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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149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49화

149. 성장

 

 

우문현답이라기엔 아리송하기만한 안톤의 말에 가우스트는 잠시 말이 없었다. 단지 묘한 시선으로 안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자네도 변했군. 예전과는 달리 말재간이 많이 늘었어."

 

"칭찬으로 듣겠소."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겸연쩍었는지, 차를 한 모금 들이키는 안톤을 보며 가우스트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칭찬이 맞으니 고갤 들게나. 아무튼 이제 자네의 제안에 대답해보자면... 그러겠다라네."

 

"정말 우릴 돕겠다는 뜻이오?"

 

안톤이 놀란 얼굴로 되묻자 가우스트가 고갤 끄덕였다.

 

"그럼 다른 말이 뭐 달리 있겠는가. 자네의 말대로 하겠다는 뜻이지. 때마침 왕가에서 긴급 집회가 열려 팔대세가가 모두 모였네. 내가 자넬 데리고 그리로 향해 그들을 설득하는데 힘을 보태겠네. 그리고 만약 이가 잘못되어도 우리 조르디가 만은 자네들을 돕지. 어떤가, 됐나?"

 

단호하고 호쾌하기 그지 없는 가우스트의 승낙에 오히려 다소곳해진 것은 안톤 쪽이었다.

 

"...이렇게 바로 결정해도 되는 것이오?"

 

떨떠름한 기색이 역력한 안톤을 보며, 가우스트가 어깨를 으쓱하며 농담조로 대답했다.

 

"그럼 어쩌겠는가. 협력을 안하면 모두 죽은 목숨이라는데."

 

"그야 증명된 것은 없지 않소? 게다가 말만 듣고서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우리 둘의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이오."

 

"그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그런데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오?"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안톤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우스트는 잠시 망설이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자네가 어떤 부탁을 하건 어지간해선 거절할 생각은 없었네. 물론 오늘 자네가 한 제안이 어지간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안톤의 채근에도 아랑곳 않고, 가우스트는 찻물을 한 모금 삼키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자네가 떠나고 나서, 그 이후로 쭉 넬을 지켜보면서 깨달았네. 그 아이야 말로 조르디가의 미래라는 걸 말이야. 그건 몸에 흐르는 피는 상관이 없었네."

 

도대체 그것은 어떤 깨달음이었기에 이 고집불통이던 노인의 생각이 이리도 변한 것일까.

 

못내 궁금하긴 했으나, 방금 그의 대답은 안톤의 질문과는 관계가 없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소. 그래서 그게 이유라는 것이오?"

 

껄껄!

 

가우스트의 웃음 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간단하네. 자네는 그 미래가 원하는 사내 아닌가. 그 아이에 대해 속죄하려면 이렇게라도 힘이 되어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네. 자, 어떤가. 대답이 되었는가?"

 

지난 4년.

 

변화는 오롯 젊은이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가우스트 또한 달라져 있었다.

 

 

* * *

 

가장 중요했던 결정이 끝이 나고, 안톤과 가우스트는 한동안 차를 마시며 이후의 자잘한 사항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소우든의 현재 분위기는 어떤지, 또 팔대세가 소속원들 중에 블라디미르의 첩자로 짐작되는 자들이 있는지.

 

뭐, 대충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럼 오늘은 힘들 것 같고, 내일 바로 왕가로 출발하는 걸로 하지."

 

"좋소.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부탁할 게 있소."

 

자리가 파하기 전.

 

안톤이 뒤로 미뤄두었던 용무를 꺼내들자, 가우스트가 어처구니 없는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허허. 아예 간까지 빼먹으려고 드는구나!"

 

그리고 안톤은 그런 그를 보며 아랑곳않고 요구를 입 밖으로 꺼냈다.

 

"보영전에 한 번 더 들어가고 싶소. 거기 있는 물건들 중 하나가 앞으로의 일을 위해 필요하오."

 

"아, 보영전! 그러고보니 이걸 묻지 않았었군!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그때 자넨 거기서 대체 뭘 얻은 겐가?"

 

불현듯 예전의 일이 떠올랐는지, 가우스트가 옳다구니하며 소리쳤다.

 

눈치를 보아하니 그때 바닥을 드러낸 것에 대해 묻는 것 같았고, 어차피 숨겨봤자라는 생각에 안톤은 솔직히 털어놓았다.

 

"숨겨져 있는 물건이 있더군. 인연이 닿았다 치고 잘 썼소."

 

그런 뻔뻔한 작태에 가우스트가 혀를 내둘렀다.

 

"철면피라는 말은 딱 자넬 일컫기 위해 생긴 말처럼 느껴지는 건, 내 착각만은 아니겠군."

 

"이번에도 칭찬으로 듣겠소. 그래서 내 부탁을 들어주겠소?"

 

"이제 나도 한 발 담궜다 이건가? 에잉, 이런 약삭빠른 놈이 있나."

 

가우스트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안톤을 노려보며 툴툴거렸다.

 

허나 안톤은 그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땅이 꺼지랴 한숨을 내뱉은 가우스트가 힘 없이 입을 열었다.

 

"좋아. 보영전을 열어주지. 대신 이번엔 딱 하나만 갖고 나오는 걸세."

 

"그러겠소."

 

"그럼 내일 일찍 출발할 것이니 지금 잽싸게 다녀오게나. 문지기에겐 말을 전해 놓지."

 

"고맙소."

 

얼른 가라는 듯, 가우스트가 대꾸없이 휙하고 등을 돌렸다.

 

 

* * *

 

다음 날 아침.

 

이제 가우스트까지 합류하게 된 안톤 일행이 마룡의 등 위로 올라 탔다.

 

파밧파밧.

 

용이 거칠게 날갯짓을 할 때마다 흔들림이 전해졌지만, 가우스트는 태연했다.

 

처음 용에 탔을 때 발발 떨던 케이혼과 너무나도 다른 초연함이었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는게, 그 둘 사이에는 어마무시한 차이가 한 가지 있었다.

 

"이 정도라면 낙법만 잘 펼치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겠는데?"

 

그저 헛소리로 치부하기만도 어려운 소리에 케이혼이 질린 얼굴로 고갤 내저었다.

 

원래 그의 성격이라면 이럴 때 뭔가 농담이라도 한 번 건넸겠지만, 가우스트는 연배나 지위에서 차이가 있었기에 케이혼도 쉽사리 말을 걸질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지상을 구경하던 가우스트는, 그것도 슬슬 질렸는지 안톤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자네는 그 지팡이를 어디에 쓰려는 겐가?"

 

가우스트가 안톤을 향해서. 아니, 그의 손에 쥐어진 지팡이를 향해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쏘아냈다.

 

어제 보영전에 들려 찾아온 이 지팡이의 이름은 블러드 샤롯.

 

전생에 오르메넨이 명성을 떨치는데 크게 기여한 무시무시한 무구였다.

 

"화친 선물로 줄 것이오."

 

"고작 그런 거에 쓴다고?"

 

"물건엔 다 쓰임새가 있는 법이오. 그리고 제 주인을 찾아가는 것이니 너무 아까워 마시구려."

 

어차피 자신의 손을 떠난 물건이라 여겼는지, 가우스트도 그 이후로 별 말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너 시간 가량이 더 흐르고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소우든 왕실령 인근의 위치한 숲가였다.

 

조르디가나 해린에서처럼 덜컥 도시 한복판을 지나쳐 안착할 순 없었기에, 일단 인적이 드문 곳에 내린 것이었다.

 

"여기 가만히 있으렴. 안타."

 

마법을 이용해 용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감춘 뒤, 그들은 도보로 소우든 왕실령으로 이동했다.

 

으리으리한 성문 앞에는 행렬이 지어져 있었고, 안톤 일행은 차분히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그들의 차례가 왔고, 가우스트는 힘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기세를 드러냈다.

 

고작 성문 경비를 하고 있다곤 하지만, 그 또한 검객이었기에 그 장대한 기세를 느끼지 못할 리가 만무했다.

 

"실례지만, 성에 출입하시려면 귀인의 정체를 밝혀주시겠습니까?"

 

가우스트는 신분패를 대신해 허리춤에 매어진 검을 살짝 뽑았다.

 

그러자 경비는 이게 뭔 행동인지 의아해 하던 중, 그의 검자루에 달린 오색의 수실을 발견하고는 입을 떡 벌렸다.

 

"검성!"

 

경비의 외침소리는 그야말로 우렁찼고, 이내 주변도 소란스럽게 변했다.

 

다들 검성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겠다고 고개를 빼끔히 올려들며 모여드는 걸 보며, 가우스트가 봤냐는 듯 안톤을 향해 우쭐한 시선을 보냈다.

 

'이 노인은 갈 수록 어려지는 것 같군.'

 

아무튼 주변이 시장통처럼 왁자지껄해지자, 서둘러 상황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싶었는지, 경비는 재빨리 나머지 인물들의 신원 확인을 시작했다.

 

"이분의 일행이니, 신분들이야 다들 확실하실 테지만... 일단 절차라는 게 있기에 다들 신분패를 꺼내 주시겠습니까?"

 

펠샤인과 케이혼은 각자 자신의 신분패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원래의 신분은 감추고 새로운 신분패를 만든 것일까. 그들의 신분패에는 공주나 성자라는 말 없이 그저 일반인들처럼 이름과 국가만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 안톤의 차례였다.

 

그의 신분패를 받은 경비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안톤이라..."

 

그렇게 중얼거리던 경비는 안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살피고는 무언가를 깨닫고는 정중하게 포권했다.

 

"검신이라니, 이거 정말 귀한 경험을 하게 되는군요. 자, 신원 조회는 끝났습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검신이란 무명을 얻은 명인, 안톤의 정체가 장중에 드러나자 일대 소란이 벌어졌고, 경비들은 서둘러 이 소란의 주체인 그들을 들여보냈다.

 

"일단 거처로 가지. 아마 넬, 그 아이도 거기에 있을 것이야."

 

가우스트는 일행을 이끌고 소우든 왕실령 내에 있는 조르디가의 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만나고자 했던 인물을 마주 볼 수 있었다.

 

 

 

"가주님! 어찌 말도 없이..."

 

쉬고 있던 중 연락을 받고 급하게 나온 린디아스는, 가우스트 옆에 있는 안톤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굳었다.

 

"안톤! 정말 살아있었군요!"

 

"오랜만이오. 공녀."

 

린디아스의 분위기는 전과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장발을 과감히 짧게 쳐내서일까.

 

예전의 유약하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고, 꼿꼿하게 핀 허리에서 무인으로서의 풍모가 엿보였다.

 

'근래에 무인으로서 명성을 얻었다더니, 허명은 아니었나 보군.'

 

사실 그녀의 가장 큰 변화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몇 년 전에는 오러 유저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했던 그녀가, 지금 오러 유저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었다.

 

'한 걸음만 더 내딛을 수 있다면 금방이라도 마스터의 경지에도 오르겠어.'

 

아무튼 그렇게 린디아스가 안톤을 마주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옆에 있던 가우스트가 끼어들었다.

 

"그간 잘 지냈느냐? 소식으로 전해 듣고는 있다만, 자주 좀 들리거라. 이러다 얼굴도 까먹겠구나."

 

"예. 그러도록 할게요."

 

대충 대화를 들어보면 간만에 만난 사이로 보였다.

 

하기사, 이제는 린디아스 또한 가우스트와 얽힌 진실을 알고 있으니 서먹서먹한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린디아스는 뭔가 안톤과 재회의 말을 더 나누고 싶은 듯했지만, 옆에 가우스트가 있었기 때문인지 일단 그들의 용무부터 확인하고자 입을 열었다.

 

"근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시다니, 어쩐 일이세요?"

 

"일단 들어가서 차근차근 설명해주마."

 

자리를 이동해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 우선 통성명을 하는 시간부터 가졌다. 이때만큼은 펠샤인도 케이혼도 본래의 신분을 밝혔다.

 

그리고나서 가우스트가 안톤과의 협약에 대해 간략적으로 린디아스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으음... 북부의 전란 속에 그런 비사가 숨겨져 있었군요. 아무튼 어째서 이리로 온 건지는 알겠어요. 함께 집회에 참가하실 생각인 거죠?"

 

"일단은 그럴 생각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도 늦지않게 오셨네요."

 

"다행이라니?"

 

안톤이 그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알기로 소우든 왕가에서 팔대세가를 모두 불러 집회를 연 것은 오로지 제국 때문이었다.

 

바로 위에 국경을 맞댄 제국이 북부를 전란으로 물들였으니, 집회라도 열어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의견을 내고, 향후 어떻게 움직여야할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린디아스는 왕가를 지나쳐 해린으로 오던 중, 왕가로부터 직접 통보를 받고 조르디가의 대리인으로 이곳에서 머물며 집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 회의에서 제국과 손을 잡자는 안건이 정식으로 나왔었어요. 그리고 표결에서 네 표를 얻었죠."

 

"네 표라고? 어느 놈들이었지?"

 

가우스트의 질문에 린디아스가 하나씩 가문의 이름을 호명했다.

 

"가베스란. 퀼런. 호르안. 마르멀론. 그 중 먼저 안건을 꺼내든 건 호르안이었어요."

 

"거 참. 하나 같이 싹수가 노란 놈들 밖에 없군."

 

"그리고 어쩌면 그리 다행인 일이 아닐지도 몰라요. 이건 제 소견일 뿐이지만, 아마 이대로라면 내일 과반수가 넘을 것 같거든요."

 

그런 린디아스의 걱정을 안톤은 단칼에 잘랐다.

 

"걱정 마시오. 그럴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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