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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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45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45화
변화의 시작 (10)
“…당황스럽게 왜 이래?”
무혁은 자신의 곁에 찰싹- 달라붙어서 애교를 떠는 것만 같은 히포의 모습에 낯설다는 듯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그 동안 소홀했던 점들이 내심 미안해졌다.
그래서인지 히포의 머리를 쓰다듬는 무혁의 손길엔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다정함이 느껴졌다.
“저놈에게도 주인이 있었군. 나는 또 주인 없는 버려진 놈인 줄 알았지.”
오랜 만에 만난 무혁에게 애교를 떠는 히포의 모습을 보며 오들이 그렇게 쏴붙였다.
무려 8개월 만에 히포를 만나러 왔으니 무혁으로서도 딱히 할 말이 없어 오들의 비아냥을 그저 머쓱하게 감내해야만 했다.
자신의 말에 대꾸 한 마디 하지 못하고 히포의 머리통만 쓰다듬는 무혁의 모습에 오들은 더욱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지난 8개월 동안 주인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히포가 얼마나 불쌍한 펫인지를 침까지 튀겨가며 말을 하는 오들의 모습에 무혁이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영감님 그만 하시죠. 저도 오죽 바빴으면 이제야 왔겠어요?”
자신의 입장도 이해해 달라는 듯 무혁이 그렇게 변명을 했다.
“아무리 바빴어도 얼굴 한 번 들이미는 게 뭐가 힘들다고.”
오들 역시 무혁에 대한 소문은 귀가 닳도록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길드원인 아르케니아는 수시로 조련소를 들러서 자신의 펫인 토빗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며, 무혁의 무심함을 비난하길 멈추지 않았다.
‘하긴, 내가 좀 신경을 안 쓰긴 했지.’
엄연히 주인이 있는데 답답한 조련소에서만 갇혀 있어야 했을 히포를 생각하니 무혁은 더욱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참고 있어. 조만간 네가 마음껏 뛰어 다닐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니까.”
무혁의 말에 히포가 정말이냐는 듯 고개를 번쩍- 쳐들고는 그를 바라봤다.
어느덧 벌써 2월이다.
앞으로 4개월만 더 지나면 두 번째 마수의 대지 탐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는 마수의 대지 끝까지 한 번 가보자!’
이번에 마수의 대지에 들어가면 무혁은 상당히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마수의 대지에서 마족들에 대한 어떠한 작은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은 이미 킬 라시온의 다른 멤버들에게도 말을 해둔 상태였다.
특히 마수의 대지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큰 송정민이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로드 역시도 상당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들 둘 외에도 다른 멤버들 또한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다시 한 번 마수의 대지에 도전을 한다는 사실에 큰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마음에 드는 든든한 동료들도 생겼겠다, 무혁은 앞으로 돌아올 마수의 대지 탐사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손은 왜 그런 거냐? 무슨 병이라도 걸린 거냐?”
수포가 잔뜩 올라와서 징그럽게까지 보이는 무혁의 손을 뒤늦게 발견한 오들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경계심을 보였다.
“전염병은 아니니까 그렇게 겁먹을 건 없어요.”
“그따위 말에 내가 안심할 것 같아?”
여전히 의심 가득한 오들의 표정에 무혁은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듯 신경을 꺼버렸다.
지금껏 받아본 적 없었던 무혁의 다정스러운 눈길에 히포 또한 기분 좋게 ‘꾸득’거리며 오랜만에 행복해하자 오들이 입맛을 다셨다.
“나름 신경을 썼지만 역시 제 주인만 못한 모양이군.”
지금까지 많은 펫들의 주인을 만나봤지만, 무혁처럼 무심한 주인은 본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히포는 일반적인 몬스터도 아닌 마수였기에 오들은 물론, 조련소의 관계자들 모두 상당히 신경을 써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제 곁을 허용하지 않았던 히포가 무혁의 앞에서는 애교 떠는 강아지마냥 변해버렸으니 역시 펫과 주인의 관계만큼 돈독한 건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 오들이었다.
“오랜만에 오셨군요.”
한창 히포와 회포를 풀고 있던 무혁은 말을 걸어오는 에랄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초콜릿 색 피부의 에랄은 여전히 엘프다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엘프들은 잘 늙지도 않는다고 했었지?’
정말 미의 축복을 듬뿍 받은 종족이 아닐 수 없다.
엘프의 평균적인 수명은 300년이라고 했다. 그 중 80퍼센트인 240년 가까이 전성기 시절이나 다름없는 꽃미모를 꾸준히 유지한다.
성장기의 20년과 노년기의 40년만이 외모가 변할 뿐이었으니 정말 다른 종족들과 비교를 거부하는 불공평한 아름다움을 지닌 종족이 바로 엘프였다.
‘변하지 않는 외모라… 결혼 상대로 딱인가? 아니지, 나만 추레하게 늙을 수도 있으니 오히려 독인가?’
무혁이 에랄의 외모에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 역시 히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그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정화 현상입니까?”
에랄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정화 현상?”
무혁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에랄을 바라봤다.
“온 몸에 그런 수포 현상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온 몸까지는 아니고 일부분에만… 이런 현상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무혁은 뜻하지 않았던 곳에서 어쩌면 수포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옆에서 치근대던 히포를 살짝- 밀어냈다.
꾸득! 꾸득!
자신을 밀어내는 무혁의 행동에 히포가 낮게 소리를 내며 더욱더 달라붙었다.
“그만 하고 옆으로 가 있어.”
다시 한 번 무혁이 밀어냈지만, 히포는 눈치 없이 자신을 봐달라는 듯 거칠게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퍼억!
“이 새끼가 꼭 매를 벌어요! 옆으로 가 있으라고!”
기어이 무혁에게 머리통을 한 대 쥐어 박히고 나서야 히포가 풀이 죽어서 한쪽 구석으로 갔다.
그 모습을 보며 오들은 역시 그럼 그렇지- 라며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히포를 떨어트리고 나서야 무혁이 에랄에게 다시 물었다.
“정화 현상이라는 게 뭐죠?”
“그 전에 정화 현상이 맞는지 그것부터 알았으면 합니다.”
즉, 왜 그런 수포가 몸에 생겼는지 원인을 말하라는 에랄의 모습에 무혁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물 수정이라면 그 수포는 정화 현상이 확실합니다.”
“도대체 그 정화 현상이라는 게 뭡니까?”
“정화 현상은 한 마디로 혁 님의 몸을 정화하면서 생겨난 변화입니다.”
“…….”
에랄의 설명에 무혁은 지금 장난하느냐는 듯 그녀를 노려봤다.
무혁의 노골적인 시선에 에랄이 보다 쉽고 자세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정화 현상.
그것은 물 수정의 근본적인 힘, 정화의 물이 가진 힘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정화의 물은 그 무엇이든 오염물을 정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중앙 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정화 가루’는 정화의 물이 가진 능력의 아주 작은 일부분을 추출해서 만들어 낸 물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정화 현상이 오랜 시간 지속될수록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런 정화 현상을 하루라도 빨리 고치지 못하면 오히려 내 몸에 문제가 생긴다고요?”
“그렇습니다. 정화의 물이 가진 정화 능력은 너무 치명적이라 아주 기형적인 결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저희 세계에서도 정화의 물이 가지고 있는 정화 능력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어머니의 나무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나무가 뭐죠?”
“저희 엘프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삶의 터전을 유지시켜 주는 나무입니다. 이곳 헬-라시온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무죠. 어머니의 나무는 정화의 능력을 이용해서 숲 전체를 정화시킵니다.”
헬-라시온에는 없는 나무라고 하니 무혁은 깨끗하게 구하기를 포기하고 지금의 현상이 지속될 경우의 부작용을 물었다.
“아까 기형적인 결과라고 했었는데, 난 어떻게 되는 거죠?”
무혁의 물음에 에랄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을 했다.
“저도 그것까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또 다시 머뭇거리는 에랄의 모습에 무혁은 뭘 그렇게 뜸을 들이냐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말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좀 시원하게 해요.”
“말했다시피 정화 현상이 지속되면 기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데, 그건 대상마다 각각 다릅니다. 어떤 종족의 경우에는 온 몸의 모든 털이 빠졌으며, 반대로 다른 종족은 온 몸이 털로 뒤덮이기도 했으며…….”
에랄의 설명에 무혁은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온 몸의 털이 빠지거나, 털로 온 몸이 뒤덮인다고 상상하니 끔찍하기만 했다.
“모든 피부가 썩거나, 부패하는 상태로 변할 수도 있고.”
‘그럼 문어 대가리도 정화 현상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물 수정을 수호하고 있었던 물의 왕, 썩어 곪아 터진 문어 대가리를 떠올리며 무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피부색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피부색이 변한다고요?”
무혁은 저도 모르게 에랄의 피부를 빤히 바라봤다.
“맞습니다. 저 역시 정화 현상을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변해버린 겁니다.”
씁쓸한 미소와 함께 에랄이 자신의 피부에 대한 고백을 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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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
무혁은 자신의 손등에 올라와 있는 징그러운 수포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저 수포일 뿐이라고만 여겼다.
별것 아니라고 대수롭게 않게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결국은 물 수정도 조각 난 신의 힘이라 이거지?”
애초부터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명색이 신의 힘 중 하나인데, 별 것 아닐 수가 있겠는가?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뭐죠?’
‘그걸 알았다면 제가 이렇게 됐겠습니까? 다만, 이곳 헬-라시온은 저희 세계가 아니라서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뭐죠?’
‘그건 혁 님께서 더 잘 아실 겁니다.’
“정화의 물을 흡수하면 될까? 하지만, 그걸로 정화 현상을 막을 수 있을까?”
무혁으로서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정화의 물을 흡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화 현상을 막지 못한다면?
그래서 온 몸의 털이 빠지거나, 털로 뒤덮이거나, 피부가 썩고, 부패한다면?
“그나마 피부색이 변하는 게 최악을 면하는 길인가?”
엘프의 경우 타고난 아름다움 덕분인지 피부 변색이라는 최소한의 변화만을 겪었다.
무혁으로서도 그 정도만 되어도 성공한 변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과연 자신에게 그러한 행운이 뒤따를까?
“그럴 리가 없지!”
설령 피부색이 변한다 하더라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색으로 변한다면?
빨갛고, 누렇고, 파랗고, 초록색이나, 보라색과 같은 그런 색을 떠올리자 무혁은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정화 현상이 최소 1년은 유지된다는 건데.”
어쨌든 그 기간 내에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확률 상 가장 높은 건 역시… 다른 조각 난 신의 힘으로 정화 현상을 막아보는 건가?”
그나마 이쪽이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모래 태양과 얼음 구슬이 그랬던 것처럼, 물 수정의 힘을 억제할 수 있는 건 역시.
“뿌리 대지다.”
공교롭게도 에랄 역시 그녀의 세계에서는 어머니의 나무가 정화의 물이 가진 힘을 유일하게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조각 난 신의 힘 중 일부인 ‘뿌리 대지’는 무언가 어머니의 나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엿보이기도 했으니, 무혁으로서는 ‘바람 깃털’이나 ‘자갈 벼락’보다는 확률상 물 수정에 더 어울릴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뿌리 대지를 가지러 가고 싶지만.”
아쉽게도 조금 전에 머릿속으로 알림이 전해졌다.
내일 모레, 2월 10일 커스틸 도시의 강제 사냥이 시작한다는 커웨인의 음성을 들어야만 했다.
“까짓것 중소도시의 강제 사냥 따위 초고속으로 끝내버리고 곧바로 뿌리 대지를 확보하면 그만이지 뭐.”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무혁은 중소도시의 강제 사냥 따위 별 것 아니라고 여겼다.
그 시각, 커웨인은 강제 사냥 담당자인 쿠네르카와 만나고 있었다.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겠지?”
커웨인의 물음에 쿠네르카가 차갑게 대꾸했다.
“커웨인, 착각하는 모양인데 강제 사냥의 결과는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그러니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언제나 늘 완벽하게 준비한다.”
자신의 일에 참견할 생각하지 말라는 쿠네르카의 말에 커웨인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쿠네르카, 너야 말로 지금 착각하는 모양인데. 이번 강제 사냥은 내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내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완벽한 준비 따윈 없었다는 걸 잊지 마.”
“뭐? 네 도움? 이건 커웨인, 네가 원해서 내가 도움을 준 것 뿐이야.”
“그래 내가 원했지. 하지만, 이번 강제 사냥이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잖아?”
“그게 무슨 뜻이지? 이번 강제 사냥은 네가 한낱 인간 따위를 어쩌지 못해서 내게 부탁을 한…….”
“내가 베울과의 일을 모를 거라고 생각해?”
커웨인의 말에 쿠네르카가 눈가를 꿈틀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커웨인이 씩- 웃었다.
“이번 강제 사냥은 나와 너. 우리 둘을 위한 강제 사냥이다. 그러니 상대의 부탁을 들어줬다느니, 도움을 줬다느니 하는 소리는 집어 치워.”
어느 한쪽도 상대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며 선을 그어버리는 커웨인의 모습에 쿠네르카는 한참만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럼 이틀 후에 벌어질 강제 사냥 기대해도 되겠지?”
커웨인의 물음에 쿠네르카가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 아주 재밌는 강제 사냥이 될 거다.”
“아니, 난 재밌는 것 따윈 원한 적 없어. 확실한 결과를 원할 뿐이지.”
“그 결과가 그 인간의 죽음인가? 그렇다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난 놈의 죽음 따위 원한 적 없어.”
“그럼 도대체 커웨인, 네가 원하는 것이 뭐야?”
“두려움. 그리고 공포. 우리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두려움과 공포를 놈이 머릿속 가득 담아오길 원할 뿐이다.”
뱀을 만난 쥐처럼, 그렇게 자신의 앞에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숨소리마저 죽일 무혁의 모습을 보고 싶은 커웨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