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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은 검 147화

무료소설 내가 믿는 것은 검: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6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내가 믿는 것은 검 147화

147. 별세

 

 

다음 날.

 

쟝-그리던에 방문할 예정이라던 린디아스 공녀는 오지 않았다. 대신 조르디가에서 온 무사 하나가 그녀의 전서를 주고 갔다. 일정대로 이곳으로 향하던 중, 가문에 급한 용무가 생겨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만 했다는 내용을 담은 전서였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그리로 가야겠군."

 

이 소식을 막 전해들은 안톤이 중얼거리자, 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도 어차피 나머지 세가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한 번은 가야만 했어요. 공녀님과 발길이 어긋난 건 좀 아쉽지만요."

 

"그건 그렇군."

 

근데 아쉽다는 말은 그냥 함정이었던 걸까. 뭔가 진득진득한 시선이 안톤에게로 쏘아졌다. 허나 이러한 눈빛에도 이제는 적응한 안톤은 당황치 않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도 같이 가겠소?"

 

"아뇨. 그러고 싶지만 시일이 급해요. 아무래도 저랑 당신이 함께 움직이는 것보단 따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는 바로 레노테이르로 가려해요."

 

"그렇군."

 

"그러니 저는 같이 못가요. 대신 그녀를 데려가세요. 뭐, 데려가지 않는다고 해도 그 여자 성격상 아득바득 우기면서 따라갈 것 같긴 하지만요."

 

"펠샤인을 말하는 것이오?"

 

"네. 블라디미르를 따르는 사람들은 분명 소우든 내에도 있을 거예요. 조르디가는 확실히 아니라고 보지만, 어쩌면 그 외에 팔대세가 중 대부분이 이미 당했을지도 모르죠. 만약 그렇다면 반드시 그녀의 능력이 필요할 거에요."

 

"그러리다. 그럼 나는 용을 타고 가면 될 테니, 당신은 트릭 씰을 이용하시오."

 

안톤은 양 손목에 끼고 있던 팔찌 중 하나를 벗어 카린에게 건넸다.

 

트릭 씰은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하는 사기적인 능력을 지녔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쉽게도 혼자 뿐이 사용할 수 없었다.

 

"이걸 사용해 곁을 지켜줄 만한 사람과 함께 가시오. 아마 클린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소."

 

"한 번 부탁해 볼게요."

 

카린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팔찌를 낀 손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렇게 보니까 꼭 서로 맞춘 것만 같네요."

 

 

* * *

 

그리고 그 날 정오.

 

몇몇 지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룡 안타리얼리니온의 위에 세 사람이 올라탔다.

 

펠샤인과 안톤, 그리고 케이혼이었다.

 

"그럼 출발할게요."

 

"으아아. 이거 정말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연신 호들갑을 부려대는 케이혼을 향해, 펠샤인이 못마땅한 시선을 그에게 뿌렸다.

 

그녀는 별 같잩은 이유로 이번 여정에 합류한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게 걱정되면 그냥 따라오지 말지 그래요?"

 

"하하. 클린턴이나 카린 양이 레노테이르로 떠나고 나면 혼자 궁에 남게되는데, 그러면 너무 적적하지 않소. 안톤과 오붓한 여행을 방해한 건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안 좋게 보진 마시구려. 내가 이래뵈도 나름의 실력은 있으니 분명 어디선가 도움이 될 것이오."

 

"...안타!"

 

케이혼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그녀의 말에 용이 장대한 양쪽 날개를 펄럭였다.

 

파밧! 파밧!

 

"으으!"

 

아직 날기는 커녕, 고작 두어번의 날갯짓을 했을 뿐인데 케이혼이 앓는 소릴 낸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렇게 긴장되면 그냥 팔찌에 들어가 있지 않겠소?"

 

허나 안톤의 배려에도 케이혼은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살면서 용에 타볼 기회는 흔치 않지 않은가. 아마 이건 평생 얘깃거리가 될 건데 포기할 순 없네."

 

"마음대로 하시오. 떨어져도 난 모르오."

 

"하하. 이 친구가 무서운 말을 던지느군. 이렇게 자네와 밧줄이 연결이 되어 있는데 떨어질리가 있겠...."

 

"가자 안타!"

 

"으아!"

 

파바바밧!

 

본격적으로 용이 날개를 펼치며 지면을 박찼다.

 

그로 인해 몸이 사선으로 기울자, 케이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눈을 다시 뜬 것은 어느 정도 상공에 올라 지상과 수평으로 비행하기 시작한 이후였다.

 

"오오! 그야말로 장관이군!"

 

쉴새 없이 재잘거리는 케이혼을 뒤로 하고, 펠샤인이 오밀조밀한 입을 열었다.

 

"아마 내일 아침이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네요. 저는 그럼 피곤하니 그 동안 좀 자고 있을 게요."

 

"그러시오."

 

안장에 편하게 앉은 펠샤인이 눈을 붙이자, 안톤은 슬슬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늘 그랬듯이 그가 고민하는 것은 당장 눈 앞에 벌어질 일들에 관한 것이었다.

 

'검성 가우스트 조르디.'

 

다시 생각해봐도 그리 만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를 설득해야할 생각을 하니 안톤은 머리가 아파졌다.

 

지금껏 그가 보아온 가우스트는 철저히 계산적이고 냉철한 면모를 지닌 부류의 인간이었다.

 

애초에 둘 사이에 그런 것은 없었지만, 결코 사사로운 정이나 친분 때문에 움직일 위인이 아니랄까. 아무튼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반드시 어떠한 대가가 필요했다.

 

안톤은 그에게 자신이 뭘 제시할 수 있는지를 하나씩 꼼꼼히 따져보았다. 그리고 그러던 중 그의 스승 온-누르가 했던 말 한 가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인간이란 모든 집착하는 게 하나 쯤은 있는 법이다.'

 

뭔가 깨닫는 게 있어서 안톤은 피식 웃었다.

 

'그에겐 뭘 주는 것보다는, 뭘 잃을지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게 더 효과적일 테지.'

 

그리고 검성 가우스트 조르디가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뭔지, 안톤은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대륙제일검가 조르디가.

 

예전처럼 그 자체를 인질로 잡고 협박할 필요도 없었다. 블라디미르의 실체를 알려주고, 이후 그들이 벌일 야욕을 깨닫게 해주면 그는 자발적으로 협력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게 고민이 대충 일단락 지어졌고, 안톤은 한결 편해진 마음가짐으로 그의 지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를 상상해 보았다.

 

물론 그 중 가장 궁금한 것은, 그의 스승 온-누르였다.

 

그간 연락도 없이 몇 년이 지났으니 핀잔을 들을 것은 분명했지만, 어째선지 그를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 한구석으로 진한 울림이 퍼져나갔다.

 

 

* * *

 

파바바밧!

 

쿵!

 

안톤 일행을 태운 마룡 안타리얼리니온이 조르디가 본성 한복판에 안착했다.

 

미리 언급을 해두었어도 이만한 크기의 생명체가 나타나면 놀랄 것인데, 사전에 연락없는 방문이었기에 당연히 조르디가에선 난리가 났다.

 

댕댕댕!

 

비상시에나 울리는 종소리가 성내 전역에 울려퍼지며, 조르디가 내에 있던 검객들이 모조리 몰려들어 그들을 포위했다.

 

채챙!

 

삼엄한 기세가 쏘아졌고, 대충 이렇게 될 줄 예상했던 안톤은 재빨리 그들 중에서 안면이 있는 자를 찾았다. 다행히도 금방 그런 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반갑소. 타르티안."

 

용의 등에서 단숨에 뛰어내린 안톤의 인삿말에, 무사 무리들에 껴 있던 한 사내가 크게 놀라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바로 타르티안이었다.

 

"...안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아니, 것보다... 다들 괜찮다! 검을 내려라!"

 

그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검을 거둔 무사들은 제각기 한 마디씩 뱉으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잠깐만 안톤이라면..."

 

"설마 저 자가 검신인가?"

 

순식간에 엄중했던 분위기가 시끌법적해지자, 타르티안은 그런 검객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안톤에게서 겨우 시선을 떼고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당신도 많이 변했군."

 

타르티안을 보며 안톤은 새삼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뭔가 약간 어벙한 느낌은 아직도 살짝 남아있는 듯 했지만, 이제는 그래도 상급자로서의 노련미를 풍긴달까.

 

그것은 딱히 이전과는 다르게 길게 자라난 턱수염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에는 없던 여유가 그의 주변으로 흐르고 있었다.

 

안톤에게로 가까이 다가온 타르티안이 정중히 포권을 한 이후, 먼저 입을 열어 질문을 쏘아냈다.

 

"해린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있소? 설마 공녀님을 벌써 만났소?"

 

"린디아스 공녀는 아직 만나지 못했소. 대신 뭔가 사건이 생겨 돌아간다는 전서만 받았지. 근데 보아하니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군?"

 

조르디가로 출발한 시기는 분명 꽤나 차이가 날 터였지만, 사람의 발걸음과 용의 날갯짓 또한 그 이상으로 간극이 존재하는 것은 마찬가지. 안톤은 아무래도 자신들이 린디아스보다도 빨리 조르디가에 도착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추측성 질문에 타르티안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왕가에서 긴급 집회가 열린 탓에, 공녀님은 그리로 발길을 돌리셨소. 아마 본가로 돌아오려면 상당한 기일이 소요될 것이오."

 

"그렇군."

 

안톤이 조르디가에 온 이유가 오로지 린디아스 공녀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지, 타르티안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설마 그렇다고 섭섭하게 바로 왕가로 향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오랜만에 만났는데 적어도 하루 정도는 회포를 풀고 가시오. 내가 당신 소식을 얼마나 목 빠지게 기다렸는지 아시오?"

 

다소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타르티안을 보며 안톤이 입 밖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 그런 걱정은 마시오. 애초에 이곳에 온 것도 꼭 그녀 때문은 아니었을 뿐더러, 설령 그랬다 한들 바로 떠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소."

 

"그렇다면 다행이오. 헌데 공녀님 때문에 온 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연유로 이곳까지 온 것이오?"

 

타르티안이 호기심을 내비치며 묻자, 안톤은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해주었다.

 

"가주. 아니 지금도 가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검성을 만나서 전할 말이 있소."

 

안톤의 말에 타르티안이 곧장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이렇게 불시에 찾아와 가주를 만나려 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나, 안톤은 충분히 이렇게도 그를 만날 수 있을 만한 거물이었다.

 

"아, 그렇군. 그럼 그리로 함께 갑시다. 안내해 주겠소."

 

"아니, 그럴 필요 없소. 이미 온 모양이니까."

 

안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노인이 장중에 나타났다.

 

그는 평소처럼 백의장포에 검 한자루만 허리에 차고 있었다.

 

"밖이 시끄럽길래 한 번 나와봤더니, 이렇게 예상치도 못했던 자를 만나게 되는군.

 

"오랜만이오. 검성."

 

백의 노인. 가우스트 조르디가 미묘한 눈빛으로 안톤을 바라보았다.

 

"넬의 말을 듣고 설마 했는데 정말로 살아있을 줄이야."

 

"마치 죽었으면 더 나았을 거라는 눈빛이오만?"

 

"그도 그럴 수 밖에! 자네는 아직 젊은데 설마 그때 내게 했던 엄포를 벌써 까먹은 겐가?"

 

기가차다는 듯한 목소리에 안톤이 뜨끔했다.

 

아무래도 안톤이 조르디가를 떠날 때 했던 협박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는 앙금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아니었다.

 

검객이라면 그 누구나 바랄 탄탄대로를 겪은 그의 생에 있어, 그것은 다시 없을 굴욕적인 사건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아무튼 난 당신과 싸우려 온 게 아니오."

 

"그럼 왜 왔지?"

 

"당신의 도움을 받고 싶소."

 

안톤의 명확한 대답에 가우스트가 코웃음쳤다.

 

"흥. 뻔뻔한 건 여전하군."

 

"그건 당신 역시 마찬가지오. 그리고 혼자만 피해자인 척 하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소?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는데, 어찌 당신은 속이 더 좁아진 모양이오."

 

살살 성질을 건드리는 말투에 속에서는 열불이 치솟았지만, 가우스트는 화를 잠재웠다. 그리고 그저 안톤을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부탁을 하러 왔다면서 이런 태도라니, 아직 어리군."

 

"그래서 내 부탁이 뭔지는 안 궁금하시오?"

 

"으음..."

 

가우스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어떤 부탁을 하려고 자신에게 왔는지 무척 궁금하긴 했다. 허나 저렇게 말하는데 와중에 그렇다고 말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안톤은 그런 그의 의중을 읽을 수 있었다.

 

"아마 내 부탁이 뭔지 들어보면, 이렇게 당당하게 굴 수 있는 이유가 뭔지도 알 수 있을 것이오."

 

"...손님을 내쫓을 수는 없으니 일단 들어는 보지."

 

일단 야외인 이곳은 그러니 자리를 옮기기로 결정했고, 안톤은 여러 사건들이 있었던 예의 가주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러던 중 타르티안에게 온-누르의 이야길 꺼냈다.

 

"이따가 찾아 뵈려고 그러는데, 스승님은 어디 계시오?"

 

타르티안이 발걸음을 뚝 멈추더니 등을 돌려 안톤을 바라보았다.

 

왠지 그의 눈빛은 한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설마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오?"

 

"소식이라니?"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것은 빗나가지 않았다.

 

타르티안은 한숨을 그윽하게 내쉬더니 어렵사리 비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암검께선 작년에 작고하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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