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검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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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16화
116. 모험
골렘의 몸체에 빼곡하던 마법진들이 빛을 발하며, 허공에 육망성 하나가 나타났다.
우우웅!
그것은 매서운 기세로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신안을 통해 육망성을 확인해 보니, 겨우 3초도 지나지 않았으나 벌써 상당한 양의 마나를 빨아들여 응축한 상태.
‘온다.’
푸른빛이 방 안에서 번뜩이며, 밀집된 마나가 분출됐다.
쉬잉!
미리 대응하지 않는다면 오러 유저여도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번개 같은 속도였지만, 안톤은 옆으로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가뿐히 피해 냈다.
미리 신안을 통해 그 경로를 확인했고, 그 경로 자체가 완벽한 직선을 그렸기에 피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굉장한 위력이군…….’
마법이 지나간 자리를 확인한 안톤이 속으로 감탄사를 흘렸다.
마치 날카로운 송곳으로 종이를 찌른 것처럼, 주먹 크기의 구멍이 창문에 매끄럽게 나 있었고, 그 구멍은 뒤에 있는 건물에까지 이어져 있었다.
지금 위치한 곳이 2층 높이의 건물이고, 또 사선으로 각도가 틀어져 위를 향해 쏘아졌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상관없는 누군가가 저걸 맞고 야밤에 비명횡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우웅!
첫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골렘이 허공에 아까 전 것과 똑같은 육망성을 그려 냈다. 마법의 발동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초가량.
안톤은 그 시간 동안 열심히 고민했다.
뭐, 그렇다고 그 짧은 사이에 달리 좋은 대안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골렘을 멈추는 방법을 안톤은 여전히 단 하나밖에 알지 못했으니까.
‘어쩔 수 없군.’
마법이 완성되기 바로 직전.
가만히 서 있던 안톤이 섬광처럼 움직여 골렘의 몸체에 검을 찔러 넣었다.
핵을 찾을 것도 없이, 작은 몸체를 안톤의 대검이 관통하자 골렘이 작동을 멈추고 축 늘어졌다.
그리고 집주인이 등장한 것도 그때였다.
“세실리아를 부수다니! 누구냐, 네놈은?”
피골이 상접한 백발노인이었고, 그를 보는 안톤은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문을 두드릴 때 그가 나왔거나, 애초에 일찍이 2층으로 올라왔다면 이렇게 골렘을 박살 낼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묘한 눈빛을 한 안톤이 노인의 손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는 가뜩이나 야윈 팔목으로 비슷한 두께의 막대기 하나를 들어 안톤에게 겨누고 있었다.
그 막대기는 흡사 아무 나무나 주워다가 만든 잡동사니처럼 보였지만, 안톤은 그것에 굉장히 복잡한 마법 술식들이 수십 개나 겹쳐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저런 물건을 저렇게 만들어 놓다니…….’
노인의 괴팍한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해, 안톤은 왠지 조심스러워졌다.
“이렇게 허락도 없이 침입한 건 미안하오.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대답이 없길래…….”
“그럼 그냥 들어와도 된다는 것이냐? 어서 정체나 밝혀라.”
“사과하리다. 내 이름은 안톤이고, 세로게트 알-바흐르의 소개로 당신을 찾아왔소.”
역시 그의 이름을 먼저 밝혔어야 했던 것일까.
세로게트의 이름을 듣자마자 노인의 얼굴에서 적대감이 희미해지는 게 한눈에 보인다.
“……세로게트가 보냈다고? 그렇다면 일단 적은 아니겠군. 따라와라. 뭐라도 먹으면서 얘기 좀 하지. 3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더니 배고파 죽겠어.”
“나는 괜찮소.”
“누가 네 녀석에게도 식사를 대접해 준다더냐! 쯧쯧.”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시선으로 안톤을 쓱 훑고는 한 번 혀를 쯧쯧 차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고, 안톤도 뭔가에 홀린 듯 그를 따라갔다.
“베밀. 간단하게 음식 좀 내오거라.”
“예, 마스터.”
베밀은 1층에 있던 골렘의 이름이었다.
안 그래도 어린 여아들이 좋아할 법한 모습인 베밀은 아기자기한 앞치마까지 걸쳐 입고 있었다.
‘전투용이 아니라, 가정부 골렘이라니 신기하군.’
안톤은 감탄하면서 그 골렘이 움직이며 식탁을 차리는 것을 구경했다.
그렇게 신기한 눈빛으로 살펴보던 것도 잠시.
안톤은 식탁에 음식이 채워지자마자 허겁지겁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 노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한창 먹는 것에 집중한 그는 자신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그가 다시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 준 것은 주린 배를 어느 정도 채우고 나서였다.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았군? 나는 칸타타 가제리온, 라프도니아에서 인챈터 일이나 하면서 근근이 먹고사는 늙은이일세.”
인챈터.
아티팩트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제작하는 마법사들의 또 다른 명칭이었다.
그나저나 이런 골렘을 사적인 용도로 만들어 사용할 정도면서 근근이 먹고산다니, 제법 엄살이 심하다.
‘그건 그렇고 왠지 성이 익숙한데……? 아!’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 같아 기억을 차근차근 떠올리다 보니, 불현듯 생각이 났다.
조르디가의 지하 암굴에서 보았던 이름이다.
“가제리온? 혹시 페로우스 가제리온이라는 자를 알고 있소?”
안톤의 질문에 칸타타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리 가문의 사람 중 아는 자가 있나? 근데 나도 딱히 족보를 외우고 다닌 건 아니라서 그렇게 말해도 모른단 말이지……. 아무튼 가제리온이라는 성은 살면서 우리 빼고 한 번도 못 만나 봤으니 아마 가문의 사람은 맞을 것 같군.”
“그렇군.”
“아무튼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왜 세로게트가 널 보낸 게냐?”
칸타타의 눈에는 귀찮음이 가득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꽤나 불편했지만, 안톤은 꿋꿋하게 입을 열었다.
“부탁을 들어줄 거라 들었소.”
“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는 보자.”
이 노인네도 어지간히 직설적인 걸 좋아하는 모양이었기에, 안톤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섰다.
“이 문신을 변형한다면 육체 강화 각인을 새겨 넣을 수 있을 거라더군. 당신이라면.”
안톤이 상의를 벗어 노예 마법 각인이 남아 있는 몸을 보여 주자, 칸타타가 오묘한 눈으로 안톤의 몸을 살핀다.
아무래도 그는 이 마법 각인의 정체까지 단박에 알아차린 듯 보였다.
“어떻게 굴레에서 벗어났지? 각인 마법이 껍데기밖에 남지 않았어. 누가 한 건지는 몰라도 꽤나 조악하긴 하다마는, 그래도 기본에는 충실했는데 말이지…….”
그의 눈에서 마치 학구열 엇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다만 안톤은 그런 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생각은 없었다.
본론을 좋아하는 건 그 역시 피차일반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는 거요, 아니오?”
“당연히 가능하지. 물론 어느 정도 수준의 각인을 원하는지에 따라 시간과 비용이 천차만별이겠지만…….”
“그럼 최고로 부탁드리리다.”
안톤이 대뜸 그의 말을 끊었고, 칸타타는 생뚱맞다는 얼굴로 안톤을 바라봤다.
“뭔 소리를 하는 게냐? 애초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지금 나보고 공짜로 해 달라고?”
그 시선을 보고 괜스레 무안해진 안톤이 볼을 긁적였다.
“아! 돈이라면 내겠소.”
“그럴 돈은 있고?”
은연중에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한 눈빛에, 안톤이 얼른 소지금을 대충 가늠해 보았다.
원래 비상금으로 지니고 있던 돈과, 과거 세계에서 가던트에게 받은 돈을 합치면 대략 600~700골드 정도가 그의 수중에 있었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으나, 왠지 이걸로는 부족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고비로는 얼마를 원하시오?”
“수고비고 자시고, 일단 부서뜨린 골렘 값부터 물어내야지! 그게 아니면 난 아무것도 해 줄 생각이 없으니까.”
“……그럼 그것까지 합해서 얼마요?”
“골렘 값만 대충 2만 골드쯤 되겠군. 세실리아를 다시 만드는 공임비는 빼서 이 금액인 거야. 그리고 뭐, 이것만 깔끔하게 배상한다면 각인 마법쯤이야 세로게트의 얼굴을 봐서 그냥 해 주지.”
어때? 고맙지?
마치 이런 눈빛으로 칸타타가 안톤을 바라보았다.
사실 납득하지 못할 가격은 아니었다. 애초에 골렘이라는 것이 굉장히 비싼 물건이라는 것 정도는 안톤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오러 유저들 정도는 혼자서 서넛은 잡을 위력의 골렘이지 않았던가.
‘순전히 재료비만 받겠다는 건 고맙지만…….’
안톤이 한숨을 감추지 못하고 크게 내리쉬었다.
사실 2만 골드 정도야 그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대가뭄을 기회로 사용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어들인 게 바로 얼마 전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돈은 모두 카린이 지니고 있었다.
“후불은 안 되겠소? 그만한 큰돈은 현재 갖고 있질 않아서…….”
칸타타는 안톤의 말이 끝마쳐지기도 전에 딱 잘라 말했다.
“내 사전에 후불이란 없네. 그리고 내 골렘을 이렇게 간단히 제압할 실력이면 뭐가 문젠가. 금은보화가 굴러다니는 미궁이 요 앞에 있는데.”
그렇게 안톤은 모험가가 되었다.
역시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법이었다.
* * *
날이 밝고서 안톤은 곧바로 도시 정중앙에 있는 미궁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미궁에 입장하기 위해 길게 줄이 서 있었고 안톤은 그 줄에 서서 기다렸다.
딱히 성문에서처럼 검문 작업을 거치던 것은 아니기에, 줄은 금방 줄어 안톤의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기다린 시간이 아깝게, 안톤은 미궁에 들어서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먼저 길드에서 모험가 등록을 하지 않으면 미궁에 들어갈 수 없소.”
물론 알아보지 못한 그의 잘못도 있었으나, 초짜 바라보듯 무시하고 깔보던 경비와 주변의 시선은 기분 나쁜 종류의 것이었다.
“요즘도 저런 사람이 있네.”
“보아하니 무식하게 육체만 수련한 모양인데. 미궁에 들어가서도 얼마 안 가 죽겠군.”
하지만 안톤은 조금 수틀렸다고 대뜸 검을 휘두르거나 무력을 앞세워 응징할 정도로 속이 좁은 남자는 아니었다.
물론 주위에서 조소를 날렸던 모험가들의 얼굴은 다 기억해 두긴 했지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래도 모험가 길드 창구에서 행정 업무를 보는 직원은 친절했다.
모험가 등록을 하러 왔다고 말하자, 자기 일인 양 발 벗고 나서며 이것저것 알려 주었다.
안톤을 뜨내기 취급하는 건 여전했지만, 적어도 어떻게든 최대한 도와주려는 것이 보인달까.
“사용하는 무기가 검이라고 하셨죠?”
“그렇소만…….”
“그럼 여기 마나 측정기에 손을 한 번 대 주시겠어요?”
“…….”
안톤은 처참한 심정으로 측정기에 손을 올렸고, 당연히 측정기는 아무런 반응도 하질 않았다.
겉보기로는 한 실력 할 것 같던 안톤이 이런 결과를 내놓자, 외려 직원이 당황했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아무리 연공법을 익히지 않았어도 어느 정도는 반응을 하거든요. 아마 고장 난 것 같아요.”
황급히 일어나 다른 측정기를 가지고 오려는 직원을 뜯어말린 것은 안톤이었다.
“됐소. 아마 그 측정기는 고장 나거나 하지 않았을 거요.”
파의 과정을 통해 단전 자체를 가루로 만들었으니, 측정기가 반응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안톤의 반응이 측은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직원은 쓸데없이 이런저런 말을 하며 그를 위로했다.
“사실 시험관을 두면 훨씬 정확한데, 그러면 일들이 너무 많아지거든요. 절대 마나 보유량이 강함의 척도는 아닌데 말이죠. 그래도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실적을 쌓다 보면 그런 거랑 관계없이 등급이 올라가거든요. 게다가 은패부터는 시험관이 존재하니까, 실전에 자신이 있다면 그걸 노려 봐도 좋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결국 안톤이 받은 것은 동패였고, 거기에 새겨진 그의 이름 아래에는 작대기가 하나 찍 그어져 있었다.
별 의미 없이 이게 뭘 의미하냐 물어봤더니, 동패 중에서도 등급이 세 개가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작대기가 적은 쪽이 아래였다.
‘최하위라니…… 재밌군.’
어차피 이런 구분 따위 무의미했기에 안톤은 별말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걸로 딱히 화가 나거나 분하다는 감정은 조금도 일지 않았고 말이다.
“아무튼 친절하게 대해 줘서 고맙소.”
“아닙니다. 항상 건승하시길 바랄게요! 힘내세요!”
어찌 됐건 직원의 도움으로 안톤은 수월하게 모험가 등록을 끝마쳤고, 이것저것 잡다한 지식들도 얻을 수 있었다.
안톤을 담당했던 직원은 마지막까지 밝게 웃으며 안톤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수익 배분을 아깝다 여기지 말고, 한 번 신뢰할 수 있는 동료를 구해 보세요.”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소. 혼자가 편한지라.”
“음……. 가끔 그런 분들이 있긴 하죠. 그래도 자금이 부족한 게 아니라면 길잡이는 고용하는 게 좋을 거예요.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미궁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거든요.”
“조언은 고맙소. 그럼…….”
일어나 있던 그대로 안톤은 길드를 나섰고, 밀려드는 인파로 바빴기에 직원도 더 붙잡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그는 방금 받은 동패를 햇빛에 비춰 보았다. 칙칙한 색의 청동이었으나,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자, 그럼 시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