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2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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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284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284화
마르케디악 (2)
그 높이가 최소 수십 미터는 될 법한 성벽 위에 올라선 무혁은 한 눈으로 다 들여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도시의 풍경에 혀를 내둘렀다.
“여기에 비하면 헬-라시온의 다른 도시들은 애들 장난이네.”
거주 인원부터 차이가 컸기에 도시의 규모 또한 당연히 클 수밖에 없겠지만, 잘 정비되어 있는 도로와 네모반듯하게 구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으리으리하게 세워진 건물들과 주택들은 기가 질릴 정도였다.
또한, 건축 양식은 거의 비슷했지만, 저마다 충분한 공간을 두고 지어져 있는 단독 주택들의 모습은 헬-라시온 내에서도 나름 포인트에 여유가 있는 인간들만이 머물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마족들이라 그런 건가? 인간미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네.”
집단 주거지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 간격마다 끝도 없이 지어져 있는 주택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무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디서부터 돌아봐야 하려나?”
염탐을 하려고 왔으나, 마르케디악의 규모에 무혁은 어디서부터 움직여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무혁은 성벽 위에서 도시 안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아무렇게나 훑다보면 되겠지! 은신!”
성벽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무혁은 은신 스킬을 사용했고, 곧바로 그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이미 은신 스킬로 마족에게서 자신의 기운마저도 감쪽같이 숨길 수 있다는 걸 확인했던 무혁이다.
그렇기에 다른 킬 라시온 멤버들과는 다르게 안전하게 염탐을 할 수 있다고 장담을 했던 것이었다.
“이상하네?”
한 마족이 성벽 위를 가만히 바라보며 눈가를 찌푸렸다.
“왜?”
함께 길을 걷던 마족이 왜 그러냐는 듯 그를 바라봤다.
“못 느꼈어? 방금 분명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었거든.”
“이질적인 기운?”
“마치… 인간의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뭐? 인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는 듯 마족이 비웃음을 지었다.
이곳은 마르케디악이다.
마수조차도 함부로 접근을 할 수 없는 마족들의 도시인 이곳에서 인간의 기운을 느꼈다?
그건 대단한 착각이거나, 머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스스로 자인하는 꼴 밖에 되지 않았다.
“내가 착각을 한 모양이군.”
더 이상은 느껴지지도 않고, 스스로 생각을 해도 말이 되질 않는 소리였기에 성벽 위를 바라보던 마족이 이내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착각이라니 다행이군.”
동료 마족 또한 서둘러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그의 모습에 더 이상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이윽고 두 마족은 어디론가 서둘러서 움직였고,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은신하고 있던 무혁이 작게 중얼거렸다.
“경계를 서질 않아서 괜찮겠거니 생각을 했었는데… 조심해야겠네.”
외부의 공격을 걱정이라도 하듯이 성벽은 높게 지어놓고 정작 경계를 서는 마족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은신을 하지 않았던 무혁은 자신이 존재가 발각되었을 뻔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작은 틈만 보이면 곧바로 자신의 존재가 마족들에게 들킬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머릿속에 담아뒀다.
“저기부터 가 볼까?”
무혁은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화려한 불빛이 번쩍이는 건물을 향해 걸었다.
누가 봐도 술집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곳이었기에 무혁은 염탐하기 위한 첫 번째 장소로는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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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들의 술집이라고 해서 특별한 점은 없었다.
지독한 술 냄새, 고막을 틀어막게 만드는 고성과 소음은 인간들의 술집 분위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마족들은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고, 그러다 시비가 붙으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주먹부터 날렸으며, 그 모습을 주변에서는 흥미롭게 지켜보거나, 환호성을 내지르며 응원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모습만 보면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지만, 한 가지 다른 부분은 있었다.
‘건물이 통째로 폭발이라도 할 것 같은 마기라니…….’
무혁이 술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온 몸으로 훅- 밀고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마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항상 마기를 풀풀- 풍겨대는 마족들인데, 술까지 마셔대니 더욱더 자신의 기세를 자랑하고자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한 마기를 외부로 과다할 정도로 방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수십 명이 동시 다발적으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마기를 방출하고 있으니 그 속에 뛰어든 무혁으로서는 저도 모르게 대항하고자 기운을 끌어올리려는 본능적인 반응을 억제하느라 진땀깨나 흘려야 했다.
그렇게 마기에 대응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흘려내기 위해 꼼짝도 않고 있던 무혁이 한참만에야 익숙해졌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마왕들의 서열전은 없다면서?”
“할 필요성이 없으니까.”
무혁은 마왕들의 서열전이라는 대화 내용에 흥미를 갖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커먼 액체가 절반 정도 담겨 있던 술을 한입에 털어 넣은 험상궂게 생긴 마족 하나가 탕- 소리가 날 정도로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명색이 마왕이라는 것들이 제 자리를 보전하는 것에만 급급하고 있으니!”
“레베르탄! 목소리가 너무 커!”
함께 술을 마시던 마족 하나가 황급히 주변을 돌아봤다.
혹시라도 레베르탄이 했던 말을 다른 누가 들었을까 상당히 신경을 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흥!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솔직하게 말해서 난 여기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천계와 전쟁이 그쳤다고, 이렇게 하릴없이 인간 따위를 가지고 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 하찮은 인간들 따위에게 시간을 쏟느니 차라리 마계 내에서 다른 마신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하긴! 마왕이라는 것들부터가 어울리지 않게 평화를 누리며 제 자리를 보전하는 것에만… 읍읍……!”
목청껏 소리를 내지르던 레베르탄의 입을 곁에 있던 마족이 다급하게 틀어막았다.
거구의 레베르탄은 강제로 입이 막히자 발버둥을 쳤지만, 다른 마족들 또한 그가 더 이상 실수를 했다가는 정말 큰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생각했기에 필사적으로 그를 붙잡았다.
“그 입 좀 닥쳐! 너 때문에 우리까지 죽게 만들 작정이야?”
“그래! 적당히 해!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네놈이 직접 마왕 서열전에 나가면 될 것 아냐! 그럴 용기도 없는 놈이 술만 처먹으면 지랄이야! 지랄이!”
주변 마족들의 살기 가득한 음성에 잔뜩 성이 난 레베르탄이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을 붙잡고 있던 마족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이 겁쟁이 새끼들! 좋아! 내가 보여주지! 내가 직접 마왕이 돼서 라시온 님께 건의를 하겠어! 그 때 가서 네놈들은 내 발바닥을 핥아야 할 거다!”
큰 소리를 치고 술집을 나가는 레베르탄의 모습에 함께 술을 마시던 마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혀를 찼다.
“레베르탄 저 미친놈이 또 저 지랄이군! 뭐? 마왕? 라시온 님께 건의를 해? 한심한 놈!”
“제대로 미친 거지!”
“신경 쓰지 마. 보나마나 내일 제정신을 차리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거야. 저런 놈은 잊고 우리는 술이나 마시자고.”
마족들은 낄낄-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이어서 마족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역시나 주제는 마왕 서열전이었다.
매년 딱 한 차례씩 마왕들은 자기보다 높은 서열의 마왕에게 도전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왕 서열전이다.
더불어 일반 마족들 또한 마왕 서열전 기간에는 가장 하위 서열의 마왕에게 도전장을 내밀어서 공식적으로 마왕에 등극할 수가 있었다.
‘마왕들 간에도 서열이 존재하고, 매년 한 단계씩 서열을 올릴 수가 있다니.’
무혁은 마신 라시온 휘하의 마왕은 총 49명이라는 것과 서열 1위의 마왕이 케케마탄이라는 사실과 가장 낮은 서열 49위의 마왕이 자바하라는 정보도 추가로 얻어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누가 자바하 님께 도전을 하려나?”
마왕 서열전 기간에 대다수의 마왕들은 싸움을 하지 않더라도 서열 49위의 자바하는 매년 도전자를 상대해야만 했다.
그만큼 자바하를 꺾고 스스로의 실력을 증명하여 마왕이 되고자 하는 마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도전권 쟁탈전은 꽤나 재밌을 거야.”
“당연하지! 수르피, 쿠다스, 자고라카, 앙할카스 등등 쟁쟁한 마족들이 얼마나 많아? 그런데 그런 놈들을 레베르탄이 이기고 마왕 도전권을 획득한다고? 웃기는 소리지!”
마왕 서열전은 어느덧 십 년이 넘도록 제대로 치러진 적이 없었기에 실질적으로 이 기간 내에 수많은 마족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건 서열 49위의 마왕에게 도전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반드시 최후의 승자가 되어야만 하는 ‘도전권 쟁탈전’이었다.
순수 마족들만이 참가해서 그 실력을 겨루기 때문에 사실상 까마득한 위치에 서 있는 마왕들과는 다르게 같은 마족들이 치고받는 싸움이라 일반 마족들의 관심사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정말 볼 만 할 거야! 어쩌면… 이번에는 자바하가 꺾여질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말에 다른 마족들 또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서로 죽고 죽이기 위해서 살아야 하니 강한 힘을 타고 나는 건가?’
무혁은 마족의 삶도 굉장히 치열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엿들었지만, 이후로는 쓸 때 없는 잡담들뿐이었다.
술집의 다른 마족들 또한 마찬가지로 무혁에게는 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한참 동안 은신하고 있던 무혁이 슬슬- 다른 곳으로 가볼까 싶어서 술집을 나가려고 할 때였다.
“그런데 마수의 대지 일은 어떻다는 거야?”
무혁이 가장 기다리던 이야기가 뒤늦게 시작된 것이다.
두 눈을 반짝이며 무혁이 재빨리 그 이야기를 꺼낸 마족의 곁으로 다가갔다.
“생각보다 일이 복잡한 모양이야. 예상했던 것처럼 겉으로는 인간 따위를 내세워놓고 실제로는 다른 존재가 이번 일을 주도하는 것 같아.”
“내가 처음부터 그럴 거라고 말했었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한낱 인간 따위가 마족을 죽인다고? 하! 웃기는 소리지!”
“그것보다도 소문을 들어보니 벌써 많은 마족들이 실종 상태라면서?”
“그런가봐. 정확하게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몇몇은 확실하게 연락이 끊긴 이들이 있다더군.”
“음… 이거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한 것 아니야? 우리도 한 번 가볼까?”
“그러기엔 너무 늦었지.”
“늦었다니?”
“못 들었어? 케트라가 이번 일을 해결하라는 명령을 받아서 벌써 마수의 대지로 향했는데?”
“그럼 내가 들었던 소문이 사실이란 거네. 이번 일에 마왕 몇몇이 꽤나 관심을 갖고 있다더니 결국은 한 명이 직접 해결하기로 한 모양이군.”
더 이상은 마수의 대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두고만 볼 수 없다는 듯, 마왕 니니스가 직접 개입을 해서 자신의 충직한 종이나 다름없는 마족 케트라에게 모든 전권을 위임했기에 이제는 마족들도 더 이상은 함부로 나설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케트라라면 조만간 해결이 되겠군.”
“그렇겠지.”
“그런데 케트라는 도대체 왜 니니스 님의 종으로만 남으려고 하는 걸까? 케트라의 실력이면 충분히 도전권 쟁탈전에서 마왕 도전권을 획득할 수 있잖아?”
“케트라 스스로 니니스 님을 모시는 것에 불만이 없다는데 어쩌겠어?”
“하긴, 스스로 좋다고 하면 할 말이야 없지.”
무혁은 마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수의 대지에서 마족들의 행동 패턴이 변한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케트라라는 마족부터 처리해야 하나?’
하지만, 마왕 도전권을 획득할 정도의 실력자라면 절대 섣부르게 접근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무혁이었다.
‘우선은 이 모든 사실부터 알려주고 대응방법을 찾아야겠네.’
무혁은 원하는 정보를 얻었기에 미련 없이 술집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술집을 빠져나온 무혁은 잠시 걸음을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마왕 서열전, 그리고 도전권 쟁탈전, 마지막으로 케트라.
이 세 가지의 가장 큰 정보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넣으며 무혁은 생각했다.
단순하게 본다면 마수의 대지에서 자신들을 잡고자 하는 케트라를 처리하는 것이 1순위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왕이 직접 관여해서 명령을 내린 일이라, 지난 두 달처럼 어중이떠중이처럼 제 멋대로 행동하던 마족들과는 확실히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아직까지는 킬 라시온 멤버들이 큰 위험 없이 마족들을 잘 상대하고 있었지만, 무혁은 그러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케트라부터 처리하고 그 다음에는…….”
무혁은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고는 곧바로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해서 어렵게 발을 들여놓았던 마르케디악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