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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102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1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02화

102. 명인

 

 

댕댕댕!

 

츠레이바의 단 하나뿐인 오러 마스터.

 

가롱 센데벨이 인상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뜻밖의 소음으로 간만의 단잠을 방해당한 그는, 짜증 어린 얼굴로 바깥으로 나왔다.

 

“이게 웬 소란이지?”

 

“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분주히 복도를 돌아다니는 안내인들 중 아무나 잡고 질문을 날렸으나, 아쉽게도 그들은 아직 이 일에 대해 공지를 받은 바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그때, 황급히 어디론가 뛰어가는 사내가 그의 눈에 포착됐다.

 

한 번 스쳐 가듯 보았을 뿐이지만, 가롱의 기억에 남아 있는 자였다.

 

‘크렌디아 성주의 호위들 중 하나였던 거 같은데…….’

 

당연히 이름은 모른다.

 

그렇다고 부를 만한 호칭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봐!”

 

뛰던 것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본 사내의 얼굴이 사정없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아! 센데벨 백작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됐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나 말해 보게.”

 

가롱의 가차 없는 하대에도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그럴 만한 신분의 사람이었고, 성격이 더럽다는 것 자체도 원래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가롱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재빨리 묻는 것에 대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침입자가 성문을 뚫고 도심지로 들어와 아넨교 신전에 들어간 사건입니다만, 근방에 있던 자르탄 경이 출동을 했다니 금방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

 

“자르탄이라…….”

 

자르탄 크렌디아.

 

타인에게 별 관심은 없는 그였지만, 그 이름은 알았다. 크렌디아 성주의 자식인 건 둘째 치고, 츠레이바에선 유망주 취급을 받으며 나름 유명세를 떨치던 놈이었으니까.

 

뭐, 실제로 만나 보니 천방지축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오만한 녀석이었지만.

 

아무튼 그래도 금방 해결될 것이란 말에는 그 역시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자르탄은 어지간한 녀석에게 당할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침입자에 대한 정보는 있나?”

 

“그게…….”

 

사내가 서류 뭉치를 들고 있던 팔을 본능적으로 뒤로 감추었다. 이것은 성주에게 바로 직통으로 올라갈 서류였고, 당연히 외부인에게 보여서는 안 됐다.

 

“이리 줘 보게.”

 

하지만 그로서는 마스터가 보내는 매서운 눈길을 버틸 재간이 없었다.

 

강탈하다시피 서류 뭉치를 뺏어 간 가롱은 빠르게 글을 읽어 내렸다.

 

“조르디가에서 왔다니, 그게 확실한 건가?”

 

“조르디가의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북문 경비대가 확인한 신분패로는 그랬다고 합니다.”

 

어차피 서류까지 내준 것, 잴 것 없이 다 말해 주자고 생각한 모양이었으나, 가롱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안톤이라니, 뭔가 이름이 귀에 익은데…….”

 

잠깐 고개를 갸웃하던 가롱은 이내 크게 소리쳤다.

 

“아. 기억났다. 암검, 그 늙은이의 제자!”

 

반년 전에 끝이 난 조르디가의 내전.

 

대륙제일검가라는 명성답게, 그들 가문의 향후 행보를 관심 갖고 지켜보는 이들은 많았다. 가롱 역시 그런 자들 중 하나였다.

 

아직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간 이름은 아니었으나, 안톤은 무인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했다.

 

검신 안톤.

 

검성 가우스트 조르디의 무호를 압도할 정도로 거창한 무호를 선사받은 젊은 무인.

 

게다가 마나를 쓰지 않는다는, 상식을 벗어난 검술의 소유자.

 

“언제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잘됐군. 그래서 그자가 어디 있다고?”

 

 

* * *

 

“어떻게…… 이럴 수가…….”

 

한 남자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무릎 앞에는 두 동강이 나 버린 자신의 검이 꽂혀 있었고, 그는 멍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그것을 보고 있었다.

 

마치 독실한 성직자가 신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다면 이런 표정일까 싶을 정도였다.

 

“겉멋을 버리고 실리를 추구한다면,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오.”

 

왠지 자신이 한 남자의 꿈을 짓밟은 듯해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 남자에게 잘못은 없었다.

 

아무래도 그는 군인인 것으로 보였고, 도시에 침입한 범죄자를 무찌르기 위해 자신의 일을 한 것일 테니까.

 

어쩌면 무리하게 오러를 표출한 것도, 병사들 앞에서 지휘관으로서의 위엄을 세우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20대 후반의 나이는, 결코 군대에서 많은 나이는 아니니까.

 

‘엉뚱한 데 화풀이나 하다니…….’

 

까놓고 말해서, 방금 이 사내와의 일전을 굳이 안톤이 받아 줄 필요는 없었다. 그가 만약 전투를 피하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면, 그들은 결코 따라오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안톤은 굳이 사내의 검을 정면으로 꺾었다.

 

저 사내 옆에서 기세등등한 경비대장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덜컥 일어났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잠깐의 감정을 빌려 도출된 결과는, 조금도 개운하지 못한 것이었다.

 

‘한심하군.’

 

만약 안톤이 이 여인이 위독하다는 것을 핑계로 삼지 않고, 그들의 질의응답을 성실히 답했다면 상황은 조금 달랐을 거다.

 

이렇게 신전에 난입해 사제들을 겁박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 한 사내에게 좌절감을 맛보여 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바로 방금 전에 실컷 당해 놓고도, 가진 힘에 취해 있던 것인가.’

 

스스로가 부끄러워져 한숨을 내쉰 안톤이 한 걸음을 내뻗었다. 그러자 경악한 얼굴로 몸이 굳어 있던 경비대장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안톤은 그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 그만두고, 이 장소를 벗어나기 위해 발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어딜 가느냐!”

 

쿵!

 

위에서 떨어져 내려 안톤의 앞을 가로막고 나선 정체불명의 사내.

 

그 사내를 본 병사들은 얼굴에 만연하던 공포감을 벗어던지고 열띤 함성을 질러 댔다.

 

“와아아아!”

 

“가롱 센데벨 백작님께서 우릴 구하러 오셨다!”

 

구하러 오다니.

 

처음부터 그들을 해칠 생각은 없던 안톤으로선 다소 어이가 없는 말이었으나, 그건 둘째 치고.

 

‘가롱 센데벨이라고?’

 

안톤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몸이 굳었다.

 

확실히 기억에 남아 있는, 아니 머릿속에 선명히 새겨져 있는 이름이었다.

 

콜로세움이라는 정신 나간 유흥거리를 처음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였다.

 

“여기서 당신을 볼 줄이야…….”

 

“나를 아나? 음, 그럼 그런 눈빛은 띠지 말아야 정상일 텐데? 아! 설마 그만큼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부디 그랬으면 좋겠는데, 라는 뒷말은 굳이 필요 없었다.

 

지금 가롱 센데벨의 눈빛은 여기 어느 누구보다도 기대감으로 물들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네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왔는지는 중요치 않네. 자! 그럼 내게도 보여 주지 않겠나?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도 자르탄의 검을 베어 낸, 하늘을 베어 냈다는 그 검술을!”

 

동공 위로 희번덕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광기.

 

그것을 엿보며 안톤은 그가 정말로 가롱 센데벨 본인임을 실감했다.

 

광전사 가롱 센데벨.

 

츠레이바의 유일한 오러 마스터이자, 브란테의 전당에 공식적으로 이름까지 올린 대륙의 강자.

 

그리고 피에 이성이 잡아먹힌 미치광이.

 

‘그런데 호전적인 기운은 강하다마는, 너무 정상적인데? 전쟁이 그를 미치게 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평화롭던 시기에도 따분하다며 자신이 있던 도시에 콜로세움을 만들었을 정도로 머리에 나사가 반쯤 빠져 있던 인간이 그였으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에게 대전쟁이란 일종의 축제였을 테고, 그에 취해 완전히 나사를 벗어던진 것이겠지.

 

안톤이 검을 들어 자세를 취했다.

 

싸우고 싶어 하는 가롱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이 싸움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녀석의 복수를 여기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가 콜로세움의 설립자라는 것 외에도, 그와는 악연의 끈이 하나 남아 있었다.

 

안톤에게 체스트를 가르쳐 주었던 부관을 죽인 것이 바로 그였다.

 

전쟁에서 벌어진 일들로 누군를 원망한다거나 복수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단 걸 알았지만, 그는 정도가 심했다.

 

나중에 부관의 사체를 찾았을 때, 녀석은 이미 사체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처참했었다. 그리고 시체에 익숙하던 안톤은 이를 보자마자 그가 장난감처럼 다뤄지다 고통스럽게 죽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이 녀석은 전생에서처럼 혼란을 몰고 오는데 일조할 게 분명하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해치운다.’

 

어쩌면 그러라고 운명이 그와의 만남을 이끈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시험을 해 봐야겠어.’

 

현재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그것을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못하는 일의 구분이 모호해지니까.

 

만약 안톤이 평범하게 기공술을 운용하며 오러를 수련했다면 모르겠지만, 천검술에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그러나 이자를 이길 수만 있다면 확실해진다!’

 

브란테의 전당.

 

무인이든 마법사든 구애치 않고 대륙의 최강자들은 그곳에 이름을 올린 후 명인의 칭호를 부여받는다.

 

각성. 즉 환골탈태를 겪은 후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마스터와 왕급 마도사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소수만이 얻을 수 있는 명예.

 

바로 검성 가우스트도 그곳에 이름을 올린 명인 중 하나였지만, 아쉽게도 안톤은 그와 직접적으로 검을 나눠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 기회가 왔다.

 

지금 앞에 있는 가롱 센데벨 역시 대륙의 몇 안 되는 명인들 중 하나였으니까.

 

‘기대되는군.’

 

 

* * *

 

블라디미르 십인 위원회의 정기 집회.

 

열한 개의 수정구에 불이 켜졌다.

 

집회는 가장 마지막에 작동한 수정구의 주인인 흑발 소년의 말로 시작됐다.

 

“오늘은 아르토르 님께서 중요한 발표가 있다고 하시니 들어 주시지요.”

 

흑발 소년의 말에 일동이 술렁였다.

 

“그래, 대영웅의 씨앗을 찾았다지?”

 

“결국 놈이 또 나타나는군.”

 

“이번엔 어떤 놈이지?”

 

다들 사전에 어느 정도 언질을 받은 이후였기에 궁금증 도진 얼굴로 아르토르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뭐, 그와는 관계없이 마치 손자를 바라보듯 흑발 소년을 장하게 바라보는 자도 있었지만 아무튼.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잠깐 간격을 두었던 아르토르가 입을 열었다.

 

“한창 바쁘실 시기라는 걸 모르지 않기에, 잡다한 말 없이 바로 말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숙적을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이름은 안톤으로…….”

 

“안톤……이라고?”

 

내내 가만히 있던 카트락시아의 읊조림으로 인해 도중에 말이 끊겼지만, 아르토르는 나지막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예. 카트락시아 님께서 생각하는 그자가 맞습니다. 예전에도 한 번 이 자리에서 언급이 됐던 이름이기도 한데, 혹시 기억하지 못하는 분이 있을 수 있으니 그에 대해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아르토르는 그가 조사한 정보들을 이해하기 쉽게 쭉 풀어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가 하나씩 전개될 때마다 흠칫하고 놀라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조르디가와 해린을 거쳐 갔다니……. 이제 보니 벌써 운명이 그를 이끌고 있었군.”

 

“하하!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그래서 녀석은 어디 있지?”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해 대는 그들이었지만, 아르토르는 누군가가 행한 마지막 질문에 눈을 빛냈다.

 

“자론 님의 말로는 현재 츠레이바의 사막으로 이동 중이라고 하더군요.”

 

아르토르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시선이 한곳으로 모인다.

 

한껏 주목을 받은 거구의 사내는 뭔가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좀처럼 보기 힘든 드문 경우였다.

 

원래 그는 이렇게 내성적인 성격이 절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쟈카론 님은 왜 아까부터 말이 없으십니까?”

 

아르토르의 질문에 쟈카론이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눈을 피한다. 그러자 한 사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하! 저 녀석 혹시 불안해서 저러는 거 아니야?”

 

쟈카론을 제외하면 블라디미르 내에 하나뿐인 근육파이자, 해린에서 조각을 탈취하는 것에 성공하며 요즈음 그 어느 때보다 코가 높아져 있던 사나이, 가르톤이 바로 그였다.

 

쟈카론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까지 지르며 그의 비아냥에 반발했다.

 

“그것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너답지 않게 왜 이러는 거지?”

 

“그게…… 사실은, 이미 다녀갔다!”

 

“예?”

 

얼빠진 표정을 짓는 아르토르를 상대로 쟈카론이 쐐기를 박았다.

 

“그 안톤이라는 놈. 이미 다녀갔다고!”

 

“잠깐. 이미 다녀갔다니, 따라가기가 어렵군요. 혹시 그를 만났던 겁니까?”

 

“그래! 뭔지는 몰라도 천검술을 쓰길래 반드시 죽여 놓으려고 했는데,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냉큼 도망가 버리더군.”

 

“후…….”

 

한숨을 푹 내쉰 아르토르가 미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이 넓은 사막에서 우연히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 설마 우연이 아니었나?’

 

내심 괜찮은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일이 꼬여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그래서 그의 실력은 어떻던가요?”

 

“사실 나야 천검술의 약점을 알고 있었기에 쉽게 상대한 것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아마?”

 

잠시 뜸을 들이던 쟈카론이 확실하다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인간 중에선 최강이겠지.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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