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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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49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49화
아스펠 마을 (1)
“선생님!”
무혁은 중앙탑에서 나오자마자 주거지인 판잣집으로 향했다.
중앙탑 주변을 감시하고 있던 길드와 가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무혁은 중앙탑에서 구매한 은신과 관련된 스킬 ‘왜곡된 형체’, ‘은밀한 발걸음’, ‘바람의 향기’를 모두 사용했고, 어둠의 귀걸이에 담겨 있는 ‘시야를 가리는 은신’까지 사용해가면서 조심스럽게 중앙탑을 벗어날 수 있었다.
도중에 통통이의 존재로 인해 아찔했던 순간이 몇 차례 있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으로 들어선 무혁은 코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피 냄새에 다급하게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피에 절은 모습으로 나지막하게 숨만 쉬고 있는 남자, 송정민의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살아왔구나.”
송정민은 온전한 왼쪽 눈으로 힘겹게 무혁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왜, 왜 이렇게 되셨습니까? 설마… 제가 없는 동안 박혁수 그 개자식이 선생님을 이렇게 한 겁니까?”
무혁은 송정민의 몸 곳곳에 남아 있는 상처들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모든 고유 능력이 5등급에 올라선 무혁이다.
여기에 ‘블랙 본의 광기’ 스킬까지 사용하면 1시간 동안은 4등급이 된다.
박혁수는 고작 무혁보다 3년 먼저 헬-라시온에 끌려온 인간일 뿐이었기에 아무리 높게 쳐준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고유 능력의 등급은 자신과 같을 것이고, 정밀 수치에서 조금 차이가 날 뿐이었다.
‘죽여 버린다!’
1년차 보호 제약이 걸려 있기에 박혁수는 무혁을 직접적으로 죽이지 못해도, 무혁은 죽일 수 있다. 설령, 박혁수가 무혁을 죽이기 위해 1년차를 데리고 온다 하더라도 무혁의 능력은 이미 한참 위에 있었기에 사실상 무혁을 죽일 수 있는 인간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무혁의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리자 송정민이 어리석은 생각하지 말라는 듯 타일렀다.
“난 괜찮으니 걱정할 것 없다.”
“선생님 저는…….”
무혁이 자신은 강해졌다, 박혁수 따위는 얼마든지 짓밟아 버릴 수 있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송정민이 고개를 저었다.
“무혁아, 됐다. 내가 네 발목을 잡을 순 없다.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마라.”
“선생님…….”
정말 괜찮다는 듯,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지 말라는 듯한 송정민의 확고한 눈빛에 무혁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박혁수… 넌 내 손에 죽는다. 그때까지 절대 죽지 말고 살아 있어라.’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박혁수를 찾아가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무혁은 자신에게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송정민의 안전을 확실하게 지킬 수 없는 이상 분하더라도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건 뭐냐?”
송정민의 시선이 방안에서 통통- 뛰고 있는 통통이에게 향했다.
“이름은 통통이고, 마정의 의지가 깨어나 저렇게 변했습니다.”
“마정의 의지?”
헬-라시온에서 9년을 버틴 송정민조차 ‘마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무혁은 통통이에 대한 설명을 하기보단 송정민의 상처부터 살폈다.
‘피부 지혈’ 스킬을 이용해서 상처가 지혈되지 않은 곳을 치료했고, 한 병에 5천 포인트나 하는 값비싼 회복 물약까지 송정민에게 억지로 먹였다.
아쉽게도 헬-라시온에서는 흔히 말하는 ‘회복’ 스킬이 없었다.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식민 특권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뿌리 나무의 회복’ 스킬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식민 특권으로 익히지 못하면 그 이후엔 영영 익힐 수 없기에 길드와 가문에서는 일부러 신입들로 하여금 ‘뿌리 나무의 회복’ 스킬을 익히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보니 헬-라시온에서 중앙탑 외의 곳에서 회복을 하기 위해선 5천 포인트나 하는 회복 물약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무혁 역시도 마찬가지였기에 넉넉하게 물약을 사놓은 상태였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회복 물약의 효과가 바로 나타나며 송정민의 상태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정민은 구태여 자신에게 비싼 회복 물약을 사용한 무혁이 탐탁지 않다는 듯 혀를 찼다.
“그래, 강제 사냥은 어떻더냐?”
송정민의 물음에 무혁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우선은 여길 떠나야 합니다.”
“떠나다니?”
얼굴에 의아함이 서린 송정민에게 무혁이 빙긋- 웃었다.
“제가 마을 식민이 되었습니다.”
“마을 식민이 되었다고?”
어떻게- 라는 표정이 역력한 송정민에게 무혁은 나중에 모두 설명을 하겠다며 그 동안 손에 익은 최소한의 짐만을 챙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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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소식은 없는 건가?”
서류를 들여다보던 30대 후반의 남자가 고개만 살짝- 들어서 앞에 시립해 있던 이를 바라봤다.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며칠이나 지났지?”
“오늘로 18일째입니다.”
“18일이라…….”
남자가 상대의 말을 되뇌며 검지로 책상을 탁탁탁- 두드렸다.
“시간상 ‘야수의 밀림’이나 ‘시간의 탑’은 이번 강제 사냥터가 아니로군.”
“그렇습니다. 때문에 다음 회차에는 반드시 랭킹이 존재하는 사냥터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부락 식민일 때 랭킹에 오르느냐, 오르지 못하느냐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이니까.”
남자의 말에 시립해 있던 이가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대답했다.
“배영철이라면 충분히 랭킹에 오를 것입니다.”
“자네가 그토록 칭찬을 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렇겠지. 하지만, 천인회와 무사시 가문의 루키들도 보통은 아니라고 하던데?”
남자의 시선에 나태한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천인회의 장추엔과 무사시 가문의 코우 신지는 배영철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녀석은 지금까지 제가 본 그 누구보다 잔인하고 교활한 놈입니다. 분명 마우티 부락 최후의 승자는 배영철이 될 것입니다.”
“그토록 자신을 하는 걸 보니 안심이 되는 군.”
두고 보겠다는 남자가 말에 나태한은 믿어 달라는 듯 자신했다.
“참, 요즘 박앤장 패밀리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남자의 물음에 나태한은 뜬금없는 인물의 근황에 잠시 갸웃거렸다.
“박혁수 말입니까?”
“고민석 님께서 갑자기 물어 오시더군.”
“고민석 님께서 말입니까?”
나태한은 감히 자신으로서는 쳐다보기도 힘든 흑룡 길드 서열 7위 고민석이 박혁수 따위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에 의문이 들었지만, 우선은 그동안 길드원들이 전해주었던 정보를 빠르게 머릿속에 굴려봤다.
“아! 그러고 보니 몇 달 전부터 박혁수가 송정민을 찾아다닌다고 했습니다.”
“송정민? 내가 알고 있는 그 송정민?”
“그렇습니다.”
“송정민이라… 폐인이 되어버린 송정민을 박혁수가 왜 찾아다닐까?”
남자가 다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자 나태한이 조용히 대꾸했다.
“예전에 크게 망신을 당했으니 그걸 보복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우티 부락에서 박혁수가 떨거지 13차 신입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지나가던 송정민에게 걸려서 바지에 똥오줌까지 싸지르며 망신을 당했던 일은 굉장히 유명했다.
덕분에 잠깐 박혁수를 ‘똥쟁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나태한의 말처럼 보복을 하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 만했다.
하지만.
“고민석 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지.”
남자의 말에 나태한도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아봐. 박혁수가 왜 송정민을 찾아다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봐. 단순 개인 원한을 배제하고 진짜 목적을 알아내야 할 거야.”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알아오겠습니다.”
나태한이 그렇게 대답을 하는 사이, 똑똑- 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긴급입니다- 라는 말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들어와.”
남자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고 예의 검은색 망토를 두른 흑룡 길드원 하나가 방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지?”
나태한의 물음에 길드원이 재빨리 대답했다.
“방금 중앙탑으로 송정민이라 확신되는 인물이 들어갔습니다.”
“송정민?”
그렇지 않아도 송정민에 대해서 말을 하던 남자와 나태한이었기에 상황이 공교롭다 여겼다.
“확실한 건가? 송정민이 확실한 거야?”
“중앙탑에 나가 있던 길드원 중 한 명이 분명하다고 전달해왔습니다. 송정민과 쿠에토의 대결을 끝까지 지켜봤던 길드원인만큼 송정민이 확실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길드원의 대답에 나태한은 남자와 잠시 시선을 마주하다 다시 물었다.
“송정민은 더 이상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도 송정민과 함께 움직인 자가 있는데… 예상하건데, 이번 강제 사냥에 참가했었던 루키로 추정됩니다.”
“…뭐라고?”
남자의 표정이 굳었고, 나태한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부정했다.
“확실한 거야? 이번 강제 사냥에 참가했던 루키가 분명해?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냐? 이번 강제 사냥에 참가하지 않은 루키를 착각한 것 아냐?”
확실치 않은 정보로 자신을 혼란케 하는 것이라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나태한이 사납게 다그쳤지만 길드원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
“확실합니다. 이번 강제 사냥에 참가하지 않은 루키는 오늘 아침까지도 중앙탑을 방문했었고 부락 밖으로 사냥을 나갔었습니다. 갈만한 사냥터를 확인해보라고 지시는 내려뒀지만 분명한 건 그자와 방금 송정민을 데리고 중앙탑으로 들어선 루키는 분명 다른 자입니다.”
“루키가 아닐 확률은?”
“없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나태한은 남자의 싸늘한 시선에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고개를 조아렸다.
“다,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분명 강제 사냥이 끝나지 않았을…….”
“강제 사냥에 참가했던 루키가 버젓이 부락 안을 활보하고 다니는데 강제 사냥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나와!”
“…….”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나태한을 노려보던 남자가 길드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천인회와 무사시 가문의 동향부터 살펴보도록 해. 혹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루키가 강제 사냥에서…….”
“이미 알아보았습니다만, 그 어떤 곳에서도 이번 사냥에 참가했던 루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지금 송정민과 함께 있는 놈만 살아왔다는 거야?”
“그렇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길드원의 대답에 남자는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렇게 2-3초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남자가 말문을 열였다.
“누군지 알아내. 그리고 내 앞으로 데려와!”
나태한은 무섭게 자신을 쏘아보는 남자의 눈초리에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어떤 놈이지? 도대체 누구기에…….”
마우티 부락에서 손꼽히는 루키들을 모조리 제치고 홀로 살아남은 루키를 떠올리니, 흑룡 길드 마우티 부락 지부장인 홍영준은 앞으로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홍영준은 자신 앞에서 얼굴도 못 들고 보고를 하는 나태한과 마주하고 있었다.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최악의 경우 마을로 떠났을 가능성이…….”
흑룡 길드의 길드원들을 모두 동원해서 중앙탑 출입구를 모조리 감시했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록 송정민과 그를 데리고 들어간 루키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소식을 접한 무사시 가문과 천인회 등에서도 흑룡 길드와 마찬가지로 중앙탑 앞에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단언하건대,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한 감시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정민과 루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몇 시간 동안이나 중앙탑에 머물 수는 있다.
크레우스타의 눈초리가 신경이 쓰이겠지만, 꼼꼼하게 무구를 고른다거나 하는 행동으로 시간을 잡아먹고 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그것 때문에 송정민과 루키가 중앙탑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걸까?
홍영준은 나태한의 보고에 지끈거리던 머리가 더욱 큰 통증으로 변하는 걸 느껴야만 했다.
중앙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다.
쉽게 말하면 포탈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단, 1년차 루키에게는 제약이 있었다.
그 제약이란 것은 부락에서 부락으로는 이동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말인즉, 1년차 루키가 중앙탑에서 포탈을 이용했다는 건 부락이 아닌 그보다 상위 거주지인 마을 이상의 곳으로 이동을 했다는 뜻이다.
“마을 식민이라니.”
홍영준은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거대 길드나 가문의 도움도 없이 1년차 루키가 고작 몇 달 만에 마을 식민이 되었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거대 길드와 가문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질 때 겨우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역시 송정민이겠지?”
썩어도 준치라더니.
폐인이 되었다고 무시했는데 한때 헬-라시온 전체 랭킹 93위였던 인물의 저력은 확실히 달랐다. 어쩌면 무언가 특별한 비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홍영준은 이번 일이 결코 가볍게 넘어가선 안 될 사안이라고 판단 내렸다.
“당장 길드 마스터께 보고를 올려야겠군.”
각 지부마다 샅샅이 수색을 해서라도 사라진 송정민과 루키를 찾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