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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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84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84화
피 무지개 숲 (9)
사망자 18명, 치명적인 부상자 6명.
30명의 워터 볼 수급조는 말 그대로 풍비박산, 개박살이 났다.
남은 이들이라고 해봐야 6명인데, 그들조차도 자잘한 상처를 입고 있었기에 단 한 번의 습격으로 인한 피해는 끔찍할 수준이었고, 그나마도 지원군이 빠르게 대처했기에 최소한의 생존자라도 남길 수 있었다고 위안을 삼을 정도였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벌어진 끔찍한 참사에 남쪽 토성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형제자매도 아니고, 끈끈한 우정이나 동료애로 엮이지도 않았지만 한 울타리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점 때문인지 복수를 외치는 이들 또한 생각보다 많았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 또한 보다 신중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며 의견을 피력했다.
강경파도, 온건파도 아닌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 이대로 그냥 병신처럼 당하고 있자고?”
가장 강력하게 복수를 주장하는 강경파의 주도적인 인물은 헤로틴.
그는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은 상태로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대표적 온건파 인물인 마르테를 노려봤다.
“당하고 있자는 게 아니라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야. 동쪽 토성의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인원도 많으니 이대로 무모하게 싸움을 벌여서 우리가 얻을 이익보다는 피해가 더 커질 뿐이라고.”
“그 개자식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거냐? 그 자식이 헛소리를 지껄인 거라면? 사실은 우리의 복수가 무서워서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면?”
“그러니까 더 신중해야지. 막말로 동쪽 토성 거주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인데. 그러기에 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서 그를 죽인 거야? 더 알아내야 할 것들이 있었는데. 결국, 헤로틴 네 경솔한 행동이 일을 더디게 만드는 거야.”
마르테의 타박에 헤로틴이 비릿한 미소와 함께 비아냥거렸다.
“첫날의 패기는 다 어디로 갔어? 왜? 팀장이라도 되니까 그것도 권력이라고 손에 쥐고 놓기 싫은 모양이지? 이러려고 리더 역할을 하려고 주목을 끌었던 거냐? 겁쟁이 새끼.”
“헤로틴, 네가 부상을 당했다고 내가 참을 거라는 착각은 멍청한 생각이야.”
마르테가 으르렁- 거리며 눈을 사납게 치켜뜨자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마일러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리끼리 싸워서 뭘 하겠다는 거야? 그만 둬. 두 사람 모두의 말이 맞아. 이대로 넘어가는 건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일이고, 그렇다고 무작정 복수랍시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안 돼. 우선은 상황 파악이 최우선이야. 그 이후에 복수를 하든, 신중하게 계획을 세우든 그건 그때 가서 결정짓는 게 최선이라고 봐. 마르테, 너도 이대로 넘어갈 생각은 아니잖아?”
마르테가 당연한 소리- 라고 대답하자 마일러는 그것 보라며 모두 같은 생각이라며 헤로틴을 진정시켰다.
헤로틴은 너희 두 놈이 똑같다며 버럭- 소리를 내지르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헤로틴!”
제 마음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헤로틴으로 인해 마일러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 팀장들의 의견이 좀처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의 의견 또한 분분했고, 서로의 생각이 다른 만큼 미묘하게 분열의 분위기마저 생겨나고 있었다.
“형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방구름은 줄곧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무혁의 모습이 걱정스러웠던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구름아.”
“예.”
“네가 경험한 토대로 대답을 해봐. 아스펠 마을에서의 강제 사냥의 목적이 뭐였던 것 같아?”
“목적이요?”
방구름이 무슨 뜻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무혁은 습격을 했었던 동쪽 토성의 남자가 죽기 직전의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무혁의 말을 모두 듣고 난 방구름은 곰곰이 자신의 과거 경험들을 들춰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곤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 사람이 했던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마냥 틀린 소리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
“예, 형님. 제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아스펠 마을에서의 매년 첫 번째 강제 사냥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할 정도로 그 수가 절반 혹은 그 이하까지 생존자가 떨어졌거든요. 이후 두 번째 사냥부터는 생존율이 확연하게 올라갔고, 그 수치도 모두 다르고요. 무엇보다도 제가 마을에서의 첫 번째 강제 사냥은 방어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생존율을 조절하기 쉬운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생존율을 조절하기 쉽다고?”
무혁은 방구름의 말을 가만히 생각해봤다.
방어전은 말 그대로 능동적인 대처가 아닌 수동적인 대처다. 이는 곧, 식민들이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만약, 식민들을 공격하도록 몬스터의 수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면?
‘구름이의 말처럼 식민들의 수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있게 되겠지. 그러고 보니…….’
‘피 무지개 숲의 몬스터들은 하루를 기준으로 항상 비슷한 수를 유지한다. 물론, 모든 무지개의 색이 붉은색으로 변했을 때에는 또 다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무혁의 입에서 허- 하는 바람 빠진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건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이었는데, 정황상 가능성을 마냥 배제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그건 곧, 동쪽 토성의 남자가 했던 말처럼 몬스터가 아닌 애초부터 아스펠 마을을 선택한 식민들 즉, 피 무지개 숲 강제 사냥에 참여한 생존자들을 일정 수까지 미리 제거를 해버리면 그만큼 자신이 살 확률이 높아진다는 주장이 마냥 헛소리만은 아니었다.
“이거 완전… 개새끼들이네.”
무혁은 이 강제 사냥을 주관하는 마족들을 싸잡아 욕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이 모든 상황을 미리 설계한 라시온이라는 마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잘난 낯짝을 꼭 한번 보고 싶어졌고, 가능하다면 정말 있는 힘을 다해서 귓방망이를 날려주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무혁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이런 생각이 2년차 머리에서 나왔을 리는 없을 테고…….’
방구름처럼 마을 강제 사냥을 최소 2차례 이상 경험한 이들의 머릿속에서나 나올 법한 생각이다.
그 말은 동쪽 토성 내에서 누군가가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생각을 하던 무혁은 갑작스런 헤로틴의 외침에 잠시 생각을 접고 그를 바라봤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 팀장이란 놈들은 겁만 잔뜩 집어삼킨 개새끼들처럼 꼬리를 항문에 말아 넣고 벌벌- 떨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달라!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동쪽 놈들에게 제대로 된 복수를 하고 말 거다! 나와 같이 복수를 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함께 가자!”
헤로틴의 외침에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그것도 잠시 이내 몇몇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X발! 이대로는 못 참지!”
“피에는 피로 복수를 해야지!”
“간다! 그 빌어먹을 새끼들에게 얕잡아 보일 순 없으니까!”
하나, 둘 사람들이 헤로틴과 함께 하겠다는 뜻을 내보이자 갈팡질팡 마음을 못 정하던 이들조차 우르르- 함께 하겠다며 움직였다.
그중 한 사람이 꿈쩍도 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겁쟁이처럼 토성에 숨어 있다가 뒈지라는 식으로 비꼬았다가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으음. 저거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
어느새 무혁의 곁으로 다가온 루이스가 고개를 흔들며 우려스러운 말을 했고, 무혁 역시 한 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앞뒤 생각하지도 않고 복수를 외쳐대는 사람들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마르테와 마일러가 달려 나와 헤로틴을 말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겁쟁이 새끼들!”
헤로틴은 마지막으로 마르테와 마일러에게 그렇게 말을 남기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함께 토성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거 불안한데… 도대체 몇 명이나 나가버린 거야?”
루이스는 순식간에 휑- 하니 비어버린 듯한 토성 내부의 모습에 한숨을 푹푹- 내쉬었고, 곁에 서 있던 방구름이 조용히 헤로틴을 제외하고 53명이 나갔다며 친절하게 그 수를 알려주었다.
‘이제 남은 사람의 수는… 나를 빼고 164명인가?’
실질적으로 중상을 입어 거동이 불가능한 6명을 제외하면 158명이 남쪽 토성에 남은 셈이다.
무혁은 아직 첫 번째 몬스터의 공격을 막기도 전부터 상당수의 인원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상황이 참 불안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숲은 새카만 어둠을 거대한 이불마냥 뒤집어쓰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지금쯤이면 돌아와야 하는 거 아닌가?”
토성 외벽 위에서 경계를 서던 한 남자가 돌아오지 않는 헤로틴과 53명의 인원에 대한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비록, 의견이 엇갈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 울타리에서 함께 생존해야 한다는 소속감이 강했기에 무사히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별일이야 있겠어? 듣자니 동쪽 토성 인원이 330명이나 된다는데 설마 미쳤다고 그 인원으로 무작정 덤벼들었겠어? 보나마나 주변을 배회하면서 밖으로 나오는 놈들 몇 죽이고 돌아올 거야.”
그래놓고 의기양양하게 복수를 했다며 거들먹거리겠지- 라는 동료의 말에 다른 이들도 낄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말이야, 여기 룰은 3일을 숲에서 노숙하면 다른 토성으로 거주지를 옮길 수 있지만 사실상 그게 가능하겠어? 최소한 우리들 중에 동쪽 토성으로 옮길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건 그렇지. 아무래도 감정이 섞여 있으니 동쪽 토성으로 가기보다는 북쪽이나, 서쪽을 선택하는 게 낫겠지.”
“애초부터 거주지를 옮긴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 이미 각 토성마다 우리처럼 체계가 잡혀있을 텐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게 어디 쉽겠어?”
“하긴. 그것도 그렇지.”
“결국은 우리끼리 여기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아야 하는 거야.”
그게 답이라는 듯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생각이 들수록 감정이 폭발해 복수하겠다며 뛰쳐나간 이들이 한시라도 빨리 무사히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나저나 내일부터는 워터 볼 수급조를 새로 짠다며?”
“마일러 팀장이 그랬잖아. 워터 볼 수급조와 호위조를 새로 짠다고.”
“그런데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네.”
“무슨 소리야?”
“원래 계획대로라면 세 팀이 각각 정찰과 식량 조달, 방어 임무를 번갈아 가면서 무지개 구슬도 얻어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이건 뭐 완전히 워터 볼만 구하다가 끝날 판이잖아? 이러면 이번 강제 사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너무 적지 않겠어? 솔직히 다른 토성의 경쟁자들이 숲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며 각종 전리품들을 얻을 걸 생각하면… 조바심이 들기도 하고,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제야 다른 이들도 현재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헬-라시온은 무한 경쟁의 세상이다.
사실상, 연차가 올라갈수록 몬스터보다는 같은 인간들과의 경쟁이 생존에 더욱더 큰 위협이 된다.
그렇다 보니 지금과 같은 강제 사냥을 통해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 강해져야만 했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탐탁지 않게 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헤로틴을 따라갈 걸 그랬나?”
최소한 헤로틴과 함께 움직였다면 몬스터를 잡든, 동쪽 토성의 인간을 잡든 어떤 식으로든 보상이 주어졌을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토성에 가만히 처박혀서 무의미하게 시간만 흘려보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 여기니 조금은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내 대화 소리가 잦아들었고, 깊어지는 밤만큼이나 각자의 생각 또한 깊어졌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마일러는 전날 예고했던 것처럼 워터 볼 수급조와 그들을 호위할 인원들을 추려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날 경비를 섰던 이들이 불만을 토하며 언쟁이 시작됐다.
“호위조의 기준이 뭔데? 왜 누군 되고, 누군 안 된다는 건데? 이럴 거면 그냥 몇 개의 조로 나눠서 최소한의 인원만 토성에 남겨두고 워터 볼을 구하고 남은 시간은 숲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낫지 않겠어? 남은 사람들은 가만히 여기서 하루를 또 허비하라고? 난 그렇게 못해!”
“토성 방어는 중요한 일 중 하나야. 이미 동쪽 토성에서는 대놓고 습격까지 했으니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습격을 해올 것이 분명해. 식량과 워터 볼 따위는 얼마든지 내줄 수 있어. 또 구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오는 건 절대 있어선 안 돼. 그러니까…….”
마일러가 아무리 차분하게 설명을 해도 이미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을 설득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결국, 마일러와 마르테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팀장이라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진정한 리더도 아니었고, 다른 이들의 행동을 구속할 명분도 그럴 힘도 없었기 때문이다.
워터 볼 수급조와 함께 호위 겸 숲에서 몬스터 사냥을 나가고 싶은 이들은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 토성 밖으로 나가기로 한 것이다.
무혁과 방구름 역시 토성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여겼다.
‘이럴 줄 알았지.’
애초부터 팀을 짜고, 조를 나눈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여겼던 무혁은 현 상황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다.
“정말 괜찮을까요?”
고작 30명 남짓 남겨두고 토성을 나온 방구름이 걱정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괜찮길 바랄 수밖에.”
무혁 역시 살짝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숲에서 몬스터 사냥을 뒷전으로 미뤄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일곱 빛깔이었던 무지개는 빨강, 빨강, 빨강, 빨강, 파랑, 남색, 보라색으로 이루어진 네 가지 색깔 밖에 보이질 않고 있었다.
벌써 4일이 흐른 것이다.
고작 4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7일째 되는 날 있을 몬스터의 습격에 대한 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질 않았다.
토성 외벽 보수 공사 조금 해놓았다고 마음 놓았다가는 분명 후회를 할 것만 같았기에 무혁은 우선 오늘부터라도 부지런히 움직이며 무지개 구슬을 얻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습격이 있기 전까지 오크 상인부터 찾아야 해.’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에 딱 1시간만 숲에 등장하는 4명의 오크 상인은 이번 강제 사냥에서 가장 결정적인 열쇠, 즉 ‘키’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무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