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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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97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97화
피 무지개 숲 (22)
남쪽 토성으로 돌아온 무혁은 3시간 정도 잠을 잔 후에 일어났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전투 개미 사냥을 준비하는 방구름에게는 쉬라고 전했다.
“혼자서 가시려고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오늘은 혼자 가야겠다. 그래도 저녁 10시에는 숲으로 들어가서 오크 상인을 만날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
“예. 그런데 해야 할 일이 뭔가요?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궁금해 하는 방구름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무혁은 막사를 나섰다.
또다시 숲에 가냐는 주변의 물음에 무혁은 간단하게 대꾸하고는 정문을 통해 토성을 빠져나왔다.
“휘유- 저놈은 또 나왔네.”
헤로틴과 함께 시체들을 지키는 이들 중 한 명이 무혁을 알아보고는 장난스럽게 손까지 흔들며 친근한 척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혁의 시선은 헤로틴에게 머물러 있었다.
“뭐지? 왜 헤로틴을 보는 거야?”
너무나도 빤히 헤로틴만을 바라보는 무혁이었기에 주변에서 이유를 궁금해했다.
“저 녀석이랑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있긴 뭐가 있어.”
대수롭지 않게 대꾸를 하며 헤로틴은 나른한 표정으로 무혁을 바라봤다.
자신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무혁의 태도에 헤로틴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몸을 일으키자,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무혁은 숲을 향해 걸어갔다.
‘저 새끼… 운 좋은 줄 알아라. 오늘은 내가 너 따위 놈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서 참고 넘어간다.’
헤로틴은 등을 돌려버린 무혁의 모습에 인상만 찌푸리다 이내 신경을 꺼버렸다.
숲으로 들어선 무혁은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총을 가진 습격자를 찾는 것과 서쪽 토성의 레오나르도와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헤로틴을 상대하는 것, 그리고 몬스터 습격이 벌어지기 전에 방구름을 오크 상인과 만나게 하는 것까지.
오늘 하루만큼은 평소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했다.
특히, 서쪽 토성의 인간들이 언제 시체들을 노리고 올지 알 수 없으니 총을 가진 습격자를 찾아다니는 건 오전밖에 시간이 없었다.
총을 가진 습격자는 무혁에게도 그리고 방구름에게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리를 해야만 했다.
어차피 불특정 다수를 노리고 총을 쏘며 살인을 저지르고 있으니 무혁으로서는 잠재적인 ‘적’으로 규정해놓은 그를 잡는 일에 대한 부담이나, 죄책감 따윈 없었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알 수 없으니…….”
콰드드드드득…….
시커멓고 매끈한 워 엔트의 외피가 목에서부터 시작되어 얼굴과 뒤통수를 포함한 머리 전체를 감싸더니 투구 형태로 그 모양을 갖춰나갔다.
색상과 표면 재질을 본다면 워 엔트의 머리통과 비슷해 보일수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크기와 얼굴 형태에 맞춰진 굴곡진 모양은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조금만 눈여겨보면 알 수 있었다.
“시야가 좀 답답한데.”
무혁은 눈 주변을 가리지 않도록 조절을 해봤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문제없이 무혁의 두 눈이 드러났다.
“이왕이면 코와 입까지만…….”
결과적으로 얼굴 전체를 드러내는 것이었지만, 무혁은 어차피 얼굴로 날아오는 총알 정도도 피하지 못할까 싶어서 이내 목과 머리만 보호하는 형태로 머리를 좌우로 움직여봤다.
“약간 답답한 느낌이 있기는 하네.”
무혁은 당분간 총을 가진 습격자를 잡기 전까지는 답답하더라도 워 엔트의 견고한 외피로 머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말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뒤통수에 총알이 박힐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이제 놈이 어디에 있을지를 찾아야 하는 건데… 그 전에.”
끼릭!
새카만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전투 개미 4마리.
무혁은 반사적으로 오른손에 블랙 본 장검을 만들어내고는 미소를 머금었다.
총을 가진 습격자를 찾는 것이 가장 우선이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전투 개미들을 못 본 척 지나칠 이유는 없었다.
무혁이 전투 개미를 향해 달려들자 언제나처럼 가죽 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통통이가 툭- 튀어나와 통통- 뛰며 무혁의 사냥을 응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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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식들 오늘도 올까?”
발론이 손에 쥔 총을 빙글빙글- 돌리며 기대감에 찬 얼굴로 그렇게 입을 열었다.
“글쎄… 솔직히 아홉 명이나 죽었는데 또 오겠어? 나 같더라도 어디서 어떻게 총알이 날아와서 머리와 몸에 박힐지 모르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을 하려고 할까?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몰려올 텐데.”
제니트가 시선을 하늘로 던졌다.
여섯 개의 붉은 색상 무지개와 위태롭게 홀로 버티고 있는 보라색 무지개 띠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불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그런 위협 따윈 신경도 쓰지 않을 용감한 놈이 있을지.”
“그걸 용감하다고 해야 하는 게 맞아?”
“용감하든, 무식하든, 무모하든!”
그런 게 무슨 상관이겠냐는 듯 발론은 낄낄- 거리며 웃었다.
“그것보다도 어제 했던 말은 절대 들어줄 생각 없으니까 혹시라도 오늘 별 소득이 없더라도 욕심부릴 생각하지 마.”
“무슨 말?”
“어제 네가 했던 말.”
“아아… 그거?”
대수롭지 않게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발론과 다르게 제니트의 표정은 꽤나 진지했다.
발론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그 자식들도 약탈하는 거잖아? 우리라고 왜 안 된다는 건데?”
“발론, 제발 좀!”
“왜! 이제 우리도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거잖아! 제니트! 어차피 여긴 서로 먹고, 먹히는 곳이야! 다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몇 놈만 잡자고! 그럼 그놈들도 모를 거라니까!”
“모를 거라고 생각해? 여기서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너 하나뿐인데?”
“그거야 모르지!”
발론의 뻔뻔한 대꾸에 제니트가 자신의 이마를 신경질적으로 문질렀다.
“한 번 의심을 사면 그걸로 끝이라는 걸 왜 몰라? 레오나르도와 그 무리들이 어떤 놈들인지 너도 잘 알잖아? 어제처럼 모르는 놈들만 잡으면서 천천히 가자. 괜히 분란을 일으켜서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어.”
제니트의 설득에도 발론은 시큰둥했다.
“난 내 앞에 주어진 기회를 발로 걷어차 버릴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 그렇다고 제니트 네가 멍청하다는 소리는 아니야. 다만, 너처럼 용기를 내지 못하면 언제고 나도 똑같이 누군가에게 잡아먹힐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야. 정 불안하다면 제니트, 너는 빠져. 나 혼자서라도 할 테니까.”
어떤 말을 해도 이미 귀를 꽉! 닫아 버린 발론의 모습에 제니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건 정말 위험해! 정 안되겠다 싶으면 강제적으로라도 막아야만 해!’
어떻게 해서라도 발론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제니트였다.
그와 다르게 발론은 이미 끝난 이야기를 더 이상 할 필요도 없다는 듯 손에 들린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저놈은 뭐야?”
망원경 속에는 시커먼 투구 비슷한 뭔가를 뒤집어쓴 괴상한 놈이 어슬렁거리며 숲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인가? 혼자서 숲을 돌아다니는 놈은 처음보네.”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며 발론이 공간 주머니에서 또 다른 총 한 자루를 꺼냈다.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권총과는 완전히 다른 저격용 소총이었다.
철컥!
총알을 장전하고 오른쪽 어깨에 총을 걸친 발론이 조준 렌즈를 통해 목표점을 잡아갔다.
‘머리에 이상한 헬멧을 쓰고 있으니 깨끗하게 심장을 관통시켜주마!’
헬-라시온에 끌려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명사수 중의 명사수로 활약했던 발론이다.
수백 미터 거리의 목표물도 정확하게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저격 실력이 뛰어난 발론이었기에 어슬렁거리며 느릿하게 걷고 있는 인간의 심장을 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잠깐! 옆에 저 시커먼 공은 뭐야?”
제니트의 말에 발론은 살짝 렌즈를 움직였다.
둥그렇고 시커먼 구체가 통통- 뛰고 있었다.
“저놈 죽이고 확인해보면 되지.”
제니트는 별것 아닐 거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 발론을 말리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호흡을 멈춘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가볍게 당겼다.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빠르게 날아갔고 그대로 남자의 심장을 꿰뚫어버렸다.
털썩!
목표물이 그대로 쓰러지자 발론이 만족스럽게 웃으면서도 침착하게 렌즈를 통해 주변을 한 번 더 살펴봤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발론은 표정을 찌푸리고 있는 제니트에게 어깨를 으쓱- 거리고는 저격용 소총을 공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이것 봐 얼마나 쉬워? 여기선 내가 왕이라니까! 하하하핫!”
커다랗게 웃으며 발론은 쓰러진 남자를 향해 걸었고, 제니트 역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 뒤를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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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저격이구나…….’
무혁은 눈을 깜빡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별것 없었지만, 그보다도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심장에 박혀 들어가는 총알의 무서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과적으로 무혁은 멀쩡했다.
총알은 무혁의 중첩된 방어구들을 뚫을 수 없었으니까.
마수 켈로나의 가죽 세트, 카르마덴 심장 보호갑, 오르테족의 피부 옷까지.
무려 3중으로 심장을 보호하고 있었으며, 이 세 가지의 방어구 모두 5등급이었기에 심장을 노렸던 총알이 최소 5등급 총알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뚫리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심장을 노렸던 총알은 마수 켈로나의 가죽 세트에 아주 작은 흠집만 냈을 뿐, 얇은 가죽조차 뚫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혁은 죽은 사람처럼 손가락 하나 꿈틀거리지 않고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1등급 총과 총알을 가진 저격수가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무혁은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방어구를 툭툭툭- 뚫고 심장에 총알이 박혔을 거다.
물론, 헬-라시온에서 1등급 총과 총알을 사용할 사람도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겠지만 그런 가공스러운 무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혁은 섬뜩함을 느껴야만 했다.
‘하긴, 1등급 무기면 총이든, 칼이든 무슨 의미가 있었어.’
다만,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다는 점이 무서울 뿐이었다.
‘어쨌든 이 새끼… 잡았다!’
무혁은 느긋하게 누워서 죽은 척 자신의 심장에 총알을 박아 넣은 놈을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 누워있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숲에서는 어떤 놈이든 내 총알 한 방이면 다 끝이야! 그러니까 레오나르도든 뭐든 난 무서울 것 없어! 그러니까 제니트, 너도 생각을 잘해. 우리는 두려울 게 없는 환상의 듀오라고!”
“나도 네 저격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우린 결국 토성으로 돌아가야 하고 이 빌어먹을 강제 사냥에서 살아남아야 하잖아. 그런데 우리가 오늘 녀석들의 일을 방해하면 분명 의심을 받게 된다고. 난 그게 싫을 뿐이야.”
“내가 총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녀석들이 아는 건 이 권총뿐이야. 저격용 총이 따로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하는데 무슨 의심? 물증이 없는데 뭐가 걱정이야.”
“발론, 그런 식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라니까!”
“아아- 됐어! 그 이야기는 제발 그만 좀 해! 제니트, 네가 뭐라고 하더라도 난 오늘 녀석들의 일에 한 발 걸쳐서 내 몫을 톡톡히 챙길 거야. 어차피 그 녀석들도 헤로틴인지 뭔지 하는 놈과 짜고 남쪽 토성 놈들을 벗겨먹는 거잖아? 같이 사이좋게 나눠 먹자는 건데 그게 뭐 잘못 됐다고 그래.”
더 이상 대화를 하기 싫다는 듯 발론이 말을 딱! 끊어버리자 제니트도 한숨만 푹푹- 내쉴 뿐, 말을 잇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무혁은 스킬을 펼쳤다.
‘보석 도마뱀의 위장, 강철 체력,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세 가지의 스킬을 능숙하게 사용해서 고유 능력의 정밀 수치를 뻥튀기 튀기듯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저벅저벅- 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졌을 때, 무혁이 왼팔을 뻗으며 상체를 들어 올렸다.
“뭐, 뭐야! 주, 죽은 게 아니었어?”
발론이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이 제니트가 재빠르게 공간 주머니에서 거대한 방패를 꺼내들었다.
“내 뒤에 서!”
발론이 허겁지겁 제니트의 뒤에 섰을 때, 무혁은 블랙 본 활을 만들어 내고 화살을 시위에 팽팽하게 걸어둔 상태였다.
“대화할 사람은 한 놈이면 충분하니까… 한 놈은 먼저 보내줄게.”
무혁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 시위에 걸어두었던 화살을 놓았다.
피유우우웅!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블랙 본 화살은 그대로 제니트가 들어 올린 방패와 충돌했다.
콰앙!
폭탄이 터지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제니트의 손에 들려 있던 방패가 사방으로 찢겨지며 터져 나갔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제니트는 방패를 들고 있던 팔 또한 너덜너덜 뜯겨진 채 뒤로 훌훌- 날아 바닥에 처박혔다.
제니트의 뒤에 숨어 있었던 발론 역시 상태가 멀쩡할 순 없었다.
충돌의 여파에 휘말려 방패 조각 일부가 몸에 박혔고, 제니트가 뒤로 날아갈 때 떠밀리면서 꼴사납게 땅바닥을 나뒹굴어야만 했다.
“으으으으으…….”
제니트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뜯겨진 팔의 부상도 심각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가슴 한쪽이 뻥- 뚫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등급만 따지면 5등급인 블랙 본 화살의 위력은 제니트가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하더라도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제, 제니트! 제니트!”
발론이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제니트를 바라보며 울부짖었지만, 한 마디의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끝내 제니트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제니트-!”
“친구의 죽음은 유감이야.”
발론은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무혁의 모습에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며 재빨리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죽어! 이 개자식아-!”
탕! 탕! 탕! 탕! 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