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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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81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81화
피 무지개 숲 (6)
150개의 워터 볼이 바닥을 나뒹굴자 워터 볼을 처음 보는 이들은 저게 뭐야- 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누군가 워터 볼이다- 라며 흥분해서 소리치자 순식간에 주변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술렁거림보다도 본능적인 욕구가 먼저였다.
“꿀꺽!”
누군가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는 급속도로 전염성 강한 병처럼 퍼져나갔다.
“이, 이걸 다 어디서 구했지?”
마르테 팀장의 물음에 무혁은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이냐는 듯 대꾸했다.
“숲이죠.”
다른 때였다면, 눈살을 찌푸리며 그런 대답을 들으려고 했던 게 아니잖아- 라고 따져 물었을 마르테였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그러니까 숲 어디냐고. 정확한 위치 말이야.”
“거기가 어디냐면…….”
기억을 더듬어 보던 무혁은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확한 위치는 나도 모르겠네요. 어쩌다보니 발견을 한 거라서.”
무혁의 대답에 마르테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루이스가 끼어들었다.
“이 친구가 숲을 헤맸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긴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렇지?”
루이스의 말에 무혁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마르테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지만, 식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을 찾았다는 사실에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무혁을 향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만큼 식수 문제는 심각했고, 그런 문제를 해결해준 무혁은 충분히 감사 인사를 받아 마땅했다.
“이게 워터 볼이라 이거지?”
무혁 주변으로 모여든 다른 두 팀장인 헤로틴과 마일러 역시 워터 볼을 바라보며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우선 목마르니까 하나씩 깔까?”
헤로틴의 말에 마일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물이라고는 숲에서 겨우 목만 축일 정도밖에 마시지 못했기에 입안을 가득 채워줄 시원한 물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팀장들이 워터 볼을 하나씩 집어 들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이들도 너도나도 워터 볼을 하나씩 집어 들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다.
그러한 소란스러움에, 그리고 워터 볼이라는 소리에 토성으로 들어갔던 이들 또한 모조리 몰려나왔다.
“나도 줘! 나도 줘!”
“내가 먼저 집었어! 저리 꺼져!”
“무슨 헛소리야! 지금 내 손에 있는 걸 보고 말해!”
“왜 두 개씩이나 들고 있는 거야? 하나는 내놔!”
“젠장! 없잖아!”
여기저기서 워터 볼을 차지하겠다며 난리가 나자, 무혁은 재빨리 방구름에게 워터 볼을 꺼내놓으라고 했다.
또 한 번 150개의 워터 볼이 쏟아져 나오자 그제야 마르테를 비롯한 팀장들이 소란을 잠재우며 공평하게 워터 볼을 하나씩 마시도록 질서를 유지시켰다.
‘아아- 정말 시원해! 최고야!’
워터 볼의 물맛에 완전히 반한 백인 여자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움츠러들었다.
“물맛 좋죠?”
무혁의 물음에 백인 여자가 커다란 눈동자를 또르륵- 굴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당당하게 턱을 치켜 올리며 대답했다.
“시원하네요. 이걸로 당신을 기다리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해소했어요.”
한 마디로 지각한 것을 퉁- 치자는 백인 여자의 말에 무혁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 웃고 말았다.
“크으- 진짜 끝내주네! 이봐! 워터 볼이 어디에 있었는지 정말 기억 안 나?”
헤로틴의 억압하는 듯한 말투에 무혁이 살짝 눈을 찌푸렸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쯧! 이왕이면 길 좀 기억해 둘 것이지! 그것도 하나 기억 못 해서는.”
워터 볼을 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타박을 하는 헤로틴의 모습에 무혁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괜한 시빗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참고 넘어갔다.
그런데 의외로 곁에 서 있던 백인 여자가 대신 나섰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지금 당신 목구멍으로 넘어간 물은 있지도 않았어! 고맙다는 말은 못하고 죄인 취급이라니… 정말 최악이네!”
백인 여자의 말에 헤로틴이 예의 샛노란 눈썹을 꿈틀거리며 험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주변 이목 때문인지 이내 헛기침을 하며 등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어제부터 하는 짓이 정말 재수 없는 인간이네! 지가 무슨 여기 왕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백인 여자는 다시는 상종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흥흥- 거리며 콧바람을 냈다. 그러더니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무혁의 시선에 고마워 할 것 없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덧붙였다.
“당신 덕분에 물은 잘 마셨어. 그래도 웬만하면 시간은 어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내 찰랑거리는 금발 머리를 휙- 휘날리며 도도한 걸음으로 돌아서는 백인 여자의 모습에 무혁은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때 무혁의 어깨에 척- 팔을 두른 루이스가 히죽- 거렸다.
“무혁, 아무래도 네가 준 워터 볼의 물색이 핑크 색이었던 모양인데?”
“뭐?”
“잘 해보라는 말이야. 성격이 좀 그래서 그렇지 저 정도면 끝내주잖아?”
실실- 웃는 루이스의 모습에 무혁은 헛소리 말라는 듯 그를 밀쳐냈다.
무혁과 방구름이 구해온 워터 볼은 메말랐던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촉촉하게 적셔냈고, 그만큼 토성 전체의 분위기도 밝아졌다.
워터 볼의 물맛을 본 이들은 당장이라도 숲을 뒤져서 워터 볼을 최대한 많이 구해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숲의 모습에 마르테와 마일러 팀장은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며 사람들을 다독였다.
물론.
“겁쟁이 자식들!”
헤로틴처럼 대놓고 불만을 터트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대 다수의 의견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토성의 분위기로 인해 워터 볼을 구하는 일은 다음날로 넘어가야만 했다.
날이 밝자, 무혁은 무지개 색깔부터 확인했다.
“주황색이 변했네.”
어제만 하더라도 빨간색 옆에서 환하게 빛을 뿌리던 주황색이 감쪽같이 없어졌고, 그 자리엔 피처럼 붉은색이 선명하게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무지개라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닌 모양입니다. 기분이 영 이상하네요.”
방구름은 두 개의 붉은 띠를 두르고 있는 무지개를 보고 있자니 괜히 솜털들이 곤두서는 느낌에 양팔을 비벼댔다.
무혁 역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는 듯 더 이상 무지개를 바라보지 않았다.
“오늘은 특별히 워터 볼을 집중적으로 구하기 위해 대대적인 숲 탐사가 벌어진다고 해요.”
노돈이 조원들을 모아놓고 오늘 일정에 대해서 설명했다.
어제의 탐사를 통해서 식량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확보를 했지만, 식수는 거의 전무했기에 원활한 식수 공급을 위해서라도 워터 볼의 수급이 최우선적으로 여겨졌다.
“무혁과 방구름은 나와 함께 팀장들에게 가요.”
아마도 워터 볼이 어디에 있었는지 대충이라도 설명을 듣기 위함이겠지- 라고 생각하며 무혁은 방구름과 함께 노돈의 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300킬로그램 이상의 공간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쪽으로 와주세요. 오늘 워터 볼을 모조리 채워 올 예정이라서 최대한 협조 부탁할게요.”
서로 눈치만 보며 나서길 주저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노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뒷말을 붙였다.
“참고로 오늘 워터 볼을 구하는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토성 보수 공사에 투입될 거라고 하네요.”
한 마디로 오늘 하루 힘든 노동과 잡일을 도맡아야 한다는 노돈의 말에 그제야 눈치를 보던 이들은 물론, 남의 일처럼 여기던 이들마저도 너나 할 것 없이 앞으로 나섰다.
거의 대부분의 조원들이 나서자 노돈이 공간 주머니가 300킬로그램이 되지 않을 시엔 상당한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며 압박했고, 그제야 보수 공사가 싫어서 한 발 걸치려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노돈은 300킬로그램 이상의 공간 주머니를 보유하고 있는 조원들을 토성 정문 앞으로 보내고 나서야 무혁과 방구름을 데리고 팀장들에게 향했다.
“우리의 히어로들께서 오셨네!”
마일러가 활짝- 웃으며 무혁을 반기자, 곁에 서 있던 헤로틴이 콧방귀를 꼈다.
“히어로는 무슨. 워터 볼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는데.”
비아냥거리는 헤로틴을 무시하며 마일러가 친근하게 무혁에게 다가왔다.
“숲이 거기서 거기인 것 같지만, 그래도 막상 들어가 보면 뭔가 다른 구석이 분명 있으니까 충분히 기억을 할 수 있을 거야, 안 그래 친구들?”
“어쩌면.”
무혁은 두루뭉술하게 대답했고, 그 모습에 헤로틴은 글러 먹었다며 여전히 툴툴- 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각 팀장들을 필두로 300킬로그램의 공간 주머니를 가진 1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워터 볼 공수팀’이 꾸려졌다.
“절대 워터 볼 못 찾으면 안 되겠는데요?”
방구름은 노골적으로 압박을 해대는 100여명의 사람들로 인해 바짝-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길은 알고 있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그보다도 한 번에 찾으면 재미없으니까 조금 둘러서 가보자.”
무혁은 100여 명의 호위부대를 거느린 사람처럼 짓궂게 미소 지었다.
#
급조된 워터 볼 공수팀이 숲으로 들어섰다.
인원이 인원인 만큼 몬스터가 나타나기가 무섭게 처리가 되었다.
애초부터 무지개 구슬의 임자는 몬스터를 처리한 사람들이 갖기로 암묵적 합의가 이뤄져 있었기에 이보다 더 안전한 사냥이 어딨겠냐는 듯 너도나도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상황이 그쯤 되자 팀장들은 세 팀으로 다시 인원을 나눴다.
“너희 둘은 몬스터가 나타나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길만 찾아.”
헤로틴의 말에 무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조차 하지 않는 무혁의 모습에 헤로틴은 참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며 구시렁대고는 마르테와 마일러에게 말했다.
“내가 1조를 맡을 테니까 2조하고 3조는 알아서 맡아.”
“2조? 아니면 3조?”
마르테의 물음에 마일러는 상관없다고 말했고, 마르테가 2조, 마일러가 3조를 맡았다.
조를 나눈 이유는 간단했다.
무혁과 방구름은 길을 찾는다. 그러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1조가 앞으로 나서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동안 무혁과 방구름은 2조, 3조와 함께 멈추지 않고 이동한다.
사냥을 마친 1조가 빠르게 일행에 합류하면 다음 몬스터는 2조가 처리하고, 그 다음은 3조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시간조차 최대한 단축하며 길을 찾음과 동시에 모든 이들에게 몬스터 사냥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겠다는 의도였다.
무혁으로서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가장 편하지만, 대신해서 싸워줄 수 있는 이들을 대동한 상태로 빠르게 숲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특히나 일전에 숲에서 만났었던 불순한 의도를 지닌 두 명의 인간들을 떠올리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벌어질 수 있는 습격에서도 한결 자유로울 수 있으니 오늘처럼 좋은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혁은 워터 볼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최단 거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빙글빙글- 돌며 숲을 활보했다.
아침 9시부터 시작된 탐사가 오후 2시가 되도록 계속해서 이어졌다.
슬슬- 사람들 사이에서 정말 이 길이 맞냐는 의심과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무혁은 아마도 이쪽이 맞는 것 같다며 계속해서 사람들을 끌고 다니기만 했다.
다시 한 시간이 지나자 헤로틴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무혁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솔직하게 말해! 전혀 모르겠지?”
“그 길이 그 길 같아서 헷갈리네.”
무혁의 천연덕스러운 대꾸에 헤로틴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분통을 터트렸다.
“젠장! 내가 뭐라고 그랬어! 이 자식은 애초부터 모를 거라고 했잖아! 그냥 모든 인원이 넓게 간격을 유지하면서 움직였으면 벌써 찾았을 거라고!”
씩씩- 거리며 성질을 부려대는 헤로틴의 모습에 마일러도 그게 더 확실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네- 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이 자식은 믿을 수 없어! 지금부터라도 토성으로 돌아가는 길은 넓게 간격을 유지하면서…….”
“그런데 저 기둥은 도대체 뭘까?”
헤로틴의 말을 무혁이 중간에 끊어버렸다.
숲의 정중앙에 하늘을 뚫을 듯 세워져 있는 검은 기둥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무혁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검은 기둥으로 향했다.
처음부터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검은 기둥이었지만, 숲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섣부르게 다가가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검은 기둥이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궁금하긴 한데… 한번 가볼까?”
누군가의 말에 주변에서도 이 정도 거리면 금방 확인할 수 있지 않겠냐며 너도나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지금처럼 많은 인원이 모여 있을 기회가 많지 않으니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어느새 모두의 눈빛엔 검은 기둥의 정체를 확인하자는 의욕이 스멀스멀 생겨났다.
무혁은 자신의 의도대로 사람들이 넘어오자 은근히 사람들을 부추겼다.
“이 거리에서 그냥 돌아가면 토성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엄청 비웃을 거야. 그렇지?”
마지막으로 무혁은 헤로틴을 똑바로 응시하며 되물었다.
반응은 즉각 나왔다.
“당연하지!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는 건 정말 병신 같은 짓이지!”
가장 먼저 앞장서서 검은 기둥을 향해 움직일 것만 같은 헤로틴의 모습에 무혁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