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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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40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40화
포지션 트레이닝 (9)
“…젠장!”
실비아는 선명하게 균열이 가버린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고운 이마에 주름을 잔뜩 잡았다.
“후아- 그 새끼 장난 아닌데? 설마 그 짧은 순간에 우리 두 사람을 묶어 버리고 튈 줄이야.”
르케임이 머리와 갑옷에 잔뜩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혀를 내둘렀다.
“역시 랭킹 1위는 아무나 차지하는 게 아니라니까. 이번 트레이닝은 혁이 무조건 1위야.”
미첼 또한 무혁의 전투 센스를 떠올리며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이 빡대가리들아! 지금 그 따위 소리가 나와? 우리가 개박살이 났잖아! 한가하게 그 새끼 칭찬이나 하고 싶냐고!”
악귀처럼 일그러진 표정으로 실비아가 빽- 소리를 내질렀지만, 르케임과 미첼은 이미 끝나버린 일을 어쩌겠냐는 듯 귓등으로 그녀의 말을 흘려버렸다.
실비아가 제아무리 악다구니를 쓴다 하더라도 이미 무혁은 훌훌- 떠나버린 상태였다.
자신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유유히 자리를 벗어났던 상대가 있었던가?
적어도 같은 연차의 식민들 중에서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지금의 상황은 그들에게 있어 상당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무혁은 실비아의 인피니티 소드 스킬을 도중에 중단시킨 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강력한 일격을 가함으로써 반격의 기회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동시에 워터 볼과 라이트닝 볼을 이용해서 르케임과 미첼의 접근을 미리 차단했고, 파이어 볼과 기압 폭발을 연계시켜서 주변을 뒤집어 시야를 온통 가려버리더니 살벌할 정도로 위협적인 검기까지 날려버린 뒤에야 유유히 자리를 빠져나가 버렸다.
무혁은 이 모든 것을 눈 깜짝할 사이에 끝마쳤다.
상황 판단력, 과감한 행동력, 결과를 도출해 내는 능력까지 삼박자가 완벽한 놈이다.
“마력 스킬이 주력인 줄 알았는데, 그 자식 검기 공격도 굉장했어.”
르케임은 자신의 허리 부근의 경갑옷이 부서진 것을 매만졌다.
본능적으로 방어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가벼운 피해만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칫 큰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실비아의 검기보다 위력적인 면에서는 한 단계, 아니 두 단계는 윗줄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그녀에게 말하면 그녀가 싫어할 것임을 알기에 르케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마력 스킬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도 검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실비아보다 높은 단계의 검기를 사용한다?
지금까지 르케임은 이런 언밸런스 한 놈을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괴물 같은 능력은 적어도 8년 차 이상의 상위 실력자들에게서나 볼 법하지 않을까?
하지만, 포지션 트레이닝의 특성상 현재 7구역에 5년 차 이상의 식민들은 진입할 수가 없으니 무혁이 제아무리 자신을 꽁꽁- 숨기고 살았다 하더라도 5년 차 식민이란 소리다.
같은 연차의 식민에게서 이렇게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5년 차 최강이라 불리는 로테임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지.’
르케임으로서는 솔직히 이쯤에서 끝내고 싶었다.
서로 원수를 진 것도 아닌데 굳이 무혁을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어차피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일 아니었던가?
괴물 같은 놈과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저 미친년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건데…….’
반쯤 눈이 돌아가 버린 실비아의 모습에 르케임은 자신의 신세가 참 처량할 따름이었다.
“실비아, 어쩔 생각이야?”
때마침 미첼이 실비아의 생각을 물었다.
“이대로 물러나면 우리 꼴이 뭐가 되겠어? 놈의 실력도 확인을 했으니 확실하게 대비를 해야지.”
전의를 불태우는 실비아의 모습에 미첼과 르케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한숨만 내쉬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독기 잔뜩 오른 실비아의 외침이 주변 공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
자신의 거처인 동굴로 돌아온 무혁은 랭킹 목록부터 확인했다.
여전히 자신은 2위와의 격차를 신경 쓸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차피 신경 쓸 필요도 없는 부분이라 관심도 두지 않고 랭킹 목록의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아지스, 오간, 웨이팡, 도르벨, 요무라, 로만, 도간, 엔리케, 마이크…….”
상위 랭킹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들을 쭉- 살펴보던 무혁은 꽤 오랜 시간 100위권, 200위권 밖의 목록까지도 꼼꼼히 살피고 나서야 얼굴을 찌푸려트렸다.
눈알이 빠지도록 찾았던 이름들 실비아, 르케임, 미첼은 없었다.
“개허접들이었네.”
무혁은 랭킹 목록에 이름이 없다는 것만으로 실비아 일행을 5년 차 허접들로 평가해버렸다.
“별것도 아닌 것들하고 드잡이 질만 한 거네.”
허탈함에 무혁은 헛웃음만 흘렸다.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는데… 역시 5년 차 이상부터는 연차가 깡패라는 건가?”
게임에서 레벨이 깡패라는 소리가 있듯이, 헬-라시온에서는 강함의 기준을 5년으로 책정해서 그때부터는 연차가 오래될수록 능력이 강해진다고 한다.
물론, 소수의 예외도 존재하겠지만, 대체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헬-라시온에서 5년 이상을 버텨냈다는 건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나 다름없었다.
“완전히 헛물만 켰네.”
무혁으로서는 실비아 일행과 전투를 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확인해보려고 했었다.
실비아가 펼쳤던 사기적인 스킬을 떠올리면 결코 하수는 아니라고 여겼는데 랭킹 목록에 전혀 이름이 없는 것으로 봐선 아무래도 헛짚은 듯싶었다.
“5년 차 정도 되면 그 정도의 스킬은 다 가지고 있다는 소린가?”
‘헬-라시온의 세상은 게임 따위가 아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세상이자, 현실이다. 똑같은 스킬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위력을 보이기도 하고, 네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별의별 스킬들을 사용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오랜 시간 헬-라시온에서 살아남은 이들일수록 쉽게 예측하지 마라. 섣부른 판단이 네 목숨을 위협할 테니까.’
송정민이 했던 경고를 떠올리며 무혁은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성급했음을 인정했다.
문제는.
“내가 가진 패만 잔뜩 까발렸네.”
실비아 일행과의 전투는 짧았지만, 그 사이에 무혁이 상대에게 보인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아직 숨기고 있는 패가 훨씬 더 많았기에 큰 문젯거리는 아니지만, 경계심을 심어 준 것만큼은 분명했다.
무혁은 이제야 지난 강제 사냥처럼 말랑말랑한 경쟁이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다.
“앞으로가 문제네.”
사실 실비아 일행과 목숨을 걸고 싸웠다면 그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가진 모든 패를 다 꺼낸다면 자신의 필승을 자신할 순 있었지만, 아직 5일이나 남아 있는 트레이닝 날짜를 생각하면 이번에는 먼저 피한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실비아 일행이 다이아 방울뱀의 사냥 흔적만을 쫓아 자신을 찾아낸 만큼 그들과의 싸움으로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겨뒀다면 또 다른 늑대들을 불러들일 수도 있으니 이번만큼은 피하는 게 맞았다.
무엇보다도 무혁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다이아 방울뱀을 사냥하는 것과 랭킹 1위를 차지해서 320퍼센트의 스킬 숙련도 알약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목표만을 생각한다면 구태여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아무래도 사냥 시간부터 바꿔야겠어.”
랭킹 1위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이상 실비아 일행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도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아니, 이미 움직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롭게 대낮에 사냥을 한다는 건 경쟁자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대놓고 드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경쟁자들과의 충돌 또한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낮과 밤을 바꾼다.
낮에는 얌전하게 휴식을 취하고 밤에 집중적으로 사냥을 한다.
더불어 다이아 방울뱀을 사냥할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은신하며 움직인다.
무혁으로서는 이런 패턴의 변화가 최소한 2-3일은 귀찮은 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믿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한 무혁은 4시간 후에 눈을 떴다.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무혁은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컨디션을 확인했다.
몸 상태가 100퍼센트라고 할 순 없어도 80퍼센트 이상은 되었기에 나쁘지 않았다.
“복면은… 됐다.”
무혁은 간이침대 한쪽에 벗어 두었던 복면을 집어 들었다가 이내 내던져버렸다.
실비아 일행에게 복면을 착용한다는 사실을 들켜버린 이상 구태여 복면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어서 무혁은 공간 주머니에서 구멍이 군데군데 뚫려 있는 빛바랜 잿빛 망토, 흡혈 마족 모우텐의 망토를 꺼내 둘렀다.
기껏해야 5번 정도였지만, 5등급 마력 공격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망토였으니 5년 차 식민들을 경계하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이번 트레이닝이 끝나면 장비도 싹 물갈이 해버려야겠네.”
모든 고유 능력이 4등급으로 올라선 이상 더 이상 5등급 방어구를 고집할 필요도 없어졌다.
동굴을 나오기 전 무혁은 은신 관련 스킬을 모두 사용했다.
그렇게 동굴을 나온 무혁은 순간 움찔- 거리며 발걸음을 멈췄다.
‘지독한 것들이네.’
놀랍게도 동굴 근처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는 실비아 일행을 발견한 것이다.
“정말 이 근처가 맞는 거지?”
실비아의 짜증 가득한 물음에 르케임이 더 이상 묻지 말아 달라는 듯 신경질을 냈다.
“맞아! 맞다고! 놈은 분명 여기 어딘가에 은신하고 있다고!”
“젠장! 정말 일루전 마력 스킬로 동굴 입구를 숨기고 있는 건가?”
아랫입술을 뜯으며 실비아가 벌겋게 변한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자 미첼이 맥주를 시원스럽게 들이키며 대꾸했다.
“실비아, 그렇게 본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냐. 알잖아? 일루전 마력 스킬은 동일한 등급의 주변 탐색 스킬이 아니라면 자연 해제되기 전까지는 절대 찾을 수 없다는 걸. 어차피 일루전 마력 스킬의 지속 시간은 180시간이잖아. 첫날부터 일루전 마력 스킬로 동굴의 입구를 가렸다면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으니까 느긋하게 기다려보자.”
미첼의 예상대로 무혁은 포지션 트레이닝이 시작되면서 보유하고 있던 1회성 스킬 중 일루전 마력 스킬을 펼쳐 동굴 입구를 완벽하게 숨겨놓은 상태였다.
혹시 모를 침입자들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무혁은 재빨리 남아 있는 일루전 마력 스킬 지속 시간을 확인했다.
일루전 스킬 지속 시간 [ 122 : 09 ]
미첼의 말처럼 180시간 중 어느덧 122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58시간 정도였다.
‘이틀 후면 일루전 스킬이 해제되니까 꼼짝없이 동굴의 위치가 발각되겠네.’
무혁은 자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실비아를 바라보며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무혁이 자리를 뜨고 10분여가 흐른 뒤.
“실비아.”
르케임이 부르자 머릿속에 온통 무혁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던 실비아가 왜 부르냐는 듯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왜?”
“놈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미첼의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대략 이틀 정도는 시간이 남잖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슬슬 우리도 사냥을 해야지. 이번에 랭킹을 포기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트레이닝 실패로 인한 페널티는 피해야 할 것 아냐?”
“그건 르케임의 말이 맞다고 봐.”
미첼까지도 적극적으로 동의하자 실비아도 더 이상은 자신의 고집대로만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때문에 니들이 페널티를 받을 순 없지.”
실비아의 말에 르케임과 미첼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말이 나왔으니까 지금부터 움직이자! 남은 이틀 동안 각자 100마리씩 사냥을 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
포지션 트레이닝 기간 내에 다이아 방울뱀 100마리를 사냥하지 못하면 최고 등급의 스킬 숙련도가 10퍼센트나 영구적으로 하락하는 극악한 페널티를 가지고 있었기에 실비아로서도 시간을 허투루 날려버릴 순 없었다.
“여기 위치 기억해둬.”
실비아의 말에 미첼은 이미 위치 기억 스킬을 사용했으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켰다.
“이틀 후에 그 자식과 다시 만나게 될 거니까 걱정 마.”
“까득! 개부랄 새끼… 이틀 후에 보자! 그때는 반드시 피떡을 만들어 줄 테니까!”
서릿발처럼 냉기를 풀풀- 풍기며 실비아가 몸을 돌렸다.
그 시각, 무혁은 이미 12마리의 다이아 방울뱀을 상대로 몰이사냥 중이었다.
쾅! 파지지지지지직!
“기압 폭발!”
한 공간에 얽히고설킨 다이아 방울뱀들이 순식간에 생을 마감하자 기다렸다는 듯 통통이가 그들의 사체를 꿀꺽- 집어 삼켰다.
후두두두둑.
통통이가 뱉어내는 5등급 마정 찌꺼기와 스킬 링을 받아들며 무혁은 주변의 흔적들을 여러 방향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속으면 좋고, 아니더라도 상관없고.”
무혁은 실비아 일행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일부러 거짓된 흔적을 남겨볼 생각이었다.
거짓된 흔적에 속아서 엉뚱한 곳에서 자신을 찾는다면 그것도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이틀 후에 일루전 스킬이 해제된다 하더라도 그때 만나게 될 무혁은 어제 만났을 때보다 더욱더 강해져 있을 테니까.
또한, 실비아 일행뿐만 아니라 아직 자신을 찾지 못한 다른 경쟁자들을 생각해서라도 흔적을 이곳저곳에 남겨둘 필요성은 있었다.
“하여간 엉뚱한 곳에 시간을 낭비하니까 허접이라는 소리나 듣지. 이래서 한 번 허접은 영원한 허접이라니까.”
허접으로 완전히 찍혀버린 실비아 일행을 떠올리며 무혁은 끌끌-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