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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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8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8화
시간의 탑 (22)
“정말 괜찮은 걸까?”
이토가 돕지 않아도 되는 거냐며 코우 신지를 바라봤다.
무혁과 안소영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기보다는 내일을 위해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하다보니 나온 말이었다.
“라만병은 어차피 동료를 불러 모으지도 않으니까 상관없을 거야. 그리고 만약 죽는다면 뭐 그것도 그들의 운명이겠지.”
하가세는 무혁과 안소영이 있으나 마나 하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귀찮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했다.
“너무 늦어진다 싶으면 그때 가보도록 하지.”
코우 신지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기에 당장은 휴식이 우선이었다.
“그렇다면 뭐.”
이토도 그제야 마음을 놓고 편하게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반면, 3층으로 내려온 무혁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다가 아무도 따라 내려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히죽- 웃더니 안소영에게 말했다.
“최대한 빠르게 사냥하자.”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어서 다른 놈들이 내려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무혁은 그렇게 말했고, 안소영 역시 대충 어떤 의미인지를 눈치 채고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럼 어디… 최후의 만찬을 즐겨보실까?”
무혁은 라만병을 바라보며 입맛까지 다셔댔다.
#
[라만병의 핵을 섭취했습니다.]
[영구적으로 정마력이 0.27% 상승합니다.]
“드디어!”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하며 좋아하는 무혁의 모습을 보며 안소영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냈다.
“끝이야?”
“잠깐만!”
무혁은 그렇게 말하고 곧바로 자신의 고유 능력을 확인했다.
|차무혁(13차 지구인)|
· 연차 - 1년차
· 신분 - 라시온 식민(부락 식민)
· 체력 - 6등급(0%)
· 근력 - 6등급(0%)
· 순발력 - 6등급(0%)
· 지구력 - 6등급(0%)
· 정마력 - 6등급(0%)
정마력까지도 6등급에 올랐다.
무혁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환호하고 싶은 감정의 분출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시간의 탑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고유 능력이 6등급에 오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고유 능력이 모두 6등급으로 올랐다는 건 이제야 본격적으로 헬-라시온에서 적응을 완전히 끝마쳤다는 의미와 같았다.
소위 랭커라 불리는 상위 식민들은 일부 고유 능력을 2등급까지도 올려놨다고 하지만, 사실상 무혁이 그런 상위 식민들과는 만날 일이 거의 없었으니 당장 마우티 부락으로만 돌아가도 웬만한 2년차 지구인들보다도 강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대형 길드와 거대 가문의 보호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이들 앞에서는 여전히 숨을 죽여야 하겠지만.
“내 목적은 다 달성했는데… 사냥을 더 할까? 아니면 우리도 그만 쉴까?”
무혁의 물음에 안소영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래, 내일을 대비하자.”
의미심장한 무혁의 말에 안소영이 슬쩍 물었다.
“어떤 대비?”
무혁은 대답 대신 씨익- 웃기만 했다.
무혁과 안소영이 다시 4층으로 올라온 건 18시가 다 되어서였다.
덕분에 내려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견을 내던 이토의 입도 잠잠해질 수 있었다.
“휴우… 힘들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진짜 열심히 사냥을 했더니 온몸이 다 쑤시는 것 같네.”
무혁은 들으라는 듯 그렇게 말을 하고는 맨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5시간 동안 몇 마리나 사냥했지?”
이토의 물음에 무혁이 놀라지 말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18마리! 정말 치열한 사투의 연속이었지!”
무혁의 대꾸에 잠을 자는 것처럼 코까지 골고 있던 배영철이 실실-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더니 이윽고 웃겨 죽겠다는 듯 배까지 부여잡고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5시간 동안 18마리를 잡은 걸 자랑이라고 주둥아리를 털고 있다니! 내가 살다 살다 너처럼 병신 같은 놈은 처음 본다! 크핥핥핥!”
눈물까지 찔끔- 흘려대는 배영철의 모습에 무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안 자고 있었던 거야?”
무혁의 물음에 배영철이 곧바로 대꾸했다.
“네가 시끄럽게 떠들어서 방금 깼잖아. 피곤하니까 아가리 닥치고 조용히 있어. 아오 XX 놈, 간만에 웃었더니 배가 다 땡기네. 큭큭!”
다시 눈을 감아 버린 배영철을 향해 무혁은 대차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고는 이내 그럴 힘도 없다는 듯 뒤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작게 코를 골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안소영마저 무혁과 멀지 않은 곳에서 양 무릎을 가슴으로 모은 채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자, 코우 신지 일행도 침묵을 지키며 시간을 보냈다.
툭. 툭.
무혁은 자신을 건드리는 느낌에 천천히 눈을 떴다.
안소영이 이제 그만 일어나라는 듯 발끝으로 무혁을 가볍게 차고 있었다.
“동네 개도 아니고 손으로 좀 깨우지.”
“동네 개도 너보다는 둔하지 않겠다.”
어떻게 마음 편안하게 그렇게 잘 수 있냐는 듯 안소영이 타박에 가까운 시선을 보내자 무혁은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길 핍박하겠냐는 듯 낄낄- 거렸다.
한숨 잘 자고 일어났다는 듯 기지개까지 펴고 나서야 무혁은 시간을 확인했다.
9D [ 23 : 50 ]
이제 단 10분만이 남아 있었다.
무혁이 주변을 스윽- 돌아보니 배영철과 코우 신지 일행은 눈에 띌 정도로 무거운 표정으로 초조하게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워낙 무거워서 무혁도 함부로 입을 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정말 어제처럼 될까?”
무혁이 작은 목소리로 안소영에게 물었고,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알겠냐는 듯 고개만 흔들었다.
“만약에 말이야…….”
무혁은 잠시 말을 끊고 배영철과 코우 신지 일행을 바라보고는 더욱더 낮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어제처럼 다시 1층으로 돌아간다면 무조건 내 뒤에만 있어.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도 말고 그냥 나만 믿고 있어. 알겠지?”
안소영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냐는 듯 눈을 찌푸렸지만, 걱정할 것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무혁의 모습에 지그시-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55분이 되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배영철이 작은 원을 그리듯 빙글빙글- 몸을 돌며 사납게 찌푸린 얼굴로 연신 욕설을 뱉어내며 짜증을 부렸다.
58분이 되자, 하가세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거렸고 그는 축축하게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닦아대며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댔다.
59분이 되자, 무혁은 저도 모르게 안소영의 손을 꼭- 잡았다.
깜짝 놀란 안소영이 뭐하는 짓이냐는 듯 무혁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절대 내 뒤에서 떨어지지 마.”
무혁의 그 말에 안소영은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기만 했다.
그리고 드디어 모두가 초조하게 기다리던 마지막 1분이 지나갔다.
가장 먼저 눈앞에 보이던 계단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두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뒤이어 벌어질 일을 기다렸다.
하지만.
10D [ 00 : 01 ]
“…어제랑은 다른 건가?”
코우 신지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배영철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XX! 존나게 긴장했네! 뭐야? 결국 어제만 특별한 거였잖아?”
그렇게 말을 하며 배영철은 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일행들과의 거리를 벌였다.
모두 함께 1층으로 떨어졌다면 모를까, 4층에 남겨진 이상 더 이상 불편한 동행을 유지할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 서 있는 곳이 4층이니 5층으로 향하는 계단 정도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배영철과 마찬가지로 코우 신지 일행의 행동도 돌변했다.
이토가 대놓고 무혁과 안소영 쪽으로 돌아서며 경계 태세를 갖춘 것이다.
“왜 이래?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5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아야지? 안 그래?”
묘한 긴장감이 흐르자 무혁이 그렇게 말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시간은 많은데 그깟 계단 하나 찾는 게 뭐 대수겠냐? 물론, 너 같은 X밥 새끼는 좀 어렵겠지만.”
낄낄- 거리며 웃는 배영철의 모습에 무혁은 으름장을 놨다.
“배영철, 이 멍청한 새끼야!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여기서 내가 저들을 돕는다고 하면 넌 바로 X되는 거야!”
무혁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배영철은 여유로웠다. 아니, 같잖다는 듯 비웃음만 흘렸다.
“하여간 상황 파악도 못하는 저런 병신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았는지… 병신아! 내가 여기서 그냥 째버리면 저 새끼들이 널 가만히 둘 것 같냐? 지금 너는 같잖지도 않은 협잡질로 우리를 저울질 할게 아니라, 나한테 달라붙어서 도와달라고 애원을 해야 할 때야! 저 새끼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거 안 보여?”
배영철은 이토를 가리켰고, 무혁은 당황한 표정으로 이토와 다른 두 사람, 코우 신지와 하가세를 쳐다봤다.
무혁의 당황한 얼굴에 이토는 무표정으로 대응했고, 하가세는 오로지 배영철의 움직임만을 주시했다.
코우 신지는 무혁의 얼굴을 힐끔- 거리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음… 진짜로 당황한 것 같기는 한데.’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린 것처럼 크게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무혁의 모습에 코우 신지는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던 무혁에 대한 의심이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그, 그러지 말고 우리 다 같이 여길 빠져나가자! 지금까지 힘들게 버텼는데 이제 와서 서로 싸워서 뭐가 좋겠어? 어제처럼 모두 다 같이 으쌰으쌰 해서 살아남는 거야!”
“그건 너 따위가 정할 일이 아니지! 어제 하루 종일 우릴 가지고 놀아놓고 오늘도 그러겠다고? 개새끼! 넌 내 옆에 있었으면 모가지를 바로 따버렸어! 어쨌든 쪽발이 새끼들한테 눈물 콧물 짜면서 애원을 하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매달리든 알아서 해라. 나는 먼저 간다! 푸하하하하!”
배영철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가자 하가세가 손에 쥔 창을 허공에 휘두르며 외쳤다.
“이대로 달아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야?”
하가세의 물음에 코우 신지가 무혁에게 시선을 고정한 상태로 대꾸했다.
“우선 이쪽부터 해결해야지.”
“뭐, 뭐야? 지, 진짜 우리를 죽이겠다고?”
무혁은 뒷걸음질을 치면서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코우 신지부터 잡는다!’
겉모습과 다르게 무혁은 냉정하게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상대를 정해놓고 있었다.
무혁이 제아무리 모든 고유 능력이 6등급으로 올랐다 하더라도 한꺼번에 셋을 상대하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스킬의 부재가 가장 치명적이었다.
공교롭게도 모든 고유 능력이 6등급으로 올라서면서 무혁이 사용할 수 있던 보석 도마뱀의 위장 스킬과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 모두 사용이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더 정확하게는 사용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고유 능력의 정밀 수치들이 모두 0퍼센트였기에 조정을 할 것도, 두 배로 증폭이 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괜찮은 스킬이 있기만 했어도…….’
아쉽지만 스킬은 중앙탑으로 가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정도로 익힐 수 있다.
문제는 지금 당장의 상황을 이겨내는 것인데, 모든 고유 능력이 6등급으로 올라섰으니 어떻게든 싸움에 있어서 밀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 믿었다.
관건은 뒤에 서 있는 안소영이 얼마나 적절하게 무혁을 보조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안소영을 믿어야 해!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해 볼만 해!’
무혁이 다부지게 마음을 잡는 사이, 코우 신지가 의외의 말을 꺼내놓았다.
“살고 싶나?”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냐는 듯 무혁이 곧바로 대답했다.
“다, 당연하잖아!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가진 걸 다 내놔라. 그럼 목숨은 살려주지.”
“뭐?”
코우 신지는 가볍게 자신의 가죽 주머니를 툭- 쳤다.
탑의 증표를 내놓으라는 뜻이었다.
“그, 그건…….”
무혁이 울상이 되어 말을 잇지 못하자 코우 신지가 위협적으로 자신의 허리춤의 일본도를 툭툭- 쳤다.
“그깟 증표 따위가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건가?”
무혁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는 이내 체념한 표정으로 가죽 주머니를 코우 신지에게로 던졌다.
“이것뿐인가?”
대충 봐도 가죽 주머니 속에는 2백여 개도 안 되는 증표만이 들어가 있었다.
“여긴 비었어. 봐봐. 그리고 내가 그것 말고 어떻게 더 모을 수 있었겠어?”
무혁은 가죽 주머니와 겉모습이 똑같은 공간 주머니의 겉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아무것도 없다는 걸 어필했다.
코우 신지도 설마 별다른 특징 하나 없는 가죽 주머니가 공간 주머니일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소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너도 살고 싶겠지?”
안소영은 무혁을 바라봤다.
‘지금 뭐하는 거야?’
‘그렇게 보고 있지 말고 너도 탑의 증표랑 스킬 링 같은 중요 물품은 나한테 다 맡겨. 그리고 한 2백 개 정도만 남겨둬.’
‘왜 그래야 하는데?’
‘겨우 백 킬을 달성했다고 했잖아.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우선은 최대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나머지는 숨겨놔야지. 이 공간 주머니가 다른 가죽 주머니와 겉모습이 차이 없으니까 의심하는 일은 없을 거야. 개수 정확하게 세어 놔. 나중에 그대로 돌려 줄 테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네 실력이면 해 볼만 하지 않아?’
‘쉬운 길을 두고 구태여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잖아.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나 좀 믿고 따라와.’
어제 라만병을 모두 잡고 쉬는 동안 무혁이 했던 행동과 말을 떠올리며 안소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가죽 주머니를 코우 신지에게 던졌다.
시간의 탑에 들어와 지금까지 획득했던 수천 개의 증표들과 스킬 링은 모조리 무혁의 공간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기에 표면적으로 봤을 때, 무혁과 안소영의 다른 가죽 주머니들은 굳이 확인해 볼 것도 없을 정도로 홀쭉하게 비어 있었다.
“이제 앞장 서.”
“뭐?”
“너희가 앞에서 길을 뚫는다. 어제처럼 도망만 치는 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죽을힘을 다해서 싸워라. 희망을 갖고 싸워. 너희가 끝까지 잘 싸워서 계단을 발견하면 무사히 중앙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코우 신지의 말에 무혁은 비겁한 놈이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터덜터덜-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안소영은 답답해서 죽겠다는 듯, 차라리 화끈하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낫지 않겠냐는 듯 무혁을 재촉했다.
“아직은 아니야. 우선은 놈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자고.”
무혁의 말에 안소영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의 곁에 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