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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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72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72화
아스펠 마을 (5)
“250만 포인트.”
“…컥!”
리리타오의 말에 무혁은 이게 무슨 얄궂은 장난 같은 일이냐는 듯 헛바람을 터트렸다.
마수 켈로나의 가죽 세트를 구입해버리면 사실상 더 이상의 쇼핑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끙… 어쩔 수 없지.”
무혁은 속이 쓰렸지만, 하는 수 없이 마수 켈로나의 가죽 세트를 구입했다.
[정상 처리 완료!]
[잔여 포인트 : 1,126,200]
무혁은 남은 잔여 포인트를 확인하고는 끌- 하고 혀를 찼다.
‘블랙 본이 없었다면, 포인트가 끝도 없이 소모됐겠지.’
다시 한 번 블랙 본을 얻은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절감하는 무혁이었다.
대략적인 방어구 구매를 마친 무혁은 그 자리에서 착용을 시작했다.
리리타오가 두 눈 빤히 쳐다보고 있었지만, 무혁은 개의치 않고 속옷 차림으로 오르테족의 피부 옷부터 입었다.
단순한 타이즈라기보다는 얇은 피부막을 하나 더 덧씌운 듯한 느낌에 무혁은 크게 만족했다.
특히나 목과 손목, 발목을 모두 감싸는 길이가 마음에 들었다.
단 한 가지 흠이라면, 거무튀튀한 색상 정도였다.
이어서 카르마덴 심장 보호갑, 암 가드, 각반을 리리타오에게 내밀었다.
“몸에 딱 맞도록 수선해줘. 암 가드는 왼쪽 팔에.”
세 가지의 보호구 모두 그 두께는 얇지만 강철보다 강도가 높은 통짜 금속 방어구였다. 게다가 구입자의 몸에 맞춰져 있었기에 박혁수와 신체 사이즈가 다른 무혁은 그대로 착용할 수가 없었다.
“개당 5천 포인트.”
수선비로 2만 포인트가 날아갔고, 곧바로 보호구가 몸에 착용되었다.
“허어!”
몸에 딱 맞게 착용된 카르마덴 방어구는 의외로 신축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분명한 금속 재질임에도 불구하고 유연할 정도로 근육의 움직임에 맞춰서 자유롭게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이래서 박혁수가 이걸 착용했던 거였나?’
딱딱한 강철과는 차원이 다른 착용감에 무혁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카르마덴 재질의 방어구를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마수 켈로나의 가죽 세트까지 착용하니 완벽했다.
흑갈색의 카르마덴 재질 방어구가 블랙 색상의 마수 켈로나의 가죽 세트에 가려지니 누가 봐도 무혁의 겉모습은 평범한 레더 아머를 착용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방어구는 이제 됐고. 이건 어쩐다?”
무혁은 마지막으로 처분해야 할 물건들을 바라봤다.
반지 5개, 팔찌와 목걸이, 그리고 발찌 하나였다.
확인을 해본 결과 딱히 대단한 위력이나 옵션 등이 붙어 있는 건 없었다.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해봐야 5등급짜리 냉기 내성이었다.
그 외엔 각종 내성 옵션이 7등급에서 6등급 수준으로, 웬만한 1등급 내성 옵션보다도 훨씬 더 대단한 스킬인 ‘차단’을 패시브로 가지고 있는 무혁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중앙탑에 판매를 하자니 가격을 너무 후려쳐서 팔기가 꺼림칙했다.
옵션이 보잘 것 없다 하더라도 반지와 같은 장신구는 워낙 그 값이 비싸고, 희귀했기에 지닌바 능력이나 옵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어치가 높은 편이었다.
또한, 무혁에게나 내성 옵션이 무용지물이었지 다른 이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판매를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팔아치울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자식은 뭔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찌를 차고 있던 거지?’
양정태의 왼쪽 발목에 채워져 있었던 가느다란 은 발찌는 황당하게도 독 내성 7등급 외에 정력 증강이라는 해괴한 옵션이 붙어 있었다.
정력 증강이라니.
무혁은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한 편으로는 묘한 호기심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치켜드는 걸 느꼈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마성의 이름, 정력.
“어이, 인간.”
리리타오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무혁이 재빨리 엉뚱한 생각을 지워버렸다.
‘이것들은 보류.’
아무리 생각해도 중앙탑에 판매를 하는 건 너무 큰 손해다.
전문적으로 헬-라시온에서 상업 활동을 하고 있는 상회를 통해 판매를 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중앙탑보다는 두 배,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값을 받을 수 있는 장신구들을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처리하는 건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하긴, 내가 직접 나서기 뭐하면 대리인을 내세워도 되는 거니까.’
무엇이든 시켜만 달라면서 함께 하길 원하는 방구름을 떠올리며 무혁은 판매 방식에 대한 부담도 덜어냈다.
“더 이상 볼 일이 없으면…….”
“미감정 물품 박스가 있다고 하던데, 얼마나 하지?”
리리타오는 자신의 말을 톡! 잘라버리는 무혁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아스펠 마을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대답을 해주었다.
“5만 포인트.”
중앙탑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미감정 물품 박스는 말 그대로 복불복 랜덤 아이템이다.
네모난 박스 안에 그 어떤 것이 들어가 있는지 전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미감정 물품 박스는 아주 극악한 확률로 대운이 터져준다면 수백 만 포인트짜리 무구나 스킬링, 혹은 장신구를 얻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들이 들어가 있어서 번번이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탑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도박이기 때문에 한번 맛을 들이면 결코 헤어 나올 수가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헬-라시온의 수많은 식민들은 대박을 노리고 미감정 물품 박스를 무수히 까고 있었다.
‘…비싸네. 사지 말까?’
무혁은 5만 포인트나 소모해가면서 미감정 물품 박스를 구입해야 하나 싶었다.
이건 분명 실패할 확률이 너무나도 높은 도박이다.
원금 회수율이 3퍼센트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무혁이 그걸 알면서도 하려는 이유는 감정 스킬의 숙련도를 가장 빠르게 올릴 수 있는 지름길이 바로 미감정 물품 박스를 감정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무구나 장신구 등을 감정하는 것보다 숙련도를 빠르게 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미감정 물품 박스 감정이었기에 무혁은 실패할 도박이라는 걸 알면서도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적지 않은 포인트를 소모해야 한다니… 통통이가 이상한 것만 내뱉지 않았어도.’
통통이가 앙할마케를 집어삼키고 내뱉었던 6등급 마정 찌꺼기를 떠올리며 무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정의 의지가 깨어난 통통이었기에 무혁은 분명 6등급 마정 찌꺼기가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통통이의 쓰임에 대해 알지 못하는 마족에게 대뜸 마정 찌꺼기를 내보이며 감정을 바라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기에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감정 스킬의 등급을 빠르게 올리는 수밖에 없다 여겼다.
‘포인트가 아깝기는 하지만… 투자라고 생각하지 뭐.’
무혁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미감정 물품 박스 6개를 30만 포인트에 구매했다.
“어리석은 확률에 포인트를 버리다니.”
리리타오의 노골적인 비웃음에도 무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미감정 물품 박스 6개를 바라봤다.
표면은 검은색의 정사각형 형태로 크기는 성인 상체만 했으며, 각 면마다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다.
무혁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감정 스킬을 펼쳤다.
“감정!”
[‘검은 맨티언의 낫’이 감정되었습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첫 번째 미감정 물품 박스에서 감정된 것은 7등급 몬스터, 검은 맨티언의 낫이었다.
중앙탑 판매 가격이 1만 5천 포인트였으니 3만 5천 포인트를 날릴 셈이었다.
내심 대박을 기대했던 무혁으로서는 설핏 웃음이 나왔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두 번째 미감정 물품 박스를 바라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감정!”
[‘부서진 돌’이 감정되었습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두 번째 미감정 물품 박스에서는 아예 꽝이었다.
판매조차 할 수 없는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돌조각이 나오자 무혁은 헛웃음이 나왔다.
“감정!”
[‘오염된 시체의 손톱’이 감정되었습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세 번째 미감정 물품 박스에서도 역시나 판매할 수 없는 쓰레기가 나왔고, 무혁의 표정에서도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감정!”
[‘고블린의 이빨’이 감정되었습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네 번째 미감정 물품 박스에서 꽝은 아니지만, 꽝이나 다름없는 3포인트짜리 고블린 이빨이 나오자 무혁의 표정이 슬슬- 짜증으로 물들었다.
“감정!”
[‘먹다 남은 우유 식빵’이 감정되었습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씨…….”
욕설이 절로 튀어나오려는 걸 무혁은 억지로 참았다.
대놓고 엿 먹어 보라는 것도 아니고, 먹다 남은 식빵 따위가 나올 줄은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에 뒷골이 저절로 뻣뻣해졌다.
무혁을 더 짜증나게 만드는 건, 누가 먹다 남겼는지 검푸른 곰팡이가 퍼져 있는 식빵의 모습이었다.
이러다가는 처음 나왔던 검은 맨티언의 낫이 가장 훌륭한 물건이 될 것만 같았다.
짜증으로 얼룩진 무혁의 표정을 바라보며 리리타오가 재밌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감정!”
[‘부식된 조각칼’이 감정되었습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감정, 스킬의 등급이 6등급으로 상승합니다.]
“후우…….”
무혁은 역시나 쓰레기나 다름없는 부식된 조각칼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내뱉었다.
무언가 농락을 당한 것만 같아 가슴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감정 스킬이 6등급으로 올랐기에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을 수 있었다.
‘30만 포인트를 써서 고작… 1만5천 포인트를 건진 건가? 미쳤네.’
굳이 정정하자면 고블린의 이빨까지 더해서 15,003 포인트였다.
무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런 미친 짓에 맛 들여 포인트를 낭비한다는 인간들이 정상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무혁은 미감정 물품 박스를 더 까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본전은 찾아야 하지 않겠어- 라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것처럼.
‘그래, 어차피 헛된 곳에 포인트를 그냥 내다 버리는 건 아니잖아?’
감정 스킬의 숙련도를 빠르게 높이기 위해 일부러 미감정 물품 박스를 까는 이들은 굉장히 많았다.
어차피 미감정 물품 박스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일종의 보너스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할 것이라 여기는 무혁이었다.
“하나만 더 줘.”
무혁의 요구에 리리타오는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깔깔- 웃으며 5만 포인트를 가져가고 미감정 물품 박스 하나를 건넸다.
‘감정 스킬은 어차피 계속해서 올려야 하는 거니까.’
스스로에게 그렇게 정당성을 부여하며 무혁은 미감정 물품 박스를 노려봤다.
꿀꺽- 하고 침을 크게 삼키고 난 무혁이 감정 스킬을 사용했다.
“감정!”
[‘부러진 장검’이 감정되었습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또다시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 나왔다.
무혁은 구깃구깃- 일그러진 표정으로 리리타오에게 말했다.
“하, 하나만 더.”
“얼마든지.”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리리타오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화사해 보였다.
“감정!”
[‘찢어진 셔츠’가 감정되었습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하나 더!”
“감정!”
[‘쓰다 남은 볼펜’이 감정되었습니다.]
[감정,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잉크가 절반도 남지 않은 싸구려 볼펜을 바라보며 무혁은 까드드득-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이를 갈아붙이고는 또다시 외쳤다.
“하나 더!”
잠시 후.
무혁은 넋을 잃은 사람처럼 중앙탑을 빠져나왔다.
“미쳤지… 미쳤어.”
자책을 하며 무혁은 스스로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이 미친놈아 도대체 얼마를 날린 거냐… 정신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연신 자신의 머리를 후려치며 무혁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자그마치 80만 포인트를 날렸다.
그렇게 80만 포인트를 날리고 남긴 건.
펄럭- 펄럭-!
빛바랜 잿빛 망토였다.
그나마도 보기 민망할 정도로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흡혈 마족 모우텐의 망토 - 5등급 방어구|
· 흡혈 마족 모우텐이 애장했던 망토다.
· 주변이 어두울수록 최대 5등급 마력 공격까지 무효화시킨다.
· 환한 대낮에는 방어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 체온 유지에 탁월하여 항상 쾌적함을 유지시켜준다.
· 더 이상 수리가 불가능하다.
망토의 옵션 자체만 놓고 본다면 상당했다.
최대 5등급 마력 공격, 간단하게 마법 공격에 대한 방어력을 크게 상승시켜주니 마침 망토가 없는 무혁에게는 안성맞춤인 방어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혁의 표정이 전혀 기쁘지 않은 건, 수리가 불가능했고 그나마 남은 내구력도 바닥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리리타오의 말에 의하면 최대 5회 정도 마력 공격을 받으면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왕 나올 거면 새 거라도 나오던지.”
무혁은 짜증난다는 듯 툴툴- 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80만 포인트를 쓴 덕분에 감정 스킬의 등급은 5등급까지 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