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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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27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27화
아스펠 마을 (10)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350만 포인트짜리 ‘카르마덴 투구’였다.
가장 기본적인 투구 그 자체적인 성능에만 충실했기에 가격 또한 합리적이었다.
1,300만 포인트에 350만 포인트까지 사용하자 2,900만 포인트가 순식간에 1,250만 포인트 밖에 남질 않았다.
포인트가 차감되어 갈 때마다 다시 한번 통통이가 삼켜버린 마수의 인장이 떠올랐다.
“휴우… 방패도 보여줘. 이왕이면 카르마덴 재질 아니, 5등급 방어력을 가진 크고 튼튼한 방패면 돼.”
또다시 홀로그램이 무혁의 눈앞에 촤르르- 펼쳐졌다.
방패는 쉽게 선택했다.
방패 역시 항상 사용하기보단 상황에 맞춰서 사용할 것이기에 기본적으로 튼튼하고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크기면 충분했다.
당연히 미적 감각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디자인 따윈 필요치 않았다.
“성능은 똑같은데 문양이 조금 더 들어갔다고 무슨 20만 포인트나 더 비싸냐.”
생사를 걸고 사용해야 하는 방패에 디자인이라니!
무혁은 어처구니없다며 혀를 차고는 직사각형 형태의 5등급 강철 방패를 구매했다.
또다시 400만 포인트가 사라졌다.
이제 남은 포인트는 850만 포인트.
포인트가 깎여 나갈 때마다 무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통통이를 향했다.
무혁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리리타오에게 말했다.
“스킬 저장 물품 좀 보여줘. 이왕이면 반지나 귀걸이 계열로. 아! 혹시 몸에 직접 문신처럼 새겨 넣을 수도 있나?”
1회성 스킬을 한꺼번에 담아 둘 수 있는 스킬 저장 물품은 무혁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
무혁은 반지나 귀걸이처럼 분실하거나, 누군가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있는 것보다는 직접 몸에 새겨 넣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반지와 귀걸이처럼 액세서리는 기본적으로 모든 디자인을 떠나 30만 포인트에 구매가 가능했다.
단 스킬 저장 횟수에 따라 가격이 추가된다.
10개 단위로 5만 포인트씩 받았으니 100개라 치면 50만 포인트를 소모해야만 했다.
“더럽게 비싸네…….”
무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1회성 스킬 링의 수를 떠올리고는 울상을 지었다.
“문신은?”
“문신의 경우 기본 50만 포인트다. 스킬 저장은 10개 단위로 8만 포인트다.”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 수준이네.’
공간 주머니도 그렇고 문신은 최상위 등급 옵션이었기에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래, 반지나 목걸이에 비해 비싼 건 이해한다.
그런데 왜, 어째서, 스킬 저장 가격조차 비싸게 받는단 말인가?
인상이 더욱더 찌푸려진 무혁은 신중하게 고민을 하다가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신으로 하지.”
포인트 좀 아끼겠다고 문신을 포기할 순 없는 무혁이었다.
“문신의 문양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건가?”
“불가능하다.”
“크기는? 손바닥 같은 곳에서 새길 수 없을 정도로 큰가?”
“손바닥 정도의 면적이라면 충분하다.”
“혹시 손바닥 같은 곳에다가 문신을 새겨 넣으면 상처를 입었을 때 훼손되어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려나?”
“훼손이 되는 즉시 곧바로 복구가 된다. 하지만, 손목 전체가 잘려나간다면 잘린 손목을 가지고 있어야 복구가 가능하다.”
“아쉽군. 손바닥에 새기려고 했더니.”
멋지게 손바닥에 문신을 새겨 넣고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던 무혁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방패에 무슨 디자인이냐며 불만을 표출했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졌기에 리리타오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디에 문신을 새겨야 할까 고민하던 무혁은 이내 뒷목 중앙, 어깨선에 맞춰서 문신을 새겨달라고 했다.
평소에는 쉽게 잘 보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지만, 보이더라도 얼핏 보였을 때의 ‘멋’이 느껴진다고 예전부터 생각을 해왔던 문신 부위였기 때문이다.
스킬 저장 문신은 위 아래로 꼭짓점이 있는 육각형이었고, 그 안에 알 수 없는 문자와 그림이 아주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생각보다…….”
자신이 상상했던 문양과는 좀 많이 동떨어졌기에 무혁의 얼굴에 언 듯 실망감이 스쳤다.
‘아니지, 악마의 형상이나 그런 거였으면 어쩔 뻔했어? 차라리 이런 게 백번 낫지.’
리리타오가 건네준 두 개의 거울로 스킬 저장 문신을 확인한 무혁이 뒤이어 스킬 링을 꺼내놓았다.
“이게 다 1회성 스킬 링이라고?”
한눈에 봐도 꽤 많은 스킬 링 숫자에 리리타오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무혁을 바라봤다.
제아무리 스킬 링 획득률이 높은 강제 사냥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저것 다 포함한 것도 아닌 1회성 스킬 링만 이렇게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무혁이 강제 사냥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했다는 뜻이다.
‘괜히 라시온 님의 관심을 받는 인간이 아니라 이건가?’
마신 라시온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인간들은 대략 백여 명에 이른다.
굉장히 많은 수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헬-라시온 전체 인간의 수를 생각하면 상당히 특별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리타오가 무혁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마신 라시온의 관심을 받는 인간이 최하급 마을인 아스펠로 이주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마신 라시온의 관심을 받았던 인간들 중 아스펠처럼 최하급 마을을 거쳐 간 인물이 있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소위 엘리트 코스를 쭉쭉- 밟았거나, 그러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이들과 비교했을 때 무혁은 리리타오가 아닌 다른 마족들의 비웃음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리리타오도 무혁에 대한 평가를 조금 상향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모두 87개로군. 모두 저장하려면 72만 포인트다.”
“3개가 부족한데 이건 킵 해뒀다가 나중에 쓸 수 있겠지?”
가능성은 적었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무혁에게 리리타오는 헛소리 말라는 듯 단호박을 썰어버렸다.
“안 된다. 3개를 더 추가하거나, 포인트가 아깝다면 80개만 저장해라.”
협상의 여지조차 없는 리리타오의 모습에 무혁은 허탈하다는 듯 숨을 뱉어내고는 잠깐 망설이다 이내 72만 포인트를 지불하고 87개를 다 저장하기로 결정 내렸다.
문신 비용에다가 스킬 저장 비용까지 총 122만 포인트가 무혁의 표식에서 빠져나갔다.
‘어디든 버는 건 어려워도 쓰는 건 쉽구나!’
무혁이 쩝쩝- 입맛을 다시는 동안 리리타오의 손짓 한 번에 87개의 스킬 링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채앵! 챙! 챙챙! 채채채채채챙!
스킬 링들이 하나, 둘 밝은 빛을 뿌리며 깨져나갔다.
동시에 무혁은 자신의 뒷목, 스킬 저장 문신에서 시원하면서도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87개의 1회성 스킬 링이 모두 허공에서 깨지며 사라지자 무혁 역시 더 이상 뒷목에서 어떠한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잔여 포인트 : 7,284,700]
남아 있는 잔여 포인트를 확인한 무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공간 주머니, 투구, 방패, 스킬 저장 문신까지.
아무리 큼지막한 것들이라 하더라도 고작 4개를 구입하면서 2,170만 포인트를 소모했으니 뭔가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도 5등급 방어구를 샀을 때는 뭔가 쇼핑을 했다는 기분이라도 들었는데…….’
역시 쇼핑은 양손 무겁게 많은 걸 사야 한다고 생각하는 무혁이다.
큼지막한 것들은 대충 구매를 마쳤기에 무혁은 피 무지개 숲에 있으면서 소모했던 생필품들을 채워 넣었다.
공간 주머니의 용량을 10톤이나 넓혔기에 무혁은 기존의 1톤짜리 공간 주머니에 생필품들을 꽉꽉- 채워 넣었다.
‘여유도 좀 있으니까 담배도 왕창! 술도 왕창! 가끔 먹을 수 있도록 패스트푸드도 골고루 잔뜩 집어넣고! 음료수랑 얼음도 좀 넣어야겠네! 그리고 커피도 좀 넣을까?’
무혁은 온갖 것들을 모조리 대량으로 구매했다.
1톤이라는 용량이 순식간에 가득 차자 무혁은 그제야 제정신을 차렸다.
‘90만 포인트?’
용량도 용량이었지만, 포인트도 막대하게 소모했다.
이왕이면 좋은 술, 좋은 고기, 좋은 음식 등을 찾다보니 당연히 포인트 소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제대로 정신줄을 놓았다고 여기며 무혁은 정말 필요한 것들만 차근차근- 구매를 마쳤다.
그렇게 해서 남은 잔여 포인트는 6,192,820이었다.
‘이쯤에서 정리하자.’
포인트 여유는 충분했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없었기에 무혁은 남은 포인트를 잘 모아두기로 했다.
“…가자. 통통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무혁이 가죽 주머니 입구를 열었다.
이제는 완전히 자신의 ‘집’이라는 개념이 잡힌 듯 통통이는 스스로 몸을 작게 만들고는 가죽 주머니 안으로 쏙- 들어갔다.
무혁은 꽤 오랫동안 통통이를 볼 때마다 마수의 인장이 떠오를 것만 같아 괴로웠지만, 통통이의 가치를 생각하면 수천만 포인트도 부족했기에 쓰린 속을 억지로 달랬다.
‘여, 연봉 아니 평생 고용비라고 생각하자.’
아무리 노동력 착취를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던 통통이가 사실은 고액 연봉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
“록펠 마을이요?”
무혁의 되물음에 송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록펠 마을에는 ‘알라바바’라는 상회의 지부가 있다.”
“알라바바요?”
무혁은 자연스럽게 중국의 특정 업체가 떠올랐다.
무혁의 표정을 바라보며 송정민이 웃으며 말했다.
“알라바바라는 상회의 주인이 ‘왕우펑’이라는 중국인이다.”
“아… 중국인.”
피식- 웃음이 나오는 무혁이다.
“내가 헬-라시온에서 거래를 해봤던 상회 중에서는 그나마 믿을만한 곳 중 하나였다. 물론, 내가 한창 명성이 높을 때였기에 그들이 내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송정민의 말에 무혁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가 알아서 처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헬-라시온에서 상회와의 거래는 필수적이다.
송정민 또한 높은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많은 상회와 거래를 하며 온갖 꼴을 다 겪기도 했는데, 그 경험을 무혁 역시 똑같이 겪으며 자연스럽게 헬-라시온에서 상회와 거래하는 법을 배웠으면 했다.
“상회와 거래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단 하나다. 네 스스로를 지킬만한 힘을 갖추기 전까지는 절대 네 신분을 함부로 노출시키지 마라. 상회는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다. 정보도 팔고 기회만 된다면 네 목숨까지도 노릴 수도 있다. 그러니 네가 누구인지를 절대 밝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장사꾼이되 강도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그럴 수도 있지. 헬-라시온이니까.”
어느 누구도 절대 쉽게 믿지 마라.
경쟁을 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결코 정정당당하지 않은 지옥이 바로 헬-라시온이었기에 송정민은 상회와의 거래에 있어서만큼은 절대적으로 그들이 얕잡아 볼 수 없도록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러주었다.
“구름이 말대로라면 조만간 포지션 트레이닝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그 전에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끌끌,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해야 할 일이나 차분하게 하도록 해.”
무혁은 쇠뿔도 당김에 빼라는 말처럼 시간을 길게 끌어서 좋을 것 없다 여겨 곧바로 중앙탑으로 향했다.
중앙탑에 도착한 무혁은 송정민의 조언대로 가면부터 구입했다.
수많은 종류의 가면 중 무혁이 선택한 것은…….
#
“여기가 마지막 종착지인가?”
한 남자가 중앙탑을 빠져나오며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칙- 싸구려 라이터로 불을 붙인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남자가 후우- 하고 연기를 뿜어냈다.
“자,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남자는 중앙탑 앞에 서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커다란 장신에 호리호리한 체형, 짧게 다듬은 흑발은 다소 날카롭게 보이는 인상과 상당히 잘 어울렸다.
특히 감색 수트를 멋들어지게 빼입은 모습은 마치 모델과도 같았다.
그래서일까?
중앙탑 근처의 사람들이 남자를 힐끗- 쳐다볼 정도였다.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눈을 감은 상태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다.
‘왜 이런 외딴 곳까지 왔을까? 흑룡 길드에서 수배령까지 내렸으니 최대한 시선이 적은 곳으로 이동한다? 아니지. 그건 정말 하수들이나 할 생각이지. 구정물 좀 먹어본 놈이 그딴 하수들이나 써먹을 수법을 생각했을 리는 없고… 송정민의 행방에 대한 단서라도 찾은 건가?’
남자는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송정민의 행방을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 그렇다고 함께 사라진 루키의 뒤를 쫒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 놈은 쫓기고 있는 상황. 지치고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 송정민과 루키를 찾는 것이 힘들다는 걸 분명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이곳에 온 목적이… 아!’
눈을 감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쌍꺼풀이 없어 더욱더 작아 보이는 눈이 굉장히 날카롭게 벼려졌다.
“제타스 길드의 데포르가 마지막 접촉자였지?”
그제야 남자는 희미했던 윤곽이 조금은 뚜렷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탐사대, 얼음 칼날 숲.”
남자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천천히 빨아들이고는 푸흐흐- 하고 웃음을 흘렸다.
“미련한 새끼. 마지막까지 탐사대에 대한 헛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건데… 하긴, 구명줄이 될 수도 있었을 테니 포기할 수도 없었겠지. 그럼 이제 여기에 그 마지막 단서가 있을 가능성이 크겠군.”
다 태운 담배꽁초를 뱉어낸 남자는 허공에서 만들어 낸 공간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헬-라시온에서 핸드폰이 터질 리가 없다.
남자에게 핸드폰은 그저 노트의 기능을 갖춘 훌륭한 저장 수단일 뿐이었다.
“아스펠 마을, 아스펠 마을…….”
검색 기능을 활용해서 그동안 저장해놓은 아스펠 마을에 대한 모든 정보를 빠르게 훑던 남자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설마, 헬-라시온 6대 신물인 모래 태양을 얻으려고?”
남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찼다.
“끝까지 병신 짓만 하다 갔군. 모래 태양이라니… 박혁수 이 새끼는 마지막까지 주제도 모르고 덤볐다가 죽은… 아니지, 박혁수가 미련한 놈이긴 하지만 멍청한 놈은 아니야. 제 힘으로 안 된다 싶으면 포기했을 텐데.”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다 표정을 일그러트리곤 한숨을 푹- 내뱉었다.
“젠장,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확인을 해보는 수밖에 없겠군.”
귀찮고 짜증스러운 일이지만, 남자는 그 어떤 일이든 확실하게 처리하는 꼼꼼한 성격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공간 주머니에 넣은 후,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아스펠 마을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