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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죽이러 갑니다. 176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8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76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76화

킬 라시온 (6)

 

“…구름아.”

“…예.”

“…이거 실화냐?”

“…실화죠.”

무혁은 두 눈 가득 들어오는 잿빛 하늘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무혁의 얼굴 위로 그늘이 졌다.

“그러게 왜 까불었어? 우리 리더는 진짜라니까.”

낄낄- 거리며 웃는 실비아의 얼굴이 참 얄밉게 보였지만, 예쁜 거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제법이었어. 간만에 우리 리더가 얼굴을 굳히는 걸 봤으니까.”

제 딴에는 위로한답시고 아무것도 아닌 양 말하는 실비아를, 무혁이 가볍게 노려봤다.

“위로 참 고맙네.”

막말로 자신은 이를 악물고 덤볐다.

그렇지만 상대는 여유로웠던 표정이 살짝- 굳었던 것이 전부였다.

‘진짜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사용했다면….’

생각하던 무혁은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가진 모든 패를 모조리 꺼내들지 않았기에 졌다고?

정말 쓰레기 같은 변명이고, 남들은 인정하지도 않은 혼자만의 변명일 뿐이다.

필립도 전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건 자신과 같을 것이다.

그 역시 남들에게 쉽사리 꺼내지 않는 비장의 카드가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혁이나 필립이나 최후의 한 수는 배제한 상태로 동등하게 붙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무혁은 필립에게 주먹 한 번 제대로 꽂아 넣지 못했다.

“몸도 풀었는데 어디 가서 식사라도 같이 할까? 아니면 시원하게 맥주?”

필립이 길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있는 무혁에게 손을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무혁은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필립을 그제야 자세히 바라봤다.

어떤 여자라도 한 눈에 반할 것만 같은 조각 같은 외모다.

그런데 이 지옥 같은 헬-라시온에서 하이 랭커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하기까지 하면서, 결코 구역질이 풀풀- 날 정도로 오만하지도 않았다.

간단하게 겉모습과 내면이 모두 완벽한 남자였다.

적어도 지금까지 무혁이 보기엔 그랬다.

“…이 기분에 밥은 별로고 맥주. 당연히 그쪽이 사는 거겠지?”

무혁의 물음에 필립이 웃는 얼굴로 무혁이 내민 손을 잡아 당겼다.

“마음껏 먹어.”

필립의 손을 잡는 순간 무혁은 그 손이 굉장히 따뜻하다고 느껴졌다.

‘미친 새끼… 쳐 맞아놓고 남자 손이 따뜻하다고?’

무혁은 아무래도 아까 필립에게 얻어맞았던 후두부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소도시만 되어도 이렇다 할 술집이 있겠지만, 아쉽게도 오데른 마을은 술집이 없었다.

결국, 르케임이 중앙 탑에서 각종 맥주와 안주를 잔뜩 구매해서 그들은 마을 한쪽 공터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술판을 벌였다.

“캬하-! 좋다!”

실비아는 술이랑 웬수라도 진 사람마냥 연신 맥주를 들이켰다.

“실비아! 적당히 좀 마셔! 필립 형님이 무혁이에게 술을 사준다고 했지 너한테 사준다고 한 건 아니라고!”

“뭐라는 거야! 내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는다고! 하여간 사내새끼가 쪼잔하다니까!”

“뭐? 쪼, 쪼잔? 내가 뭐가 쪼잔하다는 거야? 말해봐! 뭐! 뭐!”

발끈해서 소리치는 르케임에게 실비아는 이것보라며 연신 쪼잔하다는 말로 그를 자극했다.

그 모습이 꼭 동네 양아치들 같아서 오데른 마을의 거주자들은 괜한 시비에 휩쓸리기 싫다는 듯 멀찍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무혁이야 진즉부터 외모와는 전혀 딴판인 실비아의 개차반 같은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방구름은 내심 태어나 처음 보는 천상의 외모를 지닌 실비아가 상상도 못 할 거친 행동과 말투를 보이니 거기서 엄청난 괴리감을 느낀 채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정말 2년차 맞아?”

맥주를 마시자며 술판을 벌여놓고 말없이 술만 마시던 필립이 한참 만에 무혁에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거짓말 같으면 믿지 말고.”

무혁의 대꾸에 필립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더 믿을 수밖에 없네.”

“그쪽은 이 지랄 맞은 곳에서 몇 번째 쯤 되지?”

무혁은 내심 필립이 얼마나 강한지 상당히 궁금했다.

헬-라시온 하이 랭커.

간단하게 설명하면 수천 만 명 중 100위 안에 들어가는 초강자를 부르는 말이다.

지금은 폐인이 되어버린 송정민이 하이 랭커였고, 그의 순위는 93위였다.

과연 필립은 어느 정도일까?

모든 고유 능력이 3등급으로 올랐기에 무혁은 솔직히 필립이 아무리 하이 랭커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비벼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붙어보니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그 말인 즉, 최소 필립의 고유 능력은 2등급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고유 능력은 한 등급의 차이가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같은 등급 내에서도 정밀 수치가 얼마나 차이를 나타내느냐에 따라 실력 차이가 나는데, 등급 차이는 당연히 그보다 더욱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등급과 2등급의 차이는 7등급과 6등급의 차이보다 몇 십 배는 더 컸다.

그만큼 등급이 높을수록 아래 등급과의 차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모든 고유 능력을 1퍼센트 상승시켜주는 7등급짜리 성장의 약물의 경우 중앙 탑에서 10만 포인트에 판매한다.

6등급짜리는 3배 비싼 30만 포인트에 판매를 한다.

이처럼 최하 등급인 7등급에서 6등급으로 올라가는 데에만 벌써 3배로 가격이 뛴다.

‘4등급짜리가 얼마였더라?’

무혁의 기억에 따르면 2천만 포인트가 조금 안 되는 가격이어서 소스라치게 놀라야만 했었다.

고작 1퍼센트다.

아무리 모든 고유 능력을 동일하게 1퍼센트 상승시켜준다 하더라도 고작 1퍼센트를 올리기 위해 자그마치 2천만 포인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모든 고유 능력을 100퍼센트로 올리려면 결과적으로 20억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그런 막대한 포인트를 쏟아 부어야 3등급이 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 3등급에 올라선 무혁이 나름 자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가볍게 가지고 놀았던 필립이다.

그가 지금과 같은 실력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과 막대한 포인트를 쏟아 부었는지 무혁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이러니 하이 랭커라는 소리를 듣지.’

만약, 이런 자들이 핵에 유무를 알고 있다면?

‘젠장! 자괴감 생기네.’

무혁은 필립과 같은 인간을 앞에 두고 있으니 자신은 잘 생긴 연예인 옆에 서면 저절로 오징어나 꼴뚜기가 되는, 그런 못난이 같다고 생각했다.

“리더 오빠의 공식 랭킹은 67위야.”

필립의 곁에서 맥주를 홀짝- 거리던 아르케니아가 무혁의 물음에 대답을 해주었다.

“67위?”

그렇다면 필립보다 랭킹이 높은 괴물들이 66명이나 더 있다는 소리다.

무혁은 흑룡 길드 등을 때려눕히면서 기고만장했던 기분이 바닥으로 축축- 쳐지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제길… 흑룡 길드도 그렇고 천인회랑 무사시 가문이 문제네.’

그제야 무혁은 필립이 했던 충고들이 가슴 속에 못처럼 박혀 들었다.

“표정을 보니 이제야 내 말을 받아들이는 것 같네?”

필립이 웃는 얼굴로 무혁의 진심에 또 한 번 못질을 했다.

“예예-.”

무혁은 니 잘났다는 듯 건성으로 대꾸하며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송정민과 자신은 그나마 안전한 편이다.

제아무리 흑룡 길드 등의 인원이 많다고 해도 커스틸이 중소도시인 만큼 꼼꼼하게 수색을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문제는 역시 방구름이다.

‘무조건 소도시 식민으로 만들어야겠네.’

당분간은 방구름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가 폭풍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마정을 모아야만 했다.

현재 방구름의 고유 능력은 모두 5등급이다.

성장을 위해서라면 최하 5등급 마정을 구하면 되고, 조금 더 속도를 높이자면 4등급 몬스터를 잡아서 마정을 만들면 될 것이다.

어느 방법을 택하든 현재 3등급인 무혁에게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야 조금 걸릴 일이겠지만, 그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방구름의 능력을 높일 수 있다면 마땅히 도울 수 있었다. 

‘아니지, 차라리 4등급까지 끌어 올려서 커스틸로 이주시켜 버리는 게 나으려나?’

방구름에게는 조금 벅찬 일일지 모르지만, 어차피 강제 사냥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니 그때는 무혁이 곁에 딱- 붙어 있으면 될 것 같기도 했다.

무혁이 심각한 얼굴로 혼자만의 고민을 이어가자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고 있던 필립이 본격적으로 말을 꺼냈다.

“무혁아.”

필립의 음성은 오랜 동생을 부르듯 편안했다.

첫 만남이지만, 싸웠고, 술까지 함께 마셨다.

남자들로서는 친해질 수 있는 최단 거리를 훅- 달려온 셈이다.

여기에 필립의 성격 자체가 워낙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포용력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무혁도 딱히 그의 말투나 행동에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왜요.”

거부감은 없지만, 무혁은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는 듯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킬 라시온에 들어와.”

“뭘 보고?”

코웃음을 치는 무혁에게 필립이 자신 있게 말했다.

“사람만 봐.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킬 라시온이 그리 대단하진 않지만, 어디 가서 고개 숙이는 일도 없다. 네가 보기엔 어떨지 모르지만, 어중이떠중이 다 모여서 몸집만 부풀린 다른 곳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세를 과시하지도 않아. 우린 정말 내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끼리만 모였다. 지금 무혁이 네 상황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거라고 믿는다.”

진심이 전해졌다.

필립이 말을 하는 순간, 티격태격 육두문자를 남발하며 언성을 높이던 실비아와 르케임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도 진중함이 가득했고, 말없이 맥주만 마시던 아르케니아 역시도 어느새 맥주를 내려놓고 무혁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처럼 무혁은 그들의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흑룡 길드 따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또 놀라운 건, 필립의 결정에 그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리더로서의 필립은 길드원들에게 절대적으로 신뢰를 받고 있다는 소리였다.

정말 여러모로 대단한 남자다.

하지만.

“고맙지만 결정권은 내게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필립이 무혁을 바라봤다.

“그 이상은 나도 말할 수 없어요. 어쨌든 그쪽이나, 킬 라시온 길드가 나쁘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뭘 결정할 수는 없어요.”

뒤에 누군가 있다.

실비아는 그게 누구인지 당장이라도 묻고 싶었지만, 필립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성급해서 좋은 건 없지. 그럼, 언제든 결정만 되면 날 찾아와. 언제든 네게 손을 내밀어 줄 테니까.”

무혁은 필립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나한테 왜 이래요? 내가 뭘 했다고? 솔직히 지금 내 태도도 그렇고 좋은 인상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자신에게 호감을 품었는지, 왜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푸는지 무혁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필립이었다면?

뭐 이런 건방진 새끼가 다 있어- 라며 뺨이라도 한 대 갈겼을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해서 필립이 무혁을 끌어안는 순간 킬 라시온은 흑룡 길드와 천인회, 무사시 가문과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들은 킬 라시온이 계획적으로 자신들을 망신주려고 했다며 몰아붙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들 입장에서야 무혁 한 사람에게 망신을 당했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킬 라시온 전체로 확대시키는 것이 그나마 뭉개진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복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킬 라시온으로서는 억울하더라도 무혁을 끌어안는 순간, 감내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또 있다.

무혁은 연금술회와도 이미 진하게 얽혔고, 이유는 확실하게 모르지만 엑소더스 길드에서도 자신을 찾고 있는 듯 싶었다.

따지고 보면 무혁은 현재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골칫덩어리라는 걸 알면 필립이 과연 지금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무혁으로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는 이상 함부로 킬 라시온과 얽혀서 그들에게 엉뚱한 불똥이 튀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무혁의 복잡한 심정을 알지 못하면서도 필립은 모든 걸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진심을 봤으니까.”

“진심?”

언제 내 속을 꺼내보였냐는 듯 무혁이 피식- 웃었다.

“동생을 지키려는 마음. 나한테는 그거 하나면 충분해. 내가 킬 라시온을 만든 마음이니까.”

“…….”

순간 무혁은 가슴을 꽉- 조여오는 묵직한 감정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렇게 강한 사람도 자신의 주변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건가?

무혁은 다시 한 번 실비아, 르케임, 아르케니아를 바라봤다.

모두 끈끈한 무언가로 서로를 묶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로를 향한 믿음과 신뢰, 그리고… 정(情).

저들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무혁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헤쳤다.

더 이상 필립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가는 못난 꼴을 보일까 봐 무혁이 킥- 하고 웃었다.

“내가 들은 거랑 다르네? 마신 라시온을 죽이겠다고 하던데?”

무혁이 이죽거리며 실비아를 가리켰다.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신 라시온을 죽이면 이곳도 없어질 것 아냐? 그럼 우리도 다시 돌아갈 수 있겠지. 우리의 집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는 가족의 품으로. 그러면 더 이상 킬 라시온도 존재할 이유가 없고.”

집, 그리고 가족.

필립은, 킬 라시온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래서 무혁은 이들과 더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하면 찾아가죠.”

지금으로서는 무혁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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