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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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9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9화
마우티 부락 (9)
“오- 자신의 미래까지 예언하다니! 역시 인간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니까!”
조롱기 가득한 어조였지만, 무혁은 여전히 무덤덤하게 말을 뱉어냈다.
“정산이나 하지.”
크레우스타는 여전히 비웃음을 흘리며 정산을 해주었다.
곧바로 정산 처리 완료가 되면서 잔여 포인트가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이제 더 할 일은 없겠지?”
“하나 더 있어.”
“신경질 나게 하나씩 요구하지 말고 한꺼번에 요구해!”
크레우스타의 표정이 살벌하게 일그러졌다.
천진난만하던 얼굴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무혁은 상대가 마족, 제 기분이 뒤틀리면 사정없이 피를 볼 수도 있는 포악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하며 빠르게 말을 꺼냈다.
“삼 일 뒤에 있을 강제 사냥에서 빠지고 싶어.”
“강제 사냥에서 빠지겠다고?”
크레우스타가 노골적으로 불쾌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5천 포인트를 지불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을 테고… 이후 두 번째 강제 사냥에서는 절대 빠질 수 없다는 점과 이후 또다시 강제 사냥에서 빠지기 위해선 앞전에 지불했던 포인트의 두 배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 역시 알고 있겠지?”
“알아.”
“너처럼 이제 겨우 부락 식민이 된 인간들에게 첫 번째 강제 사냥은 굉장히 유용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알아.”
일명 ‘초보 특전’이라고 불리는 첫 번째 강제 사냥은 수준이 낮은 몬스터들을 상대로 굉장히 많은 포인트를 벌수도 있었고, 운이 좋다면 몬스터가 지니고 있던 수준 높은 무구나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일반적인 필드 사냥에서는 거의 구할 수 없는 스킬이 담겨져 있는 스킬 링을 얻을 확률 역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혁이 첫 번째 강제 사냥에서 빠지려고 하는 이유는 역시 생존을 위해서다.
언뜻 듣기에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말이기도 했다.
첫 번째 강제 사냥은 초보 특전이라 불릴 정도로 그 보상이 어마어마한데, 그 황금 찬스를 포인트까지 지불해가며 걷어차 버리려고 했으니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군.”
크레우스타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후회하지 않겠지?”
마지막으로 되묻는 크레우스타에게 무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택이 정 그렇다면.”
[정상 처리 완료!]
[잔여 포인트 : 16,450]
한 달 월세와 강제 사냥에서 빠지기 위한 비용까지 도합 1만 3천 포인트가 증발해 버렸다.
두 번째 스킬 구입과 쓸 만한 방어구 구입이 또 멀어지는 기분에 무혁의 씁쓸함이 배가 되었다.
‘이번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야만 해!’
무혁은 자신의 선택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믿고 있었다.
앞으로 3일 뒤, 무혁은 텅 비어 버리다시피 할 사냥터를 독점할 작정이었다.
좋은 무구와 스킬은 얻을 수 없지만, 포인트만큼은 쓸어 담아 볼 생각이다.
‘그전까지 능력을 더욱더 성장시켜야해.’
무혁은 더 이상 볼일이 없어진 중앙탑을 빠져나왔다.
#
“후아-!”
무혁은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답답했던 폐가 제 기능을 찾아가자 그제야 살 것만 같았다.
“잠깐만 쉬자.”
딱딱하고 불편한 자갈밭에 엉덩이를 털썩- 깔고 앉은 무혁은 약간 어색한 동작으로 지저분한 조끼의 주머니를 뒤져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치열한 사냥 후에 즐기는 담배 맛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천천히 담배를 빨아 당기며 무혁은 주변을 스윽- 훑어봤다.
자갈밭 이곳저곳에 보랏빛 핏물이 흥건하게 튀어 꽤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모두다 코일로와의 전투 흔적이었다.
코일로는 단일 개체마다 그 영역이 제법 컸기에 찾아서 이동하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었다.
때문에 무혁은 코일로와의 전투가 제법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24마리 이상을 사냥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일부터는 당분간 코일로 사냥을 할 수 없다 생각하니 조금만, 조금만 더 사냥을 하자고 욕심을 부리며 몸을 혹사시킨 결과 26번째 코일로 사냥에 성공했지만,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으로 인해 굉장히 힘들고도 위험한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그나마 포지션 스킬이 있어서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었지.”
무혁이 사냥꾼 포지션을 선택하면서 기본적으로 받은 스킬은 다음과 같다.
|강철 체력 – 고유(사냥꾼) : 無등급|
· 10분 동안 기본 체력의 30%를 상승시킬 수 있다.
· 다른 스킬과 중복 적용이 가능하다.
· 스킬 성장과 조합이 불가능하다.
|체력 유지 - 고유(사냥꾼) : 無등급|
· 체력 회복력이 2배 빠르다.
· 다른 스킬과 중복 적용이 가능하다.
· 스킬 성장과 조합이 불가능하다.
|위치 추적 - 고유(사냥꾼) : 無등급|
· 지정한 대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 스킬 성장과 조합이 불가능하다.
두 가지는 체력 관련 스킬이고, 하나는 추적 스킬이다.
세 가지 스킬 모두 코일로 사냥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무혁은 다 빨아먹은 담배를 대충 던지고는 왼쪽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코일로의 점프 공격을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고, 그 결과 어깨가 살짝 짓밟혔는데 덕분에 뼈가 박살이 나버리고 말았다.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과거의 무혁이었다면 움직이는 것조차 덜덜- 떨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겠지만, 현재의 무혁은 이 정도 고통에 주저앉아 있을 정도로 정신력이 나약하지 않았다.
코일로 사냥을 하면서 한 번씩 이와 비슷한 수준의 부상을 입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중앙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컸다.
“마지막은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할 텐데.”
무혁은 중얼거리며 코일로의 심장에서 핵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웃는 얼굴로 무혁은 코일로의 핵을 도려냈고, 곧장 삼켜 버렸다.
[코일로의 핵을 섭취했습니다.]
[영구적으로 체력이 0.32% 상승합니다.]
근력, 순발력, 지구력에 비해 딱 2배의 성장 혜택을 갖고 있는 체력이었기에 0.32퍼센트의 정밀 수치가 상승했다.
이어서 무혁은 코일로의 간을 채취했다.
“조금만 옆으로 찔렀으면 간이 손상됐을 뻔 했네.”
무혁은 치열했던 전투로 인해 자칫 간을 판매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도질을 당한 꼬리와 하체에서는 판매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을 입은 꼬리뼈와 힘줄로 인해 포인트 벌이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핵이 나왔으니까 됐어.”
애초부터 판매품목보다는 핵 섭취에 초점을 맞춰둔 사냥이었기에 목표는 달성.
무혁은 어느새 붉은 노을이 대지를 뻘겋게 물들이기 시작하자 미련 없이 마우티 부락으로 몸을 돌렸다.
조심스럽게 몬스터들을 피해 부락에 도착한 무혁은 중앙탑부터 들러서 하루 사냥의 성과를 확인하고 부상 입은 몸도 완벽하게 치료를 마쳤다.
양손에 소주 한 병과 삼겹살 두 근, 쌀과 기타 음식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자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제 멋대로 집안에 들어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이 병신 새끼가! 아직까지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내가 아직까지도 네놈 말 한마디면 꼼짝 못할 것 같냐고!”
거친 언성으로 남자를 향해 날이 바짝 선 단검을 위협적으로 가져가는 모습에 무혁이 재빨리 소리쳤다.
“뭐하는 겁니까!”
무혁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오자 남자를 위협하던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어이, 애송이. 오랜만이다. 여태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참 반갑다. 그치?”
징그럽게 웃는 사내의 얼굴에 무혁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박혁수… 이 새끼가 왜?’
헬-라시온에 끌려온 이후 일주일간의 생존을 거치고 났을 때, 무혁을 향해 검은 손을 뻗었던 박혁수는 무혁이 절대 잊지 못할 인간 중 하나였다.
만약, 그때 박혁수의 검은 손에 이끌렸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뻔했기에 바득바득- 이가 갈렸다.
“병신이랑 애송이라… 캬하! 정말 멋진 조합이네. 그치?”
“왜 여길 찾아왔습니까?”
“방문 목적을 말해라? 뭐, 좋아. 저 인간의 이게 필요해.”
박혁수가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부락 내에서는 어떠한 약탈이나 살인도 금지가 되었다는 걸…….”
“어이어이! 내가 그딴 것도 모를 것 같아? 지금 나한테 뭐 선배 노릇이라도 해보겠다는 거야? 내가 필요한 건 저 인간의 머릿속에 담긴 지식이라고. 저런 병신이 되어 버린 인간의 목숨은 아무 쓸모가 없어. 그치?”
말끝마다 ‘그치’라는 물음을 던지는 괴상한 버릇은 여전했다.
“물어볼 것이 있다면 정중하게… 큭!”
무혁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멱살을 움켜쥐는 박혁수로 인해 숨이 턱! 막혔다.
“애송이, 선배 노릇을 하려거든 실력부터 키워. 어디서 같잖게 훈계질이야. 정말 그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모가지가 날아가는 수가 있어. 그치?”
숨이 막혀 대꾸도 못하는 무혁의 모습에 박혁수는 킥킥- 거리며 웃다가 멱살을 놓아주었다.
“쿨럭! 쿨럭! 쿨럭!”
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무혁의 모습에 박혁수는 거치적거리지 말라는 듯 허리를 냅다 후려 찼다.
퍼억-!
“커억!”
비명과 함께 무혁이 몸을 둥그렇게 말며 고통스러워했다.
박혁수는 이내 더 이상 무혁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남자에게 다시 다가섰다.
“송정민, 잘 생각해. 여기에 이러고 처박혀 숨어 있다고 목숨줄이 계속해서 연명되는 건 아니야. 설마, 저 애송이 믿고 있는 거야? 이야- 그렇다면 정말 실망인데! 천하의 송정민이 진짜 바닥까지 온 거잖아! 안 그래? 푸하하하! 그런데 말이야 저기 저 애송이를 내가 죽여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면 좀 생각이 달라 질려나? 그치?”
남자는 여전히 무심한 시선으로 박혁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유- 눈도 꿈쩍 안 하네! 그래, 그래야지 송정민이지! 그런데…….”
짜악!
박혁수가 남자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이젠 상황이 다르다는 걸 알아야지! 이 병신아!”
한 대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박혁수는 네 차례나 사정없이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양쪽 뺨이 벌겋게 부어올랐음에도 남자는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쉽게 끝나면 재미없지. 어쨌든 이제 사는 곳도 찾았으니까 자주 보자고. 그러면 없던 정도 생기고 좋을 거야. 그치?”
박혁수가 몸을 일으키고는 낄낄- 거리며 웃었다.
“사는 곳도 어울리네. 구질구질한 게 병신이랑 애송이랑 살기에 딱이네. 딱이야! 하하하!”
박혁수는 이내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방을 빠져나갔다.
“이것 봐라? 무슨 경사라도 났어? 꼴에 소주에 삼겹살까지? 니들한테는 사치야! 사치!”
곧바로 병이 깨지는 소리와 무언가 거칠게 짓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씨… 후우우.”
저절로 욕설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아 삼키며 무혁은 깨진 소주병과 더러운 신발에 짓뭉개져 버린 돼지고기를 치웠다.
‘참자! 참아! 선생님도 저렇게 참고 있는데… 내가 무슨…….’
무혁은 그 누구보다 비참한 심정을 느끼고 있을 남자를 생각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대충 정리를 끝내고 나서 무혁은 방 앞에서 서성거렸다.
‘나갔다가 조금 있다가 돌아올까? 새로 음식이라도 사가지고 와야 하나?’
남자의 상처 난 마음이 조금이나마 회복되길 기다려주는 것이 배려일까 싶어 고민하던 무혁의 귓가로 예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민하지 말고 들어와.”
잠시 머뭇거리던 무혁은 이내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갔다.
“끌끌, 네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아. 걱정할 것도 없고, 날 동정할 필요도 없어. 어차피 이 꼴이 되는 순간부터 난 더 이상 제대로 된 인간 대접 받을 자격 따윈 깨끗하게 버렸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는 남자의 모습에 무혁은 쓴 웃음을 지었다.
“저어… 혹시 저 때문입니까?”
무혁의 물음에 남자가 픽- 웃었다.
“지금이라도 널 앵벌이 시키고 싶어서 찾아왔을 것 같아?”
남자의 물음에 무혁은 이내 그건 아닐 것 같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긴, 날 찾으려고 했으면 진즉에 찾았겠지.’
마우티 부락에 수백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하지만, 중앙탑 근처만 감시하면 사람 하나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불순한 의도를 품고 중앙탑 주변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는 박혁수의 ‘박앤장 패밀리’의 일원과도 두어 차례 마주쳤었던 무혁이었기에 자신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선생님께 목적이 있다는 건데…….’
무혁은 도대체 박혁수가 무슨 목적으로 남자를 찾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달 후, 대형 길드 몇 곳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탐사대를 만든다는 군.”
“대형 길드가 주축이라면 도대체 어딜 탐사하려고 하는 겁니까?”
“탐사를 해야 할 지역이야 널리고 널렸지.”
헬-라시온은 무척이나 방대하다.
그렇다 보니 최초로 라시온 식민이 된 1차 지구인들이라고 하더라도 감히 발길조차 들일 수 없는 곳이 수두룩했다.
때문에 매번 중소 규모는 물론, 대규모의 탐사대가 꾸려져 미개척지를 탐험하고 그곳의 비밀을 파헤치는 일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왜 선생님께…….”
“후보 중 한 곳이 호수 위의 사막이라더군.”
남자의 대답에 무혁은 처음 들어보는 곳인지라 아무런 반응도 보일 수가 없었다.
대형 길드가 주축이 될 정도면 정말 위험한 곳이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명도 탐사에 성공한 적이 없는 미개척지지. 공식적으로는.”
뒷말이 묘하게 거슬렸다.
“설마 비공식적으로는 탐사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무혁의 물음에 남자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