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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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2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2화
마우티 부락 (12)
‘설마 미친놈 죽이겠다고 덤벼들지는 않겠지?’
더욱더 경계를 해야 한다 생각하며 무혁은 케라크라의 손톱을 여전히 거둬들이지 않았다.
설령, 상대를 자극할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자신의 안전만큼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무혁이었다.
“왜 벌써 돌아오는 거지?”
무혁의 물음에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뭐?”
그녀의 태연한 대꾸에 무혁은 무슨 뜻일까- 고민을 하다가 불룩하게 배가 부른 그녀의 가죽 주머니들을 바라보고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설마, 저 주머니를 벌써 다 채웠다는 거야? 말도 안 돼…….’
자신과 다르게 경계조차 하지 않고 몬스터를 사냥하고 다녔을 그녀를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그녀의 대범한 성격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그쪽은 왜 벌써 돌아가는 중이지?”
“나는…….”
무혁이 너처럼 대범하게 사냥을 할 수 없었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녀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고블린의 심장을 파먹으려고 나왔나 보군.”
“…….”
무혁은 할 말이 없었다.
이제 와서 부정할 수도 없었고, 부정해봐야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그럼 취미생활 많이 즐겨라.”
“…….”
분명 뭐라고 뒷말이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로 ‘미친놈아’라는 단어를 무혁은 분명히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반원을 그리며, 마우티 부락을 향해서 걸어갔다.
태연한 척 걷고 있지만, 어깨에 잔뜩 긴장감이 얹혀 있는 걸로 봐선 그녀 역시 무혁에 대한 경계심을 꽤나 높아져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녀가 떠나고 무혁은 뭔가 아주 기분이 불쾌해졌다.
굳이 표현하자면…….
“X발… 패배자가 된 것 같아.”
무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멍하니 그녀가 떠난 자리를 바라봤다.
1분, 2분, 5분 정도가 흐르고 나서야 무혁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 패배자가 될 순 없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영롱한 숲으로 돌아가서 한 마리의 몬스터라도 더 잡아서 가죽 주머니를 그녀처럼 불룩하게 만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아직 시간은 있어! 부지런히 뛰면 돼!”
무혁은 재빨리 영롱한 숲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땅거죽이 거뭇거뭇하게 변해갈 즈음 숨이 턱까지 차오른 모습으로 무혁이 영롱한 숲을 빠져나왔다.
“난… 패배자가 아니야!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어!”
기어이 오늘 준비했던 모든 가죽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고 나온 무혁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혁이 준비한 가죽 주머니와 조끼 주머니를 모두 더하면 분명 그녀보다 많은 수의 판매품목을 채집한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겼어!”
양팔을 번쩍 치켜들며 호기롭게 외치는 무혁이었지만, 이상하게 마냥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똥 누고 뒤를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한 이 기분은 뭐지?”
무혁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터덜터덜- 마우티 부락으로 걸어야만 했다.
#
드디어 방어구를 구입했다.
무혁은 지난 3일 동안의 빡빡했던 사냥으로 인해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지켜줄 수 있는 그럴 듯한 방어구를 구입할 수 있었다.
|느림보 물소 가죽옷 - 방어구 : 7등급|
· 착용자의 기본 방어력을 높여준다.
· 무게가 가벼워 활동하기에 편안하며, 다른 방어구와 동시 착용이 가능하다.
· 내구력이 높지는 않지만, 수리가 가능하다.
무혁이 선택한 방어구는 머리, 손, 발을 제외하고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느림보 물소 가죽옷으로 쫄쫄이 즉, 타이즈였다.
처음에는 그럴싸한 갑옷을 사려고 했으나,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속에 입을 수 있는 느림보 물소 가죽옷이 제격이라 생각했다.
가격은 무려 4만5천 포인트나 됐다.
덕분에 무혁에게는 19,580포인트 밖에 남아 있질 않았다.
“다시 열심히 벌어서 다음에는 스킬을 구매하는 거야!”
무혁은 벌써 두 번째 스킬까지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스킬을 사기 위해서는 앞으로 7만 포인트를 더 벌어야만 했다.
예전이었다면 7만 포인트가 까마득하게 느껴졌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난 3일 동안 영롱한 숲에서 무혁은 48,130포인트를 벌어들였기에 앞으로 남은 시간이 최소 4일이라고 봤을 때, 쉬지 않고 사냥에만 전념한다면 충분히 7만 포인트짜리 스킬을 구입할 자신이 있었다.
물론, 변수는 존재했다.
“설마 날 방심시키겠다는 음흉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 아니겠지?”
영롱한 숲에서 함께 사냥을 하는 그녀의 존재를 떠올리며 무혁은 발걸음을 바쁘게 놀렸다.
영롱한 숲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초입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무혁은 느림보 물소 가죽옷을 안에 입었기 때문인지 어제보다 훨씬 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먼저 무혁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도 그쪽이 서쪽?”
“좋을 대로.”
무혁의 대꾸에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어제처럼 서로의 영역을 정해두고 사냥을 하자는 목적이었다.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그녀가 몸을 돌리려고 할 때, 무혁이 재빨리 말을 던졌다.
“이렇게 된 거 통성명이라도 하고 지내는 게 어때?”
무혁의 물음에 그녀는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고 칼 같이 답했다.
“싫어.”
찬바람이 쌩- 불 정도로 그녀가 숲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제일 때문이겠지?”
아마도 그럴 것이라 믿으며 무혁은 입맛을 다셨다.
하긴, 생각해보면 몬스터의 심장을 취미로 맛보는 미친놈하고 어느 누가 사이좋게 이름까지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고 싶겠는가?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내 사냥에 간섭만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뭐.”
무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서둘러 숲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목표는 2만 5천 포인트!
그리고 그런 무혁의 목표를 도와주기라도 하려는 듯, 황금 골렘이 크게 울부짖으며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끄와아아아아-!
“기다려라! 3천 포인트!”
#
사냥, 사냥, 사냥.
무혁은 정신없이 사냥에만 몰두했다.
영역을 나눠서 사냥을 하고 있을 그녀의 존재가 이따금씩 신경을 쓰이게 만들었지만, 어제의 경험으로 봤을 때 그녀 역시 딱히 자신의 사냥 외엔 관심이 없는 듯 보였기에 무혁도 괜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긴장이야 좀 되지만…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이곳은 지옥이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자신을 죽이겠다고 웬 놈이 나타나서 비겁하게 기습을 하고, 암습을 해올지 알 수 없는 곳이었기에 적당한 긴장감은 오히려 습관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영롱한 숲에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무혁은 너무 제 세상 만난 사람처럼 날뛰고 다녔었다.
만약, 그런 무혁을 누군가가 은밀하게 노리고 있었다면?
“끔찍하네.”
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고맙네.”
이런 긴장감을 당연하게 만들어 준 그녀에게 고마울 정도였다.
좋게, 좋게 생각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무혁은 조끼 주머니에서 잘 말린 육포를 꺼내 질겅질겅- 씹었다.
무지개 뱀의 살만 얇게 포를 떠서 말린 육포였는데, 꽤나 맛이 괜찮았다.
느긋하게 점심을 즐길 수가 없는 무혁으로서는 허기가 느껴진다 싶으면 이렇게 꺼내서 씹고 다니는 중이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루 한 끼를 소시지빵 하나로 연명하던 무혁이었으니 이 정도만 하더라도 굉장한 호사라고 부를 만했다.
“그러고 보니까 양심 없는 욕심쟁이들(대형 길드와 가문)이 돌아오면 무지개 뱀 육포도 더 이상 만들어 놓을 수가 없잖아? 최대한 무지개 뱀은 많이 잡아야겠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뱀 고기라 체력적으로 약간의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무혁은 어제와는 다르게 무지개 뱀이 눈에 보이면 일부러 쫓아가서까지 사냥을 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최소화시켜야 육포로 만들 고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 무혁은 이전처럼 난도질에 가까운 사냥으로 시간을 줄이지도 않았다.
덕분에 무혁의 전투 기술도 점점 발전해 나갔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맹수와 달라서 본능적인 공격 기술보다는 실전 경험을 거듭하며 스스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는 이성적인 공격 기술을 가다듬기 마련이다.
무혁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격투술을 배워본 적은 없었지만, 수없이 생존을 걸고 몬스터와 싸우다보니 저절로 자신의 몸에 가장 잘 맞는 전투 기술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쉬이이익-!
무지개 뱀이 날카롭게 이를 드러내며 공격을 해오자 무혁은 익숙하게 스텝을 밟으며 몸을 틀고는 아주 짧게 주먹을 내지르며 무지개 뱀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케라크라의 손톱으로 꿰뚫어 버렸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무지개 뱀의 목숨을 끊어버린 무혁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이제는 몬스터의 시체를 해체하는 일도 상당히 능수능란했다.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도축일이나 할까? 아니지, 고작 도축이 뭐야? 격투기 대회에 출전하면 챔피언은 따 놓은 당상 아니겠어? 바람보다 빠른 스텝에 이은 벼락같은 펀치로 죄다 눕혀 버리는 거지!”
무혁은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혼자 중얼거리며 낄낄- 거렸다.
“담배 타임 한 번 가자.”
무지개 뱀 한 마리를 3분도 안 되서 완벽하게 해체해버린 무혁은 허리를 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듀우우우우-!”
퐁!
100포인트나 주고 구입한 악마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지포라이터의 뚜껑이 경쾌하게 열리자 무혁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단순히 담배만 피우기 위해 구입했다기보다는 불을 피우려면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라 아주 약간 무리를 해서 구입한 지포라이터였다.
무혁이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할 때였다.
“이쪽이 확실하겠지?”
“확실해! 그 독종 년이 있을 곳은 이제 여기밖에 없어!”
“젠장! 애초부터 여기를 뒤졌어야 했는데!”
두 남자의 목소리에 무혁은 재빨리 몸을 숨기고 담배도 조용히 조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담배 냄새는 오직 인간만이 풍길 수 있었으니 절대 피워선 안 되었다.
‘젠장! 또 영롱한 숲에 사냥을 온 사람들인가?’
무혁이 숨을 죽이고 몸을 숨기고 있자, 말을 주고받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작은 뚱보와 주걱턱의 까무잡잡한 피부의 남자였다.
‘저 사람들은…….’
무혁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헬-라시온에 끌려온 13차 지구인들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한국인이 아닌 동남아 쪽 사람들이었다.
“그 독종 년이 여기에 숨어서 사냥을 했다면 분명 포인트가 적지 않게 모였을 거야. 그걸 우리가 다 뺏는 거야.”
“포인트만?”
“값은 그리 많이 받을 수 없겠지만, 무기도 있지!”
“무기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음흉하게 웃는 키 작은 뚱보의 모습에 무혁은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과거 무혁은 무더운 여름에 친구와 함께 해운대로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삼삼오오 길거리에 모여 앉아만 있던 수많은 동남아 남자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무의미하게 길거리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만 구경하던 그들의 모습을 보며 친구 녀석이 술에 취한 한국 여자를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하는 거라며 농담 반, 진담 반 했던 말 때문인지 무혁은 그들의 모습이 결코 좋게 보이질 않았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무혁의 눈에 보이는 두 남자, 정확하게는 키 작은 뚱보가 딱 그랬다.
‘어쩌지?’
무슨 상황인지 굳이 추리를 하지 않아도 알만했다.
그리고 만약 저 동남아 남자들이 그녀를 제거한다면?
무혁은 다시 영롱한 숲 전체를 마음껏 사냥할…….
“수가 없잖아! 저 새끼들이 나를 다음 타깃으로 삼으면 그때는 어쩔 거야?”
무혁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직감적으로 싸움에 끼어들어야 할 것 같았다.
“차라리 이 기회에 어부지리를 노려볼까?”
조개와 황새가 서로 싸우던 걸 어부가 낼름 둘 다 잡아버린 고사를 떠올리며 무혁은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두 남자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