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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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82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82화
피 무지개 숲 (7)
피 무지개 숲 중앙에 세워져 있는 검은 기둥.
“가까이서 보니까 높이가 더 높아 보이는데?”
탑 앞까지 다가선 헤로틴이 고개를 90도나 뒤로 젖혀서 탑의 높이를 올려다봤지만, 끝이 보이질 않았다.
정말 무지개를 뚫고 하늘에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득한 높이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툭툭- 헤로틴이 검은 기둥을 손바닥으로 치며 말했다.
“이건 도대체 왜 있는 거야?”
숲 중앙에 검은 기둥이 세워져 있는 이유.
모든 이들이 그 정체를 궁금해했고, 그건 무혁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이유 없이 그냥 세워져 있는 건 아닐 텐데…….’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검은 기둥이 존재할 것이라고 여겼기에 무혁은 그 이유와 목적이 너무나 궁금했다.
“표면이 상당히 미끄러워서 타고 올라간다는 건 어렵겠고…….”
한 백인 남자가 매미처럼 기둥에 달라붙었지만, 좀처럼 올라가지 못하고 주르륵- 미끄러지기만 했다.
“미친 거야? 기둥을 왜 타고 올라가려는 거야?”
“혹시 알아? 이 기둥을 타고 올라가면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할지?”
“또 다른 세상?”
“그래! 잭과 콩나무처럼 말이야!”
“네 눈엔 이게 콩나무처럼 보여? 정신 차려!”
잭과 콩나무의 이야기를 빗대자 다른 이들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찼다.
“올라가 봤어? 저 무지개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잖아!”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엉뚱하다 여기지 않는 백인 남자였지만,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저 사람 상상력이 참 재밌네요.”
방구름의 말에 무혁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잭과 콩나무라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싶었다.
“형님은 이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방구름의 물음에 무혁은 자신이 어떻게 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건장한 성인 두 명이 손을 맞잡으면 충분할 정도의 둘레에다가 매끈한 표면은 굉장히 단단했다.
혹시나 싶어서 무혁은 남들 모르게 블랙 본 단검을 만들어내서 흠집을 내보려고 했지만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이건 둥그런 쇳덩어리 혹은 그러한 것이 땅에 박혀 있는 것 외엔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검은 기둥 앞에 옹기종기 모여 탐색을 벌이던 이들은 이내 하나, 둘 흥미를 잃어버렸다.
“이건 그냥 숲의 중앙을 알려주는 기둥일 뿐이야.”
“맞아!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기둥이라고!”
“더 이상 볼 것도 없어! 그러니까 워터 볼이나 찾아보자!”
어쨌든 검은 기둥을 직접 눈을 확인했으니 충분했다.
세 명의 팀장들 또한 더 이상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남쪽 토성을 향해 이동하며 워터 볼을 찾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형님.”
뭐라도 하나 발견할까 싶어서 검은 기둥 근처를 떠나지 못하던 무혁은 방구름의 부름에 이내 몸을 돌려야만 했다.
“너희는 더 이상 도움도 되지 않으니까 마르테의 조에 합류해.”
노골적으로 쓸모없는 사람 취급하는 헤로틴의 말에도 무혁은 순순히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부터 저놈들을 믿지 않았다면 진즉에 워터 볼을 찾았을 텐데!”
지금까지 워터 볼을 찾지 못한 건 온전히 무혁과 방구름의 탓이라는 듯 불만을 토로하는 헤로틴의 모습에 무혁은 딱히 틀린 소리가 아니었으니 잠자코 있었다.
“아무래도 저 사람한테 저희 둘 다 제대로 찍힌 모양인데요?”
방구름의 말에 무혁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신경 쓸 것 없다는 듯 어깨를 툭툭- 쳤다.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무혁은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토성으로 돌아가는 길은 세 갈래로 나눠서 이동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워터 볼을 찾아야만 했기에 헤로틴, 마르테, 마일러가 각각 조원들을 이끌고 따로 움직이기로 한 것이다.
“어느 쪽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마르테의 물음에 마찬가지로 방향을 고르고 있던 헤로틴이 혀를 찼다.
“아직도 그 자식에게 기대를 거는 거야? 괜한 짓 하지 마. 아니지. 그 자식이 고르는 곳과 반대로 가는 게 더 확률이 높겠네. 그래, 어디 한번 골라봐. 어느 쪽이야?”
무혁은 헤로틴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검은 기둥과 남쪽 토성의 위치를 가늠하고는 대략적으로 어느 쪽에서 워터 볼을 발견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는 정말 워터 볼을 찾아야 할 때였다.
워터 볼을 발견했던 장소를 넘어 왔기에 정확하다고 할 순 없어도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을 할 수 있었기에 무혁은 곧바로 방향을 정했다.
“이쪽으로 가면 될 것 같군.”
무혁의 말에 헤로틴은 그래? 그렇다면 우리는 저쪽이다- 라며 노골적으로 무혁의 선택을 비웃어버렸다.
마르테는 무혁의 선택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으로 가자.”
“정말 저 자식 말을 믿는 거야?”
“몇 시간 동안 엉뚱한 곳만 헤매도록 했는데도?”
“이거 불안한데… 우리도 헤로틴처럼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몇몇 사람들이 마르테의 결정과 무혁의 선택에 불평과 불신을 드러냈다.
하지만, 마르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묵살해버렸다.
“어차피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확률은 미지수일 뿐이야. 그럴 바에야 한 번이라도 워터 볼을 구해왔던 사람 말을 믿어보는 게 나아.”
마르테의 말에 여전히 불만스럽다는 듯 입을 내미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미 결정된 일을 바꿀 정도로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을 수가 없었기에 더 이상의 반박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워터 볼을 못 찾았을 때, 그 모든 책임에 대한 화풀이는 무혁의 몫이 될 것이라고 벼르고 있었다.
무혁과 방구름이 선두에 서서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분가량이 흘렀을 때, 무혁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찾았다.’
어제 워터 볼을 구하고 마지막까지 왔던 길에 들어선 무혁은 조만간 워터 볼이 눈앞에 보일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러한 확신은 곧 현실이 되었다.
“워, 워터 볼이다!”
“진짜야!”
“워터 볼이라니!”
“와아- 저게 다 몇 개야!”
“세상에!”
나무마다 워터 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고 마르테와 조원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 우선 하나 먹어야겠어!”
누군가 워터 볼을 향해 달려가자 뒤이어 다른 이들도 우르르- 달려들어 워터 볼을 따서는 마음껏 마셔대기 시작했다.
피 무지개 숲에서 워터 볼은 식수이기도 하지만, 생활용수로도 사용을 해야만 했기에 몇몇 이들은 대놓고 머리에 붓거나 세수를 하는 등 워터 볼을 마구잡이로 따서 속에 담아 있는 물을 펑펑- 써댔다.
그렇게 한참동안 워터 볼을 마음껏 따서 사용하고 나서야 마르테가 모든 조원들로 하여금 보유한 공간 주머니에 워터 볼을 최대치까지 담으라고 지시했다.
다른 이들이 워터 볼을 공간 주머니 가득 담는 동안 전날처럼 딱 150개만 담은 무혁은 마르테가 왜소한 체격의 흑인 남성 한 명과 주변을 맴도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흑인 남성은 나무나 돌 등에 손바닥을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위치 기억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네요.”
“위치 기억 스킬?”
무혁의 물음에 방구름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형님 포지션이 사냥꾼이라고 하셨죠? 형님이 포지션 스킬로 가지고 계신 ‘위치 추적’ 스킬이 사물에 적용된 스킬이라고 보시면 되요. 저렇게 특정 사물에 스킬을 걸어두면 언제 어디서든 이곳으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거죠.”
방구름의 설명에 무혁은 꽤나 유용한 스킬이라고 생각했다.
“중앙탑에서 판매하는 스킬이야?”
“아뇨. 저건 중앙탑에 없어요. 스킬 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어요. 저 사람 운이 좋네요. 저도 얻고 싶은 스킬 중 하나인데.”
부럽다 말하는 방구름과 마찬가지로 무혁 역시 익혀두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36명의 인원이 모두 공간 주머니에 워터 볼을 가득 넣으니 수십 그루의 워터 볼 나무가 휑- 하니 한겨울을 맞이한 것마냥 앙상하게 메말라 버렸지만, 그걸 신경 쓰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차피 3시간 안으로 또다시 워터 볼이 가득 열릴 것임을 알기에 마르테와 그의 조원들은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의기양양하게 남쪽 토성을 향해 움직였다.
이동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위치 기억 스킬로 워터 볼의 위치를 확실하게 각인해두었지만, 매번 스킬에만 의존하는 건 미련하고도 멍청한 짓이라는 걸 알기에 마르테와 조원들은 최대한 길을 외워놓기 위해 끊임없이 표시를 남기거나 주변 환경을 머릿속에 담아두기에 바빴다.
그렇게 느릿한 걸음으로 남쪽 토성에 도착하니 어느새 어둠이 숲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뭐야? 너희는 왜 이렇게 늦었어? 워터 볼은 발견한 거야?”
헤로틴의 물음에 마르테가 검은 얼굴과 대조되는 하얀 치아를 내보였다.
“구했어.”
“구, 구했어?”
별 기대하지 않았던 헤로틴의 표정이 놀람으로 바뀌었고, 옆에 서 있던 마일러 역시도 반색을 했다.
“정말? 정말 워터 볼을 구한 거야?”
“보여줘!”
마르테는 마일러와 헤로틴의 재촉에 공간 주머니에서 워터 볼 두 개를 꺼내 건넸다.
“진짜잖아! 어디서?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라콩이 위치 기억 스킬은 사용한 거지?”
“걱정 마. 이제 워터 볼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마르테가 그렇게 말하자 헤로틴과 마일러는 이제 됐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 들린 워터 볼을 시원하게 들이키고 나자 마일러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찾은 거야? 운이 좋았네!”
“글쎄… 운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말을 하며 마르테의 시선이 무혁에게로 향했다.
“왜? 그가 찾은 거야?”
“길을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었지만…….”
마르테가 말끝을 흐리자 헤로틴이 대뜸 입을 열었다.
“운이야! 운! 저 자식이 워터 볼이 있는 장소를 기억했다면 우리가 그 고생을 했을 이유가 없잖아? 어쩌다보니 운이 있어서 마르테 네가 워터 볼을 찾은 거라고.”
헤로틴의 말에 마일러도 그럴 것이라며 동조했다.
“그럴 수도 있고.”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마르테 역시 무혁이 일부러 일행들을 이끌고 다니며 숲을 탐사했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자신들에게 운이 좋았을 것이라고 여기고 말았다.
마르테와 그의 조원들이 토성에 들어서자 식량 저장소에 수천 개의 워터 볼이 가득 찼고, 그 모습에 토성 내부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늘 하루 워터 볼 파티다!”
술도 아닌 물을 가지고 파티라니 우습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점을 들먹이지 않았다.
식량 저장소의 고기를 꺼내 굽고, 워터 볼을 마시거나, 워터 볼을 몸에 뿌리며 샤워를 하는 등 토성 내부의 즐겁고 행복한 한때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다음날부터 공간 주머니의 용량이 큰 이들로 이루어진 ‘워터 볼 수급조’가 따로 조직되었다.
그리고 무혁과 방구름이 속한 마르테의 팀원들은 토성 보수 공사에 투입되었다.
“먹기에도 아까운 워터 볼의 물을 고작 성벽 보수 공사에 사용하다니… 아마도 워터 볼을 구하지 못한 다른 토성의 놈들이 알면 눈이 뒤집어 질 거야, 안 그래?”
루이스의 말에 무혁은 질퍽하게 잘 버무려진 진흙을 토성 외벽에 덕지덕지- 붙이며 대꾸했다.
“그건 모르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다른 곳에도 워터 볼 나무가 있을지.”
무혁의 말에 루이스는 척- 하고 진흙을 외벽에 붙이며 말했다.
“글쎄,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는데.”
“어째서?”
“내가 헬-라시온에서 느낀 건 딱 하나야. 우릴 가지고 놀고 있는 저 빌어먹을 마족들은 절대 우리가 평화롭게 지내는 걸 두고 보지 않는다는 거. 무혁, 네 말대로 워터 볼이 숲 다른 곳에도 있다면 ‘팁’이랍시고 말을 한 마족이 우스워지지 않겠어?”
루이스의 말에 무혁은 설마 그렇다고 워터 볼이 거기에만 있겠냐- 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그 웃음이 민망할 정도로 다급한 외침이 곧바로 울려 퍼졌다.
“습격이다! 습격을 받았다!”
숲에서 누군가 뛰쳐나오며 그렇게 소리쳤다.
“알… 렌?”
토성 외벽 보수 공사를 하고 있던 이들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고, 소리친 남자의 얼굴은 무혁의 눈에도 익숙한 흑인 남자,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같은 조원이었던 알렌이었다.
“맙소사! 알렌이잖아!”
새롭게 조직된 ‘워터 볼 수급조’로 떠나며 토성 외벽 보수 공사를 해야만 하는 조원들을 향해 고생하라며 웃음 지었던 알렌은 숨이 턱까지 찬 상태로 도착했다.
그는 주변의 놀란 음성과 얼굴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단 팀장인 마르테에게 소리쳤다.
“마르테! 습격을 받았어! 지금 당장 사람들을 모아서 수급조를 구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