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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이러 갑니다. 18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6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8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8화

시간의 탑 (2)

 

케로우의 재촉에 사람들이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움직여 시간의 탑으로 향하던 무혁은 조심스럽게 안소영에게 접근했다.

“저기…….”

딱딱하게 경직된 표정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안소영이 무혁을 바라봤다.

“어쩔 셈이야?”

무혁의 물음에 안소영은 그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안다는 듯 슬쩍 주변을 돌아봤다.

각기 다른 팀으로 나누어진 이들을 바라보던 안소영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등을 믿고 맡길 만한 이들이 없었다.

앞으로 벌어질 시간의 탑에서의 강제 사냥은 처음 헬-라시온에 끌려와 일주일 동안 생존해야 했던 상황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때는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져서 낯설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버텨냈다면, 지금은 진심으로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

상대가 누구건 호시탐탐 등 뒤에 칼을 찔러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잔인한 생각을 머릿속에 담고 있을 이들이 절반 이상은 넘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안소영은 누군가와 팀을 이룬다는 것 자체가 망설여 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합류하길 바라는 한국인 팀은 이미 팀의 리더로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배영철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배영철이 어떤 인간인지는 안소영은 잘 알고 있다.

‘개양아치.’

배영철에 대한 안소영의 생각이었다.

힘으로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억압하는 타입에다가 여자에겐 노골적으로 치근거리는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 배영철이었다.

의리도, 정의도, 도덕도 없는 지극히 이기적이면서도 잔인한 인간이었기에 절대 함께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안소영은 무혁을 바라봤다.

‘이 남자라면…….’

영롱한 숲에서의 일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믿어 볼만한 가치는 있었다.

물론, 100퍼센트 신뢰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곳에 있는 다른 이들보다는 훨씬 더 안정적인 건 사실이다.

“괜찮다면 나랑 함께 움직이는 게 어때?”

무혁이 먼저 제안했다.

따지고 보면 무혁과 안소영은 비슷한 처지였기에 그나마 둘이라도 힘을 합치는 쪽이 나았다.

안소영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무혁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나야 말로.”

확실히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

무혁 역시 안소영과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그녀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소영이 시간의 탑에서 무혁을 배신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일이니까.

‘최소한 내가 먼저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일어날 확률은 그만큼 적어지겠지.’

무혁은 그렇게 안소영과 팀을 이루었다.

“어이-! 이 X밥 새꺄!”

뒤에서 배영철의 음성이 들렸지만, 무혁은 못 들은 척 시간의 탑으로 안소영과 함께 재빨리 들어가 버렸다.

“하-! 저 새끼 봐라?”

자신의 말을 깨끗하게 씹어 삼키고 시간의 탑으로 들어가 버린 무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배영철이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개새끼가… 눈치는 빨라서 사람 귀찮게 하네.”

낮게 중얼거린 배영철은 까끌하게 자라난 턱수염을 긁적거리곤 자신의 팀원들과 함께 시간의 탑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중국인이 리더로 있는 팀과 일본인 팀, 동남 아시아인들로 이루어진 팀들도 차례차례 시커먼 입구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

시간의 탑 입구에 들어선 무혁과 안소영은 곧바로 네 개의 계단과 마주했다.

순간 당황해서 멈칫거리는 두 사람 앞에 케로우가 허공에서 공간을 찢으며 등장했다.

“오오- 용감무쌍한 첫 번째 입장객은 지난 첫 번째 사냥에 불참했던 뉴페이스들이네? 적극적인 자세! 좋아! 좋아! 자, 그럼 지금 상황을 설명해 줄게! 눈앞에 보이는 네 개의 계단은 각각 왼쪽부터 1층, 2층, 3층, 4층으로 직행할 수 있는 계단이야! 어느 쪽을 선택하든 상관없어! 참고로 각 층마다 몬스터들은 모두 다르지만, 상층이라고 더 위험하고, 하층이라고 더 안전한 건 아니야. 말 그대로 복불복! 하지만, 열심히 싸우면 어느 층이든 살아남는데 어려움은 없다고 생각해! 너희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제 갓 헬-라시온에 온 허약하기 짝이 없는 하찮은 1년차 인간들이니까 노력하는 자들에 한해서는 밸런스가 충분히 맞춰져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쓸 때 없는 걱정은 할 것 없어!”

케로우의 말에 무혁과 안소영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디로 향할 것인지에 대한 눈빛 교환을 가졌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무조건 3번만 찍었어.”

무혁의 말에 안소영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서 성적은 좋았고?”

“그건 노코멘트.”

무혁의 뻔뻔한 대꾸에 안소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킥킥- 거리며 웃었다.

“어디든 무슨 상관이야. 마음대로 해.”

안소영의 말에 무혁은 탁월한 선택이라는 듯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선택이 끝났으면 이제 정말 마지막 설명! 우선 그전에 아까 말했던 최첨단 시계부터 증정!”

번쩍- 번쩍!

무혁과 안소영의 왼쪽 팔목에 검은색 가죽 줄의 정사각형 모양의 시계가 채워졌다.

“시간이 보이지?”

 

1D [ 00 : 03 ]

 

“날짜, 그리고 시간이니까 잘 숙지하도록 하고! 시계에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 오른쪽 가장 위에 살짝 튀어나온 버튼은 몬스터 킬 수가 나오고, 두 번 버튼을 누르면 현재 위치가 뜰 거야.”

삑!

 

K [ 0 ]

 

삑!

무혁이 두 번째 버튼을 누르자 케로우가 성급하다는 듯 말했다.

“여긴 탑 진입 전 구간이라서 위치가 표시되지 않아! 계단을 통해 층에 들어서면 그때 네가 몇 층,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려 줄 테니까 확인은 나중에 하도록 해! 세 번째 버튼을 누르면 역대 랭킹을 확인할 수 있어! 그러니까 중간 중간 랭킹을 확인하면서 분발하도록 해! 그리고 미리 말하지만 시계는 너희 마음대로 벗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혹시라도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진다고 시계를 벗으려고 노력 하지 마! 팔을 잘라내지 않는 이상 절대 벗겨지지 않으니까!”

케로우의 설명에 무혁과 안소영은 버튼의 기능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그럼 정말 마지막 설명! 시간의 탑의 모든 층은 하루를 기준으로 모든 층의 몬스터가 무작위로 변경된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해! 너희 인간들은 잔머리를 너무 잘 굴려서 말이야!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팁! 몬스터든 인간이든 시체와 주인 없는 부산물들은 모조리 하루를 기준으로 리셋이 될 때마다 마찬가지로 모두 사라져. 그러니까 나중에 뭔가를 챙기겠다거나, 어딘가에 숨겨놓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마! 대신, 리셋이 되기 전부터 전투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면 그때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마음 푹 놓고 싸우도록 해!”

케로우의 말에 무혁은 입맛을 다셨다.

이왕이면 모든 층의 몬스터들을 알아놓고 이틀 중 하루는 가장 상대하기 쉬운 몬스터가 위치한 층에서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그게 꽝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무언가를 숨겨 놓는 것도 어려워졌다.

“설명 끝! 다음 입장객이 들어오는데? 친절하게 너희가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려면 기다리고 있어도 상관없고!”

무혁과 안소영은 재빨리 3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라시온 님의 행운이 있기를 바랄게! 파이팅!”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케로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혁과 안소영의 모습이 사라졌고, 곧바로 배영철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 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배영철! 어서 와!”

케로우가 활짝- 웃으며 배영철을 반겨 주었다.

 

잠시 뒤, 모든 사람들이 계단을 선택해서 사라지자 홀로 남은 케로우가 제 머리를 툭툭- 쳤다.

“아차차! 내가 깜빡하고 설명해주지 못한 게 있었네! 각 층으로 향하는 계단 역시 하루를 기준으로 그 위치가 무작위로 바뀐다는 점하고 9일째 되는 날은 모든 입장객들이 1층으로 강제 이동이 된다는 걸 깜빡하다니!”

케로우는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다가 이내 잔인하게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하긴, 뭐 별거 아니니까 상관없겠지!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킬 수를 모두 채우지 못한 모자란 인간이 있으면 마지막 기회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오히려 좋아서 나에게 고마워하겠지? 아하하하하하-!”

 

#

 

“시야가… 애매하네.”

무혁은 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탑 내부의 밝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니 안심하며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몬스터 혹은 다른 경쟁자들에게 발각이 될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물론, 같은 조건이었기에 불리하다고 할 순 없었다. 그저 신경이 쓰일 뿐.

“우선 위치부터 확인해보자.”

무혁은 곧바로 시계의 오른쪽 두 번째 버튼을 눌렀다.

삑!

 

3 [ x 2368, y 4784 ]

 

시계에 떠오른 것을 확인하고 무혁은 진심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거… 어떻게 봐야 하는 거야?”

당황한 무혁의 모습에 안소영 역시 자신의 시계를 눌러서 위치를 확인했다.

가만히 자신의 시계를 바라보던 안소영이 이내 옆으로 움직였다.

두 발자국을 움직이자 곧바로 시계의 숫자가 변했다.

 

3 [ x 2368, y 4783 ]

 

안소영이 몇 발자국을 더 옆으로 움직일 때마다 y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옆으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위쪽으로 움직이자 이번에는 x의 숫자가 일정 간격마다 변하기 시작했다.

대충 상황 파악을 마친 안소영이 무혁의 곁으로 돌아와서 말했다.

“엑스는 세로 방향, 와이는 가로 방향의 좌표인 것 같아.”

“좌표? 이게 거리를 나타내는 거라 이거지? 간격은 1미터 정도 되고?”

“아마도.”

가만히 시계를 바라보다 이내 주변을 미간까지 좁혀가며 둘러보던 무혁이 숨을 탁- 토해냈다.

“이거 도대체 한 층이 얼마나 넓은 거야? 그리고 저 벽들은 뭐야? 설마… 모든 층이 이런 미로의 형태는 아니겠지?”

무혁의 불안한 말에 안소영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마도 맞을 것 같은데.”

“…하아, X발… 진짜 조… 같네.”

무혁은 무심결에 상스러운 욕을 뱉어내다 안소영으로 인해 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끝을 뭉개버렸다.

짜증스러운 마음에 무혁은 조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역시 이런 상황에서 마음을 쓰담쓰담- 해줄 수 있는 건 담배였다.

퐁-!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이려고 할 때, 안소영이 재빨리 손을 뻗어 담배를 빼앗았다.

“뭐야? 한 대 줘?”

넉넉하게 4갑을 챙겼기에 무혁은 한 개비 정도는 선심 쓰듯 내줄 수 있었다.

“담배는 안 피우는 게 좋겠어.”

“뭐? 왜!”

“담뱃불, 연기, 냄새 모두 좋지 않으니까.”

안소영의 말에 무혁은 이내 무슨 뜻인지 깨닫고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미치겠네!”

담배는 무혁에게 있어 헬-라시온에서 허락된 유일한 낙이자, 행복이며, 안식처다.

그런데 시간의 탑에서 나가기 전까지는 절대 금연이 되어버렸으니 벌써부터 금단 증상이 찾아오는 것만 같았다.

“고작 열흘이잖아. 참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안소영을 바라보며 무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작 열흘이라고? 고작이 아니라 무려 열흘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목숨의 안전과 흡연을 맞바꿀 순 없는 노릇, 무혁은 담배와 지포라이터를 조끼 주머니에 신경질적으로 쑤셔 넣어버렸다.

“우선 다른 층으로 향하는 계단의 위치부터 확인해 보자.”

안소영의 제안에 무혁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층으로 향하는 계단의 위치는 반드시 기억해놔야만 했기에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움직이지도 못해서 무혁과 안소영은 제자리에 멈춰서야만 했다.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동체, 어둠 속에서도 파랗게 빛을 뿌려대는 두 개의 눈, 날숨을 토해낼 때마다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지독한 암모니아 향까지.

코를 막게 만드는 악취의 주인공이 떡하니 길을 막아선 상태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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