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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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58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58화
얼음 바위 산 (4)
“그것 참 오랜만에 이불 빨래 좀 해볼까 싶으면 꼭 비가 온다더니 우리가 딱 그 꼴이네?”
눈앞을 제대로 분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넬이 낄낄- 웃었다.
“벌써 이틀째야. 하루면 된다더니 이틀 째 얼음 바위 산 근처는커녕, 이 빌어먹을 도시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그런데 넌 웃음이 나오냐?”
도미닉의 타박에도 넬은 상황이 웃기지 않느냐는 듯 여전히 웃기만 했다.
얼음 바위 산을 공략하고 얼음 구슬을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는 연금술회의 공략대로서는 도저히 그치지 않을 것처럼 쏟아지는 폭설에 도시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강제로 강금을 당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워낙 폭설이 자주 내리는 지역이라 도시의 거주자들은 그러려니 하며 느긋했지만, 성질 급한 도미닉은 지금이라도 눈이 그쳤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우리가 조급해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냥 마음 편안하게 먹고 느긋하게 기다려.”
“그래, 와튼의 말처럼 우리가 조급해 할 이유는 없잖아? 어차피 얼음 바위 산 공략대는 우리뿐이고, 우리가 얼음 구슬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얌전히 얼음 바위 산에 남아 있을 텐데 무슨 걱정이야? 그러지 말고 도미닉 너도 한 잔 해. 이런 날에는 위스키가 딱이라고.”
로크가 내미는 잔을 받아든 도미닉이 벌컥벌컥- 위스키를 들이켰다.
“크으으-!”
“이거 엄청 독한 술이야, 그렇게 퍼마셨다가는 버티지 못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로크는 어느새 도미닉이 비워버린 잔에 위스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몰라서 묻는 건데 두 번째 봉우리는 어떤 곳이야?”
이번에 처음으로 공략대에 합류한 넬이 맥주를 홀짝거리며 물었다.
“넬! 너는 사전 조사도 안 했어?”
도미닉은 눈 주변이 벌겋게 변해서 넬을 바라봤다.
“듣기야 들었지. 그런데 그날 과음을 해서 다 까먹어 버렸거든.”
자랑이랍시고 낄낄- 거리는 넬의 모습에 도미닉뿐만 아니라 다른 대원들도 인상을 찌푸렸다.
“이봐, 넬. 그런 물렁물렁한 마음으로 얼음 바위 산을 공략하겠다는 거야? 네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얼음 바위 산을 단순한 4등급 던전형 사냥터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짐 싸서 돌아가!”
“그러니까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건데?”
“휴우! 젠장! 누가 설명 좀 해줘!”
도미닉은 더 이상 넬과는 말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넬의 태연스러운 태도가 다른 대원들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함께 얼음 바위 산을 공략해야 할 넬을 이대로 둘 수 없었기에 와튼이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와튼의 설명을 모두 듣고 난 넬이 별거 아니라는 듯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두 번째 봉우리는 추위를 견뎌내야 한다는 거잖아. 그게 뭐 어려워? 그까짓 추위 정도가 뭐가 두렵다고 그렇게들 앓는 소리야?”
넬의 말을 듣던 도미닉이 기어이 참지 못하고 있는 힘껏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뭐? 그깟 추위? 네가 생각하는 그 별거 아닌 추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알기나 해? 온 몸에 동상이 걸려서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 줄 알아? 회장님께서 1등급 지옥불을 그깟 추위를 견디라고 대장에게 줬다는 걸 네가 알기나 하냐고!”
“1등급 지옥불을?”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도미닉의 모습보다도 1등급 지옥불을 받아 왔다는 사실에 넬이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려 1등급이다.
아무리 연금술회에서 자체 제작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1등급은 그리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내부적으로도 1등급짜리는 상당히 귀하게 여기며 그 쓰임이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일에만 사용되어 왔다.
그런 귀한 1등급 지옥불을 고작 추위를 견디라고 줬다니.
넬도 그제야 상황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1등급 지옥불의 진짜 용도는 따로 있었다.
바로 얼음 구슬을 확보할 때 사용하기 위함이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도미닉의 말처럼 두 번째 봉우리에서도 얼마든지 사용을 할 수 있게끔 추가 수량을 받아온 상태였다.
“뭐… 난 그렇게 위험할 줄은 몰랐지.”
넬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자 그제야 도미닉도 사납게 치켜떴던 눈을 가라앉혔다.
다른 4등급 사냥터를 몇 번이나 공략했었던 넬이었기에 그가 단순히 등급만 놓고 얼음 바위 산을 만만하게 생각했던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알면 이제부터라도 긴장해. 얼어 죽은 네 시체를 치울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으니까. 두 번째 봉우리의 추위는 인간이라면 절대 맨몸으로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과연 그럴까?
도미닉은 지금 얼음 바위 산, 두 번째 봉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안다면 자신의 말이 얼마나 경솔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
“…에취!”
기침을 하며 무혁은 콧물을 가볍게 소매로 닦아냈다.
얼음 바위 산, 두 번째 봉우리는 무혁이 생각했던 그 어떠한 난관보다도 황당했다.
거대한 빙산의 정상을 정복해야 하는데, 몬스터도 없었고 첫 번째 봉우리에서 쉬지 않고 얼음 조각을 날려댔던 얼음 나무 역시 단 한 그루도 없었다.
등산로가 완벽한 빙판으로 굉장히 미끄러웠으며, 그 경사도가 상당히 가팔랐기에 사실상 등산로라기보다는 빙벽 등산 장소라고 해도 결코 과장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바로.
후두두두두둑!
휘이이이잉-!
지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빗방울과 코끝을 베고, 귀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날카로운 칼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무혁의 몸을 할퀴고 지나간다는 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줌을 누면 그대로 얼어버릴 것만 같은 낮은 기온인데, 피할 수 없는 빗방울에 온 몸이 흠뻑 젖어버리니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여기에 칼바람까지 휘몰아치니 이건 그대로 숫제 얼어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무혁이 누구인가?
헬-라시온의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최강의 내성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차단, 스킬이 내부 저항을 시작합니다.]
[차단,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뼈 속까지 얼려버릴 것만 같은 끔찍한 한기로 인해 차단 스킬은 쉬지 않고 내부 저항을 했으며, 그만큼 숙련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최소한 얼어 죽을 걱정은 없었지만, 수시로 흘러내리는 콧물과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로 몰아치는 칼바람은 제아무리 무혁이라 하더라도 어쩌지 못했다.
처음에는 바람 변환 스킬을 이용해서 칼바람의 방향을 바꾸기도 했지만, 잠깐일 뿐 소용없었다.
이어서 투구와 망토 등을 뒤집어쓰거나, 워 앤트의 견고한 외피 스킬로 얼굴을 보호하기도 해봤지만 역시나 무의미했다.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칼바람이 비집고 들어와 무혁을 괴롭혔던 것이다.
“차라리 얼음 조각 공격이 훨씬 낫지!”
무혁은 혀를 차며 어느덧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정상을 확인했다.
빙산의 크기가 어찌나 큰지 오르는 데에만 이틀이 걸린 것이다.
3시간을 더 바득바득- 빙산을 오르고 나서야 무혁은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성 스킬이 없으면 여길 어떻게 올라오지?”
무혁은 자신이 올라온 빙산을 바라봤다.
까마득해서 그 시작점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역시 4등급 사냥터는 차원이 다르네.”
얼음 바위 산의 특별함을 생각하지 못하는 무혁은 그저 4등급 사냥터는 만만찮다고 여길 뿐이었다.
혀를 내두르며 무혁은 비와 칼바람이 옷 곳곳에 남겨 놓은 고드름들을 후두둑- 털어냈다.
곧이어 무혁은 따뜻한 국물에다가 밥을 먹고 위장 텐트에서 잠을 잤다.
반나절 가까이 잠을 자고 일어난 무혁은 바로 세 번째 봉우리로 향했다.
세 번째 봉우리는….
“이제부터 본격적이라 이거지?”
세 번째 봉우리를 바라보는 무혁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크기만 놓고 본다면 첫 번째 봉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등산로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얼음 병사들과 드문드문 보이는 얼음 나무, 그리고 봉우리 정상에서 집체만한 얼음 바위가 일정한 시간을 두고 아래로 콰드득콰드득- 소리를 내며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어디 오랜만에 칼 춤 좀 춰볼까?”
그동안 마력 스킬에 너무 애정을 쏟았다 여긴 무혁은 곧바로 블랙 본 장검을 만들어냈다.
현재 파멸, 호신, 회피 스킬의 등급은 5등급으로 꽤 오랜 시간 정체되어 있었다.
반격 스킬의 경우엔 아직까지도 7등급일 정도로 그 쓰임이 너무 적었다.
후발 주자나 다름없는 마력 스킬을 중심적으로 성장시킨 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근래 너무 마력 스킬에만 주력했기에 이쯤에서 무혁은 검술 관련 스킬의 숙련도를 올려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숙련도도 숙련도지만, 몸을 좀 움직여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마침 상대도 딱 좋고.”
추위 속에서 마력 스킬만 사용하다보니 몸이 굳어가는 기분이라 무혁은 더욱더 몸이 후끈- 달아오를 수 있도록 직접 몸을 움직이고 싶은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럼 올라가 보실까.”
무혁은 스킬부터 펼쳤다.
보유하고 있는 포지션 스킬을 모두 사용하고, 보석 도마뱀의 위장과 겁 많은 바로크의 폭주 스킬, 파멸, 호신, 회피 스킬까지 근접 전투에 최대 성능을 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곧장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콰드득! 콰드득! 콰드득!
가장 먼저 얼음 나무들이 얼음 조각을 날렸다.
첫 번째 봉우리에서처럼 적게는 수십 조각, 많게는 수백 조각이 날아오지는 않았지만, 삼삼오오 모여 있는 얼음 병사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무혁은 얼음 조각 공격은 실드 스킬로 방어했다.
퍽퍽! 퍽퍽퍽! 퍽퍽퍽!
십여 개의 얼음 조각들이 양 옆으로 만들어진 실드에 충돌했다.
[공격을 흡수합니다.]
[실드, 스킬의 방어력이 10초 동안 10% 향상됩니다.]
실드 스킬을 조합할 때 ‘아이스 실드’ 스킬이 조합되었기에 고유 속성인 얼음 계열 공격을 10퍼센트의 확률로 흡수한다.
짧다면 짧지만 10초 동안 10퍼센트나 방어력이 향상된다는 건 엄청난 효과였다.
방어 스킬로서 이보다 더 좋은 효과는 없지만, 실드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장점까지도 갖추고 있었다.
[공격을 반사합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블랙홀과 같은 실드의 중심에서 새카맣게 변한 얼음 조각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이어진 거대한 폭발음.
콰아앙!
몸을 떨어대며 얼음 조각을 만들어내던 얼음 나무가 한순간 커다랗게 휘청거렸다.
기껏 주변으로 만들어 놓았던 얼음 조각들이 바닥으로 후두두둑- 떨어졌다.
방어 스킬이되, 일정 확률로 반격까지 가능한 실드였다.
강력한 반격에 잠시 동안 제 기능을 상실해 버린 얼음 나무의 모습에 무혁은 더 이상 얼음 조각 공격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무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얼음 병사들에게로 돌아갔다.
얼음 병사는 온몸이 얼음으로 만들어진 인간형 몬스터로 날카로운 얼음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얼음 병사들의 가장 특이한 부분이라면 역시 이동 방식이었다.
바닥을 뛴다기보다는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있었기에 상체의 흔들림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체 이동에 따른 상체의 흔들림이 없으니 공격을 펼칠 때의 공격 모션이 굉장히 간단했다.
무엇보다도 공격을 하기 직전의 준비 동작이 일반적이지 않아 타이밍 또한 무혁의 예상과는 미묘하게 어긋났다.
후우욱-!
“……!”
갑작스럽게 공간을 뚫고 불쑥- 밀고 들어오는 얼음 창 공격에 깜짝 놀란 무혁이 황급히 몸을 비틀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그대로 옆구리가 뚫려버렸을 정도로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이뤄진 공격이었다.
얼음 병사의 등급은 5등급.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움직임으로 인해 처음 전투를 접하는 이들은 웬만한 4등급 몬스터보다도 까다롭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혁 역시도 부지불식간에 당한 공격에 놀라긴 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신선하네.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봉우리에도 너희 같은 놈들이 계속해서 나오겠지? 그럼 여기서 충분히 적응하고 가야겠네.”
당장 얼음 병사에게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움직임만큼은 확실하게 눈에 익혀 둘 필요성이 있다 판단한 무혁이었다.
어느덧 자신을 둥그렇게 포위한 얼음 병사들을 바라보며 무혁이 손을 까딱- 거렸다.
“드루와. 모조리 부숴줄게.”
무혁의 도발에 맞춰서 그를 포위하고 있던 얼음 병사들이 맹렬하게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