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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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56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56화
모래 위에 세워진 모래성 (6)
모든 무기술은 실전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인간은 본능보다는 이성에 의지하는 존재며, 그 이성의 가장 뛰어난 점은 바로 끝없는 탐구를 통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한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된 무기술, 그중 검을 배우기 위해 무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모방이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무혁은 막연하게 모래 해골기사의 검술을 그대로 따라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무혁은 삐걱거렸다.
친절이라는 단어와는 아예 상종조차 하지 않는 모래 해골기사는 오로지 무혁을 죽이기 위해서만 검을 휘둘렀고, 그런 상황 속에서 단순히 따라한다는 것조차 무혁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천천히! 제발 천천히 좀 하자!”
모래 해골기사는 빠르게 검을 찔러왔고, 연신 피하기 쉽지 않았던 무혁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자 어쩔 수 없이 모래 해골기사의 머리통을 날려버려야만 했다.
“하아! 진짜!”
따라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나도 좀 배울 수 있게 싸우자고.”
재생을 마친 모래 해골기사에게 무혁은 애원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오!”
모래 해골기사의 가슴팍이 쪼개진다거나.
“자, 잠깐!”
모래 해골기사의 검과 팔을 그대로 날려버린다거나.
“진짜 왜 이러냐!”
모래 해골기사의 하체 전체를 부숴버리는 등, 무혁은 수세에 몰릴 때마다 기술적인 대응보다는 힘을 앞세워 위기를 빠져나와야만 했기에 모래 해골기사를 통해 검을 배운다는 것이 불가능하게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에 대한 갈망, 아니 기술적 성장을 향한 무혁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자! 다시!”
여전히 의욕에 가득 찬 눈동자로 무혁은 모래 해골기사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검을 손에 쥐는 법부터 시작해서 검을 세우는 자세, 찌르는 법, 휘두르는 법, 막는 법 등을 모조리 카피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시작됐다.
이틀 동안은 무혁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내려줘야 할 모래 해골기사들이 한 줌 모래로 소멸했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무혁에게 검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줄 모래 해골기사들은 무한했으니까.
무혁은 그렇게 시간을 잊고 모래 해골기사만 붙들고 지냈다.
“이번에야 말로 꼭 성공한다! 들어와!”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난 무혁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향해 검을 찌르는 모래 해골기사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오른발 앞으로 반보! 팔꿈치는 비스듬하게 들어 올리지만 손목은 그대로!’
무혁은 모래 해골기사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흘려보내는 데 성공하자 입가에 작은 미소를 베어 물었다.
기쁨도 잠시 무혁의 움직임이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펴면서 뒷발에 반동을 줌과 동시에 어깨를 밀면서 팔꿈치를 펼친다!’
스각-!
아주 깔끔한 동작으로 무혁의 손에 들린 블랙 본 장검이 모래 해골기사의 허리를 반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첫 성공!
상대의 공격을 흘려보내고 곧바로 이어진 반격, 그것도 힘이 아닌 오로지 기술에만 의지한 성공이었기에 무혁은 뛸 듯이 기뻤다.
‘여기에 반격 스킬까지 더하면!’
상대가 자신보다 힘에서 우위에 서 있다면 그 위력은 끔찍할 정도가 된다.
무엇보다도 방금 무혁이 보여주었던 검의 움직임은 지난 며칠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모래 해골기사처럼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예전만큼 거칠다거나, 조잡스러웠던 느낌은 확실히 덜 했다.
“첫 성공 기념으로 담배나 하나…….”
웃는 얼굴로 주머니를 더듬던 무혁은 이내 손을 툭- 떨구고 말았다.
“아… 아침에 피운 게 돗대였지.”
모래성에 들어서기 전 무혁은 담배를 자그마치 10보루나 사서 공간 주머니에 넣어두었었다.
애초부터 모래성에서 다 피우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넉넉하게 쟁여놨다가 담배가 떨어지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모래성에서 10보루나 되는 담배를 다 태운 것이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얼마나 박혀 있었던 거야?”
하루에 아무리 담배를 많이 피웠어도 고작 열 개비가 되지 않았다. 물론, 모래 해골기사를 상대로 진짜 검술을 배우겠다 작정하면서부터 답답함 심정에 담배를 피우는 횟수가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벌써 담배가 떨어졌다는 건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소리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수염도 꽤 자랐네.”
모래성 5층에 내려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금만 수염이 꺼칠하게 자라면 곧장 면도를 했었는데, 지금은 꺼칠하기는커녕 꽤나 부드럽게 느껴질 정도로 수염이 많이 자라난 상태였다.
“안 봐도 꼴이 어떨지 뻔하겠네.”
상거지가 따로 없으리라.
무혁은 수염의 길이를 통해 최소 일주일에서 열흘 가까이는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돌아가야 하려나?”
모래성 4층까지 열흘이 걸렸고, 모래성 5층에서 대략 열흘 가까이 지냈으니 계획을 세웠던 기간보다 훨씬 더 많은 날을 모래성에서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조금 감이 잡히는데…….”
무혁의 눈가에 아쉬움이 진하게 맴돌았다.
이제야 겨우 검술의 ‘ㄱ’자나 겨우 뗐다고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송정민도 그렇고 1톤이나 되는 공간 주머니도 어느새 꽉 차서 더 이상 넣을 공간이 없었기에 한 번 비워줄 필요가 있었다.
“너도 많이 지루했지?”
여전히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혁은 통통이에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모래성에서 통통이는 무혁에게 있어 유일한 대화 창구이자, 외로움을 벗어나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오늘까지만 빡세게 더 훈련하고 내일 일찍 돌아가자.”
무혁의 말에 통통이는 그저 외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그렇게 하루를 더 모래성 5층에서 모래 해골기사와 격렬하게 보내고 나서야 무혁은 마을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편안한 안식처였던 위장 텐트를 철거한 무혁은 통통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통통아, 이삼일만 쉬었다가 다시 오는 거야. 그때는 최소 석 달 이상 여기서 썩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오자. 가자! 지금부터 신나게 달려서 여길 빠져나가자!”
무혁이 내달리기 시작하자, 그 곁을 통통이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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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헉!”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이젠 무리다.
더 이상 달아날 힘도, 그럴 의욕도 들지 않았다.
왜 내가 이런 지옥 같은 세상으로 끌려와서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 건지.
어려서부터 부모님 속 한 번 썩인 적 없었고, 학생의 본분인 공부만을 열심히 해서 소위 대한민국 엘리트라 칭하는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는 명문 고등학교에 당당히 입학해 학교를 다니던 중 이 사달이 났다.
왜 하필 나야.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하필 나야.
“…씨.”
욕하면 나쁜 아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어서 이런 거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쉽게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지도 못했다.
학창 시절 욕도 못하는 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욕하는 걸 자랑이라 여기는 친구들을 한심하다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시원스럽게 욕 한 번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렇게 착하게 산 자신이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정말 신이 있다면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면서 선량한 친구들 괴롭히고 선생님의 권위를 옆집 똥개 취급해서 멱살을 틀어쥐며 욕설을 퍼부었던 기춘이 같은 양아치가 벌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신은 죽었다.
허무주의를 말한 니체였지만, 지금은 본질적 의미보다 말 자체가 더 가깝게 다가왔다.
정말 신은 죽었거나, 없는 것이 분명하다.
크와아아앙!
“허억!”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젠 정말 끝이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적당하게 필요한 재료만 구해서 돌아갔으면 되는 일이었는데.
악착같이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이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여기서 죽으면 어디로 갈까?
지옥으로 갈까?
정말 남들에게 욕 한 번, 손가락질 한 번 당하지 않을 정도로 나쁜 짓이라고는 손톱만큼도 해본 적 없었고, 그러한 악의를 품었던 적도 없었다.
아, 굳이 말하자면 같은 아파트 아랫집에 살던 민주 누나의 알몸을 상상했던 것 정도?
설마 그런 생각 하나로 이런 벌을 받는 건…….
크와아아앙!
쿵-!
더 이상 달아날 곳 없다는 듯 앞에서 떨어져 내린 괴물의 모습에 한계까지 몰아붙였던 다리가 기어이 풀리고 말았다.
“…너무 불공평하잖아.”
입가에 침을 뚝뚝- 떨어트리며 샛노란 눈동자로 포식자의 거만한 웃음을 짓고 있는 괴물이 유독 밉게 보였다.
내가 그렇게 맛있어 보이나?
한 달이 넘도록 씻지도 못한 노숙자 같은 꼴로 여기저기 찢겨진 넝마와 같은 옷을 입은 내가?
입맛 한 번 참 독특하네.
상어의 이빨처럼 잔인하기만 한 저 아가리에 잘근잘근- 씹히면 정말 아프겠지?
나도 모르게 손에 쥔 검을 움켜쥐었다.
반 토막이 나버렸다지만 연약한 내 목을 가르기엔 그 날카로움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차라리 깨끗하게 목을 그어서 짧은 고통만으로 끝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과감하게 내 목을 스윽- 그어버리면 붉은 핏물을 분수처럼 뿌리며 빙그르르- 한 바퀴 돌며 쓰러지겠지?
팔이나 다리, 혹은 신체의 일부를 끔찍하게 씹혀 먹는 고통을 느끼는 것보다는 그쪽이 훨씬 더 인간적인 사망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래, 긋자!
덜덜덜덜덜.
“아…….”
어깨까지 들어 올린 반 토막 난 검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이러면 깨끗하게 목을 그어버릴 수 없을 텐데.
자칫 잘못 그어서 한번에 죽지도 못하고 피만 쏟으면, 오히려 눈앞에 있는 놈의 식욕만 더 돋우는 것 아닐까?
저놈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스스로 양념까지 발라주니 얼마나 기꺼울까?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 목을 긋겠다는 생각이 어쩌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악수가 될 것만 같았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눈앞의 저 흉측한 놈에게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위협을 가하는 건… 고작 반 토막 난 검으로는 불가능하다. 손에 들린 이 검이 반 토막이 난 이유가 바로 저 놈에게 있었으니 이깟 반 토막 난 검을 위험하다 여길 가능성은 제로나 다름없었다.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를 더듬었다.
엄지 손가락 크기의 유리병 하나가 손에 걸려 나왔지만, 눈앞의 놈에게 조금도 위협이 될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특사 2호만 있었어도 아니,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최소한 놈에게서 벗어날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졌었겠지.
크와아아아앙!
점점 다가온다.
악취 나는 점액질을 뚝뚝- 흘려대며 당장이라도 포식을 할 것처럼 들뜬 표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놈의 모습을 보니 점점 머릿속이 시커멓게 변해가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죽는다.
살아남기 위해 끈질기게 버텨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엄마, 아빠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그마저도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이렇게 죽는구나.
여기서 난 이렇게… 죽는……!
“통통아, 그쪽이 아니라니까!”
사람? 사람 목소리?
헬-라시온에서 사람은 몬스터만큼이나 위험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몬스터보다 더 잔혹하기도 했다.
그래서 피해야만 했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어떻게든 자제하려고 했었고, 철저하게 혼자 지냈다.
그런데 지금만큼은 그 사람이 너무나도 간절해졌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몬스터에게 비참하게 뜯기고 씹혀 먹을 바에야 인간에게 칼이 박혀서 가슴이 도려내지며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날 불쌍하게 여겨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확률적으로 굉장히 희박하겠지만 그나마라도 기대를 걸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을 마치고 나니 목소리에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이 실렸다.
“살려주세요! 여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사람 살려주세요!”
목청껏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대꾸도 들리지 않았다.
매정하다고 욕할 것 없다.
나 같아도 갑작스럽게 누군가 살려달라고 소리쳐봐야 의심부터 하고 볼 테니까.
비정한 현실이지만 그게 이곳 헬-라시온의 현실이다.
“제발 살려주세요!”
한 번 더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최대한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상대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려고 했다.
이럴 때 내가 여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래도 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욱더 애절할 테니까.
갑작스런 불청객으로 인해 놈도 내가 아닌 ‘그’를 의식하듯 몸을 살짝 비틀었다.
지금 놈이 방심을 하고 있으니 검을 휘둘러볼까?
머릿속에서 수명이 다해가는 전구의 마지막 반짝거림처럼 할까, 말까를 반복적으로 고민하던 찰나에 무언가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
그것은 둥그런 구체였다.
하나 밖에 없는 외눈을 깜빡- 거리며 제자리에서 발랄하게 통통- 튀기까지 했다.
눈앞의 괴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너무나도 경쾌한 통통거림이었다.
저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저런 형태의 몬스터는 본 적이 없었다.
그때, 그것의 이름이 밝혀졌다.
“젠장! 통통아, 위험하니까…….”
통통이라니… 정말 작명 센스 한 번 직설적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성의 없는 이름을 지은 걸까?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내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한 이는… 봉두난발의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 여기저기 찢겨진 넝마 같은 차림새, 어디 모래 바닥을 뒹굴다 왔는지 온몸에 진득하게 엉겨 붙어 있는 모래까지.
거지 중에서도 아주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만약, 놈의 식욕이 정말 더럽고 지저분하고 추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눈앞에 나타난 남자는 적어도 나보다 훨씬 더 고급스럽고도 맛있는 최고의 요리가 아닐까?
“살려…….”
달라고 해도 될까?
아무래도 나 때문에 저 남자까지 위험해진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놀란 얼굴로 주변을 살펴보다가 나를 발견하곤 착- 가라앉은 얼굴로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아… 이건 실수다.
정말 명백한 실수다.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그쪽도 먹히게 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 혼자 먹히면 그만인 일이었을 텐데…….”
남자의 모습만 봐도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남았는지를 알 수 있었기에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