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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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화
마우티 부락 (2)
다음날 새벽.
무혁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남자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살펴보고는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판잣집을 나온 무혁은 곧바로 무질서하게 뒤엉켜 있는 판자촌을 벗어나 부락의 중심부로 향했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 맙소사! 패검이다! 패검이 우리 부락에 나타났어!”
무혁은 누군가의 외침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붉은 갑옷을 입고, 등 뒤로 거대한 대검을 비스듬하게 매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한 걸음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패검, 이서준!’
무혁은 남자의 얼굴, 이마 한 가운데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불꽃 모양 문신을 확인하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고작 8년,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공식 랭킹 300위 안에 들어간 초강자가 바로 이서준이다.
현재의 무혁으로서는 감히 눈도 제대로 마주칠 수 없는 존재였다.
‘깨어나지 않은 숲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돌아온 건가?’
대형 길드와 가문들조차 탐사를 회피하는 깨어나지 않은 숲으로 홀로 떠났던 이서준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무혁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모두 감탄의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저건!’
무혁의 시선에 이서준의 허리춤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두 개의 보랏빛 물체가 포착됐다.
삼각형 형태의 세 개의 붉은 눈을 부릅뜨고 죽은 괴물의 머리가 무혁의 시선을 잡아 당겼다.
‘분명해!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카라카반의 머리다! 그리고 옆에는 분명…….’
심장이다.
상급 재료 중 하나로 여겨지는 카라카반의 심장은 그 크기가 제 머리통만 했다.
꿀꺽-!
무혁의 두 눈에 탐욕스러운 감정이 떠올랐다.
‘카라카반의 핵을 섭취할 수 있다면…….’
현재 무혁의 신체 능력으로서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것이 불 보 듯 뻔했다.
하지만, 상대는 패검 이서준이다.
감히 헛된 생각 따윈 꿈조차 꿀 수 없는 초강자다.
“후우우… 넘볼 걸 넘보자.”
무혁이 푸념과 함께 고개를 흔드는 사이, 패검 이서준은 점점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패검 이서준의 등장으로 잠시 시끄러웠던 거리도 다시 잠잠해졌다.
무혁 역시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선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나저나 깨어나지 않은 숲에도 카라카반이 있는 건가? 저녁에 선생님께 한 번 말씀을 드려봐야겠어.’
바쁜 걸음으로 무혁이 도착한 곳은 중앙탑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나 있는 거대한 중앙탑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총 36개의 출입구를 통해 드나들고 있었다.
#
[정상 처리 완료!]
[잔여 포인트 : 3,587]
무혁은 남아 있는 포인트 점수에 입안이 쓰기만 했다.
“언제 모아서 무기를 살 수 있을지…….”
쓸 만한 장검 하나만 하더라도 3만 포인트가 필요했기에 현재 무혁에게는 아득하게 먼 희망일 뿐이었다.
“가자, 고블린이나 잡으러.”
말을 하며 무혁은 킥킥- 웃었다.
무기 타령을 하면서 고작 사냥을 하겠다는 몬스터가 고블린이라니.
눈알 하나에 10포인트, 이빨 하나에 3포인트가 전부인 고블린이다.
고블린 한 마리를 잡았을 때, 얻을 수 있는 평균적인 포인트는 35다.
산술적으로 장검 하나를 마련하려면 고블린 857마리를 잡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람들이 들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미친 짓이라고 비웃음을 지을 거다.
고블린보다 쉽게 사냥할 수 있으면서도 사체를 통해 많은 판매품목을 지닌 몬스터가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블린을 잡아서 포인트를 모으겠다는 생각은 미련하다 못해 지능이 떨어지는 ‘저능아’소리를 듣기 딱 좋았다.
“붉은 뿔 사슴을 잡아서 무기부터 구할까?”
뿔 하나에 50포인트를 벌 수 있는 붉은 뿔 사슴은 고블린보다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였기에 무혁은 잠시 갈등이 일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접었다.
뿔 외에도 몇 가지의 품목을 추가로 팔 수 있는 붉은 뿔 사슴을 통해 빠르게 포인트를 모을 수 있다 하더라도 적당한 검 하나를 얻으려면 상당한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더불어 붉은 뿔 사슴의 경우엔 경쟁자들도 많았기에 운이 나쁘면, 괜한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생각보다 적은 포인트 벌이로 시간만 날릴 수도 있었다.
결국, 무혁의 입장에서 안전하게 차근차근 포인트를 모을 수 있는 최고의 사냥감은 고블린이 제격이었다.
무엇보다도 고블린에게는 ‘핵’이 있다.
붉은 뿔 사슴을 통해 두 배, 세 배 이상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핵’이 없는 이상 적어도 무혁에게만큼은 고블린보다 나을 것 하나 없는 몬스터일 뿐이었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서른 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겠지?”
쉽지 않은 목표량이었지만, 무혁은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5일 뒤에 있을 월세 정산을 생각하면 현재 지닌 포인트는 여유가 넉넉하지 않았다.
“서너 개만 핵을 섭취해도 좋겠는데.”
극악한 확률로 핵을 지니고 있는 고블린이었기에 무혁은 체력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은 고블린을 잡을 생각으로 도시를 빠져나와 갈대숲으로 향했다.
#
키에에엑-!
무혁은 고블린이 휘두르는 팔을 피하며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힘껏 휘둘렀다.
핏-!
두꺼운 녹색 피부는 생채기라 할 정도로 약하게 표면만 살짝 벗겨지고 말았다.
‘역시 단검으로는 한계가 너무나도 뚜렷해!’
무기의 중요성을 또다시 느끼며 무혁은 번들거리는 녹색 눈으로 자신을 쫓으며 양팔을 휘둘러대는 고블린을 피해 뒤로 껑충- 뛰었다.
후악-!
아슬아슬하게 앞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고블린의 손엔 시커먼 때가 잔득 낀 단단하고도 날카로운 손톱이 길게 자라나 있었다.
변변한 방어구조차 없는 무혁이다.
조금만 스쳐도 살가죽이 쭉쭉- 찢어질 수 있었기에 무조건 피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왜 하필 고블린이 핵을 가지고 있어서는… 윽!’
몸통 박치기를 하려고 달려드는 고블린을 피해 옆으로 다급하게 바닥을 구른 무혁이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곤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회심의 몸통 박치기를 실패하면서 균형을 잃은 고블린이 뒤뚱거리는 사이, 무혁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튀어나가며 고블린의 뒷목을 노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역수로 쥔 단검을 내리 찍었다.
푸칵-!
단단한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기분 나쁜 촉감을 느낄 새도 없이 무혁은 단검을 뽑으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키에에에엑-!
뒷목을 깊게 찔린 고블린이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지르며 마구잡이로 양팔을 휘두른다.
이때가 가장 위험할 때다.
치명상을 입은 고블린은 앞뒤 가리지 않고 상대에게 달려드니까.
무혁은 고블린과의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발악이 서서히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왈칵왈칵-. 끈적한 녹색 핏물을 쏟아내며 죽어라 비명을 내지르던 고블린이 점차 힘을 잃으며 비틀거린다.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무혁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키에에엑!
무혁이 조금씩 다가오자 별안간 고블린이 양팔을 크게 벌리고 달려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
고블린과의 전투 경험이 워낙 많은 무혁이라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마지막 발악도 끝이군.’
전투 경험이 많지 않았을 때만 하더라도 무혁은 고블린의 마지막 발악에 상당한 위험을 경험하기도 했었다.
무혁의 오른쪽 옆구리에 끔찍할 정도의 흉터가 있는데, 고블린의 손톱에 살덩이가 뭉텅이로 뜯겨져 나가면서 생긴 흉터다.
그때 조금만 치료가 늦었다면 무혁은 영원히 눈을 뜨지 못했을 것이다.
목숨을 담보로 얻은 교훈이자, 훈장인 셈이다.
최후의 발악으로 모든 힘을 쥐어짜낸 고블린은 바닥에 쓰러져서 케엑케엑- 거리는 거친 숨소리만 내뱉었다.
“이제 그만 끝내자!”
무혁은 팔조차 들어 올릴 힘이 없는 고블린임에도 신중하게 접근해서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푸악-!
고블린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단검을 깊게 찌르고 나자 완전히 숨통이 끊어지고 말았다.
털썩.
고블린의 시체 옆에 주저앉은 무혁은 긴장이 풀린 손을 더듬거려 조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것도 이제 정말 끊어야 하나?”
담배 한 값이 무려 60포인트다.
단 10포인트조차 허투루 쓸 수 없는 무혁에게는 확실히 대단한 사치품이었다.
하지만, 이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담배마저 끊는다면 무혁은 정말 미쳐 버릴 것만 같았기에 포인트를 더 버는 한이 있더라도 담배만큼은 최후까지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후우우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무혁은 구름 한 점 없는 잿빛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난 23년 동안 봐 왔던 하얀 구름이 몽글몽글- 떠다니던 푸른 하늘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뜨거운 열기보다는 그저 빛을 토해내기만 하는 붉은 태양 역시도 그 느낌이 달랐다.
밤은 또 어떠한가?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붉은 달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벌써… 4개월인가?”
지옥과도 같은 이곳, 정확한 명칭은 ‘헬-라시온’이라는 이 거대한 세상 속으로 내던져진 지도 어느덧 4개월이 되었다는 생각에 무혁은 그동안 용케도 잘 버티고 살았구나 싶었다.
“그 개자식이 말한 날까지 대략 한 달 남았네.”
생각만 해도 이가 바득바득- 갈리는 인간, 아니 마족을 떠올리며 무혁은 두 눈 가득 살기를 품었다.
정말 누군가를 진심으로 죽이고 싶어질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존재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아무리 죽이고 싶어도 당장으로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기에 무혁은 사적인 감정은 뒤로 하고, 앞으로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최대한 고민을 해봤다.
“이 문제도 다시 한 번 선생님께 여쭤봐야겠네.”
혼자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기에 무혁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 모든 고민을 선생님과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른 오징어에서 진액을 짜듯 마지막까지 담배를 힘껏 빨고 나서야 무혁은 필터만 남은 담배꽁초를 미련 없이 내던졌다.
담배 한 개비로 사치스러운 휴식을 마쳤으니 이제는 고블린의 사체에서 포인트가 될 만한 것들을 수거하고, 가장 중요한 핵의 존재 유무도 확인해야 할 때였다.
“제발 나와라. 제발 나와 줘.”
무혁은 주문을 거는 심정으로 고블린 사체를 조심스럽게 해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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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선생님.”
무혁은 판잣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남자의 안부부터 확인했다.
“끌끌, 얼굴이 밝은 걸 보니 오늘은 제법 운이 좋았던 모양이구나.”
“예. 무려 일곱 개나 핵을 섭취했습니다.”
손가락 7개를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며 무혁이 히죽- 웃었다.
평소 서너 개인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많은 수였다.
“그만하면 기뻐할 만하지.”
자신의 일처럼 남자 역시 뚜렷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까지 끄덕였다.
“선생님, 저녁부터 올리겠습니다.”
언제나처럼 무혁과 남자의 저녁은 두툼한 소시지가 들어간 빵이었다.
“죄송합니다. 이번 달 월세를 해결하고 나면 고기 좀 사오겠습니다.”
죄송스러워하는 무혁의 모습에 남자는 개의치 말라는 듯 맛있게 빵을 씹어 삼켰다.
하루 한 끼, 고작 빵 하나로 버틸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나마도 혼자서는 움직일 수도 없는 불구의 폐인인 남자에겐 호사로 여겨질 만했다.
“오늘 새벽에 패검 이서준을 봤습니다.”
“이서준?”
남자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예. 분명 패검 이서준이었습니다. 한 달 전쯤 깨어나지 않은 숲으로 탐사를 떠났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아마도 오늘 돌아온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서준이 카라카반의 머리와 심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라카반의 머리와 심장이면 최소 2백 만 포인트군. 하긴, 그런 물건이라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상책이긴 하지.”
남자는 왜 이서준이 나타났는지 이해가 간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반면, 무혁은 입까지 쩍- 벌어졌다.
“200만 포인트요?”
“카라카반의 머리와 심장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으니까.”
“그, 그렇군요.”
당장 1만 포인트도 없는 무혁에게 200만 포인트는 아련한 꿈처럼 들렸다.
200만 포인트면 당장 온갖 무장으로 훨씬 더 쉽게 사냥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더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