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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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화
마우티 부락 (3)
“이서준 그놈도 여전하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구태여 카라카반의 머리와 심장을 드러낸 걸 말하는 거다. 과시하고 싶었던 거지.”
말을 하며 끌끌- 혀를 차는 남자였다.
“그나저나 혼자서 깨어나지 않은 숲에서 카라카반까지 사냥한 걸 보면 머지않아 지저분한 알력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겠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차피 너와는 아득히 먼 이야기니 구태여 알 필요 없다.”
궁금했지만, 남자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 하는 무혁으로서는 더 이상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담배를 사이좋게 나눠 피우며 무혁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
“한 달 후에 정식으로 라시온의 부락 식민이 됩니다.”
“벌써 그렇게 됐군.”
무혁이 눈물, 콧물을 짜며 벌벌 떨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남자가 낄낄- 거리며 웃었다.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무혁에게 남자가 물었다.
“정확하게 포지션은 잡은 거냐?”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걱정입니다. 어떤 날은 이랬다가, 또 다른 날에는 저랬다가… 생각을 할 때마다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헬-라시온의 식민이 되면 반드시 포지션을 확실하게 선택해야 한다. 물론,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포지션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포지션을 어떻게 잡고 가느냐에 따라 경쟁력에서 차이가 생길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할 필요는 있다.”
남자의 말에 무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포지션을 떠올렸다.
사냥꾼, 약탈자, 탐험가, 가디언.
각각의 포지션을 선택함에 따라 영구적으로 체력, 근력, 순발력, 지구력에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한 번 선택한 포지션은 절대 변경이 불가능했기에 헬-라시온의 식민이 되는 이들은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약탈자는 싫은 거냐?”
남자의 물음에 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끌끌, 현재 랭커의 절반이 약탈자 포지션이라는 건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약탈자가 혜택을 받는 고유 능력은 근력이고, 관련 스킬들 역시 근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에 다른 포지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 대 일 전투에 특화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몬스터 사냥에서도 큰 도움을 받기에 확실히 ‘생존’에 있어서는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혁이 약탈자 포지션만큼은 선택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포지션 트레이닝에 대한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다.
포지션 트레이닝은 ‘마신 라시온의 임무’ 중 하나로서 포지션에 맞춰 어떠한 일을 주기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걸 말한다.
약탈자의 경우, 가장 흔한 포지션 트레이닝이 정해진 기간 내에 무엇을 훔쳐 온다거나, 누굴 죽인다거나, 어딘가를 습격한다는 등 말 그대로 약탈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임무들이 주어지는데, 무혁은 이러한 임무들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약탈자가 되지 않겠다면,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어.”
남자 역시 약탈자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다.
즉, 무혁이 약탈자가 아닌 다른 포지션을 선택한다면 그만큼 성장에 대한 도움이 다소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무혁은 충분히 고속 성장 즉, 남들보다 편안하게 성장을 할 수 있는 발판을 걷어차고 있다는 뜻과 같았다.
“어느 포지션을 잡든 확실하게 해.”
“선생님께서는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무혁의 물음에 남자가 두 번 생각할 것 없다는 듯 대답을 주었다.
“약탈자가 싫다니 사냥꾼이 좋겠지.”
“사냥꾼이라… 알겠습니다. 조금 더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끌끌,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빌어먹을 새끼들이지만, 식민 특권만큼은 정말 제대로 주니까.”
“예.”
#
5일 뒤, 무혁은 월세를 정산하기 위해 중앙탑에 들어섰다.
깔끔한 턱시도 차림의 십 대 초반의 미소년이 무혁을 알아보고 히죽- 웃었다.
‘징그러운 놈.’
머리에 살짝 솟아나 있는 검은 뿔은 미소년이 인간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표시다.
더불어 이곳 헬-라시온에서 가장 막강한 존재 중 하나라는 뜻이기도 했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그 이름, 바로 악마.
미소년의 정체는 바로 악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마족이었다.
이름은 크레우스타, 이곳 마우티 부락의 총괄 관리자다.
보기엔 저렇게 어린 소년 같지만, 그 실체는 아무도 예측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최상위의 랭커라 하더라도 아직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고위 마족이니까.
“무혁이군. 월세를 정산하려고 온 거야? 아니면, 포인트가 부족해서 퇴거를 할 거야?”
마우티 부락에 머물고 있는 인간들의 숫자만 하더라도 수백 명에 달했지만, 저 소년 마족은 그 모든 사람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무혁처럼 월세나 기타 세금을 정산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의 방문 일을 귀신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정산할 거야.”
무혁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어디 한번 볼까?”
소년 마족이 검붉은 입술을 빨간 혀로 적시며 히죽- 웃었다.
곧바로 무혁의 상의 부근에서 검붉은 빛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중앙탑에서는 흔한 일이기에 무혁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이곳 헬-라시온에 끌려온 모든 인간의 심장에는 검붉은 색의 기이한 문양이 어지럽게 문신처럼 새겨진다.
일명, ‘악마의 족쇄’라고 불리는 이 문신은 여러 기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포인트 저장 역할이었다.
소년 마족은 여전히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정상 처리 완료!]
[잔여 포인트: 992]
‘겨우 9천 포인트 가까이 모았는데… 휴우.’
다 쓰러져가는 형편없는 판잣집의 한 달 월세가 8천 포인트다.
미리 지불하지 않으면 길거리로 내쫓기게 되다 보니 무혁으로서는 입맛이 쓰더라도 월세만큼은 확실하게 모아두어야만 했다.
더욱이 꼬박꼬박 월세를 받아먹는 소년 마족에게 융통성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기에 하루라도 늦으면 강제로 퇴거시켜 버리니 어떻게 해서라도 월세는 반드시 정해진 날짜에 맞춰서 마련을 해두어야만 한다.
‘그래도 월세를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고블린을 많이 잡아서 핵도 많이 섭취했으니 결코 나쁘지만은 않았어.’
지난 5일간의 치열했던 사냥을 떠올리며 무혁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더 이상 볼 일이 없으면 그만 꺼져.”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하는 소년 마족에게 무혁은 추가적으로 구입할 물품이 있음을 전달했다.
‘점점 사냥 속도도 빨라지고 있으니 오늘은 선생님과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푹 쉬자.’
헬-라시온에서는 놀랍게도 지구의 모든 물품을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었다.
그 중 술은 담배보다 더 비싼 사치품으로 취급된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소주의 경우엔 한 병에 무려 200포인트였다.
물론, 좋은 와인이나 양주 같은 경우에는 훨씬 더 비쌌지만.
무혁은 차마 포인트를 생각해서라도 두 병까지는 살 수 없었기에 소주 한 병과 소고기, 김치, 쌀밥과 담배까지 구입을 마쳤다.
[잔여 포인트: 472]
우수수 깎여 나간 포인트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렸지만, 이런 날도 있어야 또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생각하며 무혁은 곧장 집으로 돌아와 소주 한 병에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대충 술자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남자가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라시온 식민이 되면 앞으로 감당해야 할 마신 라시온의 임무 중 강제 사냥이 가장 큰 문제다. 특히, 부락 식민일 때는 주기도 짧고, 매번 피하기도 쉽지 않지.”
남자의 말에 무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라시온 식민이라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마신 라시온의 임무 중 가장 까다로운 것이 바로 강제 사냥이다. 특히, 1년 차에 접어든 부락 식민들은 거의 매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잦은 강제 사냥에 소집이 되곤 했다.
특별한 주기는 없지만 가장 하위 식민일수록 강제 사냥의 주기가 짧다는 건 확실했다.
때문에 최하위 계급이라 불리는 부락 식민들의 경우엔 운이 나쁘면 매달이었고, 운이 좋다고 하더라도 2달에 한 번씩은 강제 사냥에 나서야만 했다.
물론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두 번에 한 번은 피할 수 있지만 포인트가 많이 필요하니 결코 좋은 선택이 될 수는 없을 거다.”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걱정입니다.”
강제 사냥은 그 주기를 예측할 수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무혁에게 걱정스러운 건 사냥 기간이 얼마가 될지 역시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짧으면 일주일 만에 사냥이 끝나기도 하지만, 마냥 길어지면 보름 이상 사냥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무혁은 자신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홀로 남을 남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다고 강제 사냥을 대신해서 포인트 5천 점(계급에 따라 포인트가 다르다)을 지불하자니 도저히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꼼짝없이 사냥을 나가야만 했다.
“먹을 음식은 최대한 미리 구입해 놓도록 하겠으니 힘드시더라도 선생님께서 잘 버텨 주셨으면 합니다.”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어. 걱정은 무혁이 네가 해야지.”
모든 강제 사냥에는 반드시 사망자가 나온다.
매번 그 사망률이 천차만별이지만, 아무래도 잦은 사냥에 나서야 하는 부락 식민들의 경우에는 그 위험도가 굉장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더욱더 많은 고블린을 잡을 생각입니다.”
어제까지는 월세를 걱정했지만, 이제는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당연히 전자보다 후자가 더욱더 중요했고, 절실했다.
“무구를 구입하는 쪽이 생존에는 확률이 높아.”
“저도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현재 포인트 벌이가 될 만한 사냥감들은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제가 끼어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겠군.”
그제야 남자는 자신이 잊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무혁은 13차 지구인이다.
즉, 무혁과 함께 경쟁해야 하는 이들이 이곳 마우티 부락에만 최소 서른 명 이상이 될 것이다.
그중 거대 길드와 가문은 물론, 중소규모의 길드들조차 새로운 신입들을 위해 포인트 벌이가 될 만한 사냥터는 모조리 점령을 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포인트를 벌어 개인 장비를 맞춘다는 건 쉽지 않다.
자칫, 거치적거린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심할 경우 눈알이 뽑히거나, 혀가 잘리는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었으니까.
무혁처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가만히 무혁을 바라보던 남자가 물었다.
“현재 네 능력이 어느 정도지?”
남자의 물음에 무혁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신의 상의를 끌어 올렸다.
악마의 족쇄, 즉 문신을 상대에게 보여준다는 건 자신의 모든 걸 보여준다는 의미다.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지 못하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당연히 무혁은 남자에게만 자신의 모든 걸 보여줄 수 있었다.
“오픈.”
타인에게 자신의 정보를 알려줄 때에는 반드시 악마의 족쇄를 보여야 했기에 이렇게 번거롭게 상의를 까야만 했다.
남자의 눈동자는 무혁이 보여주고 있는 악마의 족쇄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쪽 눈 밖에 제 기능을 할 수 없었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차무혁(13차 지구인)|
· 연차 - 1년차
· 신분 - 라시온 식민(예정)
· 체력 - 7등급(4.84%)
· 근력 - 7등급(5.79%)
· 순발력 - 7등급(4.27%)
· 지구력 - 7등급(5.43%)
그 외에도 몇 가지의 소소한 정보가 더 눈에 보였지만, 남자는 자신이 알고자 하는 것만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혁이 상의를 내리자 그에 대한 정보를 나타내고 있던 홀로그램이 말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고블린의 핵을 제법 열심히 섭취하긴 했구나.”
처음 무혁의 상태는 말 그대로 평범함과도 거리가 좀 있었다.
그 말인 즉, 성장 가능성이 높지 않은 축에 속했다는 뜻이다.
그 결과 무혁은 그 어떠한 길드나 가문과도 인연을 맺지 못했다.
물론, 무혁에게 손을 내민 이들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어쨌든 무혁은 ‘일주일간의 생존’을 견뎌낸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적극적이지 못하고 사람들의 뒤에 숨어 겨우 생존을 한 무혁에게 대형 길드나 가문은 관심이 없었고 자잘한 규모의 길드만이 손을 뻗었다.
다만, 그들이 뻗은 손길이 불순한 의도로 가득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무혁은 남자와의 첫 만남을 가졌고,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온전하게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다.
“여전히 부족합니다.”
무혁은 누구보다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헬-라시온에 처음 끌려오는 모든 지구인은 체력부터 지구력까지 7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같은 등급이라 하더라도 모두 0퍼센트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사람들은 ‘정밀 수치’라고 부르는데, 처음부터 주어진 정밀 수치는 차이가 뚜렷하게 존재했다.
누가 봐도 힘 좀 쓰게 생겼다 싶은 사람은 같은 7등급의 근력이라 하더라도 정밀 수치가 적게는 8에서 많게는 10퍼센트까지 차이가 났는데, 수치가 높을수록 그만큼 근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무혁의 초기 정밀 수치는 평균적으로 2에서 3에 불과했다.
보통의 사람들이 4 정도에 맞춰져 있었으니 무혁은 보통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거였다.
그런 무혁이 남자를 만나고, 핵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해 현재 상황에 이른 것이다.
“부족하지.”
남자는 냉정하게 무혁의 상태를 평가했다.
대형 길드나 가문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이들이라면 온갖 약물과 아이템은 물론, 최적의 육성 장소를 통해 정밀 수치를 빠르게 올릴 것이다.
물론, 막대한 포인트가 소모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대형 길드나 가문에서는 적정 수준에 이른 소속원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했고, 그들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정밀 수치가 높은 이들은 스타트부터 남들보다 우월한 편이니 키우기가 훨씬 수월한 면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무혁은 정말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자는 그 시기가 임박했음을 느꼈다.
“하루에 사냥할 수 있는 고블린의 수가 몇이나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