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199화
무료소설 신을 죽이러 갑니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199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199화
마수의 대지 (20)
“…와.”
무혁은 영혼 없는 사람처럼 눈을 퀭- 하니 뜨고 킬 라시온 멤버들을 바라봤다.
금붕어마냥 입만 뻐끔거렸으며, 음성에도 영혼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내새끼가 설마 이 정도의 일로 삐친 거냐?”
실비아가 입 꼬리를 한껏 끌어올리며 그렇게 빈정거렸다.
“전혀.”
대답을 하는 무혁의 표정과 음성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실비아는 물론, 다른 이들도 무혁이 단단히 삐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혁이 네 힘으로 혼자 다 정리했잖아? 그럼 된 거잖아. 역시 무혁이 넌 대단해!”
“그럼! 우리 무혁 동생이 얼마나 막강한지 캬-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해! 멋있어! 나도 무혁 동생 나이 때에는 그만한 패기와 실력이 있었는데! 핫핫핫!”
무혁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르케임이 그렇게 말했고, 방적삼 또한 말 같지도 않은 소리와 함께 일부러 호탕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전환시키려고 노력했다.
“무혁의 실력… 인정할 수밖에 없군. 좋은 경쟁자였다고 기억할 수밖에 없군. 훗훗!”
레오가 졌다는 듯 깨끗하게 인정을 했다.
마수의 대지에서도 무혁에 대한 경쟁의식을 잃지 않았던 레오였다.
하지만, 팔머의 팀을 무혁이 혼자서 박살내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기에 이제는 더 이상 대련을 해보겠다는 마음조차 깨끗하게 접어버렸다.
“내가 위험하면 그래도 도우려고 했죠?”
무혁의 물음에 멤버들은 당연한 것 아니겠냐며 서로 앞 다투어 대답을 했다.
그 모습에 무혁은 그럼 됐다는 듯 더 이상 서운해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죽길 바랐던 것도 아니고, 충분히 혼자서 해볼 만하다 싶었으니까 잠자코 지켜봤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일의 전말은 이러했다.
무혁과 헤어진 필립과 킬 라시온 멤버들은 돌아가던 중에 팔머의 팀과 마주쳤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팔머의 팀은 엑소더스 길드라서 쉽게 대할 수 있는 이들도 아니었고, 그들 또한 킬 라시온과 지저분하게 얽히면 골치 아프다는 걸 알기에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도 별다른 대화 없이 못 본 척 스치듯 지나쳤다.
팔머의 팀이 씨노버 마을로 향하는 길목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건 모종의 음모가 있다는 의미였다.
보나마나 인간 사냥이 목적이었기에 필립으로서는 눈살이 찌푸렸지만, 헬-라시온의 치안 대장도 아닌 자신이 나서봐야 괜한 참견 밖에 되질 않았기에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쳐야만 했다.
이러한 일은 헬-라시온에서 흔하디흔한 일이니까.
하지만, 씨노버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야 필립은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서 움직이고 있을 무혁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분명 팔머의 팀이 무혁을 발견하면 그저 먹음직스러운 사냥감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 확실했고, 그렇다면 둘의 충돌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막아야 했다.
필립의 이야기를 들은 킬 라시온의 다른 멤버들 또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개인사를 미뤘고, 그렇게 팔머의 팀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무혁이 과연 팔머의 팀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실력을 보일지 궁금했다.
이왕이면 무혁이 예상외의 실력으로 팔머의 팀에게 일침을 가했으면 싶었다.
또다시 이런 지저분한 짓을 하게 될 때 무혁을 떠올리게 만들어 스스로 포기하게끔 만들었으면 싶었다.
분위기가 너무 과열된다 싶을 때, 필립이 나서면 얼마든지 진정을 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혁이 에디를 너무 손쉽게 제압했고, 죽이기까지 했다.
이건 필립도, 킬 라시온 멤버들에게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이었다.
에디의 죽음으로 인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이때부터는 팔머의 팀을 전원 죽여서 오늘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워야만 했다.
그 순간부터 필립은 물론 다른 멤버들까지도 팔머, 로사, 로이의 행동 하나, 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지켜봤다.
혹시라도 그들이 자리를 벗어나려 한다면 결사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긴장감까지 곤두세운 상태로.
그러다 무혁이 홀로 모든 것을 끝내버린 것이었다.
“미리 내가 나섰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겠지.”
애초부터 팔머의 팀에게 이야기를 해두었다면 별 문제 없이 끝났을 일이었다.
혼자라 하더라도 무혁이 킬 라시온의 멤버라는 걸 알면 팔머의 팀으로서도 건드리기 부담스러웠을 테니까.
“엑소더스의 정예인 팔머의 팀을 상대로 무혁이 네가 얼마나 선전을 할까 하는 호기심이 결국은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었으니… 어찌되었든 이건 리더로서 내 책임이 가장 크다. 미안하다, 무혁아.”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일이 이렇게까지 큰 사건으로 변할 줄은 몰랐기에 필립으로서는 자책을 할 만 했다.
“어차피 나쁜 짓이나 하던 놈들인데 잘 됐죠. 동시에 경쟁자나 다름없는 놈들의 전력까지도 약화시켰으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하죠 뭐. 그것보다도 텔레포트는 어떻게 된 거죠?”
다른 건 몰라도 텔레포트는 확실히 의문스러웠다.
외부 공격에도 끄떡없었으니 무혁으로서는 로사가 발동한 텔레포트를 막은 건 분명 필립이나, 다른 멤버들일 것이라고 믿었다.
“아르케니아가 막았지.”
“아르케니아?”
무혁은 고개를 슬쩍- 뒤로 돌렸다.
명색이 마수인 토빗을 인형마냥 품에 안고 있는 아르케니아의 모습은 마치 처음 인형을 선물 받은 어린 아이와도 같아 보였다.
그녀는 이런 이야기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토빗에게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주스 먹을래?”
“야야! 아무거나 함부로 먹이지 마!”
토빗에게 주스를 먹이려는 아르케니아를 말리며 무혁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막았죠?”
혹시라도 토빗에게 이상한 짓을 할까 싶어 무혁은 아르케니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상태로 르케임에게 물었다.
“아르케니아가 가지고 있던 1등급 올 스킬 캔슬을 사용했어.”
“아아….”
무혁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무혁아, 너 지금 그걸로 끝내겠다는 거야?”
르케임의 물음에 무혁은 그럼 뭐가 더 있냐는 듯 그를 빤히 바라봤다.
“1등급 올 스킬 캔슬을 사용했다고.”
“텔레포트 등급이 1등급이니 그렇겠죠.”
“그러니까 그게 얼마나 할 거 같은데?”
“아….”
르케임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깨달은 무혁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1등급 올 스킬 캔슬이 아마 저번에 골드 보석 50개에 거래가 됐었지?”
르케임이 미첼을 향해 그렇게 물었다.
“그랬었지.”
골드 보석 50개면 자그마치 2,500만 포인트다.
무혁으로서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물론,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지만, 무혁은 엉뚱하게도 싸움 한 번 잘못했다가 졸지에 2,500만 포인트를 날려먹게 생겼으니 저절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무혁은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 한 개비를 모두 피우고 나서야 무혁이 쿨하게 입을 열었다.
“오케이! 내가 저지른 일이니까 책임지죠.”
무혁의 말에 가장 먼저 필립이 자신의 책임이니 걱정말라고 못을 박았고, 미첼 또한 길드 차원에서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혁은 단호했다.
“이런 일로 괜한 부담을 줄 순 없어요. 제가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고 뭐.”
에디, 팔머, 로이와 로사까지.
그들의 표식을 제거했고, 무기와 방어구도 챙겼기에 무혁은 최소한 본전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설령, 본전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보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기에 딱히 자신만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혹시라도 더 큰 수익이 있다면?
‘공동 책임으로 하면 당연히 수익도 나눠야하잖아? 그럴 순 없지!’
한 편으로는 팔머의 팀을 통해 얻게 될 이익을 나눠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혁은 무조건 혼자 모든 걸 짊어져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역시 못 먹어도 고! 아니겠는가?
“아르케니아.”
무혁이 아르케니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불렀다.
토빗에게 완전히 반해버린 듯 아르케니아는 제 몸보다 조금 더 작은 토빗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다 숨 막혀 죽겠다. 뭐, 그것보다도 나 때문에 아껴뒀던 1등급 올 스킬 캔슬을 사용했다면서? 더 많이는 줄 수 없지만, 지난 번 시세에 맞춰서 보상을 할게. 골드 보석 50개로 합의하자. 콜?”
“싫어.”
무혁의 말에 아르케니아는 단박에 거절했다.
잠깐의 고민도 없이 너무나도 단호한 아르케니아의 모습에 무혁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더 달라고?”
무혁은 그래도 같은 길드원인데 너무 야박한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아르케니아가 어떤 성격인지를 깨달으니 지금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긴, 주스 하나도 옐로 보석 하나를 철저하게 받아먹는 성격인데… 이건 완전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으니 제대로 호구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독한 년!’
정말 지독하다는 듯 무혁은 혀를 찼다.
“도대체 원하는 게 얼만데?”
설마 자신이 제시한 금액의 두 배까지는 원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아무리 양심불량이라 하더라도 설마하니 같은 길드원을 상대로 팔자를 고치려고 하겠는가?
혹시 다른 것에 관심이라도 있는 건가?
팔머의 팀 누군가의 장비나 그들의 표식에 탐을 내고 있을까?
무혁이 마른침까지 삼키며 아르케니아를 바라봤다.
“보석은 필요 없어.”
“보석은? 그럼 다른 거?”
무혁이 눈을 찌푸리자 아르케니아가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저놈들 것도 관심 없어.”
아르케니아는 팔머 등의 시체를 슬쩍-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아르케니아가 자신의 음흉한 욕심을 꿰뚫고 있는 것만 같아 무혁은 귀가 빨갛게 변했다.
“그, 그럼 뭐?”
“대신 얘 줘.”
아르케니아가 자신의 품에 인질처럼 안겨 있는 토빗을 가리켰다.
“토빗? 그건 안 돼! 걘 마수야. 너 마수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서 그래? 지금은 그렇게 순해 보이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어.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걸 네게 줄 순 없어. 이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라고!”
실제로 마수가 어떤 식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었기에 아르케니아가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현재 토빗은 그 능력조차 제대로 파악이 되질 않은 마수다.
때문에 위험하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어떤 희귀한 능력을 갖고 있다면?
‘저건 완전 긁지 않은 복권이야! 혹시 알아? 놀라서 까무러칠 능력을 숨기고 있을지!’
생각을 굳힌 무혁은 절대 토빗을 내어 줄 수 없었다.
“1등급 올 스킬 캔슬은 내 두 번째 심장이나 다름없었어.”
“…비약이 좀 심하네. 두 번째 심장은 아니지.”
“이번 상황에서는 우리 모두의 심장이기도 했어.”
로사가 만약 텔레포트를 타고 엑소더스 길드로 떠났다면?
엑소더스 길드와 킬 라시온과의 전쟁 발발이다.
아르케니아가 그 점을 짚어주자 무혁은 말문이 막혔다.
“그, 그래도 토빗은 안 돼.”
“난 너와 우리 모두를 위해 기꺼이 1등급 올 스킬 캔슬을 사용했는데?”
넌 고작 7등급짜리 마수 하나 넘겨주지 못하냐는 아르케니아의 눈초리에 무혁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크음!”
“험험!”
“아- 날씨 좋다!”
“어머! 손톱이 언제 부러졌지?”
“뭘 꼬나봐?”
모두 외면하고 있었다.
실비아는 왜 자길 쳐다보냐는 듯 눈에 쌍심지마저 켜고 있었고, 믿었던 미첼마저도 딴 소리를 해대며 무혁의 시선을 피했다.
언제나 자신의 편이 없다며 투덜거렸던 방적삼마저도 자신이 불리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자 무혁은 역시 세상에 믿을 놈은 없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르케니아, 토빗은 진짜 안 돼. 나중에 아니, 내년에 내가 다시 마수의 대지에 와서 꼭 잡아 줄게. 어때? 1년 외상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네가 1년 뒤에 또 잡으면 되는 거잖아.”
“…….”
절대 물러나지 않을 기세로 말을 하는 아르케니아의 모습에 무혁은 이 흥정의 승자와 패자는 이미 시작부터 결정이 나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무혁은 토빗을 넘겨주고야 말았다.
꾸득! 꾸득!
토빗이 아르케니아에게 넘어가자 히포가 무혁의 곁으로 다가와 불량스럽게 울어댔다.
왜 자신의 심복을 남에게 상의도 없이 넘겨주냐는 히포의 반발이었지만, 그런 걸 너그럽게 받아줄 정도로 무혁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이게 어디서 시끄럽게 울어대! 그렇지 않아도 기분도 별론데 맞고 싶냐?”
퍽! 퍽!
괜히 무혁에게 엉겨붙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애꿎은 매질만 당하고 마는 히포였다.
그렇게 무혁에게 얻어맞는 히포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아르케니아의 품에 안겨 있는 토빗이었다.
“걱정 마. 난 널 저렇게 때리지 않을 거니까.”
아르케니아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토빗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름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쥬시라고 새로 지어주고 싶은데 한 번 정하면 변경을 할 수가 없으니….”
너무 안타깝다는 듯 아르케니아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끼륵! 끼륵!
괜찮다는 듯 토빗이 낮게 울자, 아르케니아가 환해진 얼굴로 말했다.
“주스 마실래?”
공간 주머니에서 곧바로 최고급 주스를 꺼내 토빗에게 먹이는 아르케니아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무혁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한쪽으로 밀려난 히포였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같은 주인에게서 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는데, 한순간에 정 반대의 삶을 살게 될 줄이야!
누군 매일 구박 받고, 누군 편안하게 품에 안겨서 달달한 음료나 빨아대고 있으니 히포로서는 자신의 삶이 더럽게 꼬였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순간이었다.
꾸득… 꾸득….
유난히 히포의 울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리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