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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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23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23화
하이 랭커 (12)
“이번에 새로 온 인간들은 어때?”
깔끔하게 턱시도를 차려 입은 미소년의 모습을 한 마족, 크레우스타가 입가에 묻은 스테이크의 핏물을 새하얀 천으로 닦아내며 대답했다.
“적어도 내가 관리하고 있는 마우티 부락의 14차 지구인들은 예전이랑 별 차이가 없어. 고만고만한 놈들뿐이야.”
그래서 재미없다는 듯, 크레우스타가 입맛을 다셨다.
다른 부락을 관리하는 마족들 또한 크레우스타와 비슷한 대답들을 늘어놓았다.
“하긴… 인간들의 재능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까.”
한 마족의 말에 크레우스타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한 인간을 떠올리고는 히죽- 웃었다.
“그래도 13차 지구인 중에는 굉장히 재밌는 놈이 하나 있어.”
“재밌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
주변에서 궁금해 하자 크레우스타를 대신하듯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한 앙증맞은 외모의 마족, 케로우가 단번에 누구를 떠올리고는 낄낄- 거리며 대답했다.
“무혁이라고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헬-라시온 아니, 아마 인간들 중 최초로 마정의 의지를 깨어나게 한 인간이라고 하면 모두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걸?”
“아아! 마정의 의지를 깨어나게 했다는 인간!”
“작년에 들어 본 기억이 나는군.”
주변에서 대번에 케로우의 말을 알아들었다.
한때 마족들 사이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던 소문이었기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13차 지구인이라면… 역시 그 녀석이겠군.”
장신의 마족, 굉장히 탄탄한 체구를 가진 타이락스가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타이락스, 네가 기억할 정도면 꽤 실력이 뛰어난 모양인데?”
“뛰어났지. 첫 번째 포지션 트레이닝인데 겁 없이 7구역에 도전을 했고, 랭킹 1위를 한 인간이니까. 실력 하나 만큼은 인정할 만하지. 지금까지 내가 본 인간들 중에서는 확실히, 가장 호전적이고 모험심이 뛰어나면서도 그만한 실력을 가진 녀석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인간이라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호의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타이락스의 말에 주변 마족들이 그 정도였냐며 호기심을 드러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타이락스의 성격 자체가 종족을 떠나 제 마음에 든다 싶으면 호의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기에 어지간히도 무혁이라는 인간이 그의 마음에 쏙- 들었구나 싶을 뿐이었다.
“그랬단 말이야? 하긴, 무혁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하지. 놈은 보통 인간이 아니니까.”
“보통 인간이 아니라니?”
“그런 게 있어. 하하하!”
크레우스타는 다른 마족의 물음에 쉽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자신만 아는 비밀, 무혁이 본 드래곤인 카오네이트의 뼈를 이식했다는 건 크레우스타만이 알고 있는 유일한 비밀이다.
크레우스타의 성격상 그런 비밀을 다른 마족들에게 쉽게 발설할 정도로 그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리리타오, 무혁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크레우스타는 자신과 상당히 떨어져서 조용히 음식만 먹고 있는 리리타오에게 그렇게 물었다.
건방지기도 했지만, 워낙 관심이 많이 가는 인간이었기에 그가 어느 곳으로 이주를 했는지 크레우스타는 확실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물어 볼 것 없어. 나도 모르니까.”
퉁명스럽기만 한 리리타오의 대꾸에 크레우스타가 눈을 찌푸렸다.
“그러지 말고 대답 좀 해줘. 무혁이라면 분명 관심을 주지 않아도 그놈 스스로 관심을 끌고 있을 텐데, 꼼꼼한 리리타오 네가 모를 리가 없잖아? 혼자만 재미 보지 말고 같이 좀 보자고.”
“난 관심도 없고 모르는 일이야. 몇 달 전에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버렸으니까.”
“뭐? 벌써? 다른 마을로? 아니면 소도시?”
리리타오의 대답에 크레우스타가 놀랍다는 듯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더 이상 리리타오는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인지,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입을 다물어버렸다.
“쳇! 하여튼 정이 안 간다니까.”
크레우스타는 리리타오의 쌀쌀맞은 모습에 신경질을 냈다.
그 사이,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외모의 마족이 조용하게 케로우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고 있었다.
“마정의 의지를 깨어나게 했다는 인간 실력이 어느 정도였어?”
케로우는 평소 친분도 없었던 틸리아나의 물음에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대답 못할 일도 아니었기에 솔직하게 말을 해주었다.
“그때 내가 시간의 탑을 사냥터로 정했었는데, 거기서 유일하게 혼자 살아남았지. 그리고 기존의 랭킹 1위의 기록을 깨고 역대 1위의 기록까지 세웠고. 아마 어지간해서는 앞으로 그 기록을 깨기가 쉽지 않을 걸?”
“시간의 탑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그것도 깨기 힘들 정도로?”
틸리아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렇게 되물었고, 케로우는 사실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놈이 왜 아스펠 마을로 이주를 한 거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케로우가 웃긴 질문이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 인간 이름이 무혁이라고?”
대충 고개만 끄덕이는 케로우의 모습과 다르게 틸리아나는 뭔가를 기억해내려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 봐도 틸리아나는 무혁이라는 인간에 대한 작은 단서조차도 제대로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랭킹이나 어떠한 순위에 다른 보상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던 피 무지개 숲 사냥이었기에, 틸리아나로서는 특별하게 뛰어난 활약을 펼친 인간을 찾아낼 수 없었다.
또한 당시 바닥을 치던 인간들의 생존률을 지켜보던 그녀의 정신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기에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야 그 이유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정말 그 인간이 모든 걸 망쳤던 건가?’
의심이 들었고, 그것을 확신으로 만들고 싶었다.
생존률이 완전히 바닥을 칠 정도로 피 무지개 숲 사냥을 엉망진창의 결과를 만들어 냄으로써, 틸리아나는 정말 인간들 표현으로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했다.
덕분에 어떻게든 남아 있는 인간들의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강제 사냥터를 고르느라 고생도 심했고, 다른 마족들에게 부탁하느라 자존심도 많이 상했었다.
틸리아나로서는 다시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억들이었다.
‘무혁이라고? 빌어먹을! 그런 미꾸라지 같은 놈이 있었을 줄이야!’
시간의 탑에서 역대 랭킹 1위를 차지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자신이 설정한 피 무지개 숲 사냥을 완전히 엉망으로 뒤집어 놓기에 충분하다고 의심이 짙어지는 틸리아나였다.
거기에다가 타이락스의 말대로라면 뒤이어 있었던 포지션 트레이닝에서도 제 수준보다 몇 단계나 높은 구역에서 랭킹 1위를 했다니 틸리아나로서는 의심이 확신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인간! 그 놈 때문에 내가 그 고생을 했다는 거지?’
마음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분풀이를 하고 싶은 틸리아나였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개인의 사소한 감정으로 인간을 죽이는 건 마신 라시온의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에 그녀로서는 분통이 터지더라도 홀로 삭혀야만 했다.
더욱이 무혁은 마신 라시온이 관심을 갖는 인간이며, 강한 힘까지 소유한 인간이니 결코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지?’
그렇다고 이대로 덮어 둘 틸리아나가 아니었다.
틸리아나가 어떻게든 자신의 화를 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혹시, 인간이 마정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나?”
꽤 먼 거리에서 레드 와인만 조용히 음미하고 있던 멋스러운 신사, 커웨인이 모두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커웨인?”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한낱 인간 따위가 마정의 힘을 사용한다고?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인간의 신체는 무척이나 나약해. 그래서 마정의 힘을 몸으로 받아들일 경우 아마도 그 즉시 온 몸이 산산조각이 나듯 폭발하고 말거야.”
“신체도 신체지만, 인간들이 마기나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지. 사실상 그 때문에 온 몸이 박살이 나는 것이고. 간단한 것 아냐? 내부적으로 절대 통제 할 수 없는 힘이 폭주하는데 그걸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
모든 마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군.”
커웨인은 조소를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느 누구도 커웨인의 그런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기에 그가 던진 물음은 금방 마족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렸다.
매년 4차례 이뤄지는 마족들의 정기 모임 자리다.
헬-라시온에서 어떠한 특정 임무, 이를 테면 주거지 관리, 강제 사냥 관리 등의 업무를 갖고 있는 마족들만의 모임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 자리에 모인 마족들은 모두 마신 라시온 산하의 마왕 중 서열 12위인 호르케탄의 마족들이었다.
마신 라시온을 따르는 마왕들의 수는 모두 49명.
그 중 서열 12위인 호르케탄에게 충성하는 마족들은 5천 명에 육박한다.
보통 다른 마왕들도 서열 순위와 관계없이 비슷한 숫자의 마족들을 거느렸으며, 그들 중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마족들이 헬-라시온에서 특정 임무를 부여 받은 상태로 살아간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불만도 많았지만, 어느새 마족들 또한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 위에 군림하는 삶이 자연스러워졌고, 한 편으로는 재밌는 유흥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나저나 인간 놈들은 참 재밌단 말이야. 겁도 없이 마수의 대지를 탐사할 줄이야.”
어느 마족의 말에 다른 마족이 표정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인간 놈들의 호기심은 두고 보면 볼수록 건방져. 이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의 영역까지 발을 들일지도 모른다고.”
“그건 어렵지! 마수의 대지만 하더라도 인간 놈들에게는 감히 공략할 수 없는 죽음의 구역이야. 하찮은 마수들만 득실거리는 마수의 대지도 제대로 정복하지 못하는 주제에 우리의 영역에 발을 들인다고? 하!”
더 이상은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마족이 커다랗게 비웃고 말았다.
모든 마족들이 그 의견에 손톱만큼도 부정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단 한 명의 마족만큼은 조금 생각이 달라 보였다.
“인간이 가진 성장의 잠재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지. 우리가 무시해왔던 것들을 인간들은 종종 해왔으니까.”
커웨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 따위가 우리의 영역까지 접근을 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리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고!”
마족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하찮은 벌레나 다름없는 존재였기에 그런 인간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한다는 건 결코 용납할 수도,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모든 마족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에도 커웨인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레드 와인을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 개성이 뚜렷한 마족들의 모임이 끝나고, 하나, 둘 마족들이 자리를 떠났다.
커웨인 또한 더 이상은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커웨인.”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커웨인이 고개를 돌렸다.
크레우스타가 히죽-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아까 한 말… 혹시 무혁에 대한 이야기인가?”
“무혁?”
커웨인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투로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크레우스타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맞군. 커웨인 네가 관리하는 인간들의 거주지가… 커스틸이었던가? 오호라! 무혁이 벌써 중소도시까지 진출을 했다는 거야? 역시! 재밌는 인간이라니까! 하하하핫!”
이쯤되자 커웨인도 더 이상은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잠자코 서 있기만 했다.
그 모습에 크레우스타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낄낄- 거리며 웃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커웨인이 더 이상 자신의 시간을 뺏지 말라는 듯 그렇게 말하자 크레우스타가 가볍게 손을 들며 조금 천천히 가자는 듯 손짓을 했다.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이네? 또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
커웨인이 아무런 말도 없이 무표정하게 서 있자, 크레우스타가 참 딱딱하다고 투덜거리며 말했다.
“무혁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놈을 일반적인 인간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충고 아닌 충고를 좀 할까 해서.”
“고작 인간 따윌 내가 조심하라는 거냐?”
불쾌한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자 커웨인의 몸에서 투기가 흘러나왔다.
“진정해. 그러니까 내가 충고 아닌 충고라고 했잖아. 너와 싸우자는 게 아니야.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혁이라는 인간이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다는 거야.”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음… 그것까지는 말해줄 수 없고. 어쨌든 일반적인 잣대로 무혁을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크레우스타는 마지막까지 무혁이 본 드래곤의 뼈를 이식받아 더 이상 인간이 아님을 말해주지 않았다.
짓궂은 장난이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의 소장품이 되어야 했을 무혁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허탈함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럼 다음 모임에서 보자고.”
크레우스타는 다음 모임에서 더 재밌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는 듯 손까지 흔들며 몸을 돌렸다.
“재수 없는 놈.”
커웨인은 크레우스타의 행동에 불쾌한 감정이 가득했다.
마음만 같아서는 무력이라도 써서 크레우스타가 숨기고 있는 걸 토해내게끔 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괜히 문제를 키워서 혹시라도 자신의 일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커웨인은 꾹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이 모든 게 결국 무혁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하찮기만 한 벌레 같은 인간 주제에 자신을 상대로 동등하게 마주 섰었던 무혁의 모습은 커웨인이 지금까지 느껴본 치욕 중 가장 큰 치욕이었다.
“처절하게 되돌려주마!”
무혁에 대한 커웨인의 분노가 더욱더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