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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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5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5화
시간의 탑 (19)
8D [ 23 : 59 ]
이제는 초를 다투고 있었다.
‘몇 초가 남은 거야? 젠장!“
무혁은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곁에서 나란히 입을 악물고 달리고 있는 안소영 때문이라도 무혁은 혼자서는 속도를 높일 수도 없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괜히 들리지도 않는 시계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았다.
‘모퉁이까지 40미터! 모퉁이를 돌고 나면 계단까지 대략 50미터! 넉넉하게 10초면 충분해!’
일직선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90미터 가량을 주파하는 데, 10초면 충분했다.
그나마도 직각으로 꺾이면서 반원을 그리듯 둥그렇게 돌아야 했기에 10초였지, 일직선이었다면 7초도 넉넉할 정도로 이미 인간의 한계는 넘어선 무혁과 안소영의 신체 능력이었다.
타다다다다다닥-!
두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혁과 안소영은 내달렸다.
모퉁이 앞에서 속도를 급격하게 줄였고, 다시 반원 형태의 굴곡진 길을 따라서 속도를 높였다.
“보인다! 보인다!”
무혁은 눈앞에 나타난 계단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제 몇 초나 남았는지 모른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계단을 오르던 중에 리셋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사라져버리려나?’
무혁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로 머릿속을 어지럽히면서도 계단을 밟는 데 성공했다.
목표는 4층!
4층에서 미리 계단을 확보해놓고 올라오는 경쟁자들을 맞이하겠다는 것이 무혁의 계획이었기에 그와 안소영은 주저 없이 4층을 향해서 내달렸다.
그렇게 3층을 지나쳐 4층으로 향할 때였다.
콰르르르르르르르릉!
굉음과 함께 눈앞에서 계단이 사라져버렸다.
“아, 안 돼!”
일고여덟 계단만 밟으면 4층으로 들어설 수 있는데, 갈 수가 없었다.
당황한 무혁과 안소영이 서로를 바라보는 사이 그들의 발밑으로도 계단이 빠르게 없어지더니 이윽고 두 사람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가 아래로 빠르게 추락을 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무혁과 안소영은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졌고, 이윽고 딱딱한 바닥에 쿵- 소리와 함께 널브러지고 말았다.
“크으윽!”
높이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충격은 크지 않았다.
정신적인 충격이 컸기에 당황스러울 뿐,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은 별 것 아니었다.
“젠장! 이런 식으로 리셋이 될 줄이야!”
무혁이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조심스럽게 안소영의 눈치를 살폈다.
이 지경이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혁에게 있다 보니 안소영을 볼 낯이 없었다.
그렇게 무혁이 안소영의 눈치를 살피던 때에 머리 위에서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악!”
“아아아악!”
“뭐, 뭐야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비명 소리에 무혁과 안소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 위를 바라봤다.
천장이 시커멓게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곳을 통해 사람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쿵쿵쿵쿵!
정확하게 4명의 사람이 아래로 떨어졌다.
우습게도 신체 능력이 모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도 제대로 된 착지를 하지 못했다.
“XX! 뭐 같네!”
가장 먼저 거친 욕설과 함께 신경질을 부리는 인간은.
“배영철!”
무혁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배영철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안소영 역시도 어느새 무혁과 나란히 서서 배영철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라? 이 X밥 새끼! 아직도 용케 살아 있었네? 너 이 개새끼… 존나게 반갑다?”
배영철은 무혁의 모습에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보면서도 입가에 기묘한 미소를 뗬다.
“하가세!”
“놔! 저 개자식을 죽여 버리겠어!”
무혁과 배영철이 재회를 하는 순간, 한쪽에서는 눈이 뒤집힌 하가세가 배영철을 죽이겠다고 달려들려는 걸 이토가 가까스로 말리고 있었고, 그 곁에 서 있는 코우 신지는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느라 바빠 보였다.
“이것 봐라? 상황이 진짜 존나게 X같은 게… 재밌네?”
배영철은 자신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나눠서 서 있는 무혁과 안소영, 코우 신지 일행을 바라보며 킥킥- 거리며 웃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이 절반, 묘한 기대감과 흥분감이 절반.
무혁의 진심이 딱 그랬다.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좋기는 한데…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눈에 뻔히 보이는 대치 상황이었기에 무혁은 상황을 파악할 필요도 없이 빠르게 머리부터 굴렸다.
상당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배영철과 일본인 무리를 살펴보며 가장 자신에게 이득이 될 전개를 머릿속에 그려보기 시작했다.
무혁이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코우 신지도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다.
‘완전히 꼬여 버렸군.’
코우 신지의 머릿속을 가장 복잡하게 만드는 원흉은 다름 아닌 하가세였다.
진짜 자신의 친형제라도 죽인 원수를 만난 것처럼 눈이 뒤집혀 버린 하가세였기에 그를 말리는 것이 최우선이었는데, 방법이 쉽지 않았다.
‘저쪽 상황도 딱히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같은 한국인이니 우리에겐 무조건 불리하겠군.’
여기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코우 신지는 배영철의 무력도 부담스러웠지만, 도주하기 직전에 사용했던 스킬에 가장 많은 신경이 쓰였다.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던 강렬한 빛을 뿜어냈던 스킬은 아직까지도 코우 신지를 두렵게 만들었다.
만약, 배영철이 노무타가 아닌 자신을 죽이고자 했었다면?
‘죽었겠지.’
그래서 두렵다.
막을 수 없었다는 무기력한 공포가 코우 신지로 하여금 하가세가 그토록 복수를 주장해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다.
한편으로는 배영철이 도주하며 사용했던 강력한 스킬이 일회성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막강한 스킬을 어째서 도주하는 데 사용하고 그쳤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으니까.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확률은 높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확률에 목숨을 걸고 싶지 않은 코우 신지였다.
“이거 놔! 복수를 할 절호의 기회라고! 가와무세, 노무타, 미나카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극도로 흥분한 하가세를 붙잡은 이토는 계속해서 그를 진정시켰다.
“하가세! 진정해! 우선은 진정하라고!”
“솔직하게 말해! 너와 신지는 애초부터 복수 따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지? 그렇지?”
“그렇지 않아! 우리도 복수를…….”
“지금이 그 기회잖아! 완벽한 기회! 놈은 혼자라고!”
“저들도 같은 한국인이야! 저들이 돕는다면 어쩌려고!”
“상관없어! 같은 숫자라면 우리가 이길 테니까! 아니! 내가 저 개자식만큼은 반드시 죽일 테니까 너와 신지가 나머지 둘만 막고 있어!”
잔뜩 흥분한 하가세를 더 이상 혼자서는 막을 수 없다는 듯 이토가 코우 신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가세, 여긴 1층이다. 여기서 만약, 우리들 중 한 사람이라도 부상을 당하거나, 죽는다면 아니,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진다면 남은 사람은 혼자서 5층으로 오르기 쉽지 않다. 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모두가 다 죽는 것이 아니라면 우선은 진정해라.”
코우 신지의 말에 하가세가 죽긴 왜 죽냐고 반박하려고 할 때, 무혁이 불쑥 끼어들었다.
“난 그쪽 말에 적극 동의!”
무혁의 갑작스런 개입에 하가세가 무서울 정도로 눈알을 부라렸다.
코우 신지는 의외로 말이 통할 것 같다는 생각에 호의적인 미소를 한 번 지어보였다.
그리고 배영철은 같잖다는 표정으로 무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야이- 새끼야, 여긴 너 같은 X밥이 낄 자리가 아니야. 아가리 조용히 닥치고 내 뒤에 얌전히 서 있어.”
“배영철, 상황 파악이 안 돼? 여기서 내가 저쪽을 도와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무혁이 히죽- 웃으며 그렇게 묻자, 배영철이 낄낄- 거리며 대꾸했다.
“뭐가 어떻게 돼? 너부터 내 손에 뒈지는 거지. 어차피 너 따위 X밥한테는 도움 따위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헛소리 씨불이지 말고 아가리 닥치고 있어. 형이 슬슬 화가 나려고 하니까.”
배영철의 무섭도록 살벌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무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래? 그럼 어디 존나게 싸워봐. 우리는 뒤로 빠져줄 테니까. 그쪽! 우리는 뒤로 빠질 건데 설마 우리한테 칼을 들이대지는 않겠지?”
무혁의 대찬 발언에 배영철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코우 신지보다도 앞서서 하가세가 대뜸 소리쳤다.
“나를 믿어라! 나 가와시마 하가세가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하가세의 외침에 무혁은 어쩠냐는 듯 배영철을 다시 한 번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저 XX 새끼가 뒤지려고!’
배영철은 속에서 열불이 터졌지만, 진짜로 무혁이 자신을 돕지 않는다면 아니 그를 인간방패로도 사용할 수가 없어진다면 일본인들과의 싸움이 상당히 힘겨웠기에 우선은 한 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강무혁! 왜 이래? 외국에 나가면 같은 민족끼리 돕고 살아야지! 지난 일은 다 깨끗하게 잊고 우리 사이좋게 지내보자. XX, 까놓고 말해서 저 새끼들이 날 제거하고 널 가만히 둔다는 보장이 어딨어? 안 그래?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놈들이 일본 놈이라는 소리도 못 들어봤냐?”
배영철이 회유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자 하가세가 다시금 외쳤다.
“그런 일은 절대 없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너희를 보호하겠다!”
“닥쳐! 이 쪽발이 새끼야! 주둥이만 나불대는 걸 어떻게 믿으라고! 니들은 태생부터가 믿을 구석이라고는 발톱의 때만큼도 없는 얍삽한 놈들이야!”
독도도 지들 땅이라고 우기는 더러운 새끼들- 이라는 말까지 내뱉으며 배영철이 본의 아니게 애국열사처럼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자 무혁은 참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하면서 의미 없는 말싸움을 끊기 위해 끼어들었다.
“워워- 이제 그만 진정 좀 해. 그리고 배영철, 내 이름은 강무혁이 아니라 차무혁…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어쨌든 생각해보니까 나도 굳이 네가 여기서 저들에게 죽으면 나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건 사실이니까…….”
무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영철은 돌대가리가 아니면 당연히 그래야지- 라며 웃음을 보였고, 하가세는 빌어먹을 한국 놈들- 이라는 욕설을 내뱉으며 무혁을 노려봤다.
하가세의 살벌한 눈빛이 자신에게 이어졌지만, 무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코우 신지를 향해 말했다.
“그쪽이 대장 같은데 어때? 이대로 여기서 사생결단을 내서 다 죽고 싶지는 않겠지? 솔직히 말해서 나랑 이 친구는 지난 8일 동안 쥐 죽은 듯이 지내면서 겨우겨우 킬 수만 채웠어. 이제 끝이 보이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거든? 너희들 원한이야 내 알 바 아니고, 나랑 이 친구는 그냥 무사히 탑만 빠져나가면 돼.”
무혁의 말에 코우 신지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상황은 딱! 맞아 떨어지는데 묘하게 무언가가 기분에 거슬린다.
그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봤지만 당장은 알 수가 없었다.
이내 코우 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나 역시 탑을 빠져나가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라서 여기서 의미 없는 싸움은 원하지는 않는다.”
“신지!”
하가세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지만, 코우 신지는 여전히 무혁만을 바라봤다.
“자, 이제 배영철 네 차례야. 계단을 찾을 때까지 괜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분위기 상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무혁이 분명했다.
‘저 따위 X밥 같은 새끼한테 끌려가게 될 줄이야…….’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래 봐야 꼴 같지도 않은 대장 놀이가 얼마나 가겠냐는 듯 배영철은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기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래, 좋아. 약속하지. 그런데… 저기 발광하는 놈은 어떻게 할 건데?”
배영철은 코우 신지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그건 내가 해결한다.”
코우 신지는 그렇게 말하고 하가세에게 다가가 뭐라고 속닥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으락푸르락하는 하가세였지만, 코우 신지가 계속해서 뭐라고 속삭이자 점점 하가세의 표정이 변하면서 이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상황이 해결되었다.
“됐나?”
코우 신지의 물음에 배영철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렇게 너희들끼리 비밀스럽게 대화를 나누면 안 되지. 어떻게 해서 저놈이 잠잠해졌는지 말해줘야 하지 않겠어?”
배영철의 말에 무혁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어떤 작당 모의를 했는지 알 수 없었으니 그에 대한 의문점을 풀지 않고서는 찝찝하게 이대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진 탑의 증표 중 절반을 하가세에게 주겠다고 했다.”
코우 신지의 대답에 무혁은 그게 얼마나 되기에 저렇게 쉽게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배영철은 생각이 달랐다.
“100만 포인트 정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