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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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프롤로그, 1화
프롤로그 (1)
“지구?”
목소리의 주인은 굉장히 퉁명스러운 어조로 조금도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중간계 중 유일하게 가디언이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가디언이 없다?”
단언컨대 그런 곳은 있을 수가 없다.
모든 차원의 아주 사소한 행성이라 하더라도 가디언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행성에 묶인 가디언 주제에 모든 생명체로부터 전지전능한 유일신처럼 떠받들어지는 꼴이 꽤나 우습긴 했지만, 어쨌든 모든 차원의 행성엔 가디언 혹은 중간 관리자라 불리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몇몇 가디언 후보들은 존재했습니다만…….”
“부적합 판정을 받은 모양이군.”
아주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가디언 자리가 공석일 경우는 아주 짧다.
“공석인 시간이 얼마나 됐지?”
짧으면 수십 년, 길어봐야 이삼백 년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단 한 번도 가디언이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이 약간의 호기심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중간계에 존재하는 행성 중에서도 워낙 작은 곳이고 외곽에 존재하다 보니 지금까지 별다르게 눈에 띈 적이 없던 곳입니다.”
“더 자세히.”
“예. 행성의 주요 번식 종은 인간이지만, 어떠한 이능력도 없는 최하위 종입니다. 자체 진화를 거쳤지만, 그 진화력 또한 최하급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최하위 종이라면… 최하급 마물조차 상대할 수 없겠군.”
“신체 능력만으로 본다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능력을 떠나 종족 특성이 가장 흥미로운 종이지.”
목소리의 주인이 가볍게 턱을 쓰다듬었다.
얼마 전, 자신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했던 알테리오스가 떠올랐다.
‘무료하지 않나?’
‘무료하지.’
‘요즘 제법 유행하고 있는 게 있는데… 혹시 들어봤어?’
‘알잖아, 내가 지난 3천6백 년 동안 외출한 적이 없다는 걸.’
‘하긴, 천계 쪽과 휴전을 맺은 이후 활동할 필요성이 없긴 했지.’
‘마음에 들지 않아. 우리의 존재 이유는 투쟁(鬪爭)인데. 쯧!’
‘직접적인 것이 최고긴 하지만, 의외로 간접적으로 지켜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그게 무슨 소리지?’
‘요즘 유행하는 것이 바로 그거야. 어때? 관심이 들어?’
“그래서 알테리오스가 그 지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렇습니다.”
“흐음…….”
가디언이 없다는 건 그곳 행성에 간섭하기에 불편함이 단 한 점도 없다는 뜻이다.
가디언이란 말 그대로 외부의 간섭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천계와의 완충지대인 중간계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가디언들이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저 천계와의 충돌이 생길 것을 번거로워할 뿐이지, 가디언의 존재 유무는 하등 상관이 없기도 했다.
천계와의 충돌은 적정선에서 반발이 나지 않도록 조절만 하면 된다.
천계에서도 수많은 행성들 중 지구를 눈여겨볼 존재는 없으니 시끄럽게 떠들어 댈 가디언이 없는 지구는 충분히 흥미가 생길 만한 조건이 충족된 상황이다.
더욱이 지구에서 가장 많은 번식 종이 인간이다.
지닌바 능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성장이라는 테두리 안에 두면 확실하게 흥미를 줄 수밖에 없는 재밌는 종이다.
유행하는 ‘그것’에 흠뻑 빠져 있다는 알테리오스의 얼굴을 떠올리던 그는 이내 결심이 선 듯 말했다.
“알테리오스에게 전해. 내가 지구에 관심을 갖고 있으니 양보를 바란다고.”
“알겠습니다. 혹시, 그것을 시작하실 생각이십니까?”
“무료하니까.”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목소리의 주인은 라시온.
천계에서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어대는 마계를 이끌어 가는 7대 마신 중 한 명이었다.
프롤로그 (2)
“말해 봐.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 아니, 우리한테 왜 그랬어?”
“큭큭큭큭. 너희 인간은 그저 하찮은 장난감일 뿐이다. 그분의 뜻을 너 따위 하찮은… 컥!”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 왜… 왜 하필 우리야?”
“큭큭큭! 이유가 왜 필요하지? 미천한 인간 따위에게 이유가 필요한가? 미련한 인간아, 이제라도 그분께 머리를 조아려라. 지금 네가 가진 그 강력한 힘이 누구의 덕이라는 걸 잊은 거냐? 지금이라도 그분의 발밑에 납작 엎드리면 나와 같은 마왕… 컥!”
“미천한 인간? 왜 미천한 인간에게 살려 달라고 발버둥을 치는 거냐? 너도 그렇잖아? 살고 싶어서 어떻게든 날 설득하려고 하는 거잖아? 아니야?”
“큭큭큭큭큭. 네가 인간이라고? 지금 네가 가진 그 힘이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이냐? 전 차원을 뒤져봐도 너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넌 인간이 아닌 우리와 같은 마… 컥!”
“난 인간이야. 아무리 부정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 아아, 됐고. 여기서 널 죽이면 위로 몇 놈이나 더 남았지? 네 서열이 몇 위였지? 12위라고 했나? 이 정도면 그 새끼도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판단하지 않겠어?”
“큭큭! 지금이라도 미련한 생각 버려라. 아니, 멍청한 생각 따윈 버려라. 그분께 대항을 하겠다는 그런 헛된 생각을 계속해서 유지한다면 네 존재 자체가 소멸될 것이다. 그래! 차라리 그분께 말씀을 드려주마. 지구! 지구로 돌아가서 그곳의 가디언이 되는 거다! 그분께서 도와주신다면 넌 충분히 지구에서 가디언으로, 네 종족들로부터 신이라 불릴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컥!”
“하아… 역시 너 같은 X밥들하고는 말을 섞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실수했네. 그만 가라.”
“큭큭큭큭큭큭큭큭… 내가 인간에게 죽게 될 줄…….”
1화. 마우티 부락 (1)
콰작-!
혀를 길게 빼물고 죽어버린 녹색 생명체 곁에 털썩- 주저앉은 사내는 곳곳에 주머니가 달린 조끼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치익-
“후우우우우-!”
길게 연기 한 모금을 뿜어내고 나서야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는 듯, 사내는 비스듬하게 상체를 뒤로 기울였다.
그렇게 풀어진 상태로 고개를 들어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사내는 말없이 담배만 빨았다.
스읏스읏-.
“……!”
담배를 빨던 사내는 오른쪽 갈대숲에서 들려오는 마찰음에 눈매를 가느다랗게 좁히며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누구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하체는 당장이라도 어디로든 튀어나갈 것만 같았고, 언제 빼들었는지 모를 짧은 단검 한 자루를 꽉- 쥐고 있는 손바닥엔 땀이 흥건했다.
사내에겐 1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긴장감이 극에 달했을 때.
쉬익-!
갈대숲 사이를 뚫고 날카로운 쇳조각이 날아왔다.
사내는 날아오는 쇳소각을 황급하게 피하면서도 갈대숲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뭐야? 너였냐?”
갈대숲에서 느긋하게 나온 이가 이죽거렸다.
사내보다 큰 키에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있는 남자는 사내의 곁에 나자빠져 있는 녹색 시체를 힐끔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직도 고블린이냐? 한심한 새끼.”
남자의 조롱에 사내는 대답 대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골초 새끼. 너 그렇게 힘들게 포인트 모아서 담배나 사서 피우니까 아직도 그 모양인 거야. 제정신이라면 당장 그 담배부터 끊어! 이건 정말 네 한심한 행동에 대한 순수한 충고…….”
“내가 언제 담뱃값 보태달라고 한 적 없잖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 새끼 봐라? 형이 조언을 해주면 고맙다고 할 것이지.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뒈지고 싶지?”
남자가 순식간에 사내와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와 머리카락을 확- 잡아당기며 징그럽게 웃었다.
“…놔.”
사내가 눈을 일그러트리며 자신을 노려보자 남자는 같잖다는 표정만 지었다.
“어이- X밥. 그동안 형이 너무 물렀지? 오늘 좀 쳐 맞자.”
남자는 히죽- 웃고는 거침없이 손을 휘둘렀다.
쫘악-!
사내의 뺨에서 화끈한 통증이 불처럼 일었다.
다행스럽게도 맞기 직전에 이를 꽉! 물었기에 사내의 치아는 멀쩡했다.
우악스럽게 머리카락을 쥐고 있는 남자는 낄낄- 거리며 연신 사내의 뺨을 후려쳤다.
사내의 두 뺨이 팅팅- 부어오르자 남자의 사정없던 손이 멈췄다.
“경고하는데, 내 말에 토 달지 마라. 확- 아가리를 찢어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명심해라 X밥. 넌 그냥 나를 보면 쥐 죽은 듯 있기만 해. 그때처럼. 알겠지?”
진심 어린 경고라는 듯 남자는 눈에 힘을 주고 나서야 사내의 머리카락을 놔주었다.
잡혀 있던 머리카락이 자유로워지자 정신이 없을 정도로 뺨을 얻어맞아 다리가 풀려버린 사내가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남자는 이내 넓은 등짝을 보란 듯이 돌려 사내를 지나쳤다.
팅팅- 부어오르는 뺨보다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내는 입안에 고인 핏물을 퉤- 뱉어내고는 이를 악물었다.
“…언젠가 내 손으로 직접 죽이고 만다.”
언제가 될지, 과연 그런 날이 오기나 할지, 사내는 기약 없는 다짐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말만이라도 해두지 않으면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사내는 자신의 소중한 담배가 진득하게 흘러내린 고블린의 푸른색 핏물 속으로 잠겨 들었다는 사실에 인상을 찌푸렸다.
“XX… 돗대였는데…….”
사내에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얼얼한 뺨보다도 마저 피우지 못한 담배가 더 신경 쓰였다.
하는 수 없이 사내는 담배를 피우고 나면 하려고 했던 고블린 사체의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고블린, 성인 남성의 허리춤 밖에 오지 않는 작은 녹색 생명체.
전투력은 그리 대단할 것 없지만, 피부가 두껍고 힘은 웬만한 성인 남성과 엇비슷해서 사냥하기가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고블린의 사체가 돈이 되질 않는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눈알과 이빨 정도가 판매 품목인데, 그나마도 값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고블린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내는 익숙한 손길로 단검을 이용해 고블린의 사체를 해체했다.
“큭.”
해체 작업을 하던 중, 사내는 왼팔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X발… 배영철 개새끼….”
왼팔 팔뚝의 피부가 벌어져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남자, 배영철이 던졌던 쇳조각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면서 생겨난 상처였다.
놈은 알고 있었다.
몬스터가 아닌 사람, 그것도 아마 자신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쇳조각을 던진 것이다.
어차피 죽지도 않을 테니 맞아도 그만이고, 피해도 상관없었으리라.
길을 가다 눈에 보이는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는 건 반드시 죽이기 위해 던지는 것이 아니다.
배영철에게는 딱 그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한때는 목숨을 내맡겼었던 동료였기에 더욱더 입안이 썼다.
사내는 왼쪽 팔뚝을 지혈하기 위해 조끼 주머니에서 지혈제를 꺼냈다.
“이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아쉬운 듯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내는 팔뚝에 난 상처에 검은색 지혈제를 얇게 펴 발랐다.
지혈제를 바르자 상처 부위의 피가 그대로 굳어 버리며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남자는 가볍게 팔을 비틀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야겠네.”
해가 어느새 거의 넘어가며 어스름이 짙어지고 있었다.
어둠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걸 알기에 사내의 손길이 바빠졌다.
고블린 사체 중 판매품목인 눈알 두 개와 듬성듬성 자라나 있는 이빨 6개를 모두 가죽 주머니에 넣고 나서 사내는 주변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사내는 이제는 쓸모없어진 고블린 사체에 손을 뻗었다.
“있어야 할 텐데…….”
사내는 조심스럽게 고블린의 배를 가르고, 심장을 끄집어냈다.
체구에 비해 기형적으로 큰 고블린의 검푸른 색의 심장.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풀풀- 풍겼는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잠깐 코끝에 냄새가 맴돌았을 뿐인데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헛구역질이 절로 나올 정도의 고블린의 심장이었지만, 사내는 물컹-거리는 심장을 보물 만지듯이 조심스럽게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온 신경을 손끝에 모은 듯 사내의 손길은 더없이 섬세했다.
툭.
아주 미세할 정도로 손끝에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있다!”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단검으로 고블린 심장을 살살- 가르자, 아주 딱딱하게 응고된 심장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크기는 고작 새끼손가락 손톱보다도 작았다.
“후우우우.”
칼날이 조금만 잘못 스쳐도 덩어리가 부서지고 만다는 걸 알기에 사내는 완전하게 고블린의 심장에서 그것을 빼내는 데 꽤나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만 했다.
“이게 얼마만이냐. 드디어 나왔구나, 고블린의 핵(核).”
역한 악취가 풀풀- 풍기는 고블린의 핵을 사내는 조금도 주저 없이 자신의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꿀- 꺽!
입안에서 진하게 풍기는 말 못할 역한 악취에 사내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지만, 아주 오랜만에 먹은 고블린의 핵이었기에 사내의 기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 사내의 기분을 한결 더 기쁘게 만드는 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블린의 핵을 섭취했습니다.]
[영구적으로 근력이 0.02% 상승합니다.]
“이번에는 힘이네.”
사내는 주먹을 불끈! 쥐어봤다.
딱히 그 효과를 느낄 순 없었다.
수치상으로 0.02퍼센트라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해도 상관이 없을 정도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내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고, 삶의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근간이 되어주고 있었다.
“널리고 널려 있는 게 고블린이야. 안전하게 사냥을 하면서 차근차근 성장하면 돼.”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사내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고블린의 사체와 심장을 난도질했다.
그 누구도 고블린의 핵에 관심을 가질 수 없도록 깔끔한 뒤처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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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왔습니다.”
“끌끌, 오늘도 살았구나.”
듣기 거북할 정도의 쉰 목소리는 사내의 무사 귀환을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익숙하다는 듯 사내는 쉰 목소리의 곁으로 다가갔다.
쉰 목소리의 남자는 그 모습이 기괴했다.
오른쪽 눈은 참혹한 흉터로 얼룩져 잿빛 눈동자가 번들거렸고, 목 부근에도 끔찍한 흉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양쪽 팔은 어깨 부근에서부터 잘려나가 뭉텅한 살덩이만 있었고, 왼쪽 다리 역시 무릎 아래는 보이질 않았다.
“선생님, 식사 드리겠습니다.”
사내가 손에 들고 있던 가죽 주머니에서 음식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괜한 헛지랄하지 말라니까.”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전 벌써 죽었을 겁니다.”
“어차피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는 거야. 날 봐, 아득바득 이렇게 살고 있잖아.”
남자는 말과 함께 낄낄- 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드시죠.”
사내가 남자의 입에 두툼한 소시지가 든 빵을 가져가자 그는 덥석- 빵을 입안 가득 넣고 우걱우걱- 씹기 시작했다.
꽤나 배가 고팠던지 남자는 빠른 속도로 빵을 씹어 삼켰고, 사내는 그런 남자의 속도에 맞춰서 빵과 물을 적절하게 공급해주었다.
빵 하나를 깔끔하게 먹어치운 남자의 모습에 사내가 물었다.
“하나 더 드릴까요?”
“됐고. 담배나 하나 줘.”
사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불까지 붙여 남자의 입에 물려줬다.
남자가 맛있게 담배를 태우는 동안 사내 역시 똑같은 빵 하나를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었다.
“그래, 핵은 찾았어?”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찾았습니다.”
“먹었지?”
“예. 바로 먹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아야 해.”
“명심하고 있습니다.”
“무혁아.”
“예, 선생님.”
“이제 그만하자.”
“…못 들었습니다.”
무혁의 대답에 남자가 낄낄- 웃었다.
“언제까지 밥이나 축내는 병신을 먹여 살릴 거냐? 빚은 이걸로 충분해.”
“제 힘이 닿는 한 선생님을 모실 겁니다. 그리고 빚은… 아직 다 갚지 못했습니다. 아니, 평생 갚지 못할 것입니다.”
“멍청한 놈.”
남자는 짧아진 담배를 더욱더 힘껏 빨아 당겼다.
후우우- 하며 길게 연기를 뿜어낸 남자가 그리움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젠… 가족의 얼굴이 희미해져서 또렷하게 기억이 나질 않아.”
가족이라는 단어에 무혁의 눈동자도 세차게 흔들렸다.
“이 지옥에서 9년을 버틴 이유는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이젠 돌아가기가 겁이 난다.”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몸, 무혁은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난 이미 틀렸어. 너라도 이제부터 네 살길을 찾아.”
“선생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끌끌, 내 꼴을 보고 말해.”
무혁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힘차게 흔들었다.
“선생님께선 이미 제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무혁의 모습에 남자가 쯧- 하고 혀를 찼다.
무혁은 말없이 담배 두 개비를 꺼내 들었다.
하나는 남자에게 다시 물려주었고, 남은 하나는 무혁 스스로 물었다.
몇 차례 말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고 나서야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알고 있겠지만, 반드시 대도시로 가야 해.”
“지금 제 실력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무혁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남자가 낄낄- 거리며 웃었다.
“네가 한 농담 중 가장 재밌었다.”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자 무혁이 킥- 하고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앞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성장법을 알고 있잖아. 시간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대도시로 갈 수 있어. 물론, 그때까지 살아남아야겠지만.”
뒷말은 장난스러웠지만 그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이 이곳에서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선생님께는 항상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그것도 다 네 운이야.”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꼭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그렇게 된다면… 혹시라도 시간이 남는다면, 우리 어머니 한 번만 찾아가 주면 고맙겠다.”
“선생님과 함께 돌아갈 겁니다.”
“혼자도 살기 힘든 이 지옥에서 나 같은 병신을 데리고?”
“할 수 있습니다.”
“끌끌, 그럼 해 봐. 말을 너무 많이 했나 피곤하군. 그만 쉬자.”
“예, 선생님. 편히 주무십시오.”
남자는 대답대신 눈을 감았다.
무혁은 남자의 몸에 이불을 잘 덮어주고 방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