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검 83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83화
083. 오해
쉬이이이익!
사선 방향으로부터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화살이 안톤의 목덜미를 지나 지면을 파고든다.
“히익!”
갑작스러운 화살 세례에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은 아렛이 안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화살이 목 옆을 스쳐 지나갔는데도, 안톤의 표정엔 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는 그저 가만히 서서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슬슬 나올 때다 싶었는데, 환영이 생각보다 더 거창하군.’
화살이 쏘아지고 있음을 알았지만, 안톤은 일부러 이것을 피하지도 막지도 않았다.
그저 위협이 목적이었을 뿐, 그를 해치기 위해 쏘아진 화살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현재 에반하임은 인간들의 출입이 금지됐다. 돌아가라, 인간.”
나무 사이를 울려 퍼지듯 들려오는 목소리에, 안톤이 슬그머니 웃음을 내지었다.
“일단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떻겠소?”
“돌아가란 말을 듣지 못했나? 우린 두 번 경고하지 않는다.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온다면…….”
“다가온다면?”
그렇게 말하며 안톤은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그러자 미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의 머리, 아니 정확히는 그의 귓불 끄트머리 부분을 향해.
쉬이이익!
‘그래도 해칠 생각까지는 없나 보군.’
안톤은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낚아챈 후 반으로 꺾어 바닥에 버렸다.
“일단 얘기 좀 합시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군. 침입자인가?”
“아니, 일단 얼굴을 보고 얘기 좀 하지 않겠소?”
“불가. 침입자가 아니라면 돌아가라. 더 이상 다가온다면, 우리 또한 침입자라 생각하고 전력으로 대응할 것이니.”
한 치의 요구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옆에서 살살 눈치를 보던 아렛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저…… 일단 저분의 말대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는 게 어떨는지요?”
“그거야 상관없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소.”
몇 번을 다시 오든 제대로 얘기를 들어 주지도 않고 내쫓김 당하고 말 테니까.
크게 한숨을 내쉰 안톤이 혼요종이 모습을 숨기고 있는 방향을 향해 크게 외쳤다.
“나는 한 남자를 찾고 있소! 세로게트 알-바흐르. 혼요종이지! 그가 이곳에 있는지 아닌지만 알려 준다면 순순히 발길을 돌리리다!”
물론 그런 혼요종이 에반하임에 있다는 대답이 들려온다면, 그냥 떠날 생각은 솔직히 없었지만 말이다.
“……어떻게 인간이 그분의 이름을 알고 있지?”
‘있나 보군.’
안톤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내 스승과 인연이 있는 분인데, 그분을 찾아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 온 거요. 혹시 안내해 줄 수 있겠소?”
“거짓말이군! 인간과의 인연이 그분에게 있을 리가 없다. 어디서 그 이름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돌아가라!”
“일단 그분에게 말이라도 해 줄 수는 없겠소? 그럼 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아니오?”
그러나 안톤의 외침은 공허하게 숲을 울릴 뿐, 더 이상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대답 대신 화살 한 발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정확히 안톤의 미간을 향해서 말이다.
파밧!
안톤은 마치 장작이라도 패듯 거칠게 검을 내리쳐 화살을 두 쪽으로 쪼갰다.
“그래, 이게 당신의 대답이란 말이지……. 말 한마디 전하는 게 그렇게 어렵소?”
“…….”
“알겠소. 앞으로는 내 식대로 하리다.”
안톤은 즉각 몸을 날려, 화살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얼추 40~50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는 거리였지만, 그 거리가 좁혀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헛!”
“이제야 얼굴을 보게 됐군.”
* * *
“혼요종이라도 혈이 있는 자리는 인간이랑 비슷한가 보군.”
그 말을 들으며 푸트안은 질끈 눈을 감았다.
‘젠장, 인간에게 인질로 잡히다니!’
생전 처음 당해 보는 치욕스러운 경험에 그만 혀를 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실제로 그러진 않았다. 목숨은 정말 소중한 것이니까.
게다가 몸도 움직이지 않았고 말이다.
“음…… 말이 없군. 말은 할 수 있을 텐데? 신체구조가 인간과는 조금 다른가?”
침입자의 중얼거림에 살짝 입술을 움직여 보니, 정말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뿐, 푸트안은 도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날 구하러 다들 올 거야.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푸트안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에반하임의 파수꾼들은 3인 1조로 움직이는 것이 기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똘똘 뭉쳐 다닌다는 뜻은 아니었다.
정령을 통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상당 거리를 떨어져서 움직인다.
소수로 보다 많은 범위를 수색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가 가장 컸다.
지금만 보아도 그렇다.
일이 벌어지자마자 한 명은 근처에 남아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즉시 지원을 받기 위해 마을로 향했다.
‘두고 봐라, 인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지금이야 아무것도 모르기에 태연할 수 있지만, 곧 지원이 도착하면 반드시 만신창이를 내 놓으리라!
그런 결심을 다잡으며 푸트안은 이글이글하는 눈초리로 침입자를 쏘아보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를 거라는 푸트안의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사람을 불러오려는 건가? 거참, 열심히도 뛰는군.”
‘그걸 어떻게 알았지?’
화들짝 놀랐지만 속마음을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다만 표정까지 숨기기엔 조금 무리였는지, 속으로만 했던 생각에 대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렇게 큰 소리로 뛰어가는데, 어찌 모를 리가 있겠소.”
순간 푸트안의 표정이 멍해졌다.
숙련된 파수꾼, 아니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혼요종들은 숲 속에서 뛸 때도 발소리가 나지 않는 편이다.
‘근데 그걸 들었다고?’
넘겨짚기 식으로 찔러보는 건가 싶었지만, 이내 다시 들려온 말에 그 생각은 사라졌다.
“그리고 저기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친구도 그냥 나오라고 하는 게 어떻소? 걱정 마시오. 절대 해치는 일은 없을 테니.”
푸트안은 고민에 잠겼다.
동료를 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은 아니었다.
‘도대체 이놈은 뭐 하는 인간이지? 마나도 느껴지지가 않는데…… 이런 능력이라니.’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 * *
탈티온 베니체른.
레노테이르의 방패라 불리는 아로탄 성채의 성주.
항상 묵묵히 오지에서 펭 제국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켜 내던 그가, 정말 오랜만에 성채를 비웠다.
의회에서 치러진 회의에서 거의 만장일치의 표결로 그가 에반하임의 사절단 대표로 발탁된 것이다.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가 자네밖에 없네. 부탁하네!”
탈티온은 의회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펭 제국과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요즘, 중요한 거점인 아로탄 성채를 비워 두고 떠나는 것이 불안하긴 했지만, 탈티온 역시 자신이 이 일의 적임자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 임무에는 강한 무력을 필요로 했는데 탈티온 베니체른, 그는 명실상부 레노테이르의 최강자였으니까.
성으로 돌아온 탈티온은 곧바로 에반하임으로 향할 사절단을 꾸렸다.
사실 사절단이라고 하기엔 좀 그랬다.
보안 유지를 요하는 일이다 보니, 허락된 동행이 고작 한 명뿐이었으니까. 한 국가의 외교 사절이라 생각하면 조촐한 걸 넘어 초라한 수준이지만…….
‘뭐, 애초에 진짜 사절단은 명목상일 뿐이기도 하고.’
탈티온은 주저 없이 그 하나뿐인 자리에 그의 부관 오르메넨의 이름을 적어 넣었고, 짐을 꾸릴 새도 없이 곧장 에반하임으로 떠났다.
자신이 성을 비운 것을 다른 이들이 눈치채기 전에 재빨리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늘.
‘망할 놈의 도적놈들…….’
이 모든 일들을 야기한 대상자를 속으로 씹으며, 탈티온은 에반하임의 문턱을 오르고 있었다.
“음…… 이만큼 올라왔으면 파수꾼이 나올 때도 됐는데, 이거 참 이상하군.”
“이것 좀 보십시오, 성주님. 화살입니다!”
오르메넨의 말에 탈티온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일단 그녀가 가리키고 있는 곳에 화살이 하나 박혀 있는 것 말고도, 두 개의 화살이 더 있었다.
반으로 부러진 화살 하나와 반으로 갈라진 화살 하나.
탈티온은 갈라진 화살의 한쪽 단면을 손으로 집었다.
‘이건 마치 검으로 가른 것 같은데…….’
근데 또 그렇게 생각하기엔, 절단면이 지나치게 매끄럽다.
자세한 경위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긴 한 모양이라 생각한 탈티온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르메넨, 근방에 탐지 마법을 써 보게.”
“알겠습니다.”
금발의 여인이 잠시 눈을 감고 주문을 읊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다시 눈을 떴다.
“어떤가?”
“여기서 앞으로 대략 1킬로미터 지점에 네 명의 기척이 있습니다. 셋은 함께 모여 있으며, 다른 하나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습니다.”
“흠.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속도를 높여야겠군. 이리 오게.”
“저는 괜찮습니다.”
“……급한 마음에 실례를 했군. 그럼 먼저 가 있겠네.”
“저도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탈티온은 일단 오르메넨을 남겨 놓고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눈으로 좇아가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고, 그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에는 정말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인간 셋…… 아니, 인간 둘에 혼요종이 하나군.’
인간과 혼요종들은 외적인 모습에서부터 구분이 가능하다. 혼요종들은 인간과 달리 코가 움푹 패어 있고, 이마에는 큼지막한 정령석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보석의 크기로 보아 아직 어린 것 같은데…… 어째서 인간들과 함께 있는 거지?’
그리고 이내 혼요종 남자의 비참한 표정을 보니, 순식간에 생각이 정리됐다.
‘사로잡힌 것이군!’
동시에 확 하고 열이 뻗쳤다.
안 그래도 근래에 인간과 혼요종 사이의 신뢰 관계가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는데, 또 이런 일이라니!
그래도 지금 자신이 이 자리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적어도 양측의 관계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이노오옴!”
탈티온은 인간 사내 둘 중 유일하게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붉은 머리의 남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진짜로 베기 위해서 휘두른 것은 아니고, 목 근처에서 검을 멈춰 세울 생각이었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먼저 제압하고 혼요종의 신변부터 확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챙!
육중한 대검에 의해, 탈티온의 검이 가로막혔다.
아무리 오러를 끌어 올리지 않았다 해도, 마나도 없는 일반인으로선 결코 반응할 수 없는 속도였는데 말이다.
게다가 자신을 밀쳐 내는 이 신력까지.
‘외공을 익혔다 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이거 보통 놈이 아니었군.’
탈티온은 곧장 오러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검 위로 마나가 응축되며, 30센티미터가량의 예리한 껍질이 검 위를 덮는다.
불안정한 오러 유저의 그것이 아니라 마스터의 완성된 오러.
허나 이를 보는 붉은 머리 사내의 표정은 조금 이상했다.
무인으로서의 경의나 혹은 두려움이 아니라, 마치 귀찮은 일이 닥쳐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이랄까.
“후…… 당신은 또 누구요?”
* * *
안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갑자기 누군가 기습을 해 온 것까지는 괜찮았다.
뭐, 솔직히 그런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었으니까.
근데 그 기습자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검사라니?
‘마스터라는 게 원래 이렇게 만나기 쉬운 자들이었나?’
한숨을 내쉰 안톤은 상대방을 탐색했다.
갈색 머리에 평범한 형태의 장검. 옷은 깔끔하고 고급스러워 보이지만, 딱히 유별날 것은 없는 복장이다.
‘그나저나 자주색의 오러라……. 이런 자가 있었나?’
딱히 바로 생각은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몇몇 유명한 무인들의 이름은 알았어도, 그 오러의 색까지는 그리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무언가 오해가 있는 듯하군.”
안톤은 차근차근 대화로 풀어 볼 생각이었다.
검사는 검으로 말하는 법이라지만, 그렇다고 허구한 날 대뜸 검만 휘두르면 제명에 사는 검사라곤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지금 이 순간도 잘못 없는 혼요종을 붙잡고 있으면서, 오해는 무슨 오해? 정체를 밝혀라.”
그의 요구대로 안톤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내 이름은 안톤이오.”
그런데 문제는 이름을 빼면 딱히 이어 붙일 설명이 없다는 것이었다.
뭔가 스스로 생각해도 초라하게 느껴졌지만, 안톤은 품속을 뒤져서 신분패를 꺼냈다.
“그리고 조르디가에서 왔지.”
힐끔거리며 안톤의 신분패를 확인한 탈티온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검을 겨누고 있었다.
“도적놈들은 아니었군. 근데 조르디가의 사람이 이곳엔 무슨 일이지? 정말 오해라면 지금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보시오.”
“…….”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안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앞서 오해라고 말하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딱히 오해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소.”
그리고 그 사정에 대해 마저 설명하기 위해 안톤이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콰아아앙!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마법 구체가 공중에서 부딪치며, 새로운 인물들이 자리에 나타났다.
“조심하세요, 성주님!”
“푸트안! 걱정 마. 구하러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