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이러 갑니다. 3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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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을 죽이러 갑니다. 301화
신을 죽이러 갑니다 301화
종을 초월하다 (2)
아주 긴 잠을 자고 일어난 것만 같았다.
눈을 떴을 때, 무혁은 잠시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사물의 변화 때문이었다.
공기의 흐름이 보인다고나 할까?
대기 중에 흐르고 있는 바람결이 눈에 보인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순간적으로 무혁은 자신의 시각을 통해서 느껴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신비로움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비단 시각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후각, 청각, 촉각, 심지어 작게 벌린 입에서 느껴지는 미각까지도.
모든 것이 달랐다.
너무 달라서 무혁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말았다.
한참만에야 무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천천히 손을 들어 눈에 보이는 바람결을 향해 뻗어보니 그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 이게…….”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이전까지의 모든 감각들이 수십, 수백 겹의 딱딱한 껍질 속에서 느껴졌었던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도대체 뭐가 얼마나 달라진 거야?”
무혁은 자신에게 벌어진 변화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한 편으로는 몽롱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또 다시 멍하니 서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뭔가를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갑자기 생각의 사고가 멈춰버린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아.”
한참 만에 다시 정신을 차린 무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갑작스럽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멍을 때렸다는 사실이 우스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비정상적이라 괜히 불안한 마음도 생겼다.
“설마 머리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
무혁은 여전히 머리 한쪽이 몽롱하게 느껴졌기에 신의 조각들을 흡수하면서 부작용이라도 생긴 것인가 싶었다.
“우선 상태부터 체크하자.”
무혁은 또 갑자기 멍을 때릴까봐 자신의 정보를 열람했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정보가 열람되지 않았다.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유일한 종, 가장 독립된 종으로 진화 중입니다.]
[영혼의 크기가 작습니다.]
[현재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무혁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유일한 종, 가장 독립된 종은 무엇이며, 영혼의 크기가 작으니 불완전한 상태라는 건 뭘 어쩌란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무혁은 스킬 정보를 확인해봤다.
“…미치겠네.”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확인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무혁은 급한 마음에 블랙 본 장검을 만들어냈다.
손바닥에서 블랙 본 장검이 쑤욱- 만들어졌는데, 그 느낌이 없다.
이전까지는 뭔가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그냥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혹은 본래 손에 쥐고 있었던 것 마냥 우습게도 일부인 듯 하면서도 완전히 독립된 느낌이었다.
블랙 본 장검을 손에 쥔 상태로 무혁은 블링크 스킬을 사용해봤다.
바람결이 눈에 보일 정도로 차원이 다르게 향상된 시력만큼이나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했다.
“…미쳤다.”
같은 말이지만, 전혀 다른 감정의 말이 무혁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블링크 스킬의 거리가 몇 배나 증가한 것도 놀라웠지만, 그에 따른 부담은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블링크를 하루 종일 사용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무혁은 지금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조각 난 신의 힘을 흡수하기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무시하게 강해졌다는 것.
그것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으려나? 모두 잘 있겠지?”
무혁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킬 라시온 멤버들에게 보여줄 생각에 벌써부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텔레포트!”
무혁은 우선 마수의 대지로 곧장 이동했다.
#
“마, 마왕이라니…….”
르케임은 창을 쥔 손이 저절로 풀리려는 걸 억지로 부여잡았다.
존재감이 달랐다.
마치, 처음 헬-라시온에 끌려와서 마족을 봤을 때의 기분이었다. 아니, 그때보다도 더한 무력감이 느껴졌으며,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믿었던 마족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다시금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르케임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필립의 얼굴에도 처음 보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뒤덮여 있었으며, 어떤 상대에게도 굴하지 않았던 실비아 또한 반쯤 얼어붙어서 말 한마디 내뱉지 못했다.
그 외에도 레오, 방적삼, 미첼, 방구름과 아르케니아까지.
현재 로드의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마크와 엘리엇, 송정민을 제외하고는 모두 눈앞에 등장한 마치 게임 속 마지막 끝판왕과도 같은 마왕 자바하의 모습에 온 몸이 경직된 상태로 서 있을 뿐이었다.
아니, 딱 한 명만 달랐다.
“넌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족도 아니고… 그렇군. 천사로군. 기존의 천사들과는 상당히 많이 다르지만 말이야.”
자바하가 로드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자바하의 등장은 그 동안 길게 이어졌던 추격전이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마수몰이를 이용한 마족들의 추격은 끈질기고도 집요했다.
아무리 3명씩 교대를 해가면서 휴식을 취한다 하더라도 밤낮으로 이어지는 마족들의 추격을 뿌리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더욱이 마수를 이용해서 도주로를 제한하고 있었기에 킬 라시온 멤버들은 상황마다 크고 작은 전투를 치러야만 했고, 그때마다 멤버들은 한 명, 두 명씩 부상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킬 라시온 멤버들은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계속해서 추격전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끝이났다.
다른 때와는 다르게 마족들이 마수보다도 먼저 전면에서 킬 라시온 멤버들의 발을 붙잡더니 그 이유가 바로 마왕 자바하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다림의 보상은 확실했다.
그토록 격렬하게 저항을 해왔었던 킬 라시온 멤버들이 자바하의 존재감을 느끼는 순간부터 완벽한 무력감에 빠져버렸으니까.
감히 싸워볼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자바하를 향해서 무기를 휘두르는 순간, 반드시 죽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콱! 박혔다.
어째서 마왕 한 명이 수천 명의 마족들을 거느릴 수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마족 몇 명과 싸워도 결코 밀리지 않았던 킬 라시온 멤버들이었지만, 마왕 앞에서는 눈조차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케트라를 죽인 건 너인가?”
자바하는 그렇게 물으며 로드를 바라봤다.
킬 라시온 멤버 개개인의 실력도 충분히 뛰어났지만,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존재는 로드였으니 당연히 그가 케트라를 죽였을 것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케트라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바짝- 얼어 있는 킬 라시온 멤버들과 다르게 로드는 당차게 대꾸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자바하의 강력한 힘에 위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킬 라시온 멤버들처럼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온 몸이 경직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바하가 뿜어내는 마기에 반발심까지 일어나며 적대감이 생겨날 정도였다.
“모른다면 기억이 나도록 해줘야지.”
자바하가 그렇게 툭- 말을 내뱉고는 가볍게 손을 뻗었다.
“으아아악!”
자바하의 손짓 한 번에 창을 쥐고 있던 르케임의 오른쪽 팔이 어깨에서부터 깔끔하게 떨어져 나왔다.
피하고, 막을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로 자바하의 공격은 부지불식간에 이뤄졌다.
그리고 그건 로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력의 차이가 몇 단계, 아니 몇 십 단계는 났다.
“아직 생각이 안 나겠지?”
생각이 나려면 아직 한참 멀지 않았겠느냐는 듯 이죽거리며 자바하가 또 다시 손을 뻗었다.
“꺄아아악!”
이번에는 아르케니아였다.
작은 체구의 아르케니아는 왼쪽 무릎 아래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르케니아에게 실비아와 미첼이 황급하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누굴…….”
자바하가 킬 라시온 멤버들을 실험용 쥐 마냥 훑어보며 그렇게 입을 떼자, 재빨리 로드가 말을 했다.
“내가 죽였다! 케트라는 내가 직접 죽였다!”
로드의 외침에 자바하는 말없이 피식- 웃더니 다시 손을 들었다.
방적삼의 왼쪽 팔이 잘렸고, 뒤이어 레오의 다리가, 방구름과 필립의 팔, 실비아와 미첼의 다리까지.
킬 라시온 멤버들이 한 명씩 자바하의 손짓 한 번에 신체 일부를 잃어갔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 많은 마수들과 마족들의 추격을 당당하게 뿌리쳤던 킬 라시온 멤버들이었지만, 마왕 자바하 앞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로드 역시도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자바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로드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구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자바하의 구속에서부터 벗어나고자 힘을 끌어올렸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리 용을 써 봐도 자바하의 힘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렇게 킬 라시온 멤버들이 모조리 신체 일부를 잃고 쓰러져서 신음을 하자 자바하가 혀를 끌- 찼다.
“그러게 처음부터 대답을 잘 했어야지. 이건 전부 네 책임이다.”
자바하의 말에 로드의 두 눈동자가 빨갛게 물들었다.
“널… 죽일 거다.”
로드의 말에 자바하가 코웃음을 쳤다.
“네가 날 죽이려면 앞으로 수백 년은 걸릴 거다. 뭐, 그때도 나는 네놈보다 훨씬 더 강력한 존재가 되어 있을 테니 사실상 내가 네놈의 손에 죽을 일은 없겠군. 그래서 난 네놈을 살려 둘 생각이다. 더불어 저 인간들 또한 마찬가지로 목숨만은 살려두마. 너희 덕분에 내가 헛소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모조리 머리통을 터트려버리고 싶지만, 이번 한 번만은 내가 자비를 베풀도록 하지. 대신, 너희가 내게 해줘야 할 말들이 꽤 많을 거다.”
자바하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욜리스를 바라봤다.
내가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제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눈빛에 욜리스가 재빨리 마족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명령을 받은 마족들이 킬 라시온 멤버들을 짐짝마냥 거칠게 다뤘다.
그렇지 않아도 신체 일부가 잘려나가는 고통에 신음하던 멤버들은 무자비한 마족들의 거친 손길에 악을 써대며 반항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과격한 폭력뿐이었다.
“나는 이놈을 데리고 먼저 돌아가 있겠다.”
자바하는 그렇게 말을 마치고 로드를 데리고 먼저 자리를 벗어나버렸다.
자바하가 돌아가자 욜리스 또한 서둘러서 떠날 준비를 했다.
수개월 동안이나 이어졌던 마수의 대지에서의 마족들과 킬 라시온의 싸움이 끝을 맺었다.
#
조각 난 신의 힘을 흡수하고 마수의 대지로 다시 돌아온 무혁은 곧장 위치 추적 스킬을 사용했다.
조각 난 신의 힘을 흡수하기 전에 방구름에게 걸어두었던 위치 추적 스킬이었다.
무혁은 자신의 두 눈에만 보이는 검은색 실선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볍게 땅을 박차고 달리는 속도가 전력으로 달리던 히포와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속도도 속도지만 힘도 별로 안 드네…….”
무혁은 자신의 경이적인 성장에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무혁은 검은색 실선과 연결되어 있는 방구름과의 거리를 좁혀가던 중, 그의 시야에 익숙한 생명체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옅은 잿빛 색깔의 말을 닮은 마수.
“히포!”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과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히포였다.
무혁의 외침에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달리고 있던 히포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꾸득! 꾸득! 꾸득!
자신의 주인인 무혁을 발견한 히포가 미친 듯이 울어대며 달려왔다.
“너 왜 혼자야?”
무혁은 히포가 홀로 다닌다는 사실에 직감적으로 킬 라시온 멤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꾸득! 꾸득!
히포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지, 쉬지 않고 무혁에게 울어댔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흥분한 히포의 모습에 무혁은 조용하라는 듯 손을 들어 올리고는 딱딱한 음성으로 물었다.
“다른 멤버들은? 설마 모두… 마족에게 당한 건 아니겠지?”
무혁의 물음에 히포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주 힘없이 울어댔다.
그 모습에 더 이상 무혁은 시간을 지체 할 수 없다는 듯 방구름과 연결된 검은색 실선을 따라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꾸득!
히포는 무혁의 어마어마한 속도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윽고 허겁지겁 그 뒤를 따라 달렸다.