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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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32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32화
하이 랭커 (21)
헬-라시온에 존재하는 수천가지의 스킬들 중에서 딱 세 가지만 꼽으라면 그 중 하나는 반드시 ‘회복’ 스킬일 것이다.
특히, 연차가 높은 식민들일수록 회복 스킬에 대한 갈증은 클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강력한 공격용 스킬이나, 무적에 가까운 방어용 스킬이 있다 하더라도 단 한 번에 많은 상처를 치유하고, 모든 상태 이상의 증상들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스킬은 오로지 회복 스킬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라시온에서 회복 스킬은 단 하나 밖에 없다.
식민 특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뿌리 나무의 회복’ 스킬이다.
가장 낮은 7등급일 때에는 큰 효과가 없지만, 최소 4등급까지만 올리더라도 어지간한 회복력을 자랑했기에 많은 길드와 가문에서는 루키들로 하여금 식민 특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스킬로 무조건 뿌리 나무의 회복 스킬을 결정하도록 강권을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식민 특권으로 스킬을 선택하는 시간이 되면 루키들은 뿌리 나무의 회복 스킬보다는 다른 스킬들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길드와 가문에서 아무리 많은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헬-라시온 생활이 짧은 루키들로서는 당장 큰 효과도 볼 수 없는 회복 스킬보다는, 자신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거나, 지켜줄 수 있는 다른 스킬들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막말로 중앙탑으로 가면 어떠한 상처라도 모두 회복을 시킬 수 있었으니, 구태여 회복 스킬을 익혀서 타인을 위해 희생할 필요가 없다 여기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길드와 가문에서 아무리 회복 스킬을 보유한 루키들을 양성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고, 그만큼 회복 스킬을 보유한 인간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금 뭐라고 했던 거야?”
“리커버리?”
“그건 또 뭐야?”
“뿌리 나무의 회복 말고 다른 회복 스킬이 있다는 거야?”
“마, 맙소사!”
“말도 안 돼!”
무혁의 오른손에서 시작된 새하얀 빛이 피투성이가 되어 다 죽어가던 필립을 빠른 속도로 회복시켜나갔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이들의 얼굴엔 충격과 경악만이 가득했다.
고작 10여초가 지났을까?
핏기 하나 찾아볼 수 없었던 필립의 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다 죽어가던 그의 눈동자도 또렷하게 초점을 잡아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찢어지고, 뜯겨졌던 살점들이 빠르게 재생되었으니 그 모습 또한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필립 형님!”
무혁의 곁에서, 필립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르케임이 환하게 웃었다.
실비아 역시 아름다운 얼굴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환한 미소로 필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이 들어요?”
무혁은 새하얀 빛이 사라지자 필립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필립은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은 다 죽어가고 있었다.
온 몸의 힘이 다 빠져나갔고, 눈꺼풀은 자꾸만 감겼으며, 정신은 흐릿해졌다.
직감했다.
이렇게 죽는다고.
그렇게 죽어가던 찰나에 자신을 끌어안은 무혁과 르케임, 실비아의 마지막 모습을 가까스로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몸 상태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컨디션도 좋았고, 온 몸에서 느껴지던 극심한 고통들도 깨끗하게 사라져버렸기에 자신이 꿈이라도 꿨던 건가 싶을 정도의 혼란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을 경악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적들의 모습에 필립은 결코 꿈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크 형이랑 엘리엇 누나는?”
필립이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좌우로 고개를 돌리다가 자신의 뒤쪽에 얌전히 누워있는 마크와 엘리엇을 발견했다.
“상태가 좋지 않아요. 당장이라도 중앙탑에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무혁의 말에 필립은 이를 꽉-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치유했던 그 회복 능력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앞으로 100일 동안은 사용할 수 없어요.”
무혁으로부터 들려온 대답에 필립은 차차 설명을 듣기로 하고 현재의 상황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너희는 당장 마크 형이랑 엘리엇 누나를 데리고 중앙탑으로 돌아가.”
필립은 멀쩡해진 몸을 과신해서가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 마크와 엘리엇을 살리기 위해선 자신이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두 명의 하이 랭커 역시 상당히 힘이 빠져 있는 상태라는 점이었다.
‘케일테자만은… 내가 목숨을 걸고 막는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어.’
이제 막 겨우 기사회생을 한 필립이 다시 희생할 각오를 다졌지만, 그걸 두고 볼 무혁이 아니었다.
“여긴 제가 정리하죠.”
“무혁아, 네가 강한 건 인정하지만 여기는 너보다 내가…….”
“그럼 같이 하죠.”
무혁은 필립을 설득하기 위해 괜한 입씨름을 하느니, 차라리 그와 함께 싸우는 것이 훨씬 더 마크와 엘리엇을 위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건 실비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있어!”
실비아까지 나서자 르케임도 곧장 창을 들어 올렸지만, 아쉽게도 그는 싸움에 참가할 수가 없었다.
“이 빡대가리 새끼야, 너까지 싸우면 마크 오빠랑 엘리엇 언니는 누가 지켜?”
“그래, 네가 저 둘을 보호해줘.”
실비아의 타박에 이어 필립까지도 그렇게 말을 하니 르케임이 입맛을 다시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마크와 엘리엇의 곁에 섰다.
“확실하게 가죠. 통통아.”
무혁의 음성에 공간을 찢고 통통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게 뭐야?”
“처, 천사?”
“천사라고 하기엔 피부색이 너무 탁하잖아! 저것 봐! 이마에 뿔도 있어! 마족이다!”
“세상에… 마족을 데리고 다닌다고?”
“도대체 저놈의 정체가 뭐야!”
드디어 헬-라시온에 완벽하게 공개가 되는 통통이였다.
모두가 혼란해하거나 말거나, 무혁은 통통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세 사람에게 접근하는 놈들이 있다면 사정 봐주지 말고 모조리 죽여 버려. 알겠지?”
“아부우우우-!”
자신만 믿고 있으라는 듯 통통이가 마크, 엘리엇, 르케임의 머리 위로 날아가서는 나름 사납게 눈을 뜨고 주변을 노려봤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깜찍하게 보여서 무혁은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웃음을 꾹- 참아야만 했다.
통통이라면 어지간한 놈들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무혁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이 상대해야 할 놈들을 바라봤다.
풍기는 기세로 봤을 때, 요주의 인물은 딱 여섯 명이었다.
그 중에서도 세 명이 가장 강했고, 특히 한 명은 무혁의 신경을 은근히 긁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깔끔한 신사처럼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달랐다.
사나우면서도 탁했다.
마침 무혁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필립을 살린 스킬이 무엇이지? 그리고 뒤의 둘에게 먹인 포션은 누구에게서 받은 거냐?”
“네가 누구인지부터 말해.”
무혁의 대꾸에 그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자가 바로 케일테자만이다.”
대답은 필립에게서 나왔고, 그 대답을 듣고 난 무혁이 그제야 케일테자만의 여유로워 보이는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케일테자만에게 말을 건넸다.
“참 궁금했는데 이렇게 보게 됐군. 먼저 고맙다고 하지. 너희 연금술회 덕분에 꽤나 짭짤했었거든.”
히죽거리는 무혁의 기분 나쁜 웃음보다도 그의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케일테자만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어진 무혁의 말에 케일테자만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얼음 바위 산. 그리고 마수의 대지.”
다른 자세한 설명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특정 지명만 말하는 무혁의 모습만으로도 케일테자만은 그동안 자신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던 일들에 대한 해답을 모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똑똑하다고 하더니 역시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네.”
무혁이 이죽거리자 케일테자만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살기를 발산해냈다.
“모두 네놈의 짓이었다고?”
“왜? 믿겨지지 않아? 내 동선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아냐? 그만하면 더 이상 증거가 필요하지도 않잖아? 아! 지옥불이라는 이름은 어지간하면 쓰지 마.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딴 허접한 불이 무슨 지옥불이야?”
무혁이 대놓고 지옥불까지 언급을 하자 케일테자만은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무혁에 대한 살의가 필립에게까지 이어졌다.
“나를 기만하려고 했단 말이지? 이것으로 필립 네놈과 킬 라시온은 영원히 헬-라시온에서 살아갈 수 없도록 해주마!”
케일테자만의 말에 필립은 허탈하다는 듯 웃기만 했다.
흑룡 길드와의 전쟁이 벌어지기 전, 연금술회에서 킬 라시온을 감시하기에 그 이유를 따져 물으며 자신들 특히, 무혁에 대한 일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던 필립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모두 헛수고였던 것이다.
일부러 케일테자만을 속일 생각이 없었기에 억울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그를 기만한 것이 되었기에 필립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 일이 아니더라도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사이였지만 말이다.
“웃기는 새끼네. 지금 빌어야 될 사람은 너야. 뭐? 헬-라시온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게 하겠다고? 병신 육갑 떨고 있네.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이제 보니까 주제 파악도 못하고 상황 파악도 못하는 등신이었네.”
무혁의 거침없는 발언에 케일테자만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주변에서는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상대도 상대 나름이다.
헬-라시온에서 케일테자만과 척을 지고 살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냉정하게 말해서 없다.
아무리 현 상황 상 킬 라시온과 연금술회가 공존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저렇게까지 도발을 한다는 건 아무리 봐도 죽기 직전에 하고 싶은 말이라도 다 해보고 죽자는 식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보통은 어떻게든 케일테자만의 마음을 돌리려고 없는 소리라도 하며 아부를 하는 것이 정상이었으니까.
어쨌거나 당장의 위기는 벗어나야 훗날 복수를 하든 말든 할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무혁에게서는 그러한 모습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 마치, 오늘 이 자리에서 끝을 보고 말겠다는 듯 보였다.
한 편으로는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저렇게 시원하게 속마음을 모조리 끄집어내는 무혁의 행동이 부럽고 멋있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없잖아 있었다.
“그래, 좋아. 내가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포션? 그거 우리가 만들었다.”
“미친 놈!”
케일테자만은 단박에 무혁의 말을 부정했다.
포션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애들 장난과 같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무혁의 한 마디 말에 케일테자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하즈머.”
“…네놈이라고? 하즈머의 노예가?”
“그렇다면?”
“죽여야지!”
케일테자만의 분노에 찬 고성에 무혁이 빙글빙글-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 거렸다.
“간단해서 좋네. 와. 상대해 줄 테니까.”
무혁의 도발에 케일테자만은 누가 말릴 겨를도 없이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필립 형, 저 새끼는 내가 잡아요. 그러니까 끼어들지 마요.”
필립은 언제라도 무혁과 함께 싸울 생각을 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무혁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케일테자만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주변 정리 해줄게.”
필립은 무혁이 마음 놓고 케일테자만과 싸울 수 있도록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자신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하이 랭커 둘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렇지 않아도 힘 빠진 널 쓰러트려놓고 찝찝했었는데, 이렇게 쌩쌩해진 걸 보니 좋네. 다시 한 번 널 쓰러트리고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겠어.”
윗입술에 코끝이 닿을 것처럼 심한 매부리코의 백인 남자, 로베린이 필립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공식 랭킹 71위로 67위인 필립과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하이 랭커였다.
이번에 필립을 잡기 위해 고용된 다섯 명의 하이 랭커들의 실질적인 리더이기도 한 로베린은 찌르기에 특화되어 있는 에페를 들어 올리며 곁에 서 있는 남자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얀스, 너는 저쪽 계집을 죽이고 뒤의 놈들 모조리 죽여 버려.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 같으니까.”
로베린과 함께 필립을 쓰러트렸던 또 한 명의 하이 랭커, 거구의 얀스가 걱정 말라며 낄낄- 웃었다.
“병신아, 뭘 그렇게 쳐 웃고 있냐?”
실비아가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얀스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검을 휘둘렀다.
명색이 하이 랭커인 자신에게 겁도 없이 공격을 해오는 실비아의 모습에 얀스는 기가 막히다는 듯 마주 검을 내질렀다.
무혁과 케일테자만.
필립과 로베린.
실비아와 얀스.
그 여섯 명이 싸움을 시작했거나, 이제 막 시작을 하려고 하자 그렇지 않아도 필립이 쓰러지는 모습만 멀뚱히 지켜봐야 했던 염태수가 더 이상은 좀이 쑤셔서 안 되겠다는 듯 검을 들었다.
“케일테자만도 포션을 만든 놈이 누구인지 알았으니 더 이상 저놈들을 살려둘 필요가 없겠지. 이번 일의 일등공신이 케일테자만이라 하더라도 전쟁을 끝내야 하는 건 나와 우리 흑룡이어야만 해! 저놈들은 우리가 잡는다!”
염태수가 자신의 곁을 지키고 서 있던 정예 길드원들과 함께, 르케임과 그가 지키고 있는 마크, 엘리엇을 향해 움직였다.
생각은 거기서 거기라는 말처럼, 공교롭게도 천지회의 추치엔과, 무사시 가문의 무사시 쿤 또한 몇 명의 정예들과 함께, 르케임이 서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여간, 저 얍삽한 놈들! 우리가 먼저 놈들을 죽인다!”
염태수의 말에 흑룡 길드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졌고, 동시에 천인회와 무사시 가문의 정예들 또한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X발, 그래 다 덤벼!”
르케임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세 무리의 적들을 보며 창을 비틀어 쥐었다.
동시에 허공에 둥둥- 떠 있던 통통이는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인간들을 향해 달려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앙증맞은 양손을 좌우로 쫙- 펼쳤다.
그렇게 이번 전쟁을 끝낼 최후의 싸움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