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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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96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96화
피 무지개 숲 (21)
어김없이 짙은 어둠이 숲을 집어삼켰을 때, 무혁과 방구름은 토성으로 돌아왔다.
토성으로 돌아온 무혁과 방구름은 놀라운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습격?”
무혁의 물음에 루이스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해줬다.
아홉 명이 죽었다.
무혁과 방구름을 따라서 용감하게 숲으로 들어섰던 서른 명의 인원 중 아홉 명이 숲에서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헬-라시온에서 죽음이야 삶보다 가까웠으니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몬스터가 아닌 같은 강제 사냥 참가자에게 당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동일범 소행일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했다.
“총?”
죽은 자들의 상처는 하나 같이 동일했다.
총상.
무혁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두 사람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처음 숲에 들어섰을 때, 은신한 상태로 만났었던 두 남자 중 한 명이 분명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물론, 총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그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무혁은 여러모로 그들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가 완전… 어휴.”
루이스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구름은 왜 그렇지 않겠냐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한 번 있었던 일이었으니 새삼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강제 사냥은 단순히 몬스터만이 적이 아니다.
함께 경쟁을 하는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살인은 일어나기에 일전에 워터 볼을 조달하다 벌어졌던 싸움 이후, 며칠이나 지났으니 사실상 이번 강제 사냥만큼 같은 참가자들끼리의 충돌이 적은 적도 없다 생각하는 방구름이었다.
“하루 만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벌써 내일부터는 절대 숲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쪽과 범인이 누구인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는 쪽의 의견이 팽팽해.”
루이스의 말에 방구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일만 벌어지면 의견이 갈라져서는 대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징글징글했다.
생각해보면 방구름으로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보통 강제 사냥이 시작되면 확고하게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레오나르도가 있었다면…….’
방구름은 생각을 하다 미간을 찌푸렸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남쪽 토성의 상황이 번잡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싫은 인간을 떠올렸으니 방구름으로서는 최악의 가정이었다고 여기며 얼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러다 문득,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무혁을 바라봤다.
‘형님이라면 분명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가 되실 수 있으실 텐데.’
하지만,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려고 하는 무혁의 성격을 알기에 방구름은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과시하지 않는 그가 더욱더 존경스럽다고만 여겨졌다.
루이스 일행이 돌아가고 나자 방구름은 내일을 위해 간이침대에 몸을 뉘였다.
대부분의 전투는 무혁이 담당하고 있었지만, 방구름 역시 전투 능력을 높여야만 했기에 죽기 살기로 전투 개미를 상대로 싸우다 보니 온몸에 납덩이를 매달아 놓은 것마냥 피로감이 가득했다.
몸을 눕히기가 무섭게 잠에 빠져든 방구름과 다르게 무혁은 그가 잠들길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얼굴 없는 암살자의 은신.’
스킬을 사용하자 곧바로 무혁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무혁은 바람의 향기, 은밀한 발걸음까지 사용해서 자신의 자취를 깔끔하게 지워버리고는 막사를 빠져나왔다.
막사를 나온 무혁은 거침없는 걸음으로 토성 외벽까지 뛰어넘었다.
‘도대체 저 짓을 언제까지 하려고 저러는 거야?’
무혁은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헤로틴과 그 일당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거의 하루 종일 저러고 시체들을 지키고 있다고 하니 그 오기와 집념 하나는 정말 칭찬해줄만 하다 여겼다.
그들에게 던졌던 시선을 거두며 무혁은 숲이 아닌 작은 길을 바라보며 스킬을 펼쳤다.
‘보석 도마뱀의 위장!’
무혁은 곧바로 40퍼센트의 체력의 정밀 수치를 정확하게 절반씩 지구력과 순발력에 몰아넣었다.
‘강철 체력!’
이어진 강철 체력 스킬로 인해 보석 도마뱀의 위장 스킬을 사용하기 전 순수하게 지니고 있던 체력 정밀 수치인 40퍼센트의 30퍼센트인 12퍼센트가 새로이 생겨났다.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마지막으로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을 사용하자 순발력과 지구력은 각각 40퍼센트로, 체력은 24퍼센트로 다시 뻥튀기가 됐다.
원하기만 한다면 방구름이 만든 각종 포션을 복용해서 정밀 수치를 더욱더 끌어 올릴 수도 있었지만, 고작 정찰을 하기 위해 아까운 포션을 낭비할 순 없었기에 무혁은 이만하면 됐다는 듯 빠르게 숲이 아닌 각 토성을 이어주는 오솔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동서남북으로 세워져 있는 토성은 각각 그 거리가 상당한 편이었다.
속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고유 능력인 순발력이 5등급에 스킬을 이용해서 정밀 수치를 40퍼센트로 뻥튀기시킨 무혁조차도 전력으로 1시간 이상 달려야 할 정도로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그 말인즉슨, 무혁이 거주 중인 남쪽 토성에서부터 시작해 동쪽, 북쪽, 서쪽 그리고 다시 남쪽으로까지 이어진 길을 4시간 넘도록 전력으로 달려야 한 바퀴를 돌 수 있단 소리였다.
“후우- 후우- 후우-!”
숨을 크게 몰아쉬며 무혁은 눈앞에 세워져 있는 동쪽 토성을 살펴봤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데?”
동쪽 토성은 생각보다 첫 번째 몬스터 습격에 대한 피해가 상당히 심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보수 공사를 해놓은 것 같기는 했지만, 두 번째 몬스터 습격을 과연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상태가 열악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확인해봐야겠지?”
무혁은 이왕 내친걸음이니 토성 안의 사정까지도 확인해볼 작정으로 침투할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모래성에서 질리도록 해봤다고 이젠 저절로 틈이 보이네.’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무혁은 가장 적당하다 싶은 빈틈을 찾아냈다.
침투 시간은 5분.
그 이상을 넘기면 강제로 튕겨져 나간다고 했지만, 무혁은 결코 조용히 쫓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분명 어떤 식으로든 토성 내부에 침입자가 있었다는 걸 알릴 것이 분명했다.
‘괜한 호기심으로 일을 키울 필요는 없으니 시간 잘 맞추자.’
무혁은 시계를 조작했고, 초심이 빠르게 변하는 걸 확인하곤 곧장 토성 내부로 들어섰다.
동쪽 토성 내부는 외부만큼이나 심각했다.
많은 막사가 거의 텅텅- 비어 있을 정도로 인원도 부족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면증에 걸린 것마냥 제대로 수면도 못 취하면서 뭔가 우울하고도 암울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냉정하게 판단해서 2차 몬스터 습격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암울한 분위기 속의 동쪽 토성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무혁은 한 막사에서 조용하지만 상당히 격앙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 있다가는 다 죽는다고!”
“제발 그만 좀 해! 이제 와 그런 소리가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이젠 숲에서 3일을 버틸 수도 없게 됐잖아! 내일이 지나면 또다시 몬스터 습격이 있을 텐데 여길 떠나더라도 이번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내야 한다고!”
“젠장! 케인을 따라 움직였어야 했어! 그랬다면 벌써 가장 완벽한 방어를 구축해놓은 서쪽 토성에서 안전하게 몬스터 습격을 대비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를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잘 알잖아? 조니, 제발 우리 이번만 버텨내자. 죽기 살기로 버티겠다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잘 될 거야.”
왠지 자신 없게 느껴지는 음성을 들으며 무혁은 자리를 벗어났다.
‘어쩐지 사람들이 너무 적다고 느껴졌더니 다른 토성으로 옮긴 거였군. 그런데 왜 못 봤지?’
피 무지개 숲의 룰은 다른 토성으로 이주하기 위해선 3일 동안 숲에서 노숙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무혁은 지금까지 노숙을 하는 이들을 본 적이 없었다.
‘하긴, 어디 한구석에 짱 박혀 있었다면 내가 어떻게 알겠어?’
넓디넓은 숲을 모두 뒤지고 다녔던 것도 아니니 무혁은 자신이 못 봤을 수도 있다 여겼다.
동쪽 토성을 빠져나온 무혁은 곧장 북쪽 토성으로 향했다.
1시간에 걸쳐 전력으로 달리고 나서야 북쪽 토성에 도착한 무혁은 그곳에서도 암울한 분위기를 볼 수 있었다.
동쪽 토성보다 아주 조금 나은 상황일 뿐, 결코 희망적이라고 부를 순 없었다.
무엇보다 북쪽 토성에서도 누군가 주도해서 사람들을 끌고 이주를 감행했다는 사실에 무혁은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했다.
‘뭔가 이상한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무혁은 왠지 모르게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서쪽 토성까지 가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
무혁은 서둘러 서쪽 토성을 향해 부지런히 내달렸다.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서쪽 토성은.
“…저게 다 뭐야?”
같은 토성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서쪽 토성은 외형적인 모습부터가 확연하게 달랐다.
“몬스터 시체?”
놀랍게도 외벽 앞에 몬스터 시체를 또 하나의 벽처럼 쌓아뒀다.
그리고 숲에서 구한 듯 보이는 나무들을 창처럼 끝을 뾰족하게 깎아서 곳곳에 세워두고 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위협적이었기에 제아무리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드는 몬스터라 하더라도 쉽사리 접근을 할 수가 없어 보였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굉장히 효과적인 방어 시설을 구축해놓은 셈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곳곳에 상당히 깊은 구덩이를 파놓은 흔적들과 토성 외벽의 높이를 1미터 가량이나 더 높인 것도 놀라울 정도였다.
“다른 곳들에 비하면 여긴 완전 진짜 성이네. 아니, 요새네 요새야.”
무혁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고는 도대체 이곳은 어떤 인간들이 머물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감탄이 나올 정도로 방어 시설을 구축했다 하더라도 그건 이성을 잃고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몬스터들에게나 해당하는 사항일뿐.
무혁의 눈엔 허술한 곳이 꽤나 많이 보였고 그런 곳을 통해 어렵지 않게 토성 내부로 잠입할 수 있었다.
토성 내부로 잠입한 무혁은 또 한 번 놀라야만 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첫 번째 습격 때 희생자가 거의 없었던 건가?’
서쪽 토성 내부에는 막사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물론, 정원 가득 들어차 있는 건 아니었지만, 대다수의 막사가 사용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인원수가 많다는 뜻이었다.
‘내부 시설도 장난 아닌데?’
혹시라도 토성 외벽이 뚫렸을 때를 대비한 것인지, 토성 내부에는 최소 백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가서 버틸 수 있는 울타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두꺼운 나무를 견고하게 맞대서 세워진 울타리는 정말 최후의 순간 죽기 살기로 몬스터의 습격을 버텨내기 위한 장치로 보였다.
‘단합이 잘 되는 거야 아니면…….’
누군가 강력한 리더가 있는 거다.
무혁은 막사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아직까지도 잠을 자지 않고 있는 이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확실히 동쪽과 북쪽 토성 사람들과 같은 우울하고도 희망 없는 대화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무혁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질 정도로 심각한 대화 내용이 들려왔다.
“다른 곳은 다 끝났는데 도대체 왜 남쪽만 아직까지 버티는 거야?”
“그쪽은 사정이 좀 복잡해.”
“복잡하기는! 이게 다 그 헤로틴 멍청한 놈 때문이잖아!”
‘헤로틴?’
헤로틴의 이름이 거론되자 무혁의 미간이 더욱더 좁혀졌다.
“그 멍청한 놈이 애초부터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 아냐? 케인이랑 알베르토처럼 환심을 사서 사람을 이끌었어야지. 힘도 없는 주제에 큰 소리만 떵떵 치더니 결국 이게 뭐야?”
“그 자식이 원래 우리들 중에서도 제일 강하다고 으스대는 놈이잖아?”
“강하기는! 레오나르도가 말리지만 않았어도 그 자식은 진즉에 내 손에 죽었어!”
“그래.”
구태여 말다툼을 하기 싫은지 대답하는 이가 건성으로 대꾸하고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정말 내일 괜찮을까? 몬스터 습격을 대비해야 하는데 굳이 남쪽 토성까지 가서 표식을 거둬야 하는 걸까? 그거 얼마나 된다고…….”
남쪽, 그리고 표식이라는 단어에 무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레오나르도 말 못 들었어? 우리가 강해지기 위해선 그런 작은 것조차도 사소하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했잖아. 솔직히 난 레오나르도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 우리가 부락에서 어떤 처지였는지 너도 느껴봤잖아? 처음에는 아스펠 마을의 식민이라는 사실이 굉장히 싫었지만, 레오나르도를 봐! 아스펠 마을에서 꿋꿋하게 버티면서 우리가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잖아? 나는 반드시 레오나르도처럼 될 거야! 그래서 날 무시했던 그 개자식들을 다시 만났을 때, 모조리 짓밟아 버리고 말 거야.”
한이 서린 듯한 남자의 말에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격려가 이어졌다.
“그런데 헤로틴이 잘 해줘야 할 텐데. 그 자식이 또 일을 망치는 건 아니겠지?”
“만약, 이번에도 엉뚱한 짓으로 일을 망치려고 든다면 난 이번에 헤로틴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그래도 될까? 레오나르도가 우리끼리는 절대 싸우지 말라고 했잖아?”
“그거야 잘 알지만, 예외라는 게 있는 법이잖아?”
“예외라… 그거 좋지.”
낄낄- 웃던 두 사람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지만, 더 이상은 크게 신경 써서 들을 만큼 중요한 내용은 없었다.
조용히 막사에서 멀어진 무혁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레오나르도의 막사를 찾아다녔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고 5분이라는 시간도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기에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서쪽 토성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레오나르도라…….”
무혁은 피 무지개 숲 강제 사냥을 시작하기 전, 방구름과 함께 아스펠 마을에서 만났던 레오나르도의 얼굴을 떠올리며 남쪽 토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돌아가는 무혁의 발걸음은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다른 때보다도 맹렬하게 회전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