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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115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15화

115. 도시

 

 

“뭐, 그냥 그럴 것 같았소. 미궁 안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들었으니까.”

 

안톤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대답하자, 재넌은 그럼 그렇지 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그러던 때 레이나가 눈을 빛내며 안톤을 향해 질문을 날렸다.

 

“혹시 당신도 모험가가 되기 위해 라프도니아로 향하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소?”

 

“아무래도 평범한 일을 하는 사람의 몸 같지는 않거든요. 솔직히 처음 봤을 때 굉장히 놀랐어요. 어때요? 내 추측이 사실인가요?”

 

식탁에 몸을 붙이고 눈을 반짝이며 묻는 레이나를 보니 왠지 모르게 슬쩍 웃음이 나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소이다. 라프도니아로는 가지만, 모험가가 될 생각은 없소. 다른 용무 때문에 그리로 가는 중이오.”

 

“그렇군요.”

 

예의가 아니란 생각을 한 것인지 레이나는 그 후로 더 이상 질문을 날려 오지 않았다. 그리고 각자 식사에 집중하고 나서 얼마 후, 식사를 끝마친 안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가 보리다.”

 

“즐거웠소.”

 

그들도 굳이 안톤을 붙잡진 않고 시원하게 보내 주었다.

 

‘날이 저물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가게에서 나온 안톤은 마땅히 할 것이 없었기에 거리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돌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던 때 불현듯 카린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연락을 안 한 지 두 달이 넘었군…….’

 

검술 수련에 몰두하다 보니 연락을 제때 받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연락을 했던 그였다.

 

그런데 어느 때인지 정확한 기점은 모르나, 뭔가 깨달음이 올 듯 말 듯하여 검에만 미쳐 사느라 그것마저 한참을 잊고 지냈다.

 

‘많이 화가 났겠어.’

 

 

 

게다가 에반하임에서의 일이 끝나면 바로 달려가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지 않았던가.

 

왠지 모르게 골치가 아파 왔다.

 

허나 그냥 이대로 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에, 안톤은 적당한 곳에 기대앉은 후 위스퍼 스톤을 꺼냈다.

 

“산을 덮는 파도.”

 

우웅.

 

위스퍼 스톤이 빛을 내며 일정한 주기로 작게 떨리기 시작했고, 그 주기가 세 번도 채 되기 전에 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톤!”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격앙되어 있었다.

 

안톤은 벌써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해 이마를 붙잡았다.

 

“아아. 잘 들리시오?”

 

“들리고 자시고…… 왜 이제야 연락을 한 거예요!”

 

“이런저런 일이 있었소…….”

 

“또또! 맨날 그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말고 제대로 설명해 줘요!”

 

안톤은 솔직하게 검에 빠져 사느라 깜박했다고 말한 뒤에 군말 없이 사과했다. 그러자 할 말이 없어진 쪽은 카린이었는지, 잠깐 침묵이 흘렀다.

 

“후우……. 그래서 그쪽 일은 다 끝난 거예요?”

 

조금 전과 비교하면 훨씬 침착해진 목소리였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앞으로 해야 하는 대답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고야 말 테니까.

 

“일단은 그렇지만……. 당장 그쪽으로 가지는 못할 것 같소이다. 정말 정말 진심으로 미안하오. 정말 진심이오.”

 

문득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사과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안톤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약속을 어긴 건 내 쪽이니 어쩔 수 없지.’

 

그러나 화를 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카린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툴툴거리는 기운은 조금 남았어도, 이 정도면 평소랑 크게 차이가 없었다.

 

“왜요?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요? 아니 그것보다…… 당신 지금 어디예요?”

 

“칸트릴레움이라는 도시에 있소.”

 

안톤은 부디 카린이 이 지명을 모르기를 간절히 바랐다. 허나 신은 없다고 했던 세로게트의 말은 옳았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 들은 것 같네요. 어디라고요?”

 

다시 한 번 도시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해 주자, 겨우 사그라들던 카린의 목소리에 다시 한 번 불길이 치솟았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에 대체 뭘 했길래, 이제 연락할 생각을 한 거예요? 아니, 것보다 당신! 아까는 이제 막 에반하임에서 떠난 것처럼 말해 놓고선…….”

 

카린이 더 역정을 내기 전에 안톤이 말을 끊고 선수 쳤다.

 

“트릭 씰이라는 아티팩트가 있소.”

 

안톤은 그것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카린도 수긍하며 화내는 것을 멈췄다.

 

“아니, 그럼 그런 게 있다고 먼저 말해 줘야 할 거 아니에요? 내가 뺏기라도 한데요?”

 

“으음. 물론 그건 아니지만…….”

 

정곡을 찔린 안톤이 말꼬리를 흐렸지만, 다행히 카린은 별다른 기색은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안톤은 카린에게 조금 더 핀잔을 들었고, 그렇게 두 달간 연락이 두절됐던 건은 일단락되었다.

 

그제야 그들은 서로의 안위를 물으며 잡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레온은 잘 있소?”

 

“네. 사람을 붙여서 매일 글공부를 시키고 있어요. 열의가 굉장해요. 당신에게 검을 배울 생각에 의욕이 충만하다구요. 그러니까 어서 와요.”

 

“알겠소.”

 

“그럼 시간 날 때 꼭 다시 연락해요.”

 

“그러리다.”

 

위스퍼 스톤의 빛이 사그라지고 완전히 작동을 멈추자, 안톤이 밀린 한숨을 쏟아 냈다.

 

‘왠지 지치는군.’

 

아직 날이 저물기까지 시간이 더 남아 있었으나, 안톤은 더 돌아다닐 생각도 못 하고 바로 여관을 잡은 후 휴식 시간을 가졌다.

 

지난 반년 동안의 피로가 뒤늦게 한 번에 몰려와서였을까. 그는 오랜만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난 안톤은 곧장 성문 쪽으로 향했다. 카린과 한 약속대로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돌아간다니. 뭔가 어감이 낯설군.’

 

아직 날이 어둑어둑할 정도로 이른 새벽이었으나, 먼저 성문에 도착해 나갈 준비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제 보았던 그 젊은 모험가 무리였다.

 

간단하게 평상복을 입고 있던 어제와는 달리 다들 무구들을 챙겨 입은 모습이었고, 나름 전문가의 풍모를 내비치고 있었다.

 

그들 중 기사 갑주를 쫙 빼입은 재넌이 우연히 안톤을 보고는 인사를 해 왔다.

 

“오! 여기서 또 보는군!”

 

혹시 얼굴을 못 알아볼까 봐 얼굴을 가리던 투구까지 벗어 던지는 재넌이었다.

 

안톤은 대충 그의 인사를 받아 준 뒤, 경비에게 다가가 신분을 밝히고 무기를 찾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신분패를 쥐여 주자 경비는 굉장히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쓱 훑었다.

 

“당신이 그 무기의 주인이었군. 조금 기다리시오. 가져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으니.”

 

“알겠소.”

 

안톤은 성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남는 시간 동안 명상이나 하면서 시간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을 방해하는 자가 있었다. 재넌이었다.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가지 않겠소? 어차피 방향도 같은데.”

 

“먼저 가시오. 나는 아무래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소.”

 

“하하. 그 정도도 못 기다릴 정도로 인내심이 없진 않소이다.”

 

“최대한 빨리 이동할 생각이라서 말이오. 혼자가 편하오.”

 

괜히 이리저리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딱 잘라 말하는 안톤이었으나, 상대는 끈질겼다.

 

“그건 걱정 마시오. 우리도 느긋하게 움직일 생각은 없으니……. 아앗! 레이나! 뭐하는 거야, 갑자기!”

 

“미안해요. 자기가 불편하게 하는 것도 모르는 바보인지라.”

 

귀찮게 굴던 재넌을 동료 여성이 질질 끌며 사라지고, 안톤은 조용히 눈으로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군.’

 

검문 절차를 끝낸 그들이 먼저 칸트릴레움을 떠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30분은 더 지난 후에야 안톤은 경비들에게서 무기를 돌려받았다.

 

수레에 검을 실어 낑낑대며 끌고 오느라 시간이 걸린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가면 되오?”

 

안톤이 검을 가뿐히 등에 걸치며 태연자약하게 물음을 건네자, 경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됐군. 서둘러야겠어.’

 

성 밖으로 나오자마자 안톤은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겨우 3분도 지나기 전에 30분은 더 전에 떠났던 그들 무리가 보였다.

 

조금 전, 느긋하게 움직일 생각은 없다고 했던 말은 사실이었는지 그들은 구보로 뛰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왠지 속인 것처럼 보여서 미안하군.’

 

그렇다고 괜히 그들을 피해서 지나갈 생각은 없었다.

 

쉬잉.

 

바람이 갈라지는 파공음과 함께 안톤이 그들의 옆을 스치듯 지나갔고, 뒤늦게 그의 뒷모습을 보고 놀라는 그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와악!”

 

‘어쩌면 라프도니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뭐, 일정대로라면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떠나는 것이 목표지만…… 인연이라는 게 또 알다가도 모를 일 아닌가.

 

 

* * *

 

미궁 도시 라프도니아.

 

원래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이 처음 개척되고서 수도인 새넌리스 다음가는 규모의 도시로 성장하는 데까지는 고작 100년도 걸리지 않았다.

 

바로 그곳에 대미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바깥세상에는 더 이상 존재치 않는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이 대미궁은 처음엔 마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위험 지역으로 분류될 뿐이었으나, 나중에 그곳에서만 채취가 가능한 마석의 용도가 밝혀지며 상황은 반전했다.

 

힘을 지닌 자들에게는 부귀영화를 약속해 주는 기회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부를 원하는 자들로 인해 대미궁을 중심으로 마을이 생겨났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상인들이 따라옴으로써 라프도니아는 미궁 도시라는 이름을 얻으며 비이상적인 속도로 성장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매해 수만 명의 모험가와 상인이 라프도니아를 찾게 되었고, 당연히 매일같이 라프도니아의 성문은 인파들로 붐볐다.

 

“하아…….”

 

그리고 지금 안톤은 그 인파 속에 맞물려 하염없이 시간을 지체하는 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곧바로 이곳으로 오는 건데 말이야.’

 

안톤은 칸트렐리움을 떠나고 근 열두 시간 만에 라프도니아에 도착했다. 그러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라프도니아는 밤이든 낮이든 성문을 열어 놓고 방문자를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하긴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일 처리가 되지 않겠지.’

 

결국 날이 저물기 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톤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라프도니아에 들어설 수 있었다.

 

라프도니아 내부의 모습은 그 어떤 도시보다도 특색이 있었다.

 

불야성이라고나 할까. 이런 야밤에도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쳤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심지어 거리를 밝히는 것도 횃불 같은 것이 아니었다.

 

철봉 위에 박혀 있는 자그마한 돌이 하얀빛을 뿌려 대고 있었다.

 

‘이게 전부 다 아티팩트라고?’

 

물론 미궁에서 채취되는 마석이 아티팩트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주재료였고, 또 만든 아티팩트가 단순히 빛을 내는 것뿐이라고 해도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안톤은 이런 대도시에 와 본 적이 없었다.

 

‘과연 황도는 어떨지 기대되는군.’

 

세계 제일의 도시라는 제국의 수도 그리딘의 모습을 기대하며 안톤은 거리를 걸었다. 도시는 상상 이상으로 컸고 복잡했다.

 

‘칸타타 마법상을 찾아가라고 그랬었지.’

 

세로게트의 말을 떠올리며 안톤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다녔다. 불쾌한 표정으로 무시하며 지나가는 자들도 많았지만,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친절한 그들조차 안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렇게 이름만 말해선 알고 있는 자를 찾기 힘들 거요. 워낙 가게들이 많으니까. 마법상이라면 저기 상업지구로 한번 가 보시오. 뭐, 상업지구는 대개 밤에는 영업을 안 하지만…….”

 

지나가던 모험가의 조언을 따라 안톤은 상업지구로 향했다. 그의 말대로 거리는 밝았지만 가게들의 불은 다 꺼져 있었다. 안톤은 하루를 묵을 여관을 찾으러 발길을 돌리기보단, 텅 빈 거리를 쏘다니며 가게를 찾아다녔다.

 

내일 다시 오는 한이 있더라도, 차라리 사람이 없는 지금 가게를 찾아 놓는 것이 나으리란 판단이었다.

 

그렇게 상업지구 곳곳을 살피며 돌아다닌 지 얼마나 지나서였을까. 안톤은 드디어 찾던 곳을 발견했다. 다소 음습한 골목길 구석이었다.

 

가게는 꽤나 작고 허름했으며, 아직까지도 불이 켜져 있었다.

 

‘잘됐군.’

 

쿵쿵쿵!

 

“계시오?”

 

그 후로도 여러 번 문을 두들겼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안톤은 혹시나 해서 문을 열어 보았다. 하지만 안에서 자물쇠를 채웠는지 열리지가 않았다.

 

안톤은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문 너머 아래쪽에서 무언가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지하에서 뭔가 하고 있나 보군.’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너무 무례하게 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안톤은 문을 부수고 들어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내일 아침에 다시 올까 고민하던 중에 반쯤 열려 있는 창문이 보였다. 2층 높이였지만 그 정도쯤이야 안톤에겐 문제도 되지 못했다.

 

‘집주인 입장에선 이 또한 기분 나쁘긴 매한가지겠지만, 문을 박살 내는 것보다는 낫겠지.’

 

안톤이 잽싸게 도약해 창문틀을 넘어 실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위잉! 위잉! 위잉!

 

건물 전체에서 괴상한 소리가 다급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마 미리 알람 마법 같은 거라도 걸어 둔 모양이었다.

 

쿠당탕탕.

 

무언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도 들렸다. 집주인인가 싶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었다.

 

“침입자. 말살한다.”

 

그것은 수박만 한 크기의 동그란 인형이었다.

 

‘골렘이라니. 이딴 걸 겨우 이런 데 쓴단 말이야?’

 

게다가 창문 하나 넘었을 뿐인데, 포박도 아니라 곧바로 말살하겠단다.

 

‘이거 집주인의 얼굴이 궁금해지는군.’

 

아무래도 세로게트가 말했던 것보다도 훨씬 괴팍한 인물일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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