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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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44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44화
블랙 본 (2)
‘꽝은 아니다!’
무혁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무것도 없는 ‘꽝’보다는 뭐라도 하나 건졌으면 됐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건, 당황스럽게도 짙은 어둠을 뿌려대는 둥그런 구체였다.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크기의 구체를 바라보며 무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면, 케로우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벌떡! 일어나선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
무혁의 물음에 케로우가 잘게 눈꼬리까지 떨며 대답했다.
정말 알려주기 싫은 답을 말하는 것처럼 음성엔 불쾌함이 뚝뚝- 떨어졌다.
“…마정(魔情).”
“그래?”
뭔지 모른다.
하지만, 케로우의 반응만으로도 충분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 대단한 거다!’
정확한 용도를 알 순 없지만, 심상치 않은 것, 쉽게 얻을 수 없는 아주 희귀한 것을 얻었음은 분명했다.
“마정이라니… 말도 안 돼!”
케로우가 탐욕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마정을 바라봤고, 살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무혁을 노려봤다.
뿐만 아니라, 케로우의 등 뒤로 넘실거리기 시작한 검은 아지랑이가 방안의 공기자체를 무척이나 탁하게 만들며 무혁의 숨통을 조여 왔다.
“……!”
약탈을 준비 중인 도적처럼 변한 케로우의 모습에 무혁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렸고, 숨이 턱턱! 막혀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혁은 케로우가 자신을 죽이고 마정을 빼앗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잠시 무혁을 죽일 듯 노려보던 케로우는 이내 눈에 힘을 풀며 맥이 빠진 얼굴로 하아- 하는 숨을 토해내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숨통을 조여오던 검은 아지랑이도, 탁했던 방안의 공기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무혁도 켁켁- 거리며 숨을 토해냈다.
주르륵.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무혁은 다시 한 번 마정을 바라봤다.
‘도대체 저게 뭔데? 뭐하는 건데!’
어디에 사용하는 건데 저렇게까지 케로우가 탐을 냈던 걸까?
무혁은 차마 케로우에게 말도 못 붙이고 속으로만 끙끙- 거렸다.
“마정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아?”
욕심을 버린 케로우의 음성이 다시 평소처럼 가볍게 통통- 튀듯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혁은 케로우를 쉽게 대할 수가 없었다.
“마정은 우리 같은 마족들에게 있어 최고의 보물이다.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마정이 품고 있는 순수한 힘을 고스란히 흡수하면 그 즉시 ‘격’이 상승하니까.”
“격이 상승한다고?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는 등급 같은 건가?”
“등급? 고작 그런 하찮은 힘이 아니야.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이야. 즉, 너 같은 인간이 저 마정의 힘을 담을 수 있다면 그 즉시 인간의 탈을 벗어나게 된다. 그걸 너희 인간들 기준으로 보자면… 최하급신 정도는 되겠지.”
“…뭐?”
무혁은 순간 자신의 귀가 잘 못 들었나 싶었다.
저 둥그런 검은 구체, 즉 마정을 흡수하면 신이 된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무혁이 케로우와 마정을 번갈아봤다.
정말 그 정도의 힘을 머금고 있다면 케로우가 탐욕을 부릴 만도 하단 생각부터 들었다.
“이, 이걸 흡수하면 된다고?”
무혁은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마정을 흡수할 것처럼 물었다.
방법이야 어떻든 좋다. 먹어 치우라면 게걸스럽게 먹을 것이고, 며칠 동안 품고 있어야 한다면 망부석이 될 자신도 있었다.
“할 수 있다면.”
케로우가 비웃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무슨 뜻이냐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무혁에게 케로우가 낄낄- 거렸다.
“너희 미천하고도 하찮은 인간 따위가 마정을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영혼이 산산이 분해되어 사라질걸? 마정의 힘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마족뿐이야.”
“…그럼, 나한테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건가?”
무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케로우는 그런 표정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는 듯 시무룩하게 죽었던 날개를 파닥파닥- 거리며 즐거워했다.
“인간인 이상 마정의 힘을 흡수 할 수 없을 뿐이다.”
“그럼 어디에 써먹는데?”
“마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지를 갖는다.”
“의지를 갖는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시끄럽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네가 직접 경험하는 게 낫지. 마정을 두 손으로 감싸고 의지가 깨어나길 빌어 봐. 그럼 알 수 있을 테니까.”
무혁은 케로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우선은 두 손을 조심스럽게 마정을 향해 뻗었다.
마정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피부가 따끔따끔- 거렸고, 이유 모를 불쾌감이 들었다.
공기 자체가 끈적끈적- 거리는 것만 같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거리며 날카롭게 날을 세우는 기분이었다.
‘이거…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케로우가 일부러 장난질을 하는 거라면?
의심이 들었지만, 무혁으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마정을 두 손으로 감쌌다.
물컹물컹.
물, 혹은 액체와 같은 물질을 뭉쳐 놓고 만지면 이런 느낌이 들까?
무혁은 마정의 촉감에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케로우가 말했던 것처럼 마음속으로 조심스럽게 빌기 시작했다.
‘마정의 의지야 깨어나라.’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참 궁상스럽고,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케로우가 그렇게 하라고 했기에 무혁은 계속해서 마정의 의지야 깨어나라- 라는 말을 되뇌이길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치, 황당한 몰래카메라에 속은 것처럼 아무래도 당한 것 같다- 라는 의구심이 확신으로 변해갈 때 즈음 아무런 변화도 없던 마정이 꿈틀꿈틀- 거리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인다! 마정의 의지야! 깨어나라!’
무혁의 마지막 진심과 동시에 마정이 검은 빛을 화악- 하고 사방팔방으로 뿌려댔다.
“오오오오오오-!”
말 한 마디 없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케로우가 환호했다.
그 가운데 무혁은 두 눈을 꼭 감은 상태로 온몸으로 스며드는 수많은 기운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차가움, 따뜻함, 거침, 부드러움, 표독스러움, 자애로움, 천진난만함, 성숙함, 악독함, 선함… 등등 무혁이 알고 있는 그리고 그것을 더 뛰어넘는 미지의 느낌까지도 하나하나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수많은 기운들이 무혁의 몸을 스며들었다 빠지길 반복하다가 마지막엔 딱 하나의 기운만이 남았다.
순수함.
그것도 단순한 순수함이 아닌, 절대적인 순수함.
무혁은 자신의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마정의 기운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게 마정의 의지인가? 신기하네.”
케로우의 말에 무혁은 그제야 마정의 뚜렷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깜빡- 깜빡-.
그냥 검은색의 구체였던 마정이 커다란 외눈박이 구체로 변해 있었다.
“달… 걀 귀신?”
혹은 ‘알’귀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헬-라시온에서 몬스터라는 괴물들을 수없이 봤기에 마정의 변화는 귀여운 애교 수준에 불과했지만, 눈 하나만 달랑 그것도 아주 커다랗게 생겨난 마정의 모습은 확실히 거부감이 들기에 충분했다.
무혁의 생각이야 어떻든 의지가 깨어난 마정은 테이블 위에서 통통- 뛰며 무혁과 눈을 마주치기에 바빴다.
“마정의 의지라는 게 이런 거였군.”
“너도 몰랐던 거야?”
“말했잖아. 마정은 우리 같은 마족들에게 있어선 ‘격’을 상승시켜 주는 최고의 보물, 아니 그 이상이라고. 그런데 누가 의지 따윌 깨우려고 하겠어? 그냥 흡수해 버려야지.”
“네가 마정을 흡수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최소한 마왕은 되겠지.”
마왕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무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케로우를 바라봤다.
“그 정도의 유혹이라면 날 죽이고 마정을 빼앗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 있었다면 얼마든지 그랬겠지.”
“그 말은 빼앗을 수 없다는 뜻이네?”
“라시온 님의 뜻이니까. 나 같은 하급 마족은 감히 탐낼 수 없다는 뜻이니까.”
볼을 부풀리며 무척이나 불만족스러워하는 케로우의 모습에 무혁은 문득, 라시온이라는 마신이 무슨 목적으로 자신에게 이런 귀한 보물을 내려줬는지 궁금했다.
‘아닌가? 어차피 인간인 내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으니 그냥 지니고 있으면서 군침만 흘리라고 준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혁은 짜증이 났고, 정말 마신이든 뭐든 눈앞에 있으면 귓방망이를 시원스럽게 후려갈기고 싶었다.
“마정의 의지를 깨웠으니 이름을 지어줘.”
그딴 게 왜 필요하냐는 무혁의 눈빛에 케로우가 답했다.
“이름을 부여 받아야 진정으로 허와 실의 경계를 허물 수 있으니까.”
“허와 실의 경계?”
그건 또 뭐냐는 무혁의 물음에 케로우는 더 이상 설명하는 건 귀찮으니 빨리 이름이나 지으라는 듯 독촉의 눈빛을 보냈다.
“이름이라…….”
무혁은 마정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간단하게 이름을 생각해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면 귀찮아서 대충 지어 버렸다.
“통통. 이제부터 네 이름은 통통이다.”
통통- 통통-.
테이블 위에서 연신 통통- 뛰는 마정을 바라보며 무혁은 그렇게 불렀다.
“…정말 성의 없는 인간이군.”
케로우는 어떻게 그런 저급한 이름을 지을 수 있냐는 듯 무혁의 경멸스럽게 바라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통’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은 마정은 무척이나 기쁜 듯 더욱더 거세게 테이블 위에서 통통- 뛰다가 이내 몸을 부르르- 떨다 검은 빛까지 화악- 뿌려댔다.
‘윽- 눈부셔!’
무혁이 눈을 질끈- 감으며 속으로 질색하자 거짓말처럼 빛이 사라졌다.
“설마… 내 뜻을 알아듣는 거야?”
무혁의 물음에 통통이의 외눈이 깜빡- 거렸다.
“빛 뿌려 봐.”
화악-!
“뿌리지 마!”
“빛!”
화악-!
신기하게도 정말 통통이는 무혁의 의지를 그대로 알아들었다.
“기특한 놈이네.”
무혁은 손을 뻗어 통통이를 쓰다듬었고, 그런 무혁의 행동에 통통이는 무척이나 기쁘다는 듯 부들부들- 떨어댔다.
무혁과 통통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케로우는 고작 그런 하찮은 재주에 감탄하느냐는 듯 무혁을 향해 핀잔을 주고는 이내 중앙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했다.
“어떻게 가면 되는 데?”
“들어왔던 문을 다시 열고 나가면 돼.”
한 점의 의심도 없이 무혁은 몸을 일으켰고, 테이블 위의 통통이가 냉큼 바닥으로 내려와 무혁의 곁에서 통통- 뛰었다.
“그럼 가야… 아! 본 드래곤의 뼈하고 포인트는?”
무혁은 까딱 했으면 랭킹 1위의 보상을 받지 못할 뻔했다는 듯 케로우를 돌아봤다.
“이미 난 줬어.”
“줬다고?”
무혁이 받은 적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케로우가 검지를 슬쩍 들어서 무혁의 심장을 가리켰다.
“악마의 족쇄?”
“그래. 중앙탑으로 가면 받을 수 있을 거다.”
“통통아 가자.”
무혁이 문을 향해 걷자, 통통이가 바짝- 붙어서 함께 움직였다.
그렇게 멀어지는 무혁을 바라보며 케로우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시간의 탑 랭킹 1위에다가 인간 최초로 마정의 의지까지 깨우다니… 저 정도면 인간들의 기준에서는 역대급 슈퍼 루키인데… 앞으로 어떨지 꽤 기대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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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로우의 말처럼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중앙탑 내부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시간의 탑 랭킹 1위! 차무혁!”
짝짝짝짝짝짝-!
깔끔한 턱시도 차림의 10대 초반의 미소년, 이제는 그 얼굴이 징글징글할 정도로 익숙한 마우티 부락의 총괄 관리자 크레우스타가 무혁을 향해 손바닥이 벌겋게 변할 정도로 박수까지 쳐주며 환대를 했다.
“그게 바로 의지가 깨어난 마정인가?”
크레우스타 역시 무혁의 곁에서 통통- 뛰고 있는 통통이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인지, 마족이라 하더라도 의지가 깨어난 마정을 흡수할 수 없기 때문인지 크레우스타의 눈엔 단 한 톨의 욕심이나, 탐욕이 서려 있지 않았다.
오로지 순수한 호기심만을 담고 있었다.
“여기로 오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
무혁은 가장 먼저 시간의 탑 랭킹 1위의 보상인 본 드래곤의 뼈 10킬로그램과 100만 포인트부터 요구했다.
“물론이지! 우선 포인트부터.”
크레우스타의 대답과 동시에 무혁의 가슴에 새겨 넣은 악마의 족쇄가 검붉은 색을 뿌렸다.
[정상 처리 완료!]
[잔여 포인트 : 1,003,200]
시간의 탑에 들어가기 전에 남아 있었던 3,200포인트에다가 랭킹 보상에 따른 100만 포인트가 더해졌다.
‘얼떨떨하네.’
헬-라시온에서 포인트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기에 무혁은 살짝 흥분이 됐다.
하지만, 아직 흥분하기엔 너무나도 일렀다.
“이것들도 모두 정산해 줘.”
무혁은 곧바로 탑의 증표가 가득 찬 가죽 주머니들과 시간의 탑에서 죽은 이들이 남기고 간 표식, 배영철과 코우 신지, 하가세의 무기까지 모조리 크레우스타에게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