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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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20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20화
하이 랭커 (9)
‘저게 레드 문이라고?’
무혁은 레오의 음성에, 그 역시 몇 번 이야기만으로 들어왔던 헬-라시온 최강의 살인 병기, 레드 문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바라봤다.
투 핸드 소드 형태의 커다란 대검으로 모양 자체는 크게 특별한 점이 없었다.
하지만 방금 핏물에 담갔다가 뺀 것 마냥 새빨간 색상은 확실히 독특하다 못해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로, 불쾌한 기운이 역력했다.
명검이라 불리는 것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만 같은 예기를 발하는 것과 다르게, 쿠에토의 손에 쥐어진 레드 문은 온 몸을 끈적끈적하게 옭아매는 것만 같은 요사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살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한낱 무기 주제에 자체적으로 투기를 발산한다는 것 또한 특별하다면 특별했다.
‘무슨 놈의 검이 저 따위야?’
보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는 기분이 드는 검이라니.
무혁은 쿠에토라는 인간도 참 유별난 검을 무기로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라면 손에 쥐는 것조차도 싫을 것 같았으니까.
“광 그림자 스킬을 깨트렸으니 레드 문의 칼날에 죽을 자격 정도는 충분하지.”
쿠에토가 그렇게 말하며 레드 문의 칼날을 혀로 가볍게 핥았다.
칼날에 베인 혀에서 핏물이 흘러나오며 레드 문을 적셨다.
“미친 놈.”
역시 제정신이 아니라는 듯 무혁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가 이윽고 눈을 크게 치켜떴다.
레드 문 전체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레드 문에서 발산되는 살기와 투기, 그리고 요기가 폭주라도 하듯이 더욱더 짙어졌다.
“무혁아, 조심해야 해. 레드 문은……!”
혹시라도 무혁이 레드 문에 대해 자세히 모를까 싶어서 레오가 그렇게 경고를 해주려고 했지만, 쿠에토는 그런 꼴을 봐주지 않겠다는 듯 땅을 찧듯이 크게 발을 구르며 무혁을 향해 몸을 날려 왔다.
‘부딪혀 보면 알겠지!’
어째서 2등급 무기인 레드 문을 최강의 살인 병기라고 부르는지, 무혁은 직접 마주해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광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있어 꼼짝도 하지 않았던 쿠에토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니 그 속도와 파워가 넘치다 못해 폭발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카- 앙!
‘…역시 강하네!’
블랙 본 장검으로 레드 문을 막은 무혁은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느껴지는 충격에 쿠에토가 얼마나 강한 놈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광 그림자라는 독특한 스킬 하나에 의존해온 놈은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큭큭! 미치도록 흥분되는군!”
이미 넌 미쳐 있는 놈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려던 무혁은 몸을 팽이처럼 휘리릭- 돌리며, 레드 문으로 자신의 하체를 쓸어오는 쿠에토의 공격에 침착하게 블랙 본 장검만 휘둘렀다.
캉!
연달아 두 번이나 자신의 공격에 막혔지만, 쿠에토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연속적으로 레드 문을 휘둘렀다
전형적으로 자신의 방어는 무시한 공격 일변도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전술이었다.
하지만 쿠에토의 전술은 그가 가진 힘과 속도가 워낙 뛰어났기에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훌륭하다 할 수 있었다.
더욱이 모든 고유 능력의 등급이 2등급에 들어선 쿠에토였으니 신체 능력만 놓고 본다면 헬-라시온의 그 누구와 비교해도 뒤떨어진다고 할 수가 없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쿠에토의 고유 능력은 모두 3등급이었다.
하지만, 포식자의 성장 스킬을 2등급에 올리는 순간부터 쿠에토는 남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유 능력의 정밀 수치를 끌어 올렸고, 결국 고작 며칠 만에 모든 고유 능력의 등급을 2등급으로 올려버린 것이었다.
이게 바로 포식자의 성장 스킬의 가치다.
포식자의 성장 스킬의 등급은 거기에 맞는 등급의 생명체의 뼈와 살을 포식함으로써 숙련도를 올릴 수 있지만, 고유 능력과 스킬 숙련도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어떠한 생명체의 뼈와 살을 섭취하더라도 포식자의 성장 스킬 등급에 맞도록 고유 능력의 정밀 수치와 스킬 숙련도를 올릴 수 있었다.
더욱이 쿠에토는 필립을 잡겠다는 의욕으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 쿠에토는 며칠 동안 오직 고유 능력과 스킬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몬스터의 뼈와 살을 씹었고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기에 쿠에토는 더욱더 자신이 있었다.
상대가 필립이라 하더라도 승리를 100퍼센트 장담을 하는데, 그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는 무혁이라면 이미 승패가 갈린 싸움이나 다르지 않았다.
카앙! 캉! 캉캉!
근본도 없고, 이렇다 할 기교도 없으며 정확성조차도 거리가 먼 쿠에토의 칼질이었지만, 워낙에 속도가 빠르고 파워가 넘치다보니 무혁으로서도 꽤나 까다롭게 느껴졌다.
‘모래성에서 모래 해골 기사에게 검술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도 지금 쿠에토 같은 처지겠지?’
쿠에토의 막무가내 공격을 방어하며 무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오로지 자신의 신체 능력을 앞세워 상대를 짓누르려고만 하는 검술.
기교도 형식도 없는 무식하기만 한 형편없는 검술 아니, 칼부림!
과거 무혁이 자신보다 약한 상대들을 상대로 펼쳤던 공격 방식이었다.
‘분명 강한 놈이기는 하지만, 너도 상대를 잘못 만났다. 하필 나를 만나서 박살나게 생겼으니까!’
무혁은 쿠에토가 휘두르는 레드 문의 궤적을 정확하게 읽고 미리 몸을 반보 뒤로 뺐다가 곧장 블랙 본 장검을 빠르게 내질렀다.
휙- 푹!
쿠에토의 레드 문이 무혁의 가슴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고, 뒤이어 빈틈이 보이자 무혁이 내지른 블랙 본 장검이 쿠에토의 옆구리를 깊숙하게 찌르고 들어갔다.
“큭!”
타이밍 상 반격 스킬은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 절묘하게 빈틈을 노린 훌륭한 무혁의 역공에 상처를 입은 쿠에토가 신음을 흘리며 눈가를 일그러트렸다.
“이 꽉- 물어라.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말과 함께 무혁의 블랙 본 장검이 쿠에토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너 따위 근본 없는 칼부림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듯 무혁의 검술은 압도적이었다.
화려한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굉장히 간결해졌고, 빠르다가도 무거워지길 반복했다.
푸악! 서걱! 푹! 스- 윽!
쉬지 않고 무혁은 쿠에토의 몸에 상처를 하나, 둘 늘려나갔다.
발악적으로 레드 문을 휘둘러대는 통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베이고, 찢기고, 찔리기를 반복할수록 쿠에토의 몸은 불긋불긋하게 변해갔다.
“크아아아아! 광 그림자 연쇄 폭발!”
쿠에토가 고함을 내지르며 그렇게 소리치자 그의 발아래에서 새카만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뜯겨지듯 퍼져나가며 연쇄적으로 폭발을 했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실드!”
생각보다 강력한 폭발력에 무혁은 재빨리 실드를 펼쳐 몸을 보호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 쿠에토는 공간 주머니에서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꺼내 며칠 굶은 사람마냥 살과 뼈를 그대로 우걱우걱- 씹어 먹기 시작했다.
한창 싸우다 말고 갑자기 고깃덩어리를 먹어대는 쿠에토의 황당한 행동에 무혁이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무슨 짓이……!”
놀랍게도 쿠에토가 고깃덩어리를 먹어대기 시작하자 몸의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어갔다.
포식자의 성장 스킬이 가진 또 하나의 효용, 바로 회복 능력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깨끗하게 씹어 삼켜버린 쿠에토가 입가에 핏물이 흥건한 모습으로 씨익- 웃었다.
“큭큭… 네놈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날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이미 불사신에 가까운 몸이니까!”
자랑스럽게 말을 하는 쿠에토였지만, 무혁은 조금도 두렵다거나, 걱정스럽지 않다는 듯 코웃음과 함께 대꾸했다.
“병신이냐? 네가 못 처먹게 하면 간단하게 해결 될 일인데 불사신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물론, 맞는 말이다.
이제껏 쿠에토를 만났던 다른 이들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에토가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건 그가 회복할 시간을 차단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의미였다.
무혁 또한 그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미 쿠에토와의 한 차례 접전을 통해 자신이 완벽하게 우위에 있다는 걸 확인했기에 그가 더 이상 회복할 시간을 갖기란 불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한 확신에 찬 무혁의 모습을 보며 쿠에토가 여전히 자신 있게 웃었다.
“네놈의 실력은 충분히 확인했다. 이제 네놈에게 남은 건 내 검 앞에 무릎을 꿇는 것뿐이다!”
무슨 자신감인지 쿠에토는 이미 검술로 완벽하게 무혁에게 농락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레드 문을 휘두르며 거리를 좁혀왔다.
“완전히 맛이 간 놈이네.”
어디서 저런 객기를 부리는 것인지, 무혁은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차고는 마주 달려 나갔다.
다시 말하지만, 쿠에토의 검술 실력은 형편없다.
오로지 힘과 속도만을 앞세워서 제 멋대로 휘둘러대는 검이었기에 무혁에게는 조금도 위협감이 없었다.
휙- 서걱!
무혁은 가벼운 동작으로 쿠에토가 휘두른 검을 피하고 그의 허벅지를 베었다.
휙- 푸욱! 휙- 촤악!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쿠에토는 미련할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해서 검을 휘둘렀고, 무혁은 번번이 그 공격들을 깔끔하게 피하며 그의 몸에 상처를 또 다시 하나, 둘 늘려나갔다.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쿠에토는 무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는 이들은 너무나도 일방적인 싸움 형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 보니까 쿠에토는 그냥 힘만 센 멍청한 놈이었군.”
“내 말이. 저런 놈이 하이 랭커라니… 정말 수준 떨어진다.”
“아니지, 쿠에토의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무혁이라는 놈이 대단한 거겠지.”
“그것도 그러네. 어떻게 저런 놈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거지?”
“어쨌든 대단하네. 저 미치광이 살인마를 저렇게까지 가지고 노는 실력이라니… X발, 이거 완전히 우리만 죽어 나가는 거 아냐? 필립만 하더라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데 저런 괴물이 또 있으니… 이제라도 길드장이 정신을 차리고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하는 거 아니야?”
흑룡 길드원들의 말처럼 그들은 애초부터 자신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 시작한 싸움이니 이제라도 킬 라시온과 화해를 했으면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만큼 그들의 눈에 무혁은 감당하기 힘든 상대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무사시 가문과 천인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들이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었던 싸움이라고 하더라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자존심이 뭉개졌고 피해만 봤으니, 콧대 높은 수뇌부가 과연 먼저 고개를 숙일지 의문이었다.
또한, 쿠에토라는 괴물까지 끌어들여 필립의 뒤통수를 치려고 했으니, 당사자인 필립과 킬 라시온도 아무 말 없이 화해의 손길을 잡아 줄 것 같지 않았다.
이래저래 쿠에토를 상대로 무혁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수록 마음이 시커멓게 죽어가는 그들이었다.
“설마하니 무혁 동생이 쿠에토까지 잡을 줄이야…….”
방적삼은 한참 어린 동생이지만, 무혁에 대한 존경심마저 생겨났다.
단순히 고유 능력의 등급이 높아서가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검술 실력이 방적삼에게는 더욱더 큰 감동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 검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이들에게 무혁은 가장 이상적이라 할 정도로 완벽해 보였다.
“도대체 저런 검술은 어디서 배운 거야? 여기 오기 전부터 검술로 유명했던 건가?”
“당연하지! 저런 실력이 헬-라시온에서 생겼을 리가 없잖아! 역시 우리 오빠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라니까! 정말 멋있어!”
“그래, 미첼 네 말이 맞다. 헬-라시온에 올 때부터 무혁은 이미 완벽한 녀석이었을 거야!”
킬 라시온 멤버들이 모두 그렇게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방구름은 차마 무혁이 모래성에서 수개월 동안 모래 해골 기사를 상대로 검술을 수련했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모두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고, 굳이 그런 말을 꺼내 무혁에 대한 환상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닌가? 몇 달 만에 저런 실력을 쌓았다고 하면 그게 더 대단하려나?’
방구름은 자신이 아는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 더 무혁을 돋보이게 하는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마크와 레오만이 무혁에 대한 칭찬을 꺼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피칠갑을 해가면서도 악착같이 무혁을 향해 레드 문을 휘두르고 있는 쿠에토의 모습이 굉장히 불안하다는 듯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조금도 풀지 못했다.
그러던 때에 무혁이 휘두른 블랙 본 장검이 쿠에토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아!”
“위험해!”
마크와 레오의 외침 속에서 허리를 찔러 들어온 블랙 본 장검을 왼손으로 꽉- 움켜쥔 쿠에토가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무혁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큭큭! 잡았다.”
“손모가지 날아가고 싶어?”
무혁이 코웃음을 치며 블랙 본 장검을 비틀려는 순간, 쿠에토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레드 문을 아주 가볍게, 그리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무혁의 허리를 베어버렸다.
서걱!
상처는 깊지 않았다.
얼마든지 참고 넘길 수 있었고, 1등급 자연 회복 스킬 덕분에 신경 쓸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알람만 아니었다면.
[레드 문에 깃들어 있던 피의 저주가 상처 부위로 스며들었습니다.]
[출혈 내성과 부식 내성의 등급이 너무 낮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상처의 출혈 속도가 대폭 증가 됩니다.]
[빠른 속도로 상처 주변이 부식됩니다.]
[1시간 동안 회복 스킬과 물약 효과가 제한됩니다.]
[출혈 내성,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부식 내성,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이…. 이게….”
무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걸 보며 쿠에토가 광기에 물든 눈동자로 히죽- 웃고 있었다.
“이제 모조리 씹어 먹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