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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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9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44화
제4장 함정(陷穽) (2)
중저음의 조용한 음색을 지닌 불성 공오대사가 입을 열었다.
“시주는 왜 중원의 분란을 조장하려 했는가?”
“분란이라, 언제부터 무림이 비무를 분란이라고 여겼지. 그럼 지금까지 그대들이 해왔던 것들이 모두 분란이라는 뜻이 된다. 네놈들이 하는 것은 정당하다 여기고, 다른 이가 하는 것은 분란이라고 매도한단 말인가! 그게 네놈들이 바라보는 세상인가!”
“협의와 평화를 위해 무림에 나선 것을 그대와 같이 폄하하지 마라.”
“협의라고? 독과, 협공을 마다하지 않는 네놈들이 협의라고! 웃기지도 않는 개소리를 집어치워라. 그냥 내가 거슬렸다고 하는 게 맞지 않느냐! 차라리 그렇다고 해라.”
공오대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진의 거친 언행은 직선적이다. 그러나 정곡을 찌르고 들어오고 있었다. 설득을 한다 한들, 구차할 뿐이다. 공오대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공오대사도 팽관혁의 패배를 인정하기 힘들었다. 천하16대고수를 상대로 그처럼 일방적으로 이기다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강함이다.
공오대사라고 할지라도 그처럼 할 수는 없다. 무진의 강인함이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한 것이다.
“그렇다 해도 시주는 이제 끝이네!”
“누구 맘대로.”
가만히 듣고 있던 제갈수혁이 무진에게 조용히 말했다.
“네가 초극을 넘어선 극강의 고수라고 해도 여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리고 너는 죽는다. 권패를 독살하고, 팽 대협에게 독을 사용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개소리를 하는군!”
“후후후후!”
제갈수혁은 무진의 일그러진 표정이 맘에 들었다. 하지도 않은 일을 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억울할 것이다.
제갈수혁은 상처 입은 권패를 독살했다. 물론 그 죄를 무진에게 덮어씌울 것이다. 증거는 이미 확보를 해 놓은 상태다. 도제 또한 독에 당한 것으로 입을 맞추어 놓았다.
중원의 무인들은 오히려 환호할 것이다. 변방의 무인에게 당한 패배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진을 잡아야 한다.
“억울하겠지. 하지만 너는 중원무림의 혼란을 조장한 원의 간세가 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네 말은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제갈수혁이 짜놓은 계획의 일부에 부맹주가 협조를 했다. 부맹주는 이 모든 일이 무진의 계략이라고 하고, 원의 간세라는 죄를 뒤집어씌우자고 한 것이다. 참으로 그럴듯한 명분이었다.
북리중천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을 진행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천맹의 군사인 제갈수혁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그래서 북리중천을 이번 계획에서 제외시켰다.
그가 반발을 한다 한들 제갈수혁의 결정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부맹주는 그저 허울뿐인 직함이었다. 제갈세가의 힘을 넘어설 수 없다.
“너는 무공이 전폐되고, 네가 가진 모든 것들은 정천맹에 흡수될 것이다!”
“그것이 네놈들이 말하는 정의인가!”
“만용을 부린 대가다. 네가 설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랑캐면 오랑캐답게 행동했어야 했다!”
분노를 터뜨리는 무진의 모습을 보며 비릿한 조소를 짓는 제갈수혁이었다. 적당히 설쳤다면 상인으로서 인정을 해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원무림을 조롱한 대가는 컸다. 감히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한 것이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역린을 건드린 대가는 죽는 것보다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무진이 그 순간 전후좌우를 돌아보았다. 주변을 포위한 절대고수들은 무진이 빠져나가려고 궁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제갈수혁이 한마디 더했다.
“반경 100장까지 진이 펼쳐져 있다. 네가 도망갈 수 있는 곳은 없다.”
이들은 무진을 궁지에 몰고,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반항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팽관혁과 육진풍은 무진의 비참한 모습에 통쾌함을 느꼈다. 버러지 같은 놈이 피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비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여기서 끝이닷!”
“네놈과 네놈의 모든 것을 부셔주겠다!”
사방이 막힌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무진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이대로 정천맹의 의도대로 모든 것을 잃고 무너져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매화검제 육진풍과 벽력도제 팽관혁이 무진의 오른쪽과 왼쪽을 막아섰다. 궁지에 몰린 무진을 괴롭히며 죽이려는 의도가 강했다. 이미 시작한 일이니, 구차한 체면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무진의 고개가 숙여졌다. 봉두난발처럼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무진의 얼굴을 가렸다.
그들은 무진이 포기한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내공과 기력을 잃고, 천하16대고수 5명이 막고 있다. 또한 주변은 진과 더불어 정천맹의 8당 중 3개인 청룡당(靑龍黨), 무천당(武天黨), 명현당(明顯黨)이 포위하고 있었다. 어디로 움직여도 무진에게는 살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부들! 부들!
무진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숙여진 상태라 표정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분노와 절망으로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천맹의 수뇌부들은 무진이 반항조차 소용없다는 알기에 자포자기했다 여겼다. 그가 반항한다 한들, 고통만 가중될 것이다.
그때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이제까지 몸을 떨고 있던 무진이 갑작스럽게 통쾌한 듯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마치 웃겨서 죽을 것 같은 모습이다.
무진의 고개가 들려졌다. 그리고 산발처럼 된 머리카락을 끈으로 다시 정갈하게 묶었다. 좌절과 절망에 몸서리치는 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번뜩이는 안광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절대자의 기운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
팽관혁과 육진풍은 무진의 돌연한 변화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무진을 보며 호통쳤다.
“네놈이 이제는 미쳤구나!”
“죽을 때가 되니 미쳐 버리고 싶은 것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놈의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무진의 당당한 모습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살려달라고 비참하게 구걸하는 모습을 원했다.
“어쭙잖은 짓을 하면 대가를 치른다고 했을 텐데.”
흥분했던 좀 전의 음성과는 완전히 달랐다. 무진은 담담하고 무표정했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지존광대하고 오만함을 지닌 평소의 무진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직도 주제를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알려주지!”
매화검제 육진풍이 검을 뽑았다. 그는 무진 따위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팽관혁이 비록 벽력도제이기는 하나, 자신은 만병지왕의 검제다. 독에 중독된 무진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병기를 사용하는 오른손을 자르고, 단전을 뭉개버릴 생각이다. 그래야만 무공을 잃어버린 육영기에게 작은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그 뒤 조금씩 생명을 갉아먹으며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이다.
짙은 살기가 육진풍의 주변을 감돌았다.
무진이 육진풍을 보았다. 다가오던 육진풍도 무진을 보았다.
무진의 눈동자 속에 담긴 육진풍은 불안감을 느꼈는지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스스로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무진에게 겁을 먹었다는 뜻이 아닌가!
인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두려움은 분노로 이어졌다.
“이놈!”
“네놈은 고작 혈육이 다쳤을 뿐이다.”
무진의 말투는 조용하지만 차가웠다. 그리고 오싹했다. 좌중을 압도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육진풍조차 한동안 말을 하기 힘들었다. 주춤했다는 것을 깨달은 육진풍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용서를 빌어도 시원찮을 놈이 감히 나에게!”
수치심이 든 육진풍이 매섭게 검을 뻗었다. 절대고수다운 매끄러운 검초였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검로에 검의 정수가 스며들어가 있었다. 초절정의 고수조차 피할 수 없는 위력을 지녔다.
무진이 피하지도 않자, 육진풍은 확신했다. 사실은 무진이 움직일 힘도 없다는 것을.
타아앙!
검면(劍面)이 튕겨 나갔다. 해일과 같은 중후한 공력이 형성되어 검을 튕겨 냈다. 검을 뻗었던 육진풍은 검신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경력에 충격을 받고 열 걸음이나 물러섰다.
육진풍은 방금 전에 벌어진 일을 믿기 힘들었다. 검을 퉁겨낸 것이 무엇인지 보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무진의 손가락이 매화검제의 검력을 막아내는 것도 모자라서 물러나게 만든 것이다. 무진을 포위하고 있던 이들도 육진풍 못지않게 놀라는 기색이 완연했다.
“설…마!”
“독에 중독되지 않았단 말인가!”
불성 공오대사조차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제갈수혁은 좀처럼 믿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독에 중독되지 않은 것은 그렇다 해도 매화검제의 검을 손가락으로 퉁겨 내다니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거짓말 같은 상황이었다.
씨익!
무진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처음부터 무진은 독에 중독되지도 않았다.
수라혼원심공의 운용으로 인해 형성된 수라탄강기는 무진의 몸 전체를 감싸며 흐른다. 외부의 경력뿐만 아니라 내부의 독도 소멸시켜 버리는 무서운 공능을 지녔다.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라고 불리는 독성지체(毒性之體)와는 완벽히 다르지만, 위력은 차원이 달랐다.
무진에게 독은 소용없는 무용지물과 같았다. 무진은 완벽한 존재 그 자체였다.
“내가 받은 대로 돌려주지.”
“닥쳐랏! 이놈!”
슈슈슉!
매화검제 육진풍은 현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최강의 수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더라도 최적의 검로였다.
검을 쳐낸 것도 부족해, 내부에 충격을 주다니! 무진의 무력이 자신을 넘어선다는 뜻이 아닌가!
고작 변방의 오랑캐 따위에게 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분노한 육진풍은 매화삼절검형(梅花三絶劍形)의 만향천리(萬香千里)를 펼쳤다. 매화삼절검형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정수를 통합하여 만들어 낸 육진풍의 독문검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육진풍의 몸에서 자하신공의 기운의 뻗어 나와 짙은 자색의 기류를 형성했다.
뻗어나가는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화의 향이 산 전체를 진동시켰다. 사뿐히 떨어지는 매화의 꽃잎을 보며 만들어낸 것이 매화검법이다.
아름답지만 매섭고, 현란하지만 날카로운 것이 화산의 검법이었다.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매화검제 육진풍이었다.
“죽어랏!”
자하신공의 정점에 달하게 되면 발생하는 자하기류(紫霞氣流)가 무진의 신형을 잡아두었다.
육진풍의 검에서 피할 공간을 차단하는 방진의 능력이 펼쳐졌다. 정면에서 검을 받게 되면 꼼짝도 못하고 당하게 된다.
츄우우웅! 팟!
무진은 찔러 들어오는 검의 궤적을 알고 있다는 듯이 손을 들어 검격의 맥을 끊어 버리고, 또다시 튕겨 내었다.
받고, 끊고, 퉁기는 수법이 한 수에 이루어졌다. 가히 초극의 방어력이라고 할 수 있다.
육진풍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충격을 받고 물러서고 말았다. 충격은 좀 전보다 더 강했다. 강맹한 기류를 형성했던 자하신공의 공능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크윽!”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이…건 말도 안 돼!”
회심의 절초가 무용지물이 된 순간 육진풍은 심기를 다스리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무진은 육진풍이 심기를 다스릴 시간을 주지 않았다.
무진의 신형이 바람을 뚫어버리는 가공한 속도로 쏘아져나갔다. 찰나지간 육진풍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무진은 일절의 망설임도 없이 권을 뻗었다.
퍼퍼퍼퍼퍼펑!
육진풍의 시야가 어지러웠다. 권풍의 속도도 문제지만 하나하나에 실린 권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매화이십사수검법의 수비초식인 매화검망(梅花劍罔)을 시전하여 임시방편으로 막아섰다.
펼쳐진 매화의 그물망이 권풍에 의해 뭉개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검신을 타고 스며들어오는 권력으로 인해 검병을 잡은 손에 힘이 빠질 지경이다.
수비만 해서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반격하기가 힘들었다. 반격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무진의 권풍이 방향을 바꾸어 사각 지역으로 치고 들어왔다. 빠르고 절묘한 수법이었다.
“잘도 도망치는군.”
“뭐…이…놈!”
무진이 비아냥거렸다. 육진풍은 수치심에 분노를 표출했다. 그로 인해 검로가 불안정해지고 말았다.
그사이 무진이 근접거리까지 접근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권풍에 맞아 피륙이 되어 버릴 수 있었다.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무진이 여유를 주지 않았다.
무진이 재차 권풍을 날리려고 할 때 도강이 베어왔다. 육진풍의 위기를 안 팽관혁이 혼원벽력도법의 혼원도강(混元刀剛)을 출수한 것이다. 우선은 육진풍을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
무진은 베어져 오는 도강을 보았다.
“귀찮다.”
휘이익! 파아아앙!
도강이 무진의 신형과 부딪쳤다. 무진이 왼팔로 팽관혁의 도강을 쳐내버렸다.
팽관혁을 비롯한 이들 모두 피륙으로 이루어진 무진의 팔이 잘려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팽관혁의 몸이 튕겨 나가 버렸다. 공중으로 떠오른 팽관혁은 5장이나 날아가서야 신형을 멈출 수 있었다.
벽력신도를 잡은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몸에 받은 충격이 상상 이상이었다.
“이 무슨?”
무진과 대적해본 팽관혁이다.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이다. 그전에도 압도적인 실력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몸 안에 스며든 기운이 혼원벽력신공을 뒤흔들었다. 무진의 패도적인 기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무진이 자신과 대결할 때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놈…은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인간이 이런 터무니없는 힘을 가질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팽관혁은 오늘 이 자리에서 무진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중원무림은 무진의 손아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