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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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3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3화
시간의 탑 (7)
“비켜.”
잠을 잤기에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였지만, 그만큼 날이 바짝 선 안소영의 경고에 무혁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안소영은 조심스럽게 땅굴 밖으로 빠져 나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난 후에야 검을 거둬들였다.
“하루가 지났으니까 몬스터가 변경 되었을 거야. 우선 어떤 몬스터로 바뀌었는지부터 확인하자.”
무혁의 말에 안소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두 사람은 약간 거리를 떨어트린 상태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간의 탑에서 18시간을 함께 사냥했음에도 불구하고 5시간의 휴식은 뭔가 모를 서먹함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
눈앞의 몬스터를 발견한 무혁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무혁의 입장에서는 달려가서 뽀뽀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몬스터, 라만병이었다.
‘지옥구덩이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은 존재하는구나!’
고유 능력의 정밀 수치를 빠르게 올릴 수 있는 라만병을 또다시 사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혁은 무척이나 반갑기만 했다.
안소영 역시도 전혀 낯선 몬스터를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반가웠지만, 문제는 눈앞에 서 있는 라만병의 숫자가 하나에서 둘로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설마… 매일 숫자가 늘어나는 건 아니겠지?”
안소영의 걱정스러운 말에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던 무혁의 눈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매일 숫자가 늘어난다고? 그럼 내일은 3마리, 다음 날에는 4마리를 상대하라고?”
“모르는 일이지.”
안소영 역시 부정하고 싶었지만, 당장 어제보다 라만병의 숫자가 늘었으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그건 난이도가 너무 높아져서 안 되는데…….”
라만병이 핵을 가지고 있기에 사냥을 많이 하면 할수록 무혁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적정 수를 사냥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지금 내 실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라만병은…….’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을 사용하면 동시에 3마리까지는 어찌어찌 전투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나마도 온전히 사냥하기보다는 그저 5분이라는 시간을 버티는 것이 전부다.
실제로 무혁은 2마리를 상대하는 것이 한계치였다.
안소영이 도와준다 하더라도 그녀는 일격필살이 주특기였으니 사실상 둘이서 라만병 3마리를 동시 상대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여기서 우리 모두를 죽이겠다는 목적이 아닌 이상 매일 수를 늘리지는 않겠지.”
안소영은 애써 그렇게 위로를 하듯 말했다.
무혁은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앞의 라만병 두 마리를 의욕적으로 노려봤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오늘 최대한 많은 라만병을 잡아서 능력을 더욱더 높여야만 해!’
그렇게 생각하니 무혁은 자신의 눈앞에 라만병이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졌다.
만약, 핵이 없는 몬스터였다면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몰랐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오늘은 최대한 많은 수를 처치하자고.”
무혁은 의욕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곧바로 보석 도마뱀의 위장과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를 사용하며 두 마리의 라만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 잠깐, 그렇게 성급하게 움직이면……!”
2마리의 라만병을 향해 무혁이 무모하게 달려들자 안소영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지만, 불과 2분도 되지 않아서 한 마리의 라만병을 쓰러트려 버리는 무혁의 실력에 그녀가 짧은 탄성을 토해내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스킬이기에…….”
짧은 시간 고유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스킬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안소영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끝내 혼자서 두 마리의 라만병을 처지하고 나서야 무혁은 가쁜 숨을 토해내며 떨리는 마음으로 심장에서 핵을 찾아냈다.
‘두 마리 모두 핵을 가지고 있잖아! 시작부터 아주 좋아!’
[라만병의 핵을 섭취했습니다.]
[영구적으로 정마력이 0.27% 상승합니다.]
[라만병의 핵을 섭취했습니다.]
[영구적으로 근력이 0.27% 상승합니다.]
정마력과 근력의 정밀 수치가 상승했다는 소리에 무혁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퍼졌고,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안소영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가라앉아 있었다.
#
한 마리의 라만병을 상대할 때와 두 마리의 라만병을 상대할 때의 체감할 수 있는 사냥의 난이도와 속도는 1.5배가량 늘어났다.
여기엔 무혁의 압도적인 능력 상승의 효과가 컸다.
안소영은 시간이 지날수록 라만병을 상대하는 전투 기술은 늘었지만, 비례로 체력과 집중력은 빠르게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헬-라시온은 단순한 게임 속 세상이 아니었고, 당연히 이곳에 끌려 온 사람들 또한 몬스터를 사냥했다고 경험치를 얻어 레벨을 올리면서 체력을 원상복구 시키는 캐릭터 따위가 아니었다.
특정 물품을 섭취하거나 몸에 착용하면 신체 능력이 상승하고, 스킬이라는 초능력에 가까운 신비로운 기술을 사용하지만 피로가 지속적으로 쌓이면 몸이 둔해지고, 정신력이 흐릿해질 수밖에 없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그나마도 5시간 정도 숙면을 취했기에 안소영은 버티고 있을 수 있었다.
반면, 무혁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체력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포지션이 사냥꾼이기에 체력적으로 안소영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났고, 무엇보다도 지속적으로 라만병을 잡으며 고유 능력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만병의 핵을 섭취했습니다.]
[영구적으로 체력이 0.54% 상승합니다.]
‘좋았어!’
이번에도 체력이 올랐다.
무혁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가 사라졌다.
수치상으로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 작은 수치가 쌓이고 쌓이니 무혁의 체력은 좀처럼 쉬이 떨어지질 않았고, 높은 성장력을 지닌 라만병의 핵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5시간 동안의 사냥을 통해서 무혁은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차무혁(13차 지구인)|
· 연차 - 1년차
· 신분 - 라시온 식민(부락 식민)
· 체력 - 7등급(73.3%)
· 근력 - 7등급(44.17%)
· 순발력 - 7등급(33.72%)
· 지구력 - 7등급(34.69%)
· 정마력 - 7등급(17.92%)
5시간 동안 무혁은 21.33퍼센트의 정밀 수치를 올렸다.
말 그대로 미친 성장속도였다.
‘시간의 탑에서 계속해서 이렇게 성장하기만 한다면…….’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체력은 무조건 6등급에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머지 근력, 순발력, 지구력은 50퍼센트를 넘기고, 정마력도 최소 30퍼센트까지는 충분히 넘길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라만병을 지속적으로 잡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겠지만 말이다.
“이제 아래층으로 이동하자.”
안소영의 갑작스러운 말에 무혁이 깜짝 놀라서 그녀를 돌아봤다.
“벌써? 아직 24시간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잖아?”
무혁은 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2D [ 06 : 08 ]
3층에서 4층으로 올라왔던 시간이 첫 번째 날, 19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즉, 무혁과 안소영이 4층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3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라만병을 잡으면 도대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데!’
무혁으로서는 절대 다른 층으로 옮기고 싶지가 않았다.
“다른 층에는 무슨 몬스터가 있는지 대충 알아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냐? 어차피 킬 수도 충분히 채웠으니까 이제는 앞으로 남은 날을 버티려면 정보가 필요하지 않겠어?”
안소영의 말에 무혁은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틀리지 않은 소리였으니까.
첫 번째 날부터 안소영은 기존의 100킬을 모두 채웠지만, 무혁은 고작 45킬밖에 채우지 못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날은 상황이 달라졌다.
무혁의 지속적인 성장과 체력적으로 안소영이 뒤처지기 시작하면서 5시간 동안의 사냥을 통해 무혁은 안소영보다 6마리가 더 많은 몬스터 킬 수를 획득한 상황이었다.
물론, 통합 몬스터 킬 수를 따지면 여전히 안소영이 훨씬 더 많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상태라면 두 사람의 몬스터 킬 수는 점점 그 차이가 좁혀지고 끝내는 무혁이 역전을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농후했다.
무혁은 시계의 오른쪽 첫 번째 버튼을 눌러 자신의 몬스터 킬 수를 확인했다.
K [ 86 ]
앞으로 14마리만 잡으면 정확하게 100킬을 달성하기에 남은 날짜만 잘 버텨도 이번 강제 사냥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다.
‘아… 아쉬운데.’
만약, 다른 층으로 갔는데 타락 드워프처럼 핵이 없는 몬스터를 만난다면 무혁으로서는 남은 시간 동안 라만병을 잡지 못한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 할 것만 같았다.
아무리 정보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눈앞의 라만병을 외면하고 싶지가 않았다.
‘정보도 중요하지만 내가 강해지는 게 우선 아니겠어?’
생각을 마친 무혁은 조금 고집을 부려보기로 했다.
“어차피 다른 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계단의 좌표도 알고 있는데 수월한 사냥감을 버려두고 다른 곳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겠어?”
“그러다가 다음날 전혀 정보도 없는 몬스터와 싸워야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우선적으로 내 킬 수를 더 채워야 하지 않을까? 넌 이미 킬 수를 모두 채웠으니까 상관없겠지만 난 아직 부족하잖아? 네 말대로 나날이 난이도가 높아진다면 그때는 정말 킬 수 하나, 하나가 중요해질 수도 있잖아? 안 그래?”
무혁의 말에 안소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킬 수만 채워졌다고 나 몰라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걸 차단할 필요가 있다 싶었다.
“좋아. 그럼 네 킬 수가 맞춰지면 바로 이동하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너무나도 한정적이라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정보를 모을 필요가 있어. 그러니까 사냥도 좋지만 우선은 전체적인 정보가 우선이야.”
안소영은 두 번째 날부터 라만병의 수가 늘어난 점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애초부터 첫 번째 날, 모든 층을 돌아봤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다만, 외면하고 싶을 뿐.
무혁은 뒷말을 삼키며 다시 라만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2시간 뒤.
무혁은 1백 번째 킬 수를 올릴 수 있었다.
“…이제 됐지?”
안소영의 싸늘한 시선에도 무혁은 님을 떠나보낸 비련의 주인공처럼 라만병의 시체만을 바라봤다.
‘아… 이렇게 라만병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건가?’
2시간 동안 무려 30마리의 라만병을 잡았다.
중요한 건, 30마리의 라만병을 잡는 동안 안소영이 일부러 킬 수를 넘기려고 했지만 무혁이 철저하게 외면하며 단 한 마리라도 더 라만병을 잡겠다는 집념을 보였다는 점이다.
‘조금 더 자잘하게 상처를 입혔어야 했는데… 아직도 난 너무 미숙해!’
무혁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어깨를 떨구고 안소영과 함께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 계단의 좌표를 향해 걸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무혁은 라만병이 눈에 보이면 일부러 달려가서 전투를 벌였다.
그렇게 추가로 8마리의 라만병을 더 잡고 나서야 무혁은 그나마 개운해진 얼굴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개운함도 씻은 듯 사라지고 말았다.
“뭐, 뭐야?”
“…….”
무혁은 눈을 아무리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계단에 당황했고, 안소영 역시도 크게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좌, 좌표 맞아?”
무혁의 물음에 안소영은 한 글자, 한 글자 씹어내듯 말했다.
“엑스 4897, 와이 302.”
안소영의 말에 무혁은 자신의 시계를 확인했다.
정확했다.
시계에 찍혀 있는 좌표도, 자신의 기억도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런데 있어야 할 계단이 보이질 않았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무혁의 물음에 안소영은 입술만 깨물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으니까.
“설마… 계단의 위치도 리셋이 되는 건가?”
스스로 말을 내뱉고도 무혁은 그럴 리가 없을 거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만약, 계단의 위치도 정말 리셋이 된다면?
‘미친! 매일 계단을 찾아서 뒤지고 다녀야 하잖아?’
복잡한 미로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생기는 체력적인 과부하와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될 위협적인 몬스터들과의 전투, 그리고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경쟁자들과의 조우는 덤이었다.
“가자.”
안소영의 말에 무혁이 그녀를 바라봤다.
어딜- 이라는 무혁의 눈빛에 안소영이 음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계단을 찾아야 할 것 아냐.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11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넉넉할 것 같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곳곳에 서성거리고 있는 2마리의 라만병을 상대하며 움직여야 했기에 조금도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휴식도, 달콤한 수면 시간도 당장은 모두 생존의 걸림돌일 뿐이었다.
“하아… 젠장!”
무혁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