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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이러 갑니다. 94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9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94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94화

피 무지개 숲 (19)

 

“저, 저기 봐! 맙소사!”

곁에 앉아 있는 이의 호들갑이 아니더라도 헤로틴의 시선은 이미 달빛 하나 없는 캄캄한 숲 속에서 빠져나오는 무혁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죽었나 싶었더니… 멀쩡하네?”

“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 늦은 시간까지 숲에서 있을 수 있었지?”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게 무슨 소리야?”

“저 자식을 보니까 어쩌면 우리가 너무 겁을 먹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에이- 그건 말이 안 되지! 그 많던 몬스터들이 숲으로 모두 들어가는 걸 봤으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그럼 저 자식이 어떻게 이 시간까지 숲에 있다가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겠어?”

“그야…….”

자신이 어떻게 알겠냐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숲이 안전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점점 신뢰도가 높아졌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무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 종일 숲에서 머물다가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자연 숲에 대한 공포심이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주변의 소란스러움에 눈살을 찌푸린 헤로틴이 몸을 일으켰다.

저벅저벅- 거침없이 걸음을 옮긴 헤로틴은 무혁의 앞길을 막아섰다.

토성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횃불들 덕분에 헤로틴의 거구가 더욱더 크게 느껴졌다.

무혁은 길을 막고 선 헤로틴을 쳐다봤다.

무슨 볼일이 있어서 길을 막고 섰냐는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숲에서 뭘 했지?”

그게 무슨 멍청한 물음이냐는 듯 무혁이 눈을 찌푸렸다.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따로 묻고 싶은 걸 빙빙 돌려 말하는 거야?”

헤로틴은 무혁의 몸을 위아래로 샅샅이 훑어봤다.

레더 아머를 세트로 착용하고 있는 걸로 봐선 마냥 별 볼 일 없는 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하다고 할 것도 없었다.

평범하다고나 할까?

물론, 무혁이 착용하고 있는 방어구들의 수와 그 등급을 알게 된다면 눈이 뒤집히겠지만, 어쨌든 겉으로 보기엔 그저 그런 레더 아머일 뿐이었기에 헤로틴의 추측이 마냥 잘못된 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상처도 없었고, 레더 아머의 곳곳에 묻어 있는 몬스터 체액들의 흔적도 딱히 그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는 볼 수 없었다.

누가 봐도 큰 위험 없이 숲을 다녀온 듯한 모습일 뿐이었다.

무혁은 자신을 빤히 살펴보는 헤로틴의 모습에 그를 무시하고 지나갈까 생각하다 이내 귀찮은 일에 얽힐 것만 같았기에 대충 숲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무혁의 설명을 들은 헤로틴이 샛노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전투 개미의 수가 늘어났다고?”

“늘어났는지, 줄어들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 처음부터 전투 개미의 수가 몇이나 되는지 알지 못하니까. 다만, 해머 거인 등을 비롯한 몬스터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그럼 넌 어떻게 지금까지 숲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거지?”

대놓고 너는 전투 개미들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단순히 무혁을 무시하는 것보다는 현재 토성의 그 누구도 숲 안에서는 전투 개미를 상대로 쉽게 싸워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전투 개미는 홀로 다니는 몬스터가 아니질 않은가?

“굳이 싸워야 할 필요가 있나?”

무혁은 피하면 그만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너 따위가 그런 걸 쉽게 할 리가…….”

“누구에게나 특기가 있는 거야.”

헤로틴의 말을 끊으며 무혁은 그의 우람한 팔뚝을 툭툭- 치고는 이어서 자신의 허벅지를 똑같이 두 차례 쳤다.

그 의미는 명백했다.

너는 힘, 나는 속도라는 뜻.

헤로틴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더 이상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무혁의 말처럼 고유 능력의 등급과 정밀 수치를 순발력을 중점으로 속도에 올인했을 수도 있고, 스킬 또한 속도 위주로 익히고 있다면 제아무리 전투 개미가 대단하다 한들 도망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대화는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은데? 피곤해서 말이야.”

무혁이 길 좀 비켜달라는 듯 말을 하자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던 헤로틴이 이내 옆으로 물러나 줬다.

헤로틴은 토성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무혁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깊은 생각에 빠졌는지 헤로틴은 한참 동안이나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토성으로 돌아온 무혁은 여전히 화제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헤이- 우리와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마일러가 사람 좋게 웃으며 무혁에게 다가왔다.

곁에는 마르테가 서 있었고, 그 외에도 숲의 사정에 대해 궁금해 보이는 이들이 여럿 있었는데, 무혁은 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전까지 휴식은 없을 것 같다 여겨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담배를 폐 깊은 곳까지 빨아들인 무혁이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대답했다.

“피곤하니까 용건만 간단히 한다면.”

무혁의 허락에 마일러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무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안심시켰다.

결과적으로 무혁은 용건만 간단히 할 수 없었다.

무려 2시간 동안이나 사람들의 질문 공세에 대답해야 했고, 그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줘야만 했다.

그들이 무혁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결론은 간단했다.

전투 개미가 자주 보이는 숲은 분명 위험하지만, 재주껏 그 위험을 피할 수 있다.

그걸 증명한 것이 무혁이다.

이제 고민과 선택은 개인 혹은 무리의 일이었다.

전투 개미로 인해 한층 위험해진 숲으로 들어가서 사냥을 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2차 몬스터 습격에 대한 대비를 철저하게 하면서 휴식을 취할 것인지.

“너희도 결정해. 원한다면 함께 숲으로 가 줄 수 있어.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무혁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더 붙잡고 늘어지려는 마일러 등을 뿌리치고 막사로 돌아왔지만, 방구름과 루이스 등이 모여 있자,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다는 듯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는 얼굴로 그렇게 말을 했다.

이미 루이스 등은 무혁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위험하지 않을까?”

루이스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무혁이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이냐는 듯 웃었다.

“위험하지. 사냥을 하다보면 위험한 순간은 지속적으로 생기겠지. 그런데 난 너희들의 보모가 아니잖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지 않는다는 무혁의 냉정한 말에 루이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빠질래.”

루이스가 가장 먼저 자신의 결정을 내놓았다.

숲으로 사냥을 가는 목적은 무지개 구슬과 스킬 링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숲에 들어가지 않고도 며칠 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데 구태여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여긴 것이다.

그게 딱 루이스의 한계였고, 그가 아스펠 마을 식민이 된 이유였다.

무혁은 루이스의 결정을 존중했다.

각자 원하는 것과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걸 비난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루이스는 루이스만의 생존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뜻이니 무혁이 나서서 그를 설득할 이유도 그럴 책임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지난 며칠 동안 꽤 친근하게 굴며 친분을 다졌기에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을 뿐이었다.

“오를리아와 레이나는?”

오를리아는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 역시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 여긴 것이다.

반면, 레이나는 꽤나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무혁을 바라봤다.

당연히 그런 위험한 짓을 왜 하겠냐며 콧방귀를 낄 것이라고 여겼던 무혁으로서는 의외의 모습이었다.

혹시라도 괜한 관계에 얽힐 것을 걱정해서 무혁은 애초에 방지하겠다는 듯 다시 한 번 똑 부러지게 말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난 네 보호자 역할을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 그러니까 괜한 기대 따위 갖지 마.”

냉정하기까지 한 무혁의 말에 레이나는 칫- 하고 입술을 깨물다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걸로 레이나까지 포기.

남은 한 사람은 방구름이었고, 무혁은 이미 그의 결정을 알고 있다는 듯 대답을 듣지도 않았다.

루이스 등이 돌아간 이후, 무혁은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간이침대에 몸을 눕혔다.

조금 떨어진 곳에 똑같은 간이침대에 누운 방구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침에 형님이 하신 말씀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무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방구름의 말이 이어지길 가만히 기다렸다.

“솔직히 말해서 형님 말씀이 거북했었습니다. 분명 머리로는 그게 맞다고, 나를 위한 일이라고 외치고 있는데, 가슴에서는 거부감이 들었어요. 그러다 생각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만은 없는 거라고. 헬-라시온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은 나도 언제고 더 이상 숨을 쉬고 살아가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해보려고요. 형님처럼, 그냥 형님만 따라서 해보려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만 두고 가지 말아주세요.”

무혁은 방구름의 말이 끝나고 한참 만에 말을 했다.

“내일부터 몬스터를 사냥하고 나오는 모든 걸 n분의 1로 간다. 그러니까 하나라도 더 많은 무지개 구슬을 모으려면 내 속도에 잘 맞춰서 움직여. 2차 몬스터 습격 전에 오크 상인 만날 거니까. 그때 가서 무지개 구슬 부족하다고 징징거리지 마. 지금 확실하게 못 박아 두지만, 난 내가 가진 걸 나눠줄 정도로 호구가 아냐.”

“혀, 형님…….”

방구름이 감격한 듯 떨리는 음성으로 자신을 부르자 무혁은 그만 자라며 등을 돌려버렸다.

“절대 형님 발목 잡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또 오바한다.”

귀찮다는 듯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혁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무혁은 몇 시간의 숙면을 취했고, 방구름은 묘한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지새웠다.

 

아침 해가 뜨기 직전에 일어난 무혁과 방구름은 곧장 숲으로 향했다.

혼자였던 무혁이 방구름과 함께 숲으로 향하자 사람들은 미친놈이 하나 더 추가됐다고 혀를 찼지만, 속마음은 정말 안전한 거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늦은 밤, 무혁과 방구름이 돌아오자 사람들의 의구심은 더욱더 커져갔다.

다음 날에도 무혁과 방구름은 어김없이 숲으로 향했다.

한 번, 두 번은 그렇다 치더라도 세 번째 날까지도 무혁과 방구름이 무사히 돌아오자 그제야 사람들은 숲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숲으로 가려는 모양인데요?”

방구름은 뒤를 힐끔-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대략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무혁과 방구름의 뒤를 쫓아서 숲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엔 긴장감과 비장함, 그리고 묘한 흥분감이 감돌았다.

“그런가 보지.”

무혁은 시큰둥했다.

어차피 숲에 몬스터는 널리고 널렸다.

저들이 숲으로 들어온다고 자신의 몫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예상했던 것처럼 전투 개미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일정 수준을 항상 유지하고 있었다.

즉, 숲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주체가 전투 개미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만에 하나라도 2차 몬스터 습격을 앞두고 전투 개미가 무지개를 뚫고 떨어졌던 것처럼 그보다 더 강한 몬스터가 추가된다면?

‘최악의 경우 토성 방어를 못할 수도 있겠지.’

아직까지 다른 토성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무혁으로서는 아무래도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다른 토성들의 상황이 어떤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저 정도의 숫자면 큰 위험은 없겠죠?”

뒤를 따라 오는 서른 명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구름의 눈엔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어쨌든 남쪽 토성을 지켜야 하는 소중한 방어 병력이니 이왕이면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숲에서 사냥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만큼 신중했으니 별 탈 없겠지.”

서너 마리씩 짝을 지어서 숲을 돌아다니는 전투 개미는 분명 서른 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당장 큰 위협이 되진 않을 거다.

하지만, 그런 전투 개미들이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쉬지 않고 몰려오고, 몰려오길 반복한다면?

자연스럽게 위험이 증가할 것이고, 한 번만 삐끗하면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하게 된다.

30명이 29명으로 줄고, 다시 28명, 27명으로 줄어들면 그땐 사람들의 가슴속에 불안감이 싹을 틔울 것이고, 왜 자신이 안전한 곳을 벗어나 위험을 자초했나 싶은 후회를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그 순간부터 급속도로 단결력이 붕괴된다.

‘마르테와 마일러가 있으니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현명하게 대처하겠지.’

무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더 이상 신경을 꺼버렸다.

저들의 안전이 걱정스럽다고 자신이 무언가를 해줄 이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성도 못 느꼈기에 무혁은 오늘의 목표에만 집중했다.

‘드디어 오늘 불완전한 5등급 마정을 만들 수 있다!’

숲의 주력 몬스터가 전투 개미로 바뀐 덕분에 무혁은 6등급 마정 찌꺼기를 빠르게 모을 수 있었고, 그걸 6등급 마정으로 바꾸길 반복했다.

그 결과 공간 주머니에는 6등급 마정 50개를 모아야 만들 수 있는 ‘6등급 마정 씨앗’ 하나가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평소처럼 전투 개미를 사냥한다면 ‘불완전한 5등급 마정’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불완전한 5등급 마정… 기대되네.’

무혁은 눈앞에 장난감을 둔 어린아이처럼 숲을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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