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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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01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01화
커스틸 도시 (9)
멋스럽게 생긴 중후한 인상의 중년 신사가 불쾌한 표정으로 무혁을 노려보고 있다.
커스틸을 관리하고 있는 마족, ‘커웨인’이 바로 중년 신사의 정체였다.
“그러니까 마족의 인장이라고? 마수의 인장이 아니라 마족?”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무혁의 반문에 커웨인은 더욱더 불쾌함이 강해진 표정으로 아주 딱딱한 어조로 대꾸했다.
“마족 헬락시스의 힘이 봉인되어 있는 인장이다. 두 번 묻지 마라.”
헬락시스가 누구인지, 그 힘이 어떤 형태인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무혁은 도저히 커웨인의 딱딱한 표정과 말투에 한 마디도 꺼낼 수가 없었다.
‘한 번만 더 물으면 뺨이라도 때리겠네.’
무혁은 커웨인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하긴, 같은 마족의 힘을 봉인시켜 그것을 하찮게 생각하는 인간 따위가 제 멋대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니 커웨인의 기분이 어떨지는 충분히 이해도 갔다.
‘뭐, 내 알바는 아니지만.’
무혁은 커웨인이 못 보도록 고개를 슬쩍 돌리고는 킥- 거리며 웃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팔머의 표식에 인장, 그것도 마족의 인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마수의 인장에 이어서 이번에는 마족의 인장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팔머의 모습에서 레오나르도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긴 했었다.
어쩌면 팔머가 마수의 인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설마 마수가 아닌 마족의 인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해봤기에 무혁의 놀람은 더욱더 컸다.
‘마족의 인장이면 마수의 인장보다 확실히 상위 인장이라는 소리인데…….’
그런데 어째서 팔머는 그렇게까지 강하지 못했던 걸까?
다른 누구도 아닌 마족의 힘이다.
하이 랭커들이 결코 비벼볼 수도 없는 우월한 존재감을 보이는 마족의 힘을 얻었음에도 어째서 팔머는 그렇게까지 강하지 못했는지 무혁은 쉬이 납득이 되질 않았다.
‘헬락시스라는 마족의 힘이 약한 거겠지.’
결론은 그것 밖에 없었다.
팔머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도시 길드인 엑소더스의 무력 조직인 레드 팀의 팀장이다.
그런 자리를 가위, 바위, 보로 따냈겠는가?
아니면 사다리 타기로 따냈겠는가?
오로지 실력!
그 하나만으로 레드 팀의 팀장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팔머가 마족의 인장까지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무혁에게 패배를 한 것이다.
아무리 무혁이 남다른 강함을 선보였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하이 랭커가 아닌 이상…….
‘아닌가? 어쩌면 난 이미 하이 랭커 수준이려나?’
‘너 도대체 뭐야? 하이 랭커야?’
‘지금은 그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분명 무혁이 팔머의 강함에 놀라서 하이 랭커냐고 물었었고, 그는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인 즉, 마족의 인장이 가진 힘까지 뽑아냈을 때의 팔머는 하이 랭커나 마찬가지라는 뜻.
‘음… 확실히 필립 형과 비교해도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아니지.’
생각을 하던 무혁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속단하기엔 이르다.
필립의 진짜 실력을 모르는 무혁으로서는 팔머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성급한 예측일 뿐이었다.
‘나중에 본부로 돌아가면 필립 형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무혁은 자신과 팔머의 싸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필립이니 어느 정도 계산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하이 랭커를 거론하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던 팔머를 떠올린 무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필립 형한테 처참하게 깨졌을 때만 하더라도 하이 랭커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하이 랭커라 하더라도 간신히 이름만 걸치고 있는 상대라면 한 번 엉겨볼 수 있겠는데?’
물론, 팔머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있을 무혁이 아니다.
무혁이 이러한 생각을 하는 데에는 팔머와의 싸움에서도 꼭꼭 숨겨두었던 비장의 무기가 여러 개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력 등급 상승과 스킬 위력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스킬, 태양의 증폭!
1분 동안 무적 방어와 방어 스킬을 2배로 증폭시킬 수 있는 스킬, 얼음의 방어!
엄청난 페널티를 감수해야 하지만 고유 능력의 등급을 모조리 상승시킬 수 있는 스킬, 블랙 본의 광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1회성 스킬들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무혁은 팔머와의 싸움에서 결코 전력을 다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혁은 마족의 인장까지 사용한 팔머를 쓰러트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갓 하이 랭커가 되었거나, 겨우 명성만 유지하고 있는 끄트머리 하이 랭커라면 내심 자신감이 생기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이 랭커라…….”
불과 2년.
헬-라시온에 끌려온 지 고작 2년 밖에 안 된 시간 내에 하이 랭커의 자리를 탐내고 있는 무혁이었다.
“인장은 어쩔 거지?”
“당연히…….”
커웨인은 무혁의 첫 마디만 듣고 눈을 찌푸렸다.
경멸스러움과 불쾌함을 동시에 드러나는 커웨인의 눈빛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너희 인간 따위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라시온 님께서 어찌하여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을 너희 인간들을 위해 만들었는지 그 깊은 뜻까지는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마기를 사용할 수 없는 너희 인간들에게 마족의 힘은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잠시 말을 끊은 커웨인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 힘을 사용한 놈도 마기를 이기지 못하고 자멸했을 테지.”
무혁은 커웨인의 말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고 보니…….”
팔머가 변했을 때, 로사와 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의문이 들었던 무혁이었는데, 커웨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이유가 이제야 명확해졌다.
또한.
‘어차피 여기서 너와 나는 모두 죽을 테니.’
자신의 죽음을 확신에 차서 말했던 팔머가 다시 한 번 무혁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강한 힘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던 팔머였기에 무혁은 그저 자폭을 하려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거 완전 목숨을 담보로… 잠깐!’
무혁은 재빨리 커웨인에게 물었다.
“마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마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너희 인간 따위가?”
하- 하며 코웃음을 치는 커웨인이었지만, 무혁은 대답이나 해달라는 듯 재촉했다.
일어날 수도 없는 일에 대한 환상을 품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는 걸 알기에 무혁을 바라보는 커웨인의 표정이 조소로 가득했다.
인간의 환상을 처절하게 깨트리는 것 또한 마족으로서의 즐거움일터.
커웨인은 기꺼이 대답을 해주었다.
“마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마족의 인장에 먹히는 일은 없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너희 인간들은 마기를 깨닫기에 너무나도 형편없는 존재니까.”
“혹시, 마기의 사용 유무에 따라서 마족의 인장이 가지고 있는 힘 또한 달라지는 건가?”
“역시 멍청한 질문만 하는군. 당연하다. 마수의 인장이라면 모를까, 본격적으로 마기를 다룰 수 있어야만 그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 바로 마족의 인장이다.”
이어서 커웨인은 마수의 인장 또한 마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는 그 위력이 훨씬 더 증가한다는 설명까지 아주 친절하게 해주었다.
“이제 알겠지? 너희 하찮은 인간들에게 인장은 한낱 꿈도 꿀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고 있는 커웨인의 모습에 무혁은 그가 왜 이토록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더욱더 혹독하게 깨닫고 절망하며, 비참함을 느끼라는 의도였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충분히 통했을 일이다.
손에 들어온 막강한 힘에 환호를 하다가 실제로는 사용할 수도 없다는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을 때, 비관하며 실망감에 젖어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야 말로 마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쾌락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커웨인은 상대가 틀리고 말았다.
“웃어?”
당연히 실망하고, 절망해서 세상이라도 잃은 표정을 지어야 할 무혁이 오히려 무거운 표정으로 말없이 서 있었다.
커웨인은 자신이 예상과는 다른 모습에 눈을 찌푸렸다.
‘팔머가 제대로 힘을 사용하지도 못했다는 건데도 하이 랭커를 거론했을 정도면…….’
역시 마족의 힘은 강대했다.
무혁은 그런 마족의 힘을 자신이 사용했을 때를 상상해봤다.
어쩌면 헬-라시온 최강이라 불리는 인간도 자신에게는 무릎을 꿇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용해야 할까?’
욕심이 났다.
탐욕스러움이 발끝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차올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말 한 마디면 된다.
마족의 인장을 자신의 표식에 각인시켜달라고.
그러면 끝난다.
어마어마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마기를 깨달은 무혁이었기에 팔머처럼 후유증을 겪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주 완벽하다.
그런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보니 또 하나의 감정이 치고 올라왔다.
거부감.
마족의 힘을 사용했을 때, 과연 자신은 누가 될 것인가?
차무혁이라는 인간이 맞기는 할까?
어쩌면 그냥 또 다른 마족으로 변하진 않을까?
그래서 거부감이 들었고, 서서히 두려움으로 변해갔다.
“젠장!”
별안간 무혁이 욕설을 내뱉으며 신경질을 냈다.
그 누구보다 강한 힘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스러운 마족의 힘까지 빌리고 싶지가 않았다.
더 진솔하게 말하면 지금까지 노력해왔던 힘을 하찮게 여기고 강력한 마족의 힘에 취해서 그들에 대한 증오와 원망마저 희석될 것이 두려웠다.
왠지 손에 넣으면 반드시 후회를 할 것만 같았다.
“후우… 그래, 사람이면 사람답게 살아야지.”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해왔다.
블랙 본의 힘을 얻은 건 이렇게 될 줄 몰랐고, 엄연히 따지면 마족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니 그 힘에 취한다 하더라도 하등 문제가 될 것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무혁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충분히 많았다.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잡아서 고유 능력을 성장시키고, 신물의 힘 또한 있었다.
‘그래, 마족의 힘까지 욕심을 낼 필요 없어!’
무혁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 위해 곧바로 공간 주머니에서 큼지막한 통돼지 한 마리를 꺼냈다.
예전에 미리 구매를 해놓은 것으로 강제 사냥이나, 몬스터를 사냥할 때 통돼지 바비큐를 하려고 넣어두었던 고기였다.
“여기에 마족의 인장을 각인시켜줘.”
“…뭐라고?”
커웨인은 자신이 잘 못 들었나 싶었다.
마족의 인장이다.
자신과 동등한 힘을 가진 마족의 힘이 봉인되어 있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인장!
그런 고귀한 인장을 통돼지에 각인시켜달라니!
“지, 지금 네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아는 거냐?”
커웨인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지다 못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변했다.
분노한 커웨인의 모습만 본다면 무혁을 단숨에 찢어 죽이고, 그의 심장을 파내서 으적으적- 씹어 먹을 것만 같았다.
“나 같은 인간이 사용할 수 없는 힘이라면서?”
“그렇다고 네놈이 감히 마족을 기만하려 들어?”
“나보다 더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있어서 그런 거니까 각인이나 해줘.”
커웨인의 모습에 무혁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이제까지 만나왔던 마족들이 그러하듯 자신을 쉽게 해치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러한 무혁의 믿음처럼 폭발할 것처럼 분노했던 커웨인이 차츰차츰 화를 가라앉혔다.
“해주지. 네놈이 원하는 대로.”
만에 하나라도 마족의 인장을 허투루 사용했다가는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커웨인이 살기를 줄기줄기 뿌려대며 무혁에게 마지막 경고를 내뱉었다.
곧바로 커웨인이 마족의 인장을 통돼지의 등짝에 각인시켰다.
과거 마수의 인장보다 훨씬 더 복잡했고, 기괴한 문신이 통돼지의 등짝에 새겨졌다.
빛마저 빨아들일 것만 같은 짙은 검은색의 문신을 바라보던 무혁은 아니나 다를까, 허리춤에 매어두었던 가죽 주머니가 들썩- 거리자 곧바로 입구를 열어주었다.
통통통통통통통-!
가죽 주머니를 빠져나온 통통이가 상당히 흥분한 듯 빠른 속도로 제자리에서 뛰었다.
이미 한 번 제멋대로 마수의 인장을 삼켜버리면서 무혁에게 구박 아닌 구박을 받았기 때문인지 무진장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기특한 녀석.”
무혁은 통통이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고는 입을 열었다.
“통통아, 먹어 치워!”
무혁의 허락이 떨어지자 통통이가 기다렸다는 듯 마족의 인장이 각인 된 통돼지를 통째로 집어 삼켜버렸다.
“이게 무슨 짓이……!”
무혁이 하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던 커웨인이 버럭- 소리를 내지를 때였다.
통돼지를 한입에 집어삼킨 통통이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빛이 사방으로 발산되기 시작했다.
번- 쩍!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 정도로 강렬한 빛 앞에 점점-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자, 무혁과 커웨인마저도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아야만 했다.
‘역시 통통이에게 주는 게 맞았어!’
마족의 인장을 통통이에게 주며 무혁은 내심 기대를 해봤다.
다른 것도 아닌 마족의 인장이니 어떤 식으로든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무혁의 기대처럼 통통이가 알에서 깨어나듯, 진정한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