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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이러 갑니다. 11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1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1화

마우티 부락 (11)

 

영롱한 숲에서 무혁은 딱히 타깃을 잡아놓지 않았다.

굳이 한 개체만을 선택해서 사냥하기엔 시간이 아까웠고, 영롱한 숲에 서식하는 대다수의 몬스터들은 모두 만족스러운 판매품목을 가지고 있었기에 눈에 보이는 대로 닥치고 사냥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포인트를 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오늘만 10마리째 흑두꺼비 사냥에 성공한 무혁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배를 가르고 심장을 끄집어내려고 할 때였다.

바스락.

마른 나뭇잎이 밟히는 아주 작은 소리가 무혁의 고막에는 천둥처럼 들렸다.

“……!”

무혁은 재빨리 자세를 낮추고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몸을 틀었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나뭇가지 사이로 두 개의 눈동자가 무혁의 시야에 들어왔다.

‘인간?’

눈동자를 확인하는 순간 무혁은 몬스터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걸 확인하자 무혁의 목뒤부터 뻣뻣한 긴장감이 생겨났다.

‘누구지?’

2년차 이상의 지구인들은 영롱한 숲에 볼일이 없다.

전투 경험을 쌓기에도, 포인트 벌이에도 한참이나 부족한 곳이니까.

‘정밀 수치부터 재분배해야 하나?’

결국은 무혁과 같은 연차의 지구인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이번 첫 번째 강제 사냥에 무혁만 불참을 한 것은 아닐 테니 분명 생각이 있는, 그리고 헬-라시온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파악하고 있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영롱한 숲에서의 포인트 벌이를 결코 놓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영롱한 숲이 컸기에 지금까지 마주치지 않았을 뿐, 언제 어디서 마주친다 하더라도 이상 할 것 하나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게 있을 겁니까?”

대치 상황이 오래 될수록 좋을 것 없다.

사냥 시간도 빠듯한데 낯선 사람을 경계해서 시간을 소모하느니, 무혁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차라리 일정 경계선을 두고 각자 알아서 사냥에만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상대의 목적이 다르다면 문제겠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러 본 적이 거의 없는 무혁으로서는 만약, 이 자리에서 누군가의 목숨을 두고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면 그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생각도 없었다.

여긴 내가 죽이지 않으면 상대의 손에 죽고 마는 살벌한 생존의 현장이니까.

인간으로서의 생명의 존엄성과 윤리 의식 따윈 손톱만큼도 없는 곳이다.

‘날 죽이려고 한다면… 나도 죽일 수밖에.’

무혁이 단단하게 각오를 다지는 사이, 몸을 숨긴 상태로 무혁을 주시하던 존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저 여자는…….’

무혁은 자신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 그것도 여자의 얼굴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헬-라시온에 끌려와서 함께 일주일간의 생존을 거치며 안면 정도는 텄으니까.

다만, 기억과 조금 다른 부분이라면 오른쪽 눈 아래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깊은 흉터가 낯설다는 점뿐이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몬스터라는 괴물들을 상대로 공포라는 패닉 상태에 빠져서 일주일을 버티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신은 없었으니까.

다만, 무혁이 여자를 분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가 보통의 여자들과는 확연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여자들이 흉측한 몬스터의 모습에 꺅꺅- 거리며 비명만 지르고 있을 때, 그녀는 주변에서 주어든 두꺼운 나뭇가지로 싸움에 참여했었다.

웬만한 남자라도 쉽게 내보일 수 없는 용기와 강단을 지닌 여자였기에 무혁은 또렷하게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무혁 스스로 그녀만도 못한 용기로 인해 부끄러움을 많이 느껴야 했기에 기억이 더욱더 또렷할 수밖에 없었다.

“그쪽… 나와 같은 연차 맞지?”

여자가 빠르게 사방을 훑어보고는 그렇게 물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또 있을까 싶어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맞습니다.”

“혼자야?”

“뭐…….”

무혁은 말끝을 흐리며 명확하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자라도 언제 돌변해서 자신의 목숨을 노릴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무혁은 한 가닥이라도 여자로 하여금 경계심을 갖게 만들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보시다시피.”

자꾸만 반말을 하는 여자의 말투에 무혁도 마찬가지로 말끝을 잘라버렸다.

나이도 비슷해 보이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구태여 상대를 존중할 이유가 없었다.

“언제부터 사냥을 한 거지?”

무혁은 거듭 질문을 건네며 자신의 궁금증만 해소하려는 여자의 행동에 살짝 눈을 찌푸렸다.

“내가 대답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계속 이렇게 대화나 나누자는 게 목적은 아닐 것 같은데?”

무혁은 여자의 옷에 묻어 있는 몬스터들의 피와 그녀의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가죽 주머니를 보곤 자신과 같은 목적으로 영롱한 숲에 들어와 있음을 유추해냈다.

여자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혀졌지만, 이내 스르르- 풀렸다.

“나는 동쪽, 너는 서쪽.”

경계를 지어서 행동하자는 여자의 말에 무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여기를 중간 지점으로. 참고로 말해두지만 난 선을 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무혁의 말에 여자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각자 할 일 하는 게 어때?”

이어진 무혁의 말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무혁은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흑두꺼비의 뱃속에서 심장을 끄집어냈다.

“무기가 특이하네.”

여자가 그렇게 말하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좀 특이하긴 하지.”

무혁은 케라크라의 손톱을 슬쩍 흔들어 보이고는 히죽- 웃었다.

조금이나마 경계심을 풀기 위한 미소였지만, 소용없었다.

여자나 무혁이나 그런 가식적인 웃음 따위로 상대의 신경이 풀어지지 않는 다는 것 정도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너무나도 처절하게 뒹굴었다.

‘사냥 속도가… 느려지게 생겼네.’

서로 영역을 두자고 했지만, 그 약속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당연히 이전처럼 막무가내로 사냥 속도를 높일 수도 없어졌다.

자칫 무리하게 사냥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빈틈을 보이면 언제 어디서 갑작스런 기습 공격을 당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믿음?

그런 고귀한 단위는 이 지옥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 수고해.”

여자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완전히 몸을 감췄다.

“좋다가 말았네. 후우우우!”

담배가 땡겼다.

무혁은 참지 못하고 담배를 꺼내 물고는 한 개비를 모두 다 태울 때까지 그 자리에서 여자가 사라진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우려했던 것처럼 사냥 속도가 확연하게 떨어졌다.

반대로 사냥을 하는 내내 신경은 더욱더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XX…….”

불편한 현실에 무혁의 입에서는 저절로 짜증을 섞은 욕설이 튀어나왔다.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를 상대로 정신없이 공격을 퍼부으며 포인트를 벌어야 하는 이 시점에 전투 중에도 자꾸만 한두 번씩 주변을 살피고,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짜증스러웠다.

무엇보다 달콤한 휴식 자체가 없어져버렸다.

휴식 대신 신경만 곤두서니 아무리 사냥꾼 특수 스킬이 있다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체력적인 부담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돌겠네.”

여자와 만난 이후부터 좀처럼 주머니가 채워지지 않았다.

어제보다 더 많은 판매품목을 가지고 돌아가겠다며 야심차게 들고 왔던 가죽 주머니가 민망할 정도로 비어있었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무혁은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주머니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고 있는데, 담배는 평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정말 엿 같은 상황이다.

“…다른 곳으로 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다 무혁은 입으로 질겅질겅- 씹던 담배 필터를 신경질적으로 뱉어버렸다.

“모르겠다. 생각이 있는 여자라면 쉽게 뒤통수를 치지는 않겠지.”

어차피 여자나 무혁이나 처지는 비슷하다.

강제 사냥에 불참하면서까지 영롱한 숲에 들어온 것을 보면 이렇다 할 뒷배가 없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즉, 기댈 곳 하나 없는 불쌍한 인생이라는 소리였으니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포인트 때문에 제 목숨까지 걸고 무혁의 뒤를 칠 생각은 없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는 생각으로 무혁은 사냥 속도를 억지로 높여나갔다.

그나마 조금은 주머니 채워지는 속도가 올라갔지만, 확실히 계속해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느라 체력적으로 한계가 빠르게 찾아왔다.

“휴우… 안 되겠다.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내고 돌아가야겠다.”

그래도 오전에만 황금 골렘의 수정구를 3개나 얻었기에 위안이 됐다.

무혁이 영롱한 숲을 빠져나와 마우티 부락으로 돌아가던 중, 반가운 얼굴과 마주했다.

키에에에엑-!

무혁의 성장 발판이 되어주었던 고블린 한 마리가 징그럽게 울부짖으며 무혁을 향해 투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래, 너라도 잡아서 보너스라도 얻어야겠다.”

무혁은 재빨리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고블린이 제법 매섭게 손을 휘두르며 무혁을 공격했다.

그러나 고블린이라면 공격 패턴 정도는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었기에 무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피하고는 그대로 케라크라의 손톱으로 목덜미를 정확하게 꿰뚫어 버렸다.

푸아- 아악!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고블린이 그대로 죽어버렸다.

단언컨대 같은 연차의 그 누구도 자신만큼 깔끔하게 고블린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자부하는 무혁이었다.

털썩- 소리와 함께 고블린이 바닥에 널브러지자 무혁은 재빨리 눈알과 이빨을 채집해서 가죽 주머니에 담고는 기대감이 실린 눈으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더듬거렸다.

톡.

핵이 느껴지자 무혁은 두 눈에 호선을 그리며 살살 도려냈다.

“크으… 악취도 여전하네.”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는 그대로 고블린의 핵을 꿀꺽- 삼켜버리는 무혁이었다.

“역시 쾌쾌하면서도 구린 맛이 변함 없……!”

“…무슨 짓이야!”

“켁켁!”

갑작스런 비명에 이미 목구멍을 넘어가 버린 고블린의 핵이 목에 걸린 듯 무혁이 사레를 뱉어냈다.

무혁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영롱한 숲에 있어야 할 그녀가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경악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도, 도대체 왜? 왜 고블린의 심장 조각을…….”

정말 끔찍한 걸 봤다는 듯 그녀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무혁을 바라봤다.

“그, 그게…….”

당황한 무혁이 말을 더듬거리는 동안 평소라면 기쁘게 음미했을 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블린의 핵을 섭취했습니다.]

[영구적으로 근력이 0.02% 상승합니다.]

 

#

 

무혁은 뻔뻔해지기로 했다.

덤으로 변태가 되기로 했다.

더 보태서 미친놈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취미 생활이야!”

무혁의 말에 그녀가 예상대로 미친놈이냐는 표정으로 노려봤다.

언제라도 뽑을 수 있도록 오른손은 장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기도 했다.

“취미라고? 무슨 취미? 몬스터의 심장을 맛보는 취미?”

제발 무혁이 부정해주길 바라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각별하고도 절실한 이유가 있었으면 한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무혁 스스로 생각하더라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몬스터의 심장을 생으로 잘라서 먹는 취미를 가진 미치광이와는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왜! 그게 어때서!”

고블린의 핵을 섭취했다는 걸 알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미치광이로 찍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며 무혁은 태연스럽게 소리쳤다.

‘차라리 잘 됐어! 나를 완전히 미친 개또라이로 생각하면 영롱한 숲 근처로는 오지도 않을지도 몰라!’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무혁은 이참에 다시 영롱한 숲을 자신만의 영역으로 삼기로 했다.

“…미친놈!”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는 무혁을 혐오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구역질이 날 것 같다는 표정이었고, 한 발이라도 다가오면 서슴없이 검을 뽑아서 휘두르겠다는 듯 살기까지 풀풀- 풍겨댔다.

‘아… 맞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지.’

무혁이 원했던 반응은 보통의 여자처럼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자신에게서 떨어지는 것이었지만, 눈앞의 그녀는 눈빛으로는 온갖 혐오스러움을 다 발산하면서도 먼저 물러서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장에 나선 장군처럼 당당한 기백마저 느껴졌다.

‘몬스터를 처음 보고도 몽둥이를 들고 설쳤던 여자였으니 오죽하겠냐! 어휴! 독하다 독해!’

무혁은 상황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서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가 갑자기 독이 바짝 오른 암사자처럼 달려들면 그게 더 문제일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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