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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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45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45화
포지션 트레이닝 (14)
“이거… 괜찮을까?”
르케임이 걱정스럽게 말을 하며 주변을 돌아봤다.
여기저기 시체가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헬-라시온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했지만, 문제는 누구의 시체냐였다.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은 아지스와 다크 나이트 길드원들.
르케임이 이토록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괜찮을 리가 있겠어?”
대꾸를 하는 미첼의 표정 또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언제나 생글생글- 미소를 지우지 않는 미첼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결코 웃을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던 것이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러니까 왜 엉뚱한 일에 집착해서 이 사태를 만든 거냐고!”
르케임이 실비아를 노려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더 화가 나는 건 근심과 걱정에 빠진 자신이나 미첼과는 다르게 실비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언제고 벌어질 일이었는데 뭘.”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 모습도 가관이다.
“그래, 언제고 벌어질 일이지! 그런데 시기가 중요한 거지! 시기가! 지금 우리가 다크 나이트랑 충돌을 일으킬 때는 아니잖아! 필립 형님도 그랬잖아! 어지간해서는 참으라고! 더럽고 치사해도 참는 게 이기는 거라고!”
발끈해서 소리치는 르케임의 모습에도 실비아는 눈썹 하나 까딱거리지 않았다.
그 모습에 미첼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실비아, 이건 우리가 실수한 거야.”
상대는 다크 나이트 길드다.
헬-라시온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세력이었기에 부담을 넘어 자칫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킬 라시온 자체가 와해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킬 라시온을 이끌고 있는 길드장 필립이 하이 랭커라서 쉽게 무너질 일은 없을 것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쌓아놓은 인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그러나 인맥 따위를 비교하자면 다크 나이트 역시 마찬가지인 상황이었으니 그들이 킬 라시온을 짓밟기 위한 모든 피해를 감수하겠다며 결심을 세우면 그때는 정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 되고 만다.
‘어쩌면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길드 자체를 해산시킬지도 모르지.’
길드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필립이라면 이 일과 연관 없는 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길드 해산이라는 결정을 내려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르케임이었다.
아니, 필립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고, 홀로 다크 나이트와 긴 전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뒤이어 줄줄이 소시지처럼 길드원들도 달려들겠지.’
길드를 해산한다고 길드원들이 그를 떠날 리 없다.
길드가 해산되면 가장 먼저 실비아부터 다크 나이트를 상대로 독기를 품고 덤벼들 것이 뻔했다. 당연히 미첼과 르케임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이래나, 저래나 목숨을 건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건 달라지지 않을 결과였다.
“후우우…….”
세상 모든 근심과 걱정을 짊어지고 있는 르케임의 모습에 실비아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태연스럽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 아지스랑 다크 나이트 길드원들을 누가 죽였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가 분명히…….”
르케임이 장난할 기분이 아니라는 듯 인상을 찌푸리자 실비아가 역시 멍청하다니까- 라며 혀를 찼다.
“이 빡대가리 새끼야, 증거 있어? 증인 있어? 다크 나이트에서 우릴 지목할 이유가 어딨어? 그 새끼들이 왜 우릴 지목해? 그 새끼들하고 악연으로 얽힌 게 어디 한 두 곳이야? 우리는 그중 하나일 뿐이야.”
“그거야…….”
대답을 하던 르케임이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특수 상황이다.
포지션 트레이닝이 끝나버리면 사냥꾼의 대지는 깨끗하게 정화가 된다.
다크 나이트에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아지스의 시체조차 확인할 수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이들의 죽음을 증명해줄 증인도 없다.
증거와 증인이 완벽하게 사라져버린다는 뜻이다.
강제 사냥, 포지션 트레이닝 등을 통해 죽어 나가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수많은 의혹과 감시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자신들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아지스와 다크 길드원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영원히 묻힌다는 사실이다.
그제야 르케임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이제 이해가 돼? 그런 머리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냐?”
실비아의 핀잔에도 르케임은 바보처럼 헤- 웃기만 했다.
“멍청하게 웃고 있지 말고 누가 보기 전에 시체 처리나 해.”
“물론이지! 확실하게! 쥐도 새도 모르게! 아주 완벽하고도 깔끔하게 처리를 할 게!”
정말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르케임이 부리나케 시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미첼이 무혁의 곁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혁, 우리 계산은?”
눈을 반짝이며 생글생글- 웃는 미첼의 모습에 무혁이 슬쩍- 옆으로 물러났다.
“계산이라니?”
“왜 이러실까? 아까 분명히 말했잖아? 이유와 목적만 뚜렷하다면 목숨 값을 빚지기로 했잖아?”
“목숨 값?”
무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남자답지 못하게 한 입으로 두 말 하겠다는 거야?”
“내가 그 정도에 죽을 놈으로 보여?”
무혁이 되묻자 미첼이 순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방금 보았다.
아지스를 어떻게 상대했는지를 무혁은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주었다.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마력 스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아지스를 피떡으로 만들어버린 무혁이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일전에 무혁은 실비아를 상대로 제대로 된 힘을 쓰지 않았다는 걸.
만약, 무혁이 작정하고 살수를 펼쳤다면?
실비아뿐만 아니라 자신들마저도 죽고 말았을 거다.
때문에 이미 실비아 일행은 무혁에게 진심으로 승복한 상태였다.
더욱이 아지스로 인해서 다크 나이트에 대한 공동의 비밀까지 지니게 된 이상 미첼은 이런 인연의 끈을 쉽게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난처한 상황에서 내가 도움을 준 건 사실이잖아? 이것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겠지?”
“난처한 상황이라…….”
무혁으로서는 솔직히 우스웠지만, 어쨌든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도와준 것만큼은 분명했기에 길게 입씨름 할 것 없이 적당한 선에서 해결을 보기로 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무혁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미첼이 곧장 대답했다.
“너에 대한 모든 것!”
“말 같지도 않는 소리는 그만하고. 질문 다섯 개 정도로 끝내주지.”
“고작 질문 다섯 개로 끝내라고?”
미첼이 그럴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지만, 어차피 협상의 끈은 무혁이 쥐고 있었기에 싫으면 말라는 그의 대답에 그녀로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럼 첫 번째 질문! 이름과 나이, 연차에 대해서 말해줘! 분명히 말하지만, 거짓말은 안 되는 거 알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무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해주었다.
“차무혁, 스물넷, 2년 차.”
“말도 안 돼!”
“거짓말!”
“이 미친 새끼가!”
미첼, 르케임, 마지막으로 실비아까지.
무혁은 자신을 향한 세 사람의 고함에 시끄럽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실비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무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 다음 질문.”
미첼은 실비아를 바라보다 이내 우선은 질문부터 하고 추궁은 그 다음에 하자는 생각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질문! 현재 거주지와 소속된 길드나 가문은?”
“아스펠 마을. 소속 없음.”
아스펠 마을이라는 소리에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헬-라시온에 끌려온 이후부터 줄곧 능력을 뽐내며 나름 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세 사람이었기에 쓰레기 집합소로 불리는 아스펠 마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상위 실력자들이 주로 머무는 수백 개의 마을 중 하나를 언급했다면 단번에 알아들었을 것이다.
“세 번째 질문은…….”
“약속했던 질문은 다 끝났어.”
“무슨 소리야!”
미첼의 반발에 무혁은 친절하게 손가락까지 펴며 말해주었다.
“이름. 나이. 연차. 거주지. 소속 길드. 다섯 개 맞지?”
“…쳇!”
미첼이 아쉬움을 드러냈다.
별다른 말이 없기에 대충 넘어가나 싶었더니 그런 어설픔에 속을 정도로 무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차차 알아가지 뭐.”
예쁘게 미소를 짓는 미첼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혁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저 웃는 얼굴에 과연 몇 놈이나 간이고 쓸개를 빼줬을까 싶었다.
괜히 더 보고 있다가는 자신도 홀릴지 모른다 여긴 무혁이 아지스를 죽이고 얻은 묠니르를 가볍게 휘둘러봤다.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도 좋고, 휘둘렀을 때의 균형감도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전류 옵션까지 있었으니 이만한 무기를 구한다는 건 쉽지 않을 듯 보였다.
‘좋기는 한데…….’
너무 눈에 띄는 무기다.
더욱이 아지스가 다크 나이트 길드에서도 촉망 받았던 인재였으며, 5년 차 식민들 사이에서는 꽤나 명성을 얻고 있었다는 미첼의 말을 들으니 무혁은 더욱더 묠니르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탐이 나더라도 묠니르를 사용하는 순간 풀리지 않을 미제 사건으로 남아야 할 아지스의 죽음을 무혁 스스로 ‘내가 아지스를 죽인 살인자다’라고 광고를 하는 꼴이었으니까.
“굉장히 좋은 무기지?”
미첼이 무혁의 손에 들린 묠니르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
“왜? 갖고 싶어?”
“당연하지! 그만한 해머를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러고 보니 미첼의 주 무기가 해머였으니 그녀에게 묠니르는 상당히 욕심이 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살래?”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장난스레 던진 말이었지만, 미첼의 반응은 무혁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정말? 얼마에 팔 건데?”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크 나이트 길드와의 충돌을 심각하게 걱정했던 모습을 보였으니 무혁으로서는 가격만 맞다면 묠니르를 살 수도 있다는 미첼의 대답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지스의 무기였는데?”
“그게 뭐? 묠니르 정도면 변형하는데 포인트가 좀 깨지긴 하겠지만 그만한 무기를 얻을 수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갖고 봐야지.”
“변형을 준다고?”
전혀 모르겠다는 무혁의 물음에 미첼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무기 변형 말이야. 몰라?”
무혁은 이것저것 계산할 것 없었기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몰라. 네 말대로라면 무기 변형을 통해서 이게 아지스가 사용했었던 무기라는 흔적을 깨끗하게 지울 수 있다는 건가?”
“당연하지! 메이커를 찾아가면… 메이커도 모르지?”
무혁이 고개를 가로젓자 미첼은 어떻게 무기 변형과 메이커를 모를 수 있냐는 듯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그를 바라봤다.
“무기 제작 장인인 메이커를 모르는 놈은 또 처음 보네. 소도시로 이주하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세이크 도시잖아? 설마 그것도 모른다고 하는 건… 표정을 보니 전혀 모른다는 얼굴이네.”
시체를 처리하던 르케임도 무혁의 얼굴을 보고는 허- 하고 어이없어했다.
“너… 정말 2년 차야?”
눈초리가 날카롭게 변한 실비아가 무혁을 바라봤다.
“아닌 것 같아?”
무혁의 되물음에 실비아는 물론, 미첼과 르케임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실력만 놓고 본다면 2년 차가 아니라 자신들보다도 더욱더 연차가 높아야 정상이겠지만, 소도시 식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하는 메이커를 몰랐으니 정말 그의 말이 진실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아스펠 마을이 거주지라고 했지? 그것도 사실이고? 그냥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 아니고?”
르케임의 말에 무혁은 귀찮게 왜 자꾸 물어보냐는 듯 입을 열었다.
“믿든 안 믿든 난 사실을 말했어. 받아들이는 건 너희 마음이고. 자, 그럼 다시 묻자. 그러니까 이걸 들고 세이크 도시라는 곳에 가면… 아니다.”
무혁은 구태여 이들이 아니더라도 송정민에게 물어도 되는 일이었기에 더 이상 긴말 할 필요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묠니르를 변형시키면 어느 누구에게도 의심을 사지 않고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무혁은 다른 누군가에게 팔기보다는 자신이 사용하거나, 아니면 알라바바 상회에 팔아도 적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우선은 공간 주머니에 넣어두기로 했다.
“그럼 대충 우리는 더 이상 볼 일이 없는 것 같으니까 각자 갈 길 가자고.”
무혁이 쿨하게 퇴장하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왜? 무슨 할 말이라도 남았어?”
실비아가 무혁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난 돌려서 말하지 못하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너, 우리 길드에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