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은 검 155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55화
155. 잠입
대체 어떻게 해야 녀석들에게 이길 수 있을까.
안톤은 생각해보았다.
이제 오개 국가의 연합을 만듬으로 그들과 일전을 벌여볼 전력은 생겼다.
허나 전력으로 부딪치는 일은 그들에게만 좋은 일이다.
그렇기에 공동 전선을 길게 펼쳐 차근차근 녀석들의 세력을 줄여가겠다는, 처음의 계획은 쓰기 어려웠다.
한참을 고민한 안톤은 방법 하나를 떠올렸다.
'만약 녀석들에게서 성물 한 두 개만 빼앗아올 수 있다면. 그렇다면 원래 계획대로 할 수 있다.'
고작 성물 하나의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 그들은 대륙 전역에 전쟁을 일으켰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 성물을 더 대체해야 한다면?
거의 대륙의 모든 인간들을 제물로 바쳐야 할 지경이 될 것이다.
그럼 원래 계획대로 차근차근 전투를 치루며 그들을 압박하는 방법을 쓸 수가 있다.
"그거 괜찮은 방법이네요. 할 수만 있다면."
안톤의 계획을 들은 카린의 지적대로였다.
어딨는지도 모르는 성물을 어떻게 탈취하느냐.
'그래도 완전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건 아니라 다행이군.'
이 문제에 도움이 줄 수 있는 자가 있었다.
바로 카트락시아.
그녀라면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안톤은 카린에게서 돌려받은 트릭 씰을 이용해 에반하임으로 향해, 그녀와 다시 대면해 정보를 청취했다.
"성물은 본단에서 아르토르가 관리한다."
"본단의 위치는?"
"펭 제국 황실 지하에 있다."
카트락시아는 블라디미르에서 자신이 배신한 걸 알고 있으니, 혹시 이를 대비해 위치가 바뀌었을 수 있다고도 첨언했다.
그리고 만약에 그 말대로라면 위험만 감수한 헛고생이 된다.
허나 그 가능성만 보고 포기하기엔 얻을 과실이 욕심났다.
"아무튼 그럼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황궁이라는 거군."
블라디미르의 본진과 마찬가지인 황궁은 어찌보면 복마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자칫 그곳에 고립되면 그 순간 어떠한 일을 겪게될지 모른다.
심지어 카트락시아가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했고, 그 모든 것이 자신을 그리로 유인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결코 펠샤인을 향한 의심처럼 비약만은 아니리라.
허나 그런 만일의 상황을 두려워해 걸음을 멈추면, 그 무엇도 벌어지지 않는 법이란 걸 안톤은 알고 있었다.
"알겠다. 궁금한 게 있으면 추후 다시 오지."
카트락시아에게는 대충 여지를 남겨둔 말을 전한 후, 안톤은 카린을 만나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기어코 모습을 감추고 황궁에 잠입해 성물을 탈취하겠다는 것이었다.
"안 돼요. 너무 위험해요. 그 여자의 말을 어떻게 신용해요?"
다연히 카린은 극구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안톤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정 무리라는 생각이 들면 그땐 바로 복귀하도록 하겠소. 예전에 핫산에게서 받은 아티팩트를 사용하면 모습을 감출 수 있으니 괜찮을 것이오."
"...알았어요. 대신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가요. 그렇지 않다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그러리다."
구멍송송이던 안톤의 계획을 카린이 돕기 시작하자, 안톤이 놓쳤던 자잘한 부분마저 완벽하게 채워졌다.
일단 안톤은 황궁으로 무턱대고 향하기 전, 카린의 조언대로 성국에 들려 칸타타를 만나 몸에 가득한 문신을 보이지 않게 없앴다. 빈틈없는 위장을 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의외의 부수적인 성과도 얻게 되었다.
"해린에서 재미난 일을 벌이는 것 같더군. 나도 데려가 줄 수 있겠나? 분명 내가 도움이 될 걸세."
"좋소. 그리고 아들이 보고싶다면 그냥 그렇게 말하시오."
아무래도 안톤의 추측은 맞았는지, 칸타타는 별 말 없이 입술을 삐죽 내밀 뿐이었다.
여튼 안톤은 칸타타와 함께 해린으로 돌아왔고, 이내 제국으로 잡입할 준비를 끝냈다.
* * *
펭 제국의 수도 그리딘.
전쟁 중인 국가라기엔 지나치게 활기가 가득한 이 도시에 한 사내가 들어섰다.
바로 안톤이었다.
그의 모습은 전과는 판이했다.
일단 대륙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회색 눈은 평범하게 푸른 색을 띄고 있었고,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는 칙칙한 갈색이 되었다.
심지어 전체적인 이목구비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좁은 뱁새 눈매에 다부진 코. 그리고 우억스러운 사각턱까지.
그 누구도 지금 이 사내가 안톤임을 알아챌 수 없으리라.
아무튼 안톤이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타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던 것은 모두 예전에 핫산에게 받았던 아티팩트 덕분이었다.
원래 폴리모프 마법이 각인된 이 목걸이는, 과거 해린 왕궁에서 칼이란 이름을 쓸 때 사용횟수를 다 소모했었다.
허나 칸타타가 인챈터로서의 능력을 발휘해 다시 조치를 해준 덕에 이렇게 재활용 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재활용 된 이 아티팩트의 사용이 가능한 횟수는 총 서른 번.
효과가 대략 하루 간 지속이 되는 걸 감안하면, 최소 한 달은 넘게 본모습을 감추고 활동할 수 있는 셈이다.
"신분패를 주시오."
안톤은 클린턴의 도움을 받아 얻게 된 새 신분패를 경비에게 건넸다.
당연히도 그 신분패에는 안톤이란 성명대신 새로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슬란 파르티안. 통과!"
하루에도 수백 수천명이 도시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와중에, 이러한 신분 확인이란 사실 의미없는 절차였다.
게다가 타국의 인물이라면 모를까.
안톤의 새 신분패에는 제국의 귀족임을 증명하는 각인까지 박혀있어서 사정청취조차 하질 않았다.
도시에 들어선 안톤은 중심부에 떡하니 자리잡은 황궁을 바라보았다.
그의 예상대로 도시에 입장하는 것에는 아주 손쉬웠지만, 황궁은 조금 얘기가 달랐다.
클린턴이 구해다준 어느 시골의 귀족가 삼남 출신의 기사로서는 정상적인 방법으론 황궁의 문턱도 밟질 못할테니까 말이다.
'몰래 침입했다가 걸리면 얄짤없으니, 그 선택지는 가장 미루고... 일단 칠황자를 만나보자.'
어쩌면 7황자 테피로스 또한 못보던 사이에 아르토르에게 당했을 가능성도 농후했기에, 우선 정체를 밝히지 않고 멀리서 확인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카린의 정보가 맞다면, 아마 그는 오늘 푸른 귀신 카를로스를 만나기 위해 황궁 밖으로 나온다고 했다.
때문에 안톤은 황궁의 성문이 딱 보이는 지점에서 자리를 잡고 한 없이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정수리 위를 내려쬐던 태양의 강렬함도 서서히 경사를 져갈 때 쯤.
황궁에서부터 휘황찬란한 마차 한 대가 나왔다.
가림막 때문에 마차 안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안톤에겐 신안이 있었다.
'테피로스가 맞군.'
신체에 흐르는 마나의 순환 형태와, 그 마나가 지닌 성질까지 그와 일치했다.
다만 지난 4년 사이 대체 얼마나 성장한 건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달리 천지차이였다.
'이제 고작 스무 살이 되었을 뿐인데, 벌써 마스터의 벽을 넘었군.'
심지어 그 경지에 이른지도 1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러한 감탄도 잠시.
안톤은 기척을 숨기고 지붕을 타고다니며 마차의 뒤를 쫓았다.
제국의 도로를 달리던 마차가 멈춘 곳은 한 저택 앞에서였다.
푸른 귀신 카를로스의 가문이기도한 그라테인 가의 저택이었다.
마차에서 테피로스가 내렸고, 저택 앞에서 기다리던 카를로스가 정중히 그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황자님.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만찬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뇨. 일단 후원으로 가죠. 요즘 계속해서 황궁에만 박혀 있었더니 좀이 쑤시네요."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그들은 가문 외곽 부에 위치한 후원부로 이동했고, 안톤은 벽 너머에서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그 동안에 서로 안부인사 같은 것이나 나누던 그들은 후원에 도착하자 마자, 곧장 검부터 꺼내들어 서로를 겨눴다.
이윽고 시작된 대련.
챙챙!
검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안톤은 주문을 읊었다.
"밤 그림자."
그리고 팔찌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다름아닌 펠샤인이었다.
원래는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만 황궁에 잠입하고 싶었으나, 세뇌가 됐는지 아닌지는 오로지 펠샤인만 분간이 가능했기에 피치 못하게 그녀도 함께 온 것이다.
안톤이 전음을 통해 그녀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한 번 그들의 상태를 점검해보시오.
-여기 벽을 가리고 있어서 안 되요. 우선 투시 마법을 써야될 것 같은데... 그러면 아마 저쪽에서도 눈치를 챌 거에요.
위스핑 마법을 통한 펠샤인의 대답에 안톤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보시오.
막 안톤이 펠샤인을 끌어안고 도약하려던 찰나였다.
콰아아앙!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그라테인 가의 외벽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벽에도 귀가 있다더니, 왠 쥐새끼가 있군요."
살벌한 눈빛을 쏘아부치는 카를로스를 보며 안톤이 침음을 삼켰다.
'젠장. 어떻게든 소란스럽지 않게 일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설마 위스핑 마법을 눈치 챈 건가?'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명인이고, 마스터인데 너무 우습게 봤던 걸까.
그 격렬한 대련 속에서 잠시 쏘아진 위스핑 마법을 곧장 눈치 챌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한 안톤의 실수였다.
-일단 빨리 확인해보시오.
안톤의 다급한 전음에 펠샤인이 그들을 유심히 살폈고, 뭔가 수작이 있으리라 본 카를로스와 테피로스가 검을 휘둘러왔다.
안톤은 얼른 품 속에서 작은 단검을 뽑았다.
형형색색의 오러를 막기엔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무기.
허나 이는 그들의 검을 동시에 막아냈다.
챙!
한줌의 마나가 실리지 않은 단검이 보인 위력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광경.
허나 일전에 그러한 검을 본 적 있던 카를로스와 테피로스는 눈을 한껏 치켜 떴다.
"이 검술은... 설마?"
암만 모습을 감춰봤자, 검 보다 정직한 것은 없다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들은 벌써 안톤의 정체를 짐작한 모양이었다.
'젠장. 이제 그들이 멀쩡하기만 바래야겠군.'
그 순간 펠샤인이 외쳤다.
"둘 다 아니에요!"
안톤이 단검에 힘을 줘 두 마스터를 뒤로 밀어냈다.
"저기다!"
"황자님을 지켜라!"
벽이 무너지며 큰 소음이 발생했기에, 그걸 듣고 그라테인 가의 기사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안톤은 테피로스와 카를로스에게 전음을 보낸 후, 펠샤인을 품에 끌어안고 돌아섰다.
-오늘 밤 자정에 다시 찾아오겠소. 부디 소란없이 이 일을 무마해주시오.
안톤은 타인의 시선을 피해 그들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높이 도약해 밖으로 벗어났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민한 청각으로 남겨진 그들의 대화가 들렸다.
"별 거 아니네! 그저 대련 중에 실수로 검이 엇나가 버렸을 뿐이니 다들 돌아가 할 일들 하게나!"
* * *
어느덧 날이 저물고 안톤이 그들에게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아까 무너진 바람에 임시 조치로 울타리가 세워진 외벽을 다시 찾았다.
그 앞에는 두 사내가 조용히 서서 안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오."
안톤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카를로스가 눈매를 좁히며 안톤을 쓱 훑었다.
"정말로 그인가? 어째 모습이 많이 변했군."
의심어린 눈길이 쏘아지자 안톤은 망설임없이 폴리모프 마법을 풀었다.
한 순간에 본 모습으로 돌아간 안톤을 보며 카를로스가 감탄했다.
"호오... 상당히 귀한 물건을 갖고 있군. 자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어찌 들었네. 대체 그 기간 동안 뭘하고 지냈던 겐가?"
"그냥 저냥 이런 일들이 있었소. 아무튼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소."
"...자네 말대로네. 뭔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치 않지. 그래, 위그드라실이란 연합을 만들었다지? 그것도 우리 제국을 맞서기 위해서."
카를로스는 4년 전과는 달리 차가운 태도로 안톤을 대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는 제국의 충신이었고, 그가 안톤에게 잘 대해준 것은 그저 제국에 영입시키기 위해서였을 뿐이니까.
그러니 안톤이 제국을 상대로 칼을 뽑아든 이상.
그 둘은 이제 적이다.
"나는 자네가 왜 이런 시기에 우릴 찾은 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어쩌면 이런 성향이었기에, 그가 아르토르의 세뇌를 받지 않고 무사했던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하오."
안톤의 본론에 카를로스가 턱도 없다는 듯 고갤 저었다.
"자네는 위그드라실의 수뇌부이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안톤은 그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틈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하기사 그의 충심에 한 치의 빈틈조차 없었다면, 이 자리에 나왔을 일은 결코 없었으리라.
"내 정체를 알고서도 당신은 이곳에 나왔지. 혹시 당신은 스스로도 뭔가 느끼고 있던 것 아니오? 현 제국은 어딘지 모르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