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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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4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4화
시간의 탑 (8)
“이 X발! 개X같은 놈이 어디서 감히!”
거친 음성과 함께 좀비의 가슴팍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샛노란 빛 무리가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폭발의 위력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좀비의 상체가 뒤로 흔들리는 정도에 그쳤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곧바로 상스러운 욕설과 함께 좀비의 머리통을 노리고 한 자루의 칼날이 휘둘러졌다.
칼날에는 옅은 붉은 막이 뒤덮여 있었는데, 그 위력은 좀비의 머리통을 깨끗하게 반으로 갈라 버릴 정도로 대단했다.
“하아… 돌아버리겠네!”
좀비의 머리통을 깨끗하게 갈라버린 배영철은 자신의 왼쪽 팔뚝을 바라보며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좀비가 휘두른 손에 팔뚝에 상처를 입었는데, 문제는 피부의 색이 어느새 녹색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배영철은 또다시 욕설을 내뱉으며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가죽 주머니를 뒤져 독성을 제거시켜주는 연고를 꺼내서 옅게 상처에 바르기 시작했다.
“으으… 저도 연고 좀…….”
신음과 함께 한 남자가 배영철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남자의 옆구리는 흉측할 정도로 살점이 뜯겨져 나가 있었고, 주변 피부는 완전한 녹색으로 변해서 핏물까지도 녹색을 띄고 있었다.
“…씨.”
배영철은 으르렁거리듯이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주변 시선 때문에 하는 수 없다는 듯 연고를 내밀었다.
푸욱!
“이 XX놈아! 조금만 써도 돼!”
하나 밖에 없는 연고를 제 멋대로 맘껏 쓰려는 남자에게 배영철은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주먹까지 치켜들었다.
남자가 움찔- 하며 멈춰 버리자, 배영철은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모아진 주변 시선에 파르르- 눈을 떨어보이곤 억지로 웃으며 씹어 먹듯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많이 쓴다고 약효가 좋아지는 게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도 위급할 때 함께 써야 하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조금만 써. 조금만.”
배영철은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줘가며 그렇게 말했고, 그제야 주변 사람들도 원망스럽게 연고를 많이 사용한 남자를 노려봤다.
자신이 저 연고를 언제 필요로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남자가 이기적으로 많은 양을 사용하는 건 절대 봐줄 수 없었으니 배영철의 말이 백 번 맞는다고 여겼다.
“…죄, 죄송합니다.”
남자가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연고를 상처에 바르는 모습을 보며 배영철은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아붙였다.
‘개새끼! 넌 나중에 두고 보자! 그 옆구리부터 회를 떠버릴 테니까!’
배영철은 남자를 죽일 듯 노려봤다.
“계단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이렇게 계단만 찾아다니다가 죽는 거 아냐?”
누군가의 불만스러운 외침에 주변 사람들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가장 많은 수의 인원으로 이루어진 배영철의 파티였지만, 그들은 시간의 탑에 들어선 이후 단 한 번도 계단을 밟아보지 못했다.
첫 번째 날에 계단을 발견했지만, 그들 역시 위치만 확인했던 것이 문제였다.
하루라는 악마의 말장난을 간파하지 못해 몬스터와 계단이 모조리 리셋이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손목에 착용하고 있는 시계에서 밝은 빛과 삐이이- 하는 기계음을 뿌려대며 주변 몬스터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었기에 좀처럼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파티의 인원이 8명이나 되었기에 피해가 크지는 않다는 점이 위안거리였다.
하지만,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는 계단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끊임없이 몬스터가 달려들고 있었기에 피로감이 지속적으로 누적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는 서서히 공포가 깃들고 있었다.
배영철은 불안에 떠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한심스럽다는 듯 표정을 구기더니 앞장서서 길을 나섰다.
“이제부터 다친 사람들은 뒤로 빠져! 내가 앞장서서 빌어먹을 계단을 찾아볼 테니까. 미리 말하는데 낙오자까지 챙길 여유 없으니까 알아서들 잘 쫓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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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네…….’
무혁은 방금 쓰러진 따끈따끈한 라만병의 시체를 뒤로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내디딜 수밖에 없었다.
‘핵을 섭취해야 하는데…….’
마음만 같아서는 라만병의 심장을 더듬어 핵의 유무를 파악하고 그대로 섭취를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그럴 틈을 주지 않고 있었다.
“후우우- 뭐해?”
차오른 숨을 토해내며 앞장서서 걷던 안소영은 걸음이 느린 무혁을 돌아보며 눈꼬리를 올렸다.
벌써 10시간이 지났다.
계단을 찾기 위해 4층을 헤집고 다닌 지도 어느덧 10시간이 흘렀기에 앞으로 두 사람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1시간뿐이었다.
배고픔과 갈증이야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체력적, 정신적 피로감은 어마어마했다.
중간 중간에 최소한으로 휴식을 취하며 이동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져만 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무혁이 라만병의 심장을 가르고 핵을 섭취하는 취미를 고집하는 건 어려웠다.
3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혁은 라만병의 심장에서 핵을 찾았었다.
그러나 이후부터 안소영의 노골적인 의심스러운 시선에 더 이상 핵을 섭취하는 행동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라도 않았다면.’
아쉬울 것 없으니 지금처럼 발걸음이 무겁지도 않았을 거다.
눈에 뻔히 보이는 라만병의 핵을 그대로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무혁을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계단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무혁은 애꿎은 계단에다가 화풀이를 했다.
이 모든 게 빌어먹을 계단 때문이라고.
“준비해.”
안소영의 낮게 깔리는 음성에 무혁은 작게 숨을 토해내고는 케라크라의 손톱을 끄집어냈다.
짝을 이루고 있는 두 마리의 라만병의 모습에 무혁은 눈을 찌푸렸다.
‘진짜 길바닥에 보물을 버리는 심정이다!’
무혁은 그렇게 신경질을 내며 라만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마리의 라만병을 상대로 무혁은 마음껏 날뛰었다.
무혁의 실력이 시간의 탑에 진입한 이후로 크게 성장한 것도 있지만, 손발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안소영과의 효율적인 협공은 진지하게 시간의 탑에서 생존하고 나갔을 때 절실하게 아쉬움을 느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아쉬움은 안소영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탑을 빠져나가면… 더 이상 함께 싸우진 못하겠지?’
홀로 외롭게 몬스터와 싸움을 하며 하루, 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는 안소영으로서는 든든한 무혁의 존재감이 벌써부터 그리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무혁에게 앞으로도 함께하자고 말을 할 용기나 자신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커지고 있어.’
안소영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느끼고 있었다.
무혁의 실력이 점점 자신보다 높아져만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는 곧 무혁에게 안소영은 듬직한 동료가 아닌 거치적거리는 ‘짐’밖에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기에 안소영으로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영롱한 숲에서부터 무혁이 안소영보다 조금 더 우위에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말 그대로 그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시간의 탑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도 확실히 자신보다는 윗줄의 실력자라는 걸 인정했지만, 지금처럼 압도를 당할 정도의 기분은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특히, 시간의 탑 내부에 들어오고부터 무혁과의 실력 차이가 벌어지는 것일까?
무혁이 실력을 숨겼던 걸까?
‘그건 아니야.’
안소영은 무혁의 전투 능력을 되돌아 봤을 때, 힘을 숨겼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결국은 급속도로 무혁의 실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안소영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고, 어느 정도 해답에 가까운 짐작을 내심 하고 있었다.
‘취미라고? 그럴 리가 없지.’
처음에야 몰랐으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만, 시간의 탑에 들어오고 나서 안소영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무혁의 변태 같은 취미가 결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스킬? 혹은 어떤 특별한 능력인 건가?’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안소영은 무혁이 라만병의 심장 조각을 먹음으로써 분명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걸 예측하고 있었다.
정말 둔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무혁의 그러한 행동에 의도가 있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무혁의 과도한 집착만으로도 그 이유는 분명했으니까.
설마 몬스터의 심장 조각이 맛있어서 그럴 리는 없었다.
그렇게 맛이 좋다면 손톱보다도 작은 조각이 아닌 심장 전체를 씹어 먹어야 말이 된다.
무엇보다도 무혁은 심장 조각을 아무렇게나 떼어내지 않았다.
매번 특정 부위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더듬었고, 딱 원하는 부분만을 살짝 도려냈다.
한두 번도 아니고 1백여 번이 넘도록 그런 행동을 옆에서 지켜본 안소영이었기에 그 의미가 굉장히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소영이 구태여 무혁에게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이유는 무혁의 목적을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려줄 리가 없지.’
미친놈 소리까지 들어가며 저렇게 집착하는 행동에 대한 진실을 무혁이 알려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안소영은 그저 모르는 채 하면서 넘어갈 뿐이었다.
“아- 좀 출출한데, 별미나 즐겨볼까?”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지껄이며 무혁이 라만병의 심장을 더듬기 시작했다.
3시간 동안 꾹꾹! 눌러 참았던 인내심이 기어이 폭발하고 만 무혁이었다.
다만, 손놀림은 무척이나 빨랐다.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고, 안소영의 노골적인 시선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인지 무혁은 허겁지겁 라만병의 심장 조각을 떼어내 낼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곤 과장되게 쩝쩝- 씹으며 맛 좋다- 라고 능청스럽게 말까지 내뱉는다.
‘저 정도면 저것도 바보야.’
그런 어설픈 행동으로 자신을 속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무혁이 분명 아이큐가 모자란 바보이거나, 이왕에 속이기로 작정한 것이어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예 뻔뻔하게 나가기로 한 것이라면 그것도 참 한심스럽다고 안소영은 생각했다.
안소영이 그렇게 무혁의 행동에 의심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는 순간, 무혁은 마음속으로 환호를 내지르고 있었다.
[라만병의 핵을 섭취했습니다.]
[영구적으로 체력이 0.54% 상승합니다.]
3시간 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고유 능력의 정밀 수치가 상승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호도 잠시, 무혁은 이 짜릿한 기분을 3시간 동안이나 억지로 참고 있었어야 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어차피 안소영도 등신이 아닌 이상 내가 취미로 몬스터의 심장을 먹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분명 어떤 이유가 있겠거니 짐작하고 있겠지?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노골적으로 먹자! 참아서 뭐 해? 죽으면 그만인데!’
당장 계단을 발견하는 것보다도 앞으로도 며칠 동안이나 시간의 탑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무혁으로 하여금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아닌 말로 안소영이 지금 당장 무혁이 몬스터의 심장을 먹는다고 소문이라도 내고 다닐 것도 아니고, 이미 다 눈치 채고 있는데 이제와 숨겨봐야 자신에게 어떠한 이득이 있을까 싶었다.
그럴 바에야 당당하게 몬스터의 핵을 섭취하면서 빠르게 강해지는 쪽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여긴 무혁이었다.
‘우선은 시간의 탑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잖아? 나중 일은 나중에 해결하자.’
무혁은 마음을 확실하게 잡았고, 그것만으로도 한결 여유가 생겨나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로 무혁은 대놓고 라만병의 심장에서 핵을 섭취했다.
안소영도 딱히 뭐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도 아니고, 10초 정도면 끝나는 일을 가지고 시간을 재촉하며 타박을 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의 간섭을 듣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가 안소영으로 하여금 말을 붙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엿 같은 악마 새끼가 계단을 아예 없애 버린 건 아니겠지?”
무혁은 어느덧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자 초조함에 그렇게 신경질을 냈다.
안소영도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눈앞에 보이는 모퉁이를 노려봤다.
저 모퉁이를 돌아서도 계단이 보이질 않는다면 이젠 정말 악마가 경고했던 만 하루를 지났을 때의 사태가 벌어진다.
어떤 식으로 몬스터와 탑 내부의 경쟁자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킬지는 알 수 없지만, 보통 일은 아닐 것이라고 여겼기에 긴장감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제발…….’
안소영은 모퉁이를 돌며 눈앞에 계단이 있길 간절하게 바랐다.
있어야 한다.
있어야만 그나마 버티고 있는 체력적인 피로도라도 줄일 희망이 있다.
과도한 체력 소모를 계속해서 끌고 나갈 자신이 없는 안소영은 저도 모르게 양손을 맞잡으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신께 빌었다.
물론, 이 악마들의 세상에 자신을 구원해줄 신이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