다니며 노숙하고, 온종일 수색에만 시간을 쓴다는 가정하의 얘기다.

 

안톤은 근처 마을에서 전반적인 정보들만 습득하고 곧장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근처엔 있을 리 없겠지.’

 

안톤은 산속에서 특히나 험하고 가파른 곳들을 위주로 탐색을 시작했다.

 

모습을 감추고 비밀스럽게 살아가는 일족들이라고 했으니 인적이 드문 산중에서 살고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청각을 확장해 둔 채로 안톤은 미친 사람처럼 산을 헤집고 다녔다.

 

일주일, 이주일.

 

오로지 수색에만 온 힘을 다한 나날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안톤은 아직까지도 어떠한 단서조차 얻지 못한 것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제 곧 있으면 안톤이 태어날 시기가 임박한 것이다.

 

‘만약 그냥 이대로 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나?’

 

아니, 어쩌면 지금 이미 안톤이 세상에 나왔을 수도 있었다.

 

그도 아니면 애초에 유년 시절에 안톤을 데리고 있던 노예 상인이 뭘 잘못 알았던 것뿐, 훨씬 더 있다가 태어나는 것이 운명일 수도 있고 말이다.

 

-자네가 이곳에 왔다는 건, 이곳에서 자네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세계가 판단한 것일세. 그리고 그것을 모두 끝마치면 자네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네

 

세로게트가 했던 말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해 안톤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해야 하는 일이라…….’

 

블루 머챈트의 상단주인 가던트 포우 레이왈츠를 수십 번 죽을 고비에서 구해 냈고, 대륙을 돌아다니던 온-누르에게 직접 검술을 전수해 주었다.

 

그런데도 안톤은 아직도 이 과거의 세계에 남아 있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것이겠지.’

 

이제 안톤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출생에 관련된 일뿐이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근본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 크기도 했고 말이다.

 

“후우…….”

 

한숨을 크게 내쉰 안톤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색을 시작한 지 3주 차가 막 시작되는 날이었고, 그와 동시에 안톤이 이 막무가내식인 수색 방법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 날이었다.

 

‘아무래도 방법을 조금 달리해야겠어.’

 

일단 안톤은 타를 산맥 근처에 있는 마을이란 마을은 모두 돌아다니며, 일족에 대한 정보를 탐문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면 예의 과일 상인처럼 그들에 대해 아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타를 산맥 근처에 있는 마을들이니, 마주칠 확률은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어느 정도 산을 내려가자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길들이 나타났고, 그것을 따라가자 마을이 나타났다. 산지에 위치한 마을이었지만, 여관이 있을 정도로 꽤나 규모 있는 마을이었다.

 

듣자하니 매년 볼-메이른으로 넘어가는 모험자나 상인이 꽤나 되어서 유동인구가 있다는 것 같았다.

 

일단 안톤은 여관부터 찾아가 몸을 씻었다. 그리고 다소 퀴퀴한 냄새가 나는 로브를 다시 그 위에 걸쳤다.

 

‘아무래도 옷을 하나 새로 사야겠군.’

 

하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여관 1층으로 내려온 안톤은 주인장에게 음식을 주문했다.

 

“돈은 상관치 말고 일단 다 내주시오.”

 

그간 산속에서 노숙하면서 사냥으로 대충 끼니를 때웠던 안톤이었기에, 사람이 만든 음식이 가장 간절했던 것이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진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 치운 후, 안톤은 여관 주인에게도 일단 일족에 대해 물었다.

 

직업 특성상 사람 만날 일이 많은 여관 주인이었으나, 아쉽게도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회색 눈의 일족이라니, 내가 이곳에서 몇십 년을 살았지만 처음 듣는 말이군.”

 

“그렇군. 아무튼 이제 나는 나갈 생각이니 방은 치워도 상관없소.”

 

그것을 끝으로 안톤이 건물을 나서려는데.

 

여관 주인의 한 마디가 안톤의 발을 붙잡았다.

 

“그런데 요즘 여행자들은 다 자네처럼 입고 다니는 게 유행인가? 아까 온 자들도 그렇고…….”

 

“아까 온 자들이라니? 그자들도 나처럼 로브를 입고 있었소?”

 

일반적으로 로브는 그렇게까지 선호하는 의복류는 아니다.

 

로브를 입을 땐 보통 세 가지의 이유 중 하나가 꼭 있기 마련이다.

 

정말 날씨가 추워 옷을 하나라도 더 껴입기 위해서거나, 또는 마법사들처럼 품에 넣고 다닐 물건이 많아서.

 

‘아니면 반드시 모습을 숨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거나.’

 

안톤이 로브를 입은 것이 바로 그 이유이기도 했으며, 그가 지금 여관을 나가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 그렇게 얼굴까지 모자를 내리고 있으면서 갑갑하지도 않은 모양이야.”

 

여관 주인의 나지막한 한마디로 안톤은 확신이 들었다.

 

‘아직 가을이니 추워서 로브를 입었을 리는 없다. 마법사라면 굳이 얼굴을 가릴 필요는 없겠고. 이런 시골에서도 모습을 숨기는 자들이라……. 뭔가 구미가 당기는데?’

 

“혹시 그자들이 아직도 여기에 묵고 있소?”

 

“뭐, 창문으로 나간 게 아니라면 아직 방에 있겠지. 아, 마침 저기 오는군.”

 

안톤은 여관 주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계단 쪽에서 두 명의 인형이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체구나 걸을 때마다 얼핏 보이는 턱선으로 보아서 성별을 분간하는 건 쉬웠다. 그들은 한 쌍의 남녀였다.

 

1층으로 완전히 내려온 그들은 마찬가지로 수상해 보이는 안톤을 슬쩍 흘기더니, 이내 여관 주인을 향해 말을 걸었다.

 

“식사를 차려 줄 수 있겠소? 가장 덜 자극적인 것으로.”

 

여관 주인이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의문의 남녀 둘은 비어 있던 자리에 몸을 앉혔다.

 

그리고 이대로 계속 어정쩡하게 문 앞에 서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에 안톤은 서둘러 내려온 계단을 올라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뭔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방에 들어서자마자 안톤은 귀를 기울여 아래의 얘기를 엿듣기 시작했다.

 

그 둘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서로에게 속삭이듯 대화하고 있었지만, 집중만 하면 벌레 기어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안톤에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몸은 좀 어떠시오, 부인?”

 

“저는 괜찮아요. 그것보다 아기가 걱정이에요. 과연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무사히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분명히 그럴 것이오. 당신을 닮았다면 분명 착하고 강인한 아이일 테니까.”

 

이 짧은 대화를 통해 안톤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 가지는 그들 남녀가 부부지간이라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여인이 지금 배 속에 새 생명을 잉태 중이라는 것이었다.

 

‘거기다 대화하는 걸 보면 산달에 가까운 것 같았지.’

 

좀 전에 여인을 보았을 때, 안톤은 그녀가 만삭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인의 체격이 워낙 왜소했던 데다 펑퍼짐한 로브까지 입고 있어서였다.

 

‘뭔가 시기가 공교로운데……. 설마……?’

 

안톤은 묘하게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아래에서 이어지는 대화에 집중했다.

 

“그나저나 아까 그 사람, 뭔가 이상하지 않았어요?”

 

“추적자일 것 같지는 않소. 딱 보니까 무술을 수련한 사람 같지도 않았고.”

 

“네. 저도 상대에게서 아무런 마나가 느껴지지 않길래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뭔가 좀 석연찮은 느낌이어서요.”

 

“아, 음식이 나왔군. 어서 듭시다.”

 

그 후,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음식을 먹는데 이렇게까지 조용할 수가 있나?’

 

안톤은 신안을 개방해서 아래를 살폈다. 남녀가 있는 곳 주변을 구체의 형태로 마나가 감싸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마법사였군.’

 

아마 안톤이 아니라 계산대에 있는 여관 주인이 신경 쓰여 소리를 막는 마법을 쓴 모양이었다.

 

그렇게 안톤이 방에서 홀로 아래를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계단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발걸음 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여관 주인이겠군.’

 

필시 안톤이 다시 들어온 것을 모르고, 방을 치우기 위해 오는 중이리라.

 

방문을 연 여관 주인은 안톤을 보더니 의미심장한 눈빛을 띠었다.

 

“어, 아직도 방에 있었소? 떠난다더니?”

 

“사정이 생겨서 말이오. 아무래도 조금 더 머물러야겠소. 그만큼의 방비는 추가로 지불하리다.”

 

“뭐, 그럼 나야 좋지만……. 알겠소이다. 그렇게 하시오. 참고로 요금은 선불이오.”

 

 

* * *

 

유난히 바람 소리가 크게 들리는 밤이었다.

 

어느새 한밤이 되었으나, 아직 안톤은 눈을 붙이지 않고 깨어 있었다. 슬슬 때가 되었다 생각한 안톤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완전히 잠들었군.’

 

하루 종일 두 남녀를 탐색한 결과, 안톤은 그들에 관해 꽤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이 일족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이었다.

 

비록 회색 눈이라는 수식어는 빠져 있었지만, 분명히 대화 중에 일족이란 단어를 거론한 것이다.

 

‘산을 주야장천 뒤져도 못 찾았던 그들을 이렇게 뜬금없이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

 

안톤은 상황이 묘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을이 끝나 가는 이 시기에 거의 산달에 접어든 일족의 여인이라니. 솔직히 이쯤 되면 묘한 걸 넘어 신비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여러 정황들이 하나의 가능성을 가리키며 키워 가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나 아직 섣불리 확신하기엔 이른 때였다.

 

‘얼굴만 확인하면 조금 더 확실해질 거야.’

 

정말로 그들 부부가 자신의 부모인지, 아닌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안톤은 기척을 지우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원래 삐거덕거리던 목재 바닥에선 그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두 남녀의 방 앞에서 안톤은 잠시 멈춰 서서 허공을 어루만졌다. 구체 형태의 마나가 방을 감싸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인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일단 건너편에서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보아, 아까 낮에 그들이 썼던 방음 마법은 아닌 것 같지만, 경계나 알람 마법 같은 걸지도 모른다.

 

‘역시 마법사는 까다로워.’

 

안톤은 부부의 방을 그대로 지나쳐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내 완전히 건물에서 나온 그는 뜰에 있던 나무 위로 단숨에 도약했다. 부부가 쓰던 방의 창가가 훤히 보이는 곳으로, 아까 낮에 미리 확인해 두었던 그 자리였다.

 

허나 예상대로 창문은 닫혀 있었고, 커튼까지 틈 없이 쳐져 있는 상태였다.

 

‘이제 깨워 볼까?’

 

안톤은 왼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던 자그마한 조약돌을 꽉 쥐었다.

 

쨍그랑.

 

안톤의 손에서 힘 있게 날아간 돌멩이가 창문에 부딪치고는 그대로 방 안까지 굴러들어간다. 이때부터 안력을 키운 것은 물론, 온 신경을 방 안쪽으로 집중했다.

 

휙!

 

커튼이 젖혀지고, 자다 깬 사내가 밖을 향해 고개를 빼곰히 내밀어 주위를 살핀다. 숙면을 취하고 있던 중에 깨우면 로브도 걸쳐 입고 있지 않을 거라는 안톤의 예상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사내는 회색 눈이었고, 머리색이 붉었다. 전체적인 이목구비는 상당히 달랐지만, 누군가 멀리서 그를 본다면 안톤으로 착각할 정도.

 

‘여자는…… 여자는 어디 있지?’

 

안톤도 저 사내가 자신과 닮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그것만으로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방 안쪽을 유심히 살펴보니, 침대 쪽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있는 여인이 보인다. 그녀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로 약간 불안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 여인을 보는 순간 안톤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 여자가 맞아.’

 

솔직히 말해서, 안톤은 기억 세계에서 보았던 여인의 얼굴이 조금 희미했다. 하지만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갓난아기 시절에 자신을 노예 상인에게 직접 넘겨주었던 그 여인이라는 걸.

 

“누구죠? 추적자들 무리인 건가요?”

 

“잘 모르겠소. 육안으로는 확인되지가 않는구려. 기척도 느껴지지가 않고.”

 

“그럼 제가 한번 확인해 볼게요.”

 

방 너머에서 두 남녀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안톤은 한동안 충격에 휩싸여 멍해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적이 있어요.”

 

여인이 소리를 낮추어 읊조리자, 남자가 곧장 검을 빼 들고 그녀의 옆을 지킨다. 이윽고 여인이 마법 주문을 외기 시작하고, 그녀의 손에서 파생된 열아홉 개의 마나 구체가 창문 밖으로 뿌려졌다.

 

그러나 그것은 안톤을 향해 쏘아진 것이 아니었다.

 

콰콰콰쾅!

 

“젠장, 목표물이 우리를 눈치챘다. 당장 공격한다.”

 

“예!”

 

수풀가에서 무수한 숫자의 복면인들이 대거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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