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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이러 갑니다. 105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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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05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05화

피 무지개 숲 (30)

 

무지개 구슬을 탈탈- 털어서 포지션 스킬을 2개나 더 구입한 무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남쪽 토성으로 돌아왔다.

2차 몬스터 습격을 견뎌내며 생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쪽 토성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못해 허탈함과 아직 삭히지 못한 분노로 가득했다.

‘괜히 찔리긴 하지만… 목숨 값이라 생각하면 손해는 아니지.’

무혁은 남쪽 토성 거주자들의 분위기가 왜 저렇게 저기압인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토성 바깥에 널브러져 있는 몬스터들의 가슴이 열려 있는 광경과 아직도 눈이 벌겋게 변해서는 몬스터의 사체를 후벼 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괜한 헛수고들 하네.’

무혁은 유능하면서도 무척이나 꼼꼼한 통통이의 일처리를 알기에 가볍게 혀를 차고는 토성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저기서 분통을 터트리는 고성과 절망에 빠져 시름하는 듯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막을 수 없는 몬스터 군단으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도 무지개 구슬을 비롯한 스킬 링을 얻지 못해 분노하고 비탄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혁은 낮게 한숨이 나왔다.

“그 빌어먹을 이상한 것들이 우리의 것을 빼앗아 간 거라고!”

“맞아! 그 붉은 구체와 검은 구체를 찾아야 해!”

“그것들은 도둑놈들이야!”

모래 태양과 통통이를 향한 분노심을 터트리며 도둑놈, 강탈자 등으로 매도하는 몇몇 사람들의 모습에 무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죽어야 정신 차릴 놈들인가?’

아니, 저런 인간들은 죽어도 정신 차리지 못할 거다.

덕분에 무혁은 마음 한 구석에 손톱만큼 남아 있던 미안한 감정마저 깨끗하게 털어낼 수 있었다.

가라앉은 표정으로 자신의 막사로 돌아온 무혁은 그 앞에 서성거리고 있던 루이스 등을 발견했다.

“왜 그러고 있지?”

무혁의 음성에 날이 서 있었다.

자신의 막사까지 오는 그 짧은 거리 동안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보다는 분노와 적개심만을 끊임없이 들었으니 무혁의 마음도 뒤틀려 있었다.

자연스레 루이스 등도 그걸 따지려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에 목소리가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무혁의 표정과 말투에 루이스 등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저희들끼리 시선을 교환하다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루이스가 레이나와 오를리아를 대신해서 말을 꺼냈다.

“고맙다고?”

자신의 추측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나오자 무혁의 표정도 살짝 풀어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무혁, 네가 한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거든. 네가 아니었다면 우린 분명 다 죽었을 거야. 그래서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진심 어린 루이스의 표정에 무혁은 곁에 서 있는 레이나와 오를리아를 바라봤다.

두 여자 역시 비슷한 얼굴이었다.

“후우… 안으로 들어와.”

무혁은 섣부른 추측으로 그들을 의심부터 한 자신의 좁은 속을 숨기며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형님.”

방구름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자신의 간이침대에 앉아 있었다.

“넌 뭐가 좋아서 그러고 있냐?”

“살았으니까요. 그리고 형님이 제 형님이니까요.”

“…….”

무혁은 방구름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이내 혀를 끌- 찼다.

“네 몫을 다 빼앗겼는데도 웃음이 나오는 걸 보면 너도 참 등신이다.”

“목숨 값으로 그깟 무지개 구슬 몇 개 지불한 거라고 생각하면 아마도 제가 태어나서 가장 크게 이익을 본 거래가 아닌가 싶은데요?”

자신이 승리자라는 듯 손가락 두 개로 V를 만들어 내는 방구름의 모습에 무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구름이 말에 나도 전적을 동의! 아니, 내 목숨 값이 고작 무지개 구슬 몇 개라는 게 솔직히 억울할 정도라고.”

“이 빚은 나중에라도 꼭 갚을게. 언제든 날 찾아와. 단! 저급한 생각으로 날 찾아올 생각은 하지 마!”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루이스, 레이나, 오를리아까지 그렇게 말을 하자 무혁의 굳어 있던 표정이 사르르- 풀렸고, 은근하게 쌓였던 화도 수그러들었다.

무혁은 아주 잠깐 망설이다 이내 공간 주머니를 오픈하고 남아 있던 무지개 구슬을 쏟아냈다.

“지금 내가 가진 전부야. 알아서들 나눠가져.”

스킬 두 개에 4천 개를 소모한 무혁이었기에 그에게 남은 무지개 구슬은 200개가 조금 넘었다.

그걸 4명이 나누면 대략 50개씩 가져갈 수 있었으니 솔직히 오늘 목숨을 걸고 싸운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지만, 그걸 탓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이걸 우리더러 가지라고? 방금 내가 한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거야? 난 내 목숨을 그렇게 싸게 여기지 않는다고.”

정색하고 말을 하는 루이스처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쌓여 있는 무지개 구슬을 보고도 조금도 탐욕을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무혁은 순간적인 기분에 의한 행동이었지만,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고 여길 수 있었다.

“그래, 너희 목숨이 고작 이깟 무지개 구슬 몇 개와 맞바꿀 수 없다는 건 나도 알아. 그러니까 더 강해져야 할 것 아냐. 설마 지금 그 실력들로 나한테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무혁의 말이 끝나자 레이나가 톡- 쏴붙였다.

“진짜 재수 없어!”

“이건 나도 레이나의 말에 동의! 무혁, 방금 네 표정 정말 거만했던 거 알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오를리아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원래 이런 놈이야. 그러니까 더럽고 아니꼬우면 줄 때 챙겨서 강해져. 그리고 내 앞에서 목에 빳빳하게 힘주면 되잖아. 왜, 못하겠어?”

그 말에 루이스가 졌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나중에 이 모욕은 꼭 갚겠다며 무지개 구슬을 정확하게 4등분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고마워. 이 빚은 절대 잊지 않을게.”

정확하게 나눈 무지개 구슬을 받아들면서도 떨떠름해 하는 루이스와 레이나, 오를리아였다.

이윽고, 그들은 내일부터 오크 상인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찾아가려고 하는데 괜찮겠냐고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물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면 아무 상관없어.”

“어찌나 비밀이 많은지 무혁, 앞으로 난 너를 시크릿맨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루이스의 말에 무혁은 헛소리하지 말라며 그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그때, 레이나가 갑작스럽게 무혁의 입에 가볍게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뭐, 뭐야?”

무혁이 깜짝- 놀라서 레이나를 바라보자 그녀가 그의 반응에 의외라는 듯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예의 도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고마움의 표시일 뿐이야. 그 외엔 아무런 뜻도 없으니까 괜한 상상하지 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무리 내가 목숨을 빚졌다고 하더라도 내 몸을 가질 순 없어. 그러니까…….”

“원하지도 않아!”

빽- 소리를 지르며 무혁은 레이나를 막사 밖으로 밀어서 쫓아냈다.

“형님, 부럽습…….”

“그 말이 끝나면 넌 죽는다.”

무혁의 말에 실실- 웃고 있던 방구름이 재빨리 제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하아… 어이없네.”

갑작스런 레이나의 기습 뽀뽀에 무혁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레이나가 예쁜 여자인 건 사실이지만, 이성적인 호기심이나 관심 따윈 눈곱만큼도 없었기에 무혁으로서는 그녀의 갑작스런 뽀뽀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동서양의 문화차이라고 생각하자.’

레이나의 말처럼 큰 의미 없이 넘기자며 무혁은 제 입술을 손으로 쓱쓱- 닦아버렸다.

그런 무혁을 바라보며 여전히 웃고 있던 방구름은 서늘한 눈초리에 재빨리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너, 연애는 해봤냐?”

무혁의 뜬금없는 물음에 방구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모범생의 정석과도 같은 삶을 살았던 방구름이었다.

여자 사람 친구조차 제대로 만나보지 못한 방구름에게 연애는 먼 우주의 일이나 다름없었다.

“연애도 못 해본 놈이 뭘 안다고… 콱!”

무혁의 팩트 공격에 방구름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시무룩해진 방구름의 모습에 무혁은 이내 공간 주머니에서 6등급 마정 2개를 꺼냈다.

고민하고 고민했던 일이었는데, 조금 전 막사에 들어오면서 결정을 지어버렸다.

‘선생님께서 알면…….’

무혁은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송정민에게 받을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 예상이 갔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더 이상은 방구름을 외면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직까지도 시간의 탑에서 죽은 안소영을 생각하면 후회가 남는 무혁이었다.

‘똑같은 후회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아.’

어쩌면 이 선택이, 자신의 결정이 지독스럽게도 후회스러운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쪽이든 저쪽이든 모두 가정일 뿐이고 어느 쪽의 후회가 더 클지는 알 수 없는 미래였기에 무혁은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기보단 방구름을 믿어보기로 했다.

“구름아.”

“예.”

무혁의 음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졌다는 걸 알아차린 방구름이 마른침까지 삼키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난 널 믿어보기로 했다.”

말이 끝났음에도 방구름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뭐라고 대답을 하기보단 무혁의 말을 기다리는 것이 순서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왜 2년차에 불과한 내가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었는지 궁금했지?”

꿀꺽- 지금 그 비밀을 밝히려는 건가?

방구름은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뱉을 수가 없을 정도로 긴장한 표정으로 무혁을 바라봤다.

“여기에 그 답이 있다.”

무혁은 손에 들린 2개의 6등급 마정을 방구름에게 건넸다.

“이, 이게…….”

“먹어봐. 그럼 알 수 있으니까.”

방구름은 한 점의 의심도, 망설임도 없이 6등급 마정 하나를 집어 삼켰다.

잠시 후.

“…마, 말도 안 돼…….”

세차게 떨리는 눈동자로 방구름은 무혁을 바라봤고, 손에 남은 6등급 마정을 쳐다봤다.

“마저 먹어.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달릴 거니까 각오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네가 노력한 만큼의 몫만 줄 거야. 그리고 이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야. 만약, 나에게 너와 비밀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난 주저 없이 널 버릴 거다.”

온몸을 찢어발길 것만 같은 섬뜩하면서도 사나운 살기가 방구름의 몸을 에워쌌다.

단순 경고가 절대 아니었다.

정말 죽일 거라는 분명하고도 강렬한 의지였다.

방구름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무혁의 살기에 식은땀을 주륵주륵- 흘리다가 이내 낮게 숨을 토해내며 안정을 찾아갔다.

이윽고, 안정을 찾다 못해 실실- 웃기까지 하는 방구름이었다.

그 모습에 무혁의 눈꼬리가 사납게 휘어져서 올라갔다.

“웃어?”

혹시라도 이런 비밀로 협박이라도 하려는 걸까?

무혁의 머릿속에 의심이 짙어지는 순간.

“다행이네요.”

“다행이라고?”

“이제야 진짜로 형님의 동생이 된 기분이거든요. 사실, 이전까지는 형님과 제 사이에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진짜 형님의 동생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걸로 분명해졌잖아요. 최소한 제가 형님에게 버림받을 일은 없다는 사실이요. 저도… 이젠 누군가와 함께 이곳에서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서… 아…….”

말을 하며 감정에 북받쳤는지 방구름은 벌겋게 변한 눈을 사정없이 비벼댔다.

방구름의 손등에 묻어나는 물기를 바라보던 무혁은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방구름의 눈물에 괜히 울컥해서 눈물을 보일 정도로 감수성이 여린 건 아니다.

지금까지 혼자서 이 빌어먹을 헬-라시온을 살아온 방구름이 처음으로, 진심으로 제 목숨을 걸고 의지할 의지처가 생겼기에 그 외로움을 보고 무혁의 마음도 덩달아 울컥한 것이다.

“주, 죽을 때까지 형님만 따라다닐게요.”

그 말을 끝으로 방구름은 고개를 숙였다.

툭툭- 눈물이 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소리를 죽여 가며 울고 있는 방구름의 모습에 무혁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이내 다가가 어깨를 토닥였다.

“울보냐? 뭘 울고 자빠졌어. 이럴 때는 좋다고 방방 뛰어야지. 뚝 해, 임마. 다 큰 새끼가 울기는 왜 울어.”

무심하게 말을 하는 듯 했지만, 그 속에 담긴 따뜻한 정을 느꼈는지 방구름의 울음은 더욱더 커져갔다.

“끄윽! 끅…….”

참고 참았던 울음소리가 막사에 낮게 퍼졌고, 그 소리에 무혁은 고개를 들어 막사의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새끼가… 왜 울고 지랄이야.”

무혁의 코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갛고, 말을 하는 입꼬리는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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