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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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43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43화
블랙 본 (1)
한참을 울고 나서야 무혁은 몸을 일으켰다.
좀비들과의 전투로 인해 온몸이 제 정상이 아니었지만,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기에 무혁은 힘겹게 몸을 움직여 마지막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전리품 수거.
코우 신지, 하가세, 배영철, 그리고 안소영까지.
죽은 이들이 남긴 모든 것을 챙겨야 한다.
무혁은 가장 가까운 배영철의 몸부터 뒤졌다.
몬스터 누적 킬 수가 저장되어 있는 시계부터 탑의 증표를 모아 놓은 가죽 주머니, 하나의 스킬 링과 가슴의 표식까지도 모조리 챙기는 무혁이었다.
대충 다 챙겼다 싶어 몸을 돌리려고 할 때, 배영철의 부서진 머리에서 작게 반짝이는 귀걸이 하나를 발견했다.
|어둠의 귀걸이|
· 별다른 특징이 없는 귀걸이다.
· 부서지지 않는다.
· 스킬, ‘시야를 가리는 은신’을 사용할 수 있다.
헬-라시온의 아티팩트들은 스킬을 담아 놨느냐, 고유 능력을 증가시켜 주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따로 등급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이거였군.”
무혁은 시야를 가리는 은신, 스킬도 확인했다.
|시야를 가리는 은신 – 일반 : 無등급|
· 어두운 곳에서만 은신이 가능하다.
· 시각에 의한 은신만이 가능하며, 소리와 냄새는 차단하지 못한다.
· 살기를 감추지 못하며, 살기가 노출될 경우 스킬이 해제된다.
· 스킬 성장과 조합이 불가능하다.
반쪽짜리, 아니 그보다도 더 못할 정도로 은신의 폭이 너무 좁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무혁은 곧바로 멀쩡한 오른쪽 귓불에 어둠의 귀걸이를 무식하게 찔러 넣었다.
생살이 뚫리는 고통이 따끔거리긴 했지만, 이 정도의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무혁은 꾹꾹- 눌러서 귀를 뚫어 기어이 귀걸이를 착용했다.
탁- 소리와 함께 안정적으로 귀걸이를 착용하고 나서야 무혁은 안소영의 시신으로 향했다.
“후우우…….”
처음 만났던 때부터 지난 열흘 동안 시간의 탑에서 함께 지냈던 일들이 다시 한 번 촤르르- 머릿속에 지나갔다.
무혁은 천천히 그녀의 시계부터 빼내고, 탑의 증표와 스킬 링까지 수거했다.
그 외에 그녀의 무기와 방어구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마지막으로 무혁은 안소영의 표식을 거둬야 하나를 두고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좀비들에게 훼손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까지 안소영의 가슴을 도려내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코우 신지와 하가세의 몸을 수색했다.
하가세 역시 상당히 많은 증표를 모아두었고, 스킬 링도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코우 신지의 시신에서도 역시 엄청난 증표와 스킬 링 세 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세 개의 스킬 링보다도 더 무혁을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이게 다 몇 개야?”
코우 신지의 몸에서 나온 11개의 주인 잃은 시계들을 바라보며 무혁은 눈을 껌뻑였다.
이걸로 시간의 탑에 들어온 모든 이들의 시계를 무혁이 독차지하게 된 것이다.
“누적 킬 수가 얼마나 될까?”
무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손에 들어온 시계들을 바라봤다.
설마하니 코우 신지가 죽은 이들의 시계를 모조리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무혁이었기에 얼떨떨한 기분이 먼저 들었고, 뒤이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의 떨림을 느껴야만 했다.
#
5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시커먼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철문 표면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악마의 형상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모습이 양각되어 있었었는데, 헬-라시온이라는 지옥에서 몇 개월을 지내지 않았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오줌을 지리며 뒷걸음질을 쳤을 정도로 섬뜩하고 괴기스러웠다.
끼이이이익.
무혁이 철문을 밀고 들어가자 정육점 불빛마냥 붉은 빛이 은은하게 퍼진 방 안에 열흘 만에 보는 소악마 케로우가 검은색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편하게 앉아!”
케로우는 자신의 맞은편에 놓인 소파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자 무혁은 절로 긴장이 풀어졌다.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지금 굉장히 당황스러워!”
말과 다르게 케로우의 표정엔 장난스러움이 가득했다.
“내가 지금까지 많은 강제 사냥을 진행해왔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 도대체 비결이 뭐야? 어떻게 경쟁자들을 모조리 싹- 다 죽여 버리고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야? 응? 혹시 그런 거야? 실력을 숨기고 있던 진짜 강자? 뭐 이런 거?”
말을 하곤 기대에 찬 아이처럼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케로우의 모습을 깨끗하게 무시하며 무혁은 가지고 있던 모든 시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시간의 탑 내부에서는 절대 빠지지 않았던 무혁의 시계 역시도 수월하게 쑥- 빠졌다.
“네가 할 일이나 해.”
무혁의 말에 케로우는 오- 무서운데- 라며 키득거렸다.
“어디 보자… 나도 굉장히 궁금했는데 과연 누적 킬 수가 몇이나 될까? 히히!”
케로우는 손가락만 까딱- 하는 걸로 시계들을 모조리 허공에 띄웠다.
이어서 펑-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시계가 하나, 둘 허공에서 폭발하며 사라졌다.
그렇게 하나, 둘… 스물일곱 개의 모든 시계가 폭발을 하고 나서야 케로우가 두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났다.
“와우! 이거 정말 엄청난데!”
믿을 수 없다는 듯, 케로우가 무혁을 바라봤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무혁은 케로우의 반응에 조금의 미동도 보이질 않았다.
그저 자신이 받게 될 보상이 궁금할 뿐이었다.
K [ 12,445 ]
무혁이 독식하게 된 총 누적 킬 수였다.
“랭킹 1위?”
담담한 무혁의 물음에 케로우가 당연하다는 듯 열렬하게 박수를 쳐주었다.
“물론! 기존의 랭킹 1위를 뛰어넘었으니까!”
시간의 탑 랭킹 1위.
무혁 스스로도 설마 이렇게까지 위대한 업적을 쌓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운이 따라준다 하더라도 랭킹의 중위권 정도가 최선일 것이라고 여겼으니까.
“랭킹 1위의 보상은 뭐지?”
미미하게 무혁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랭킹 5위의 보상이 화염 각투소의 심장이었으니까… 당연히 그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것이겠지?’
확신할 순 없지만, 화염 각투소의 심장에서 핵을 추출해 섭취한다면 단숨에 고유 능력 중 일부는 5등급으로 올라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격’의 차이가 크다는 소리고 현재 무혁의 능력으로는 감히 눈도 돌릴 수 없는 몬스터였다.
기대감에 한껏 부푼 무혁을 바라보며 케로우가 낄낄- 거렸다.
“역시 인간이란!”
욕망과 욕심, 그리고 이기심에 있어서는 악마들과 동일선상에 두어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인간이었기에 케로우는 무혁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선 랭킹 1위의 보상은 본 드래곤의 뼈 10킬로그램과 100만 포인트야! 어때? 죽이지? 막 소리치면서 환호하고 싶지? 마음껏 환호해!”
케로우의 말에 무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본 드래곤의 뼈라고?”
“그래! 그것도 10킬로그램이야!”
본 드래곤이라면 말 그대로 해골용이다.
앙상한 해골만 남아 움직이는 드래곤으로 헬-라시온에서도 최상위 몬스터 중 하나다.
일반적인 드래곤보다도 강력한 힘을 갖추고 있었기에 사실상 헬-라시온의 그 어떤 인간도 감히 정복하지 못한 몬스터다.
그런 본 드래곤의 뼈로 무구를 제작하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스갯소리로 본 드래곤의 뼈로 만든 무기 하나면 최상위 몬스터들은 물론, 일부 마족들마저도 도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공격을 성공시킬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처럼 대단한 본 드래곤의 뼈임에도 불구하고 무혁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른 걸로 바꿀 수 있나? 예를 들면 화염 각투소의 심장이나 뭐 이런 걸로.”
“엥?”
케로우가 무슨 말 같지도 않는 소리냐며 무혁을 바라봤다.
진심으로 너 바보냐- 라는 표정이 가득했다.
“일 대 일 교환은 내가 밑지는 거니까… 아니다.”
무혁은 자신이 생각해도 참 어리석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것이 본 드래곤의 뼈다.
반면, 화염 각투소의 심장은 모든 고유 능력이 4등급에만 도달해도 사냥을 할 수 있는 몬스터다. 물론, 희귀한 몬스터라서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몬스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기에 귀하디귀한 본 드래곤의 뼈를 화염 각투소의 심장과 맞바꾸겠다는 말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멍청한 소리 그만하고 새로운 랭킹 1위에 오른 두 번째 보상에 대해서나 들어.”
“보상이 또 있다고?”
“새롭게 랭킹에 이름을 올리면 추가 보상이 있지. 순위에 따라 다른데, 1위에 오르면 1등급 랜덤 박스를 보상으로 주지.”
“1등급 랜덤 박스?”
다시금 기대치가 화산 폭발하듯 솟구치는 무혁이었다.
케로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1등급 랜덤 박스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헬-라시온에 존재하는 모든 일등급 무구와 그에 상응하는 아티팩트, 그리고 그 외에 1등급으로 분류되는 모든 것들이 들어가 있는 박스야.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아주 간혹 가다 정말 재수가 없으면 ‘꽝’이 나오기도 해. 참고로… 알렉스는 꽝이 나왔었지. 큭큭큭!”
“꽝이라고?”
유독 ‘꽝’이라는 단어를 힘줘서 말하는 케로우였기에 무혁의 표정이 썩은 사과를 씹은 것 마냥 일그러졌다.
더불어 랜덤 박스에서 나오는 보상품은 판매를 하거나 그 누구에게도 양도를 할 수 없었다.
때문에 1등급 무구가 나오면 무조건 당사자가 사용해야만 하는데, 문제는 4등급부터 모든 무구에는 착용 조건이라는 것이 등급 별로 붙는데 아직까지 헬-라시온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중 1등급에 올라간 이가 없기에 1등급 무구가 갖고 있는 진정한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즉, 무혁 역시 만약 무구가 나온다면 먼 훗날에나 사용할 수 있는 ‘그림의 떡’이 된다는 사실이다.
‘추가 보상이라 이거지?’
선심 쓰듯 주는 추가 보상이라 이래저래 제한이 많았다.
“지금 줄까?”
케로우가 붉은 혀로 입술을 스윽- 훑으며 물었다.
케로우는 랜덤 박스를 개봉할 때 인간이 느끼는 짜릿한 긴장감을 지켜보는 걸 좋아했고, 그보다 더 좋은 건 기대감을 완전히 무너트리는 물건이 나왔을 때 절망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 어떤 쾌감보다도 높았다.
손바닥까지 슥슥- 비벼대는 케로우의 모습에 무혁은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갖고 랜덤 박스를 달라고 했다.
“좋았어!”
잔뜩 신이 나서 케로우가 허공에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테이블 위로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블랙홀처럼 짙은 검은색의 박스가 나타났다.
“박스 위에 손을 올려놓고 개봉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돼! 자! 어서 해 봐! 빨리빨리!”
흥분한 케로우의 재촉에 무혁은 오른손을 박스 위에 올려놓았다.
“개봉이라고 외치기만 해!”
“개…….”
무혁은 ‘봉’자를 외치기 전에 손을 뗐다.
“왜! 뭐하는 거야! 빨리 개봉하라니까!”
케로우가 붉어진 눈동자로 무혁을 노려보며 화를 터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혁은 크게 숨을 몇 번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너무 기대하지 말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니까. 이미 난 많은 것을 받았잖아? 그러니까 혹시라도 꽝이 나오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않는 거야.’
대단한 업적을 쌓아놓고 랜덤 박스 때문에 패배자처럼 축- 늘어질 순 없었다.
무혁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나서야 랜덤 박스 위에 다시 손을 올려놓았다.
“개봉!”
무혁의 외침과 동시에 박스에서 검은 빛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오오오오오-!”
랜덤 박스를 개봉한 무혁보다도 케로우가 더욱더 흥분된 얼굴로 소리를 질러댔다.
번- 쩍!
검은 빛이 폭발하듯 강하게 발광을 일으키고 나서야 테이블 위에 무언가가 새롭게 올라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