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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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6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6화
시간의 탑 (20)
“100만?”
무혁이 깜짝 놀라서 배영철을 바라보자 그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낄낄- 대며 대꾸했다.
“우리랑 붙어서 나만 살아남았으니까. 저쪽도 셋이 죽었고. 죽은 놈들의 것을 싹 챙겼으면 대략 그 쯤 되지 않겠어? 아니지, 어쩌면 여기 없는 중국 놈들하고 다른 인간들것까지 모조리 챙겨놨을지도 모르지.”
배영철의 말 대로였다.
현재 코우 신지와 이토, 하가세는 탑의 증표를 각각 2천 개 이상씩 소지하고 있었다.
배영철 일행이 죽으면서 남긴 것과 일본인 동료들이 죽으면서 남긴 것들을 공평하게 배분했기 때문이다.
시계야 누적 킬 수를 코우 신지에게 몰아주기로 했지만, 탑의 증표는 아니었기에 중앙탑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만 한다면 세 사람은 각각 2백만 포인트 이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코우 신지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탑의 증표 중 절반을 하가세에게 내주겠다고 했으니 하가세로서도 더 이상 자신만의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차후 반드시 배영철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코우 신지의 확답도 받아 놓았지만, 그런 것까지는 밝힐 필요가 없었다.
무혁도 대충 상황을 이해하고는 잠잠해진 하가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피를 나눈 부모형제라 하더라도 돈 앞에서는 생판 모르는 남이 되기도 하는데 뭐.’
이미 죽어 버린 사람들의 복수보다는 헬-라시온이라는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득이 되는 쪽을 선택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는 무혁이었다.
“그럼 정리가 됐으니까 계단을 빨리 찾아볼까?”
무혁의 말에 코우 신지가 배영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두에는 네가 서라.”
“뭐라고?”
입이 근질근질 한 듯 배영철이 상스러운 욕을 내뱉으려고 하자, 무혁이 재빨리 코우 신지의 의견에 힘을 보태었다.
“좋은 생각이야. 배영철이 선두, 그리고 너희가 중간, 마지막으로 우리가 후방을 맡는 게 딱이겠어.”
코우 신지는 무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 배치를 이렇게 해놓으면 어느 쪽도 쉽게 배신을 할 수가 없었으니 이보다 더 나은 배치는 나올 수가 없었다.
다만.
“XX 새끼들!”
선두에서 싸워야 하는 배영철만이 불만족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무혁과 코우 신지가 합의를 본 이상 배영철로서는 반박해 봐야 통하지도 않았고, 더 좋은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었기에 이를 까득까득- 갈아붙이며 앞장 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리 배치까지 끝나자 계단을 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 도대체 꿍꿍이가 뭐야?”
안소영은 무혁의 곁에서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도록 아주 작게 속삭였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붙어서 속삭이는 안소영으로 인해 무혁은 잠시 흠칫- 하고 놀랐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꿍꿍이는 무슨. 그런 거 없어.”
“퍽이나 꿍꿍이가 없겠다.”
절대 믿지 않는다는 안소영의 반응에 무혁은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듯 어깨만 으쓱거리곤 말았다.
1층은 타락 드워프가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길을 뚫고 나가는 것엔 조금도 문제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선두에 선 배영철의 무력도 높았지만, 뒤에서 받쳐주는 코우 신지를 비롯한 일본인들의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었기에 사실상 후방의 무혁과 안소영은 그들의 뒤를 졸졸- 쫓아가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다.
“XX! 개새끼야! 할 일 없으면 증표라도 꺼내!”
배영철이 뒤에서 아무것도 안하면서 쫄래쫄래 쫓아오기만 하는 무혁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코우 신지 일행도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버스에 무임승차한 무혁과 안소영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만큼은 배영철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슬쩍 죽은 타락 드워프의 시체를 옆으로 밀어 놓음으로써 자신들의 의지를 확고하게 전달했다.
“좋게, 좋게 말하면 될 걸 왜 욕을 하나? 하여간.”
무혁은 그 정도야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한다는 듯 소매까지 접어 올리며 나섰다.
타락 드워프의 시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탑의 증표를 꺼내려던 무혁이 아주 뻔뻔스럽게 고개를 들고 배영철과 코우 신지를 향해 외쳤다.
“증표는 공평하게 앤 분의 일로 배분하면 되는 거지?”
“…나 원 참. 뭐 저런 거지발싸개 같은 새끼가 다 있어?”
배영철의 말에 코우 신지 일행 역시 비슷한 생각이라는 듯 무혁을 쳐다봤다.
“왜? 싫어? 그러면 니들이 꺼내던지. 열정 페이 따윈 없으니까 노동력 착취할 생각 하지 마.”
뻔뻔한 무혁의 반란에 배영철은 진심으로 그 얼굴을 짓뭉개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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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네 몫이야.”
무혁이 내미는 탑의 증표를 안소영은 됐다는 듯 거부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뒤만 따라가는데 증표까지 받을 순 없어.”
난 너처럼 뻔뻔하지 않아- 라는 표정이 역력한 안소영을 바라보며 무혁이 혀를 찼다.
“이거 공평하게 배분해 봐야 몇 개나 되겠어? 고작 30개나 될까? 그거 저놈들이 다 가져가서 따로 나눈다 하더라도 고작 한 사람 당 10개 정도야. 꼴랑 1만 포인트다. 부담 가질 것도 없고, 이깟 것 몇 개 가져간다고 해서 저놈들한테 고마워 할 필요도 없어. 그리고 이건 정당하게 우리도 노동력을 제공하고 받는 몫이니까 당당한 거라고.”
그렇게 정당성을 내세운 무혁이 다시 증표를 안소영에게 내밀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받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거 내가 갖는다?”
무혁의 말에 안소영은 그러던지 말던지- 라며 혀를 찼다.
“그럼 고맙게 받겠습니다.”
실실- 웃으며 무혁은 냉큼 안소영의 몫으로 분배된 탑의 증표를 자신의 가죽 주머니에 담았다.
“꼴랑 1만 포인트라면서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안소영의 핀잔에도 무혁은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그렇게 소득을 얻고 나자 기분이 좋아진 무혁은 시계를 확인했다.
9D [ 03 : 48 ]
“시간 널널하네.”
무혁은 그렇게 여유로운 얼굴로 시원스럽게 길을 뚫으며 계단을 찾고 있는 배영철과 일본인들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시간의 탑에 들어오고 항상 안소영과 단둘이서 계단을 찾아야만 했다.
하루 이틀 정도를 제외하면 그리 빡빡했던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여유롭게 계단을 찾았던 적은 거의 없었기에 낯설기만 한 여유가 무혁에겐 상큼한 피로회복제라도 된 것 같았다.
“저놈들은 매일 이렇게 다녔을 거 생각하니 부럽긴 하네.”
“그럼 지금이라도 일행으로 껴달라고 하던지.”
“이제 와서 내가 뭐가 아쉬워서?”
“네가 너무 부러워하니까.”
“여유가 부럽긴 하지만, 대신 손해 보는 것도 많잖아. 난 너랑 같이 다닌 걸로도 충분히 만족해.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정말 환상의 짝꿍이었어. 그렇지 않아?”
철저하게 계산적인 무혁의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소영은 괜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걸 억지로 참아내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환상의 짝꿍은 무슨…….”
“왜? 이 정도면 정말 환상의 짝꿍이지! 나는 너만 괜찮다면 중앙탑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함께 다니고 싶을 정도라고.”
무혁의 기습적인 고백에 안소영의 심장이 덜컥-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 역시 무혁이라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남자라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실력적으로 점점 벌어진 두 사람의 격차로 인해 다시는 함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무혁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니 안소영은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묘한 감정이 작게 소용돌이치는 것만 같았다.
“생각해 보고.”
그냥 해 본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소영은 더욱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 진지하게 잘 생각해 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무혁은 안소영에게 괜한 부담감을 주기 싫어 그렇게만 말하고 말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헬-라시온에서 꽁꽁- 얼어붙었던 인간에 대한 불신이 서서히 녹아내렸다.
‘이 남자라면… 무혁이라면 최소한 날 배신하지는 않을 거야.’
안소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안소영의 수줍었던 미소도 곧바로 지워지고 말았다.
“너 육가문 소속이었지?”
잠시 쉬었다가 가자던 배영철이 관심을 준 사람은 안소영이었다.
육가문 소속이었다는 말에 코우 신지 일행도 안소영에게 관심을 가졌다.
마우티 부락에서 육가문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우티 부락에서 육성하고 있는 13차 지구인이 없었기 때문이지 헬-라시온 전체적으로 봤을 때 육가문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때문에 흑룡 길드와 무사시 가문 소속의 일원인 배영철과 코우 신지 일행으로서는 안소영이 자신들과 비슷한 규모의 거대 가문 소속원이었다는 사실이 꽤나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 저 여자 일주일의 생존 기간 동안 꽤 두각을 나타냈었지.”
코우 신지의 중얼거림에 하가세와 이토가 기억을 더듬었고, 이윽고 찾아냈다.
처음 맞이한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몬스터와 싸움을 벌였는데, 그중 유일한 여자는 안소영뿐이었다.
워낙 수개월이 지난 일이라 바로 떠오르지 않았는데, 생각을 뒤져보니 확실히 외모가 낯이 익었다.
“육가문이라면 우리 무사시 가문과는 꽤 사이가 좋지 않은 곳이네.”
이토의 말에 하가세가 흥- 하며 콧바람을 뿜어냈다.
당장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배영철의 버팀목처럼 서 있는 무혁과 안소영의 존재는 그들이 어디 소속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복수를 훼방 놓고 있는 걸림돌일 뿐이었다.
코우 신지 일행이 안소영의 기억을 찾는 사이, 그녀는 자신에게 말을 붙이며 괜한 관심을 주는 배영철이 무척이나 탐탁지 않았다.
대꾸조차 하지 않고 날카롭게 쏘아보는 안소영의 날 선 시선에도 배영철은 능글맞게 웃었다.
“그 흉터 왜 지우지 않고 있는 거지? 꽤나 예쁜 얼굴을 그렇게 훼손하는 건 우리 같은 남자들에게는 꽤 안타까운 일이라고. 중앙탑으로 돌아가면 내가 고쳐줄까?”
중앙탑이라면 포인트만 지불하면 그깟 흉터 따위 거짓말처럼 사라지게 할 수 있었기에 배영철은 은근한 어조로 그렇게 추파를 던졌다.
“필요 없어.”
단칼에 거절하는 안소영의 모습에도 배영철은 여전히 능글거렸다.
“부담가질 것 없어. 난 정말 아무런 뜻도 없어. 순수한 의도라고.”
안소영은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대꾸조차 하지 않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설마 이정환 때문인 거야?”
이정환이라는 이름이 배영철의 입에서 나오자 안소영의 눈에서 불꽃이 팍! 튀었다.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죽여 버리겠어.”
살기 가득한 모습으로 칼자루에 손을 가져가는 안소영의 모습에서도 배영철은 큭큭- 거리며 웃기만 했다.
애초부터 배영철에게 안소영 따위는 아무리 날카롭게 손톱을 세운다 하더라도 애교떠는 암고양이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안소영과 싸움을 벌여서 자신에게 득 될 것이 없다는 걸 알기에 배영철은 자신의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다분히 장난스러운 행동이었기에 안소영은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며 배영철만 노려봤다.
‘이정환이 누구야? 누군데 저렇게 화가 난 거지?’
무혁이 의문스러워하는 사이, 의외의 곳에서 의문이 풀렸다.
“이정환? 육가문의 지부장?”
하가세였다.
안소영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하가세의 입은 빠르게 열렸다.
“그러고 보니 몇 개월 전에 육가문의 지부장이 어떤 여자를 건드리려다가 고자가 될 뻔했다고 했는데… 그게 너였군.”
하가세의 말에 무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안소영은 수치심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으며, 손도 안 되고 코를 풀어버린 배영철은 재밌다는 듯 연신 낄낄- 거렸다.
‘정리해 보면 이정환인지 뭔지 하는 발정난 개새끼가 자신의 일원인 안소영을 건드리려고 했다는 거지? 얼굴의 상처도 그때 난 거고, 이정환이라는 놈도 꽤나 호되게 당했고?’
그제야 무혁은 예전에 육가문에서 왜 나왔냐는 물음을 했다가 안소영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가 갔다.
여자로서 차마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수치스럽고도 오욕스러운 일을 당했으니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고로 상처는 오랫동안 두고두고 기억하는데 아주 좋은 거울이 되는 법이지.”
배영철은 그렇게 말하고는 의도적으로 안소영과의 거리를 벌였다.
“개자…….”
의도적으로 자신의 치부를 들어냈다는 걸 알기에 안소영이 배영철을 향해 칼을 뽑으려고 하자 곁에 있던 무혁이 그녀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이거 놔- 라는 표정으로 안소영이 무혁을 노려봤다.
“지금 여기서 싸움이 벌어지면 좋을 것 없어. 참아.”
자신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무혁으로 인해 안소영은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려들었다.
배영철로 인해 활활- 들끓었던 분노가 이해하지 못하리만큼 차갑게 식어 버리면서 다른 의미로 얼굴이 붉어졌다.
“이, 이거 놔.”
무혁과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안소영은 그가 잡고 있는 팔을 뒤로 뺐다.
“계단만 찾으면 돼. 계단만 찾으면… 모든 게 다 끝나.”
무혁은 낮은 음성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과 안소영을 보며 연애하냐- 라며 비아냥거리고 있는 배영철을 향해 비틀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런 무혁을 코우 신지가 착- 가라앉은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놈이야. 아니, 수상한 놈이야.’
무혁의 행동 하나, 하나가 묘하게 코우 신지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느낌은 결코 좋지 않다.
대놓고 살기를 풀풀- 풍겨대는 배영철도 문제였지만,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무혁 또한 코우 신지로서는 경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 과거사도 재밌게 알아봤으니까 이제 그만 움직여야지?”
여전히 낄낄- 거리며 배영철이 앞장을 서기 시작했다.
코우 신지 일행도 그런 배영철의 뒤를 따르며 어서 빨리 계단이 눈앞에 나타나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